국립현대미술관 과천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展 개최
◇ 자연에 관한 서정성과 사실적 표현을 추구한 1960-70년대 구상회화
- 2018-2023년 기증작품 중 1960-70년대 한국 구상회화 작품 150여 점 한데
선보여
- 이병규, 도상봉, 윤중식, 박수근, 김영덕, 김태 등 국내 작가 33명
- 이건희컬렉션 104점 포함, 모두의 문화예술 향유 돕는 ‘기증’의 의미 되새겨
- 2024년 5월 21일(화)부터 9월 22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층 3,4에서 열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포스터.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를 5월 21일(화)부터 9월 22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는 최근 5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가운데 한국 화단의 형성과 성장에 자양분이 된 1960-70년대 구상회화를 재조명한다. 1960년대 이후 추상화가 한국 현대미술의 대세가 되면서 아카데믹한 그림은 구시대의 미술로 여겨지거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추상회화의 연쇄적인 파상에 밀리면서도 구상회화의 영역에서 착실하게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키워낸 소중한 작가들도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조형개념이 출현하더라도 작가의 개성적인 시선으로 인물, 풍경, 사물, 사건 등을 충실히 묘사하는 표현양식은 한국 회화의 토양을 굳건히 다져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가들은 자연에 관한 서정성과 사실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 속에서 발견되는 조형적 요소로 민족적 정서를 표출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출품작들은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늘어난 다수의 기증작품들로 구성되어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역할도 기대된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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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2부‘새로운 의미의 구상’으로 구성되었다.
1부‘한국 구상미술의 토양’에서는 국전을 통해 아카데미즘 미술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유화 작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화 양식의 사실주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1958년 설립된 목우회는 ‘한국적인 아카데미즘을 계승하고 사실주의 집결체로서 뿌리를 내린다’는 목표 아래 당시 가장 규모 있게 성장했던 단체이다. 자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엄격한 사실성을 보인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 이종무, 김숙진, 김춘식 등의 작가들이 포함된다.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인상주의적 색채를 구사하여 주변 풍경과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병규의 <고궁일우(古宮一隅)>(1961)와 <자화상>(1973), 작가의 취향이 스며든 정물을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화면에 채워나간 도상봉의 <국화>(1958), <포도와 항아리>(1970), 어촌 풍경이나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한국적인 인상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김춘식의 <포구(浦口)>(1977)등이 대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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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새로운 의미의 구상’에서는 변화하는 미술 조류에 감응하며 구상과 비구상의 완충지대에 속했던 작가들을 망라한다. 자연에 바탕을 둔 조형적 질서를 추구했던 윤중식, 박수근, 황염수를 시작으로 황유엽, 이봉상, 최영림, 박고석, 홍종명 등 1967년 구상전을 발족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들은 종래의 아카데믹한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대상에 대한 수동적 태세를 지양하고 내면의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표출한 작가들이다.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를 특징으로 하는 윤중식의 <금붕어와 비둘기>(1979), 모래나 흙을 화면에 첨가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민담이나 설화로 해학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최영림의 <만상(滿想)>(1975), 특유의 마티에르와 대담하고 거친 화풍으로 전국의 명산을 다뤄 산의 화가로도 불렸던 박고석의 <도봉산>(1970년대) 등이 출품된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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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복도에서는‘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을 주제로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의 미술품 기증은 1971년에 시작되어 2023년 12월 기준, 전체 소장품 11,560점 가운데 기증 작품은 6,429점으로 전체 대비 55.6%를 차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5년 여간(2018년-2023년) 기증받은 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동시대 회화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대량 수집되어 소장품의 양과 질이 상향된 부분을 도식화하여 보여준다. 