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38절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절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절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여 주십시오' 할 때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말씀하신다.
요나가 사흘 동안 큰 물고가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말씀하시는데 “인자”는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보다 “인자”라는 말을 많이 쓰셨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쓰면 오해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로 예수님 말씀을 재단하고 예수님을 재단한다.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 들어온 것만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틀 안에서 말씀을 받아들인다. 내 틀을 깨고 내 틀을 열고 주님 말씀으로 내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 틀에서만 받아들인다. 자기 틀 안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이 왜곡된다.
자기 생각과 사상을 버리고 예수님의 틀이 내 틀이 되어야 한다.
- “선생님이여” 라는 말은 “랍비여”라는 높임말로 설교하지 말고 표적(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말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도 성경을 잘 아니 설교를 잘하기 때문에 성경 이야기 하지 말고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표적(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라는 자신의 의가 있어서 윤리로도 안 통한다.
모세의 표적 홍해가 갈라지던지 만나가 내리던지 반석을 쳐서 물을 내던지 아니면 여호수아처럼 해와 달이 멈추던지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을 믿겠다는 말이다.
설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고, 성경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대답한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모든 권세와 권능을 가지신 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 이게 최고 표적 증거다!
증거 중에 증거가 무엇이냐?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하시는 말씀으로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증거다!
홍해를 가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고 사흘간 장사지낸 것이 자칭 성경박사이며, 세상에서 가장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보여줄 최고의 기적이다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어떻게 기적이 되고,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이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어리석어서고 무능해서 십자가를 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이외는 없다, 요나의 표적이 최고의 기적이라고 말씀한다.
사람들은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세요 라고 원한다.그 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과 틀리다.
-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다. 모든 사람들 특히 성경을 아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 그 악을 회개를 해야 한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 기적을 요구하지 말고 그 대신 회개를 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것은 회개하는 자를 위한 대속 재물이 되었다.
요나 선지자가 자기 인생을 통하여 십자가를 경험하고, 아브라함과 이삭도 자기 인생을 통하여 모리아산에서 십자가를 경험하게 하였다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십자가를 진 것이다.
요나보다 더 큰 위대한 순종 더 위대한 영혼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구약성경의 요나서의 표적을 다 알고 있으나 십자가의 그 위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마태복음 12장42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아프리카의 “남방 여왕”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그 먼 거리에서 동방박사처럼 왔다.
하나님 말씀 듣기 위해서 스바 여왕이 그 머나먼 이스라엘까지 왔다면 교회안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예수님이 계신다. 솔로몬이 왕이지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
솔로몬이 스바 영왕에게 십계명과 율법, 시내산 언약에서 나오는 삶의 윤리, 인생 철학, 지혜로운 길!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복음서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 하나님애 아들 예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이다. 세상 사람의 관점에서는 매우 교만한 말이지만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들었을 때는 증오를 넘어 살인을 하게 하는 말이다.
로마서1장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자기의 정체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항상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으로 뜻을 깨닫고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마태복음12장 43절 :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절 :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절 :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 주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권능을 보고, 말씀을 알고 말씀을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일곱 배나 더 강팍하게 된다. 예수님을 통하여 말씀에 은혜를 받았고 치유로 건강해졌고, 귀신이 떠났을지라도 나중 형편이 일곱 배나 더 어려워질 수가 있다.
우리 마음이 회개함으로 정결하게하고 거룩하신 성령에 충만하여서 빈집이 아닌 우리 마음과 삶이 왕궁이 되게 하여야한다.
첫댓글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이란?
ㅡ본문글에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더욱 상세히 묵상해 보면, 결국 예수님이 다 이루신 말씀에서 표적을 구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외친 선포도 결국 말씀에 따라 외친 목소리였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구할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래뱃속에서의 사흘 밤낮 이라는 말씀도 결국 말씀에 따른 표적임이 분명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했던 것은 그들이 말씀에 대하여는 자신하였기에 표적만 보여달라 말했습니다.
요즘 카페의 논쟁과도 비슷한 것같습니다.
모든 것은 말씀으로 돌아와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망
함이 마땅한데, 오히려 자아의 실현을 위해 말씀이 이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염려 되는 바입니다.
은사를 받은자는 말씀대로 더욱 종용해지는 것이 마땅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인지 생명수 말씀에서 찿아야 될 것입니다.
말씀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이용한다면 잠시 떠났던 귀신들이 다시 돌아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