특히,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예로, 이병규와 윤중식의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어 각 5점, 4점이 기증된 후, 유족들에 의해 2021년 하반기에 각 13점, 20점 추가 기증으로 이어졌다. 이병규, 윤중식, 김태 유족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증의 뜻과 공유의 과정을 보여줄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및 수어해설, 점자책과 큰 글자 감상 자료가 제공되어 관람객의 감상과 해석을 돕는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 전경.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예술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증자의 뜻이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향유의 즐거움을 주고 한국 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번 전시가 다채롭게 전개되어 온 한국 구상회화의 바탕과 여정을 살펴보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전시기획의 글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5년간 작가, 유족, 개인소장가 등으로부터 2,400여 점의 작품을 기증받았다. 회화, 조각, 사진, 판화, 공예 등 전 장르를 망라한 기증작들은 미술관의 부문별 소장품 보강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의 심화 연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술관은 이병규(1901~1974), 윤중식(1913~2012), 김태(1931~2021) 등의 작품을 수증함으로써 한국 구상회화를 보강할 수 있었다. 이 전시는 기증작 중에서도 비교적 미술사에서는 소홀히 다루어진 1960~70년대 구상회화를 소개한다. 아카데미즘의 초석을 다진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을 비롯하여, 현대미술의 조류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 형식을 보여준 박수근, 황유엽, 박고석, 김태, 김영덕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주요 작가 및 작품을 선보이고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제고할 것이다.
전시 구성 및 주요 출품작 소개
1부. 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일본의 근대식 미술학교는 한국의 서양화 양식의 유입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방 전까지 조선에는 서양화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었고, 이에 일본 유학생들은 서양 화단의 도입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다.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등 1세대 작가들은 일본에서 배운 서양미술을 국내에 전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이들은 석고상 연습, 나체 연구, 해부학 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도쿄미술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5년간의 사생 기술을 습득하여 아카데믹한 화풍을 구현했다. 1부 초입에 선보이는 이병규, 도상봉, 오지호, 김인승의 정물, 풍경, 인물 작품에서는 이들이 일본에서 체득한 자연주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대상에 비치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포착해서 온화한 표현과 색상을 사용하고, 그림자는 보라색, 청색으로 보색효과를 냄으로써 대상의 색채를 강조하고 선명히 보이게 만들었다.
1950년대는 한국 화단에 불어닥친 새로운 경향의 추상미술을 표방하는 서구화 물결이 정통적 화법을 지켜나가던 작가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고조시켰다.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구상계열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다시 돌아보며 하나둘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1958년 이종우, 이병규, 김인승, 도상봉, 이동훈, 김형구 등이 주축이 되어 ‘우리의 미술은 아카데미즘의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뜻을 같이하면서 목우회 창립에 이른다. 목우회는 한국의 구상화단을 본격적으로 가꿔간 단체로 초기부터 한국적인 아카데미즘을 계승하였다. 목우회의 결성은 우리나라 구상회화가 체계적으로 성장하고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실제적 형태를 지향하는 구상회화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과 시선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해하기 쉽고, 상식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재현하는 예술로 주목받았다. 때로는 ‘국전 스타일’로도 불리며 당시 한국의 사회적 토대 위에서 살아가던 대중의 취향을 채우고 아카데미즘의 초석을 굳혔다.
이병규, 〈고궁일우(古宮一隅)〉, 1961, 캔버스에 유화 물감, 99×130cm, 유족(이종옥) 기증.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고궁일우(古宮一隅)〉
고궁의 여름 풍경을 묘사한 유화 작품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곳곳의 전각(殿閣)과 어우러져 화면을 싱그러운 기운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햇살, 땅에 드리운 그림자 등 신록(新綠)의 계절을 녹색 주조의 화면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나무 그늘을 청록색으로 표현한 것에서 인상주의적 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었다.
- 국립현대미술관
이병규(1901-1974)는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기초를 닦은 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1921-1926년)했다. 귀국 후, 1927년부터 양정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민족적 의식을 표방한 목일회(1934년) 및 목우회(1958년), 한국사실작가회(1969년)의 창립에 참여하며 사실주의 계열의 미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초대작가,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작가는 일본 유학 시기에 습득한 자연주의 화풍을 바탕으로 주변의 인물, 온실의 식물, 설악산, 사찰 주변의 풍경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그려나갔다. 싱그러운 식물의 줄기와 잎, 그 사이로 보이는 빛, 땅에 드리운 그림자 등 신록(新綠)의 계절을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녹색을 주색으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채와 은은한 빛의 활용, 보색의 병치로 색의 선명함을 한층 강조하며 화면의 공간감과 조형성을 극대화하였다.
도상봉, 〈백일홍〉,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24.7×33.5cm, 이건희컬렉션.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백일홍〉
백자항아리에 꽂힌 활짝 핀 백일홍을 묘사한 작품이다. 백일홍을 화면 상반부에 가득 채워 자연스러운 수평 분할 구도를 이끌어냈고, 배경을 어둡게 처리함으로써 꽃과 꽃병이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드러난다. 특히 빛에 따라 달라지는 다각 항아리의 각면에 표현된 명암이 이를 극대화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도상봉(1902-1977)은 함경남도 홍원 출생으로,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1922-1927년)했다. 귀국 후, 1930년 경신보통고등학교 미술교사를 시작으로, 1948년 숙명여자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창설에 가담했으며 초대작가,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목우회 창립(1958년)에 참여했다.
작가는 일본 유학 시기에 습득한 사실주의적 화풍을 바탕으로 주로 풍경과 정물을 화면에 담아냈다. 특히 조선백자에 대한 애정을 예술로 수용하여, 백자와 백자가 곁들어진 정물을 주 소재로 다뤘다. 화면의 모든 대상은 한결같이 다소곳하게 정지해 있는 상태이며, 대상을 부단히 어루만지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캔버스 천의 고운 결을 살려 잔잔한 붓질로 온화한 색조를 입히고, 빛에 의한 정물과 그림자의 명암으로 깊이감과 선명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김인승, 〈붉은 원피스의 여인〉, 1965, 캔버스에 유화 물감, 91×74cm,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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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원피스의 여인〉
작가의 ‘여인좌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백자달항아리가 놓인 방 안에 트렌치코트를 걸어놓은 의자,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허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엇갈리게 포갠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다. 어두운 배경에 붉은 의상과 백자의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루면서 여인의 얼굴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작가의 여인상이 대부분 서구적인 외모를 하고 있으나, 이 작품은 단아한 외모와 세련된 차림새의 1960년대 한국 상류층 여성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인승(1910-2001)은 개성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기초를 닦은 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1932-1937년)했다.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1937년)에서 창덕궁상을 수상한 후 1940년까지 4회 연속 특선을 수상하며 추천작가에 올랐다.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했고, 목우회 창립(1958년)에 참여했다.
작가는 세밀한 관찰과 데생을 바탕으로 ‘여인좌상’으로 대표되는 국전화풍을 주도했다. 동서양이 융합된 여성상에 달항아리와 같이 한국적인 모티브를 추가한 안정적 화면구성과 사실적인 묘사, 중후한 색채가 특징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인물화의 본질은 인간 성격의 표현에 있다” 하여, 얼굴 묘사에 정성을 쏟았다.
김숙진, 〈정물〉,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31.8×41cm, 이건희컬렉션.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정물〉
작품의 소재인 조선백자, 복숭아, 담배 파이프는 작가 특유의 사실적 묘사력으로 평화로우면서도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작가는 여성을 소재로 한 인물화에서 철저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조형미로 주목받았다. 작가와 같은 목우회 회원인 도상봉이 정물화의 소재로 조선백자를 즐겨 다루었던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숙진(1931-)은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하고 동대학원을 졸업(1963년)했다.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7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이후 3년 연속 특선을 거듭하며 추천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다. 목우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사실작가회 창립(1969년)에 참여했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활동 초기부터 대상을 관찰하여 세밀하고 정교한 필치로 재현하는 사실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지속했다. 평화로우면서도 고요한 색채와 대상 간의 배열로 화면을 안정적으로 연출하였다. ‘최고의 미술은 자연 형태를 그대로 본받은 자연주의’라 말하는 작가는 새로운 회화 사조에 흔들리지 않고 고집스러울 정도의 정밀 묘사로 변함없는 구상회화의 길을 걷고 있다.
김형구, 〈어부의 가족〉, 1975, 캔버스에 유화 물감, 112.5×145cm, 동산박주환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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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가족〉
1976년 《제4회 개인전-도불전》에 출품했던 작품으로, 어린 아들과 여인이 해안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인물 주변에는 바구니와 버려진 조개껍데기가 놓여있고, 뒤쪽으로 배와 조업 도구들이 보인다. 1970년대에 작가는 지인이 이주한 해안 지역 방문을 계기로 어촌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 그는 바다를 관조의 대상으로만 국한하지 않고, 출조(出釣)를 준비하는 어부들, 해녀의 모습 등과 같이 인물과 함께 표현하여 삶의 현장으로서 제시하였다. 명확한 소묘와 명암 대비, 원근법적 구도를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차분한 색채의 사용으로 다소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평소 작품을 그리기 전에 인물의 모습을 연필이나 펜으로 스케치하곤 했는데, 1985년 출간된 화집에 이 작품의 연필 스케치가 수록되어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형구(1922-2015)는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기초를 닦은 후 데이코쿠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1942-1944년)했다. 광복 후 귀향하여 동성중·고등학교 미술교사 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기에 월남하여 종군 화가로도 활동했다. 백우회, 목우회 창립(1958년)에 참여했다.
작가는 “그림은 생활에서 우러나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아내와 자녀, 학교의 제자들처럼 가까운 인물을 소재로 하거나 일상의 전경, 주변 풍경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회화를 선보였다. 특히 ‘사람’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그 인물의 삶이 드러나는 풍경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다. 명확한 소묘와 명암 대비, 원근법적 구도를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하며, 차분한 색채의 사용으로 다소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춘식, 〈포구(浦口)〉, 1977,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2.5×112cm, 이건희컬렉션.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포구(浦口)〉
해안가에서 어구(漁具)를 정리하는 여성과 그 옆에서 허공을 응시한 채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등장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담담한 표정과 해안가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사실주의 경향의 회화 작품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춘식(1947-)은 전라북도 완주 출생으로, 전주대학교 미술교육학과에서 수학했다. 1968년 목우회 공모전 입선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등에 출품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작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산천초목의 모습과 각 지역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화면에 담았다. 활짝 핀 해바라기 아래에 함께하는 가족의 모습, 소를 끌고 가는 농부, 벚꽃이 하얗게 핀 봄, 쟁기질하는 농부의 일상 등 그림의 소재는 작가의 고향 산천과 풍물, 그리고 세계를 여행한 흔적들로 채워졌다. 초기에는 인물화 중심의 사실주의 화풍을 따르며, 묘사력과 비례감각이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후 굵고 두터운 선묘, 생략과 축소를 통해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화면을 운영하였고, 이상적인 공간분할, 밝고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 등으로 작가의 독특한 향취가 묻어나는 작품을 그려냈다.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
다른 한편 1960년대에 작가들은 종래의 고식적인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벗어나 구상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자연, 사물의 형태, 인간의 이야기 등을 왜곡과 변형을 통해 심상적인 풍경으로 그려나갔다. 뿌리는 구상 영역에 두되, 비구상의 중간 영역을 취하는 절충적 작품들이었다. 이 영역의 작가와 작품들은 하나의 특정한 범주에 집어넣기 어려울 만큼 여러 복합적인 요소의 상보관계로 얽혀있다. 2부를 구성하는 작가들은 도쿄미술학교의 초창기 유학생들과는 달리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대부분 미약하나마 한국에서 기초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이미 강한 자의식 아래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을 개척해 가는 주체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있었다. 이들의 그림은 대개 사실성을 추구하되, 풍경화에서는 인상주의의 빛의 효과를, 인물화나 정물화에서는 후기 인상주의 혹은 야수주의의 형태 왜곡을 보인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화단에서는 갖가지 새로운 미술사조가 전개되었고, 특히 추상미술이 확산하였다. 이제 국내 화단은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회화 양식에 몸을 실었고, 다수의 구상계열 화가도 속속 이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1967년, 그들 중에는 추상양식과 결코 혼혈되지 않는 자신의 구상주의적 체질을 깨닫고 돌아서는 작가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창작미술협회, 모던아트협회 등에 가담했던 중견, 기성 작가와 신예들은 ‘새로운 의미의 구상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구상전을 결성하게 된다. 김영덕, 박성환, 박고석, 박돈, 박항섭, 이봉상, 최영림, 홍종명 등이 창립 작가이다. 이들은 특별히 창립 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구상’이라는 개념을 화두로 삼고 추상미술의 범람으로 그 입지를 위협받던 구상계열의 화풍을 진작하는 한편, 수동적 태세를 지양하고 내면의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표출하였다.
- 국립현대미술관
윤중식, 〈금붕어와 비둘기〉,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61×72.8cm, 유족(윤대경) 기증.
이미지/국립현대미술관
〈금붕어와 비둘기〉
화면 전체에 나무줄기와 나뭇잎이 배치되어 있고, 쌍을 이루는 비둘기와 금붕어가 각각 위아래로 묘사된 작품이다. 나무줄기는 화면을 삼등분 하듯 가로지르고, 줄기의 유려한 곡선과 단순화된 나뭇잎은 장식적인 느낌을 준다. 수조에는 빨간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는데, 물이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색채 대비가 두드러진다. 원근감과 거리감이 배제되었으며, 구도가 독특하다. 유년 시절 정미소를 하는 집에서 자란 작가에게 비둘기는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였다.
- 국립현대미술관
윤중식(1913-2012)은 평양 출생으로, 평양의 숭실중학교 재학 중 조선미술전람회(1932년, 1933년)에 입선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일본 데이코쿠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수학(1935-1938년)했다. 귀국 후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 시기에 월남했다.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3년)에서 특선을 수상한 이후 초대작가,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작가는 일본 유학 시절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학풍 속에서 익힌 서구의 야수주의, 표현주의를 바탕으로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 등 자신만의 독자적 화풍을 만들어갔다. 1950-60년대에는 유년 시절 키운 비둘기, 거위, 오리 등을 작품 소재로 삼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서정적이고 향토적으로 담아냈다. 1970년대 전후로 사물 재현보다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호흡이 크고 굵은 선묘와 노란색, 주홍색 위주의 색 감각이 두드러진다. 풍경, 정물, 인물 등을 두루 그렸으나, 노을 지는 전원풍경을 주로 제작하여 ‘석양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농악〉, 1960년대,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1.5×96.7cm,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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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
작가는 1962년 무렵부터 농악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7점에 이른다. 1963년에는 제1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악(樂)〉을 출품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작이며, 인물의 형태보다는 마티에르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농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세로로 긴 화면에 두 무리의 인물을 위아래로 배치하고 움직이는 방향을 반대로 하여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인물들은 배경 없이 간략히 검은 선으로만 표현되어 원근감이나 입체감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인물과 바탕의 색채, 질감이 균질화되어 멀리서는 화면 속의 형상을 발견하기 어렵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만들어낸 거친 표면과 직선 위주의 선묘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풍화된 암각화와 같은 인상을 준다. 1950년대 후반 작품의 색채와 질감에서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한 이후 단순화된 형태, 강직한 선묘 등을 가미하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작가의 조형적 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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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1914-1965)은 강원도 양구 출생으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1932년)를 시작으로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3년)에서 특선을 하며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작가는 광복 이전부터 주로 농촌의 풍경과 여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러한 모티브는 평생 일관되게 이어진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렸다. 특히 노동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1950년대 후반부터 모노톤에 가까운 회색과 갈색을 주조로 여러 번 덧칠해 특유의 화강암 같은 화면 질감을 만들었으며, 인물들은 각이 진 형태로 단순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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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엽, 〈고향의 노래〉,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4.2×32cm,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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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노래〉
외양간 앞에서 소와 개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년이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을 목가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화면의 어두운 갈색과 붉은색 배경에 형체를 허물면서 자유분방하게 찍어 바른 듯한 거친 붓 터치와 두터운 마티에르, 투박한 검은색 윤곽선은 1970년대에 작가가 즐겨 사용했던 표현주의적 경향의 기법이다. 이처럼 격렬한 질료감, 그 속에 농축된 형상들은 그가 겪은 전쟁의 참화와 공포, 가난 등의 아픔을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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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엽(1916-2010)은 평안남도 대동군 출생으로,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1935년)에 입선하며 도쿄 다이헤이요미술학교 유학을 통해 본격적으로 미술수업을 받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귀국하여 평양에서 활동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남하여 순수한 창작활동을 강조한 창작미술협회 결성(1957년)에 참여했으며, 1970년대 구상전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작가는 ‘소의 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소를 즐겨 그렸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친근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키는 소에 그리운 고향을 투영하였다. 화면의 거친 붓 터치와 두터운 마티에르, 형체를 드러내는 검은색 윤곽선은 1970년대 작가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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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석, 〈도봉산〉,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 물감, 45.5×52.7cm,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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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작가의 ‘산’ 연작 중 초기 작품이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암벽과 짙은 녹음, 푸른 하늘의 조화를 통해 기개 넘치는 산의 풍경을 유화로 그렸다. 암벽의 거친 표면, 무성한 나무를 표현한 붓 터치는 붓의 결을 그대로 살려 속도감이 느껴진다. 대담한 색상의 중첩과 병치, 선명한 코발트블루로 그려진 굵은 윤곽선은 진득한 유화 물감의 마티에르와 함께 생동감을 더해, 화폭이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효과는 작가가 산 그림을 그리는 내내 추구해 온 작업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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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석(1917-2002)은 평양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미술과에서 수학(1935-1939년)했다. 귀국 후 모던아트협회를 결성(1957년)하며, 선을 강조한 추상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후 구상전 창립(1967년)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산’ 작업을 전개한다.
작가는 1960년대 후반까지 표현주의적인 작품에서부터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1970년대부터 “우리 풍토와 체질에서 공감”하는 회화가 우리 미술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란 생각으로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을 여행하며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여 ‘산의 화가’로도 불렸다. 짧은 호흡으로 툭툭 끊듯이 그은 선들이 붓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며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두텁게 중첩되어 덧발라진 진득한 유화 물감은 화면 위에서 특유의 마티에르를 만들어내며 대담하고 거친 화풍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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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만상(滿想)〉, 1975, 캔버스에 유화 물감, 흙, 191×191cm, 이건희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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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상(滿想)〉
전통 혼례복을 입은 여인이 가운데에 그려져 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의 형상과 사물 등이 어지러이 혼재되어 있다. 여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있어 제목처럼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처럼 보인다. 어떤 민담이나 전설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듯 보이는 이러한 도상은 같은 해에 비슷한 이미지로 여러 차례 제작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작가는 모래와 흙을 화면에 첨가하여 독특한 마티에르를 만들고, 민담이나 전설, 설화 동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흙모래를 발라 구현한 토속적인 화면 질감, 해학적인 표현, 자유로운 형상 등은 이 시기 작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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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1916-1985)은 평양 출생으로,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1935년)에 유화로 입선하며 주목을 받았다. 1938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수학(1938-1940년)했다. 순수한 창작활동을 강조한 창작미술협회 결성(1957년)과 구상전 창립(1967년)에 참여했고, 이화여자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작가는 화면에 가족이나 모자상을 등장시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여성을 우리 산천을 지켜온 생명력이자 원동력으로 삼고, 원초적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부로 표현했다. 작가에게 여성 인물은 한국전쟁을 겪은 실향민의 지표이기도 했다. 1950년대는 ‘흑색시대’로 검은색과 청색 계열의 어두운 색채를 주로 사용했으며,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띤다. 1960년대는 화면에 모래와 흙을 첨가한 ‘향토색 시대’로, 한국의 설화와 전설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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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진, 〈흰 코스튬〉, 1970, 캔버스에 유화 물감, 73×60.8cm, 유족(문선, 문주)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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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코스튬〉
작가가 1970년대에 다수 제작한 여인상 연작 중 하나로,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입체주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간결한 선과 기하학적인 색면으로 대상을 분할하고 재구성하였다. 그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두텁게 혹은 얇게 바르거나 번짐, 흘러내림 등의 여러 채색법을 고루 써서 마티에르에 변화를 줬다. 이 작품은 1970년 제1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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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진(1924-2019)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수학(1946-1952년)했다.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58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받았으며, 이후 추천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1960년대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1950-70년대 작가는 소녀를 모델로 한 인물화와 화병, 과일, 꽃다발 등 실내 풍경을 위주로 입체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를 실험하며, 차분한 색채감과 대상에 대한 간결한 재해석, 안정감 있는 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반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동시에 사실적 묘사가 강조되는 구상 작품과 기록화도 제작했다. 이후 자신의 회화적 관심은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있지 않으며 형상의 배치에 따른 구성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하여, 대상의 형태에서 비롯한 색면들과 그것이 이루는 조화를 보여주는 작업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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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 〈건어장〉,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46×53cm, 유족(김미경, 김충정, 김미화, 김수정)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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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장〉
생선을 줄에 엮어 해풍에 말리는 건어장의 풍경이 묘사된 작품이다. 작가는 세부적인 묘사는 생략하고 물감을 두텁게 올려 대상을 표현했다. 화면 가운데에 납작하게 펴진 건어 한 마리와 그 양옆으로 물고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려 있다. 건어의 뒤쪽으로는 해변과 바다가 펼쳐지며,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된 지지대와 줄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건어는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즐겨 그리던 소재 중 하나로 1955년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는 〈건어〉로 입선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건어는 제가 북한에서 서당 다닐 때 처음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촌에서는 서당 수업료를 어물로 대신하곤 했는데 집에서 먹는 생선들과 다른 진귀한 생선들을 서당 훈장님께 갖다 드리곤 했습니다. … 그 모양이 마치 새가 날아가는 것 같이 신기해서 그린 기억이 나는데, 어린 나이에도 펴서 말리는 고기가 갖는 재미있는 형태에 마음이 끌렸나 봐요.”
김태(1931-2021)는 함경남도 홍원 출생으로, 1948년부터 평양미술대학을 다니다가 한국전쟁기에 월남하였다. 서울대학교 회화과에서 수학(1951-1955년)하고 동대학원을 졸업(1967년)했다. 195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입선하였다. “구·추상을 가리지 않고 모여 그림을 그리자”는 취지로 앙가쥬망을 결성(1961년)하고 지속적으로 동인전에 참여했다.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어업에 종사하던 부모님 밑에서 어촌 풍경을 그렸으며, 이는 작가 생애에 있어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1950년대 사실주의 화풍을 거쳐 1960년대 초에는 풍경의 모티브가 화면 전체를 채운 밀도가 높고 구축적인 구성의 추상적 경향을 잠시 선보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풍경, 인물, 정물 등 대상을 따뜻한 시각으로 관찰하며 사실적인 경향으로 전환했다. 에메랄드색 바다, 투박한 듯 강한 붓질, 묵직한 마티에르는 작가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화면의 자연스러운 구성과 조형미로 이어진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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