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익산성지 100주년 기념사진전
하늘에서 본 익산성지
원불교 익산성지(圓佛敎益山聖地)는 원불교의 창시자인 박중빈이 익산총부를 건설하고 원불교를 전파한 전법성지이다. 2005년 6월 18일 원불교의 중앙총부 및 부속 8개 건물과 2개의 석탑이 국가등록문화재 17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에 의하여 창립된 종교이다. 박중빈은 우주의 궁극적 원리인 ‘원(圓)’을 상징으로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응보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뚜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근본 진리를 표현하였다.
1916년부터 1918년 사이에는 특별한 교명이 없었으며, 모여든 많은 사람들 중에 9명의 제자[구인선진(九人先進), 일산 이재철, 이산 이순순, 삼산 김기천, 사산 오창건, 오산 박세철, 육산 박동국, 칠산 유건, 팔산 김광선, 정산 송규]를 뽑아 초기 교단의 기틀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1917년 ‘근검저축’, ‘허례폐지’를 내세운 저축조합을 만들었으며, 이 기금을 통하여 1918년부터 영광군 백수읍의 바다를 간척하여 8만 5950㎡[2만 6000여 평]의 농토를 마련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대종단 창설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과정에서 ‘백지혈인(白紙血印)’의 기적을 체험하고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원불교 교리의 초안을 완성하였다. 이후 1924년 익산 보광사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불법연구회를 결성해 익산시 북일면[현재 신용동]에 자리 잡은 것이 원불교 익산성지의 시작이다.
건립 경위
원불교에서는 소태산 대종사가 탄생하고 깨달음을 얻어 교단의 주춧돌을 다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일대를 ‘영산성지’로 지정하고, 포교의 발판을 마련한 전라북도 익산의 중앙총부 일대를 ‘익산성지’로 지정하였다. 즉 익산은 원불교의 교화, 교육, 자선 등 구세성업(救世聖業)을 전개한 지역으로 원불교 발상지인 영산성지를 ‘대각(大覺)’ 성지로, 익산성지를 ‘전법(轉法)’ 성지로 숭앙하고 있다. ‘중앙총부’라는 명칭은 행정을 총괄하는 교단 중심의 의미로 쓰이는 데 반하여, ‘익산성지’라는 명칭은 소태산을 비롯한 인물들이 교단의 성업(聖業)을 이룬 곳이라는 신앙성을 지닌다. 1953년 개교 제1대 성업봉찬회를 전후하여 ‘익산성지’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박중빈은 원불교 활동의 중심지를 물색하다가, “이리[익산] 부근은 평야의 중심지에 있어 무산대중의 생활 터전이 될 수 있고, 또한 교통이 편리하여 교화의 기지로 적당하다.”라고 평가하였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서 조선식산은행 이리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이 들어서는 등 신도시로 개발된 이리시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며 호남의 중심 지역으로 부상하였기 때문에 포교 중심지로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부터 원불교 중앙총부가 있던 활동 지역을 보존 지구로 지정하고, 1945년 광복 이후 교단을 정비한 이래 1953년 제1차 성업봉찬대회, 1971년 개교반백년기념대회, 1991년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대회 등을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진행하였다.
위치
원불교 익산성지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 일대이다. 익산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원불교 익산성지가 동쪽에는 원광대학교와 원광보건대학교가 있다.
형태
원불교 익산성지는 1,304.9㎡의 면적에 조성되어 있다.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하여 건물 8동[공회당, 구정원, 금강원, 대각전, 정신원, 청하원, 본원실, 종법실]과 석물 2기[소태산대종사 성탑, 소태산대종사 성비]가 국가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립 초창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황
원불교 익산성지에서 공회당은 함석과 목조로 이어진 7칸 겹집으로 1929년 건립되었으며, 집회장으로 사용되었다. 박중빈이 직접 제자들의 교육과, 훈련을 지도한 교역자 양성소로 원광대학교의 전신인 유일학림이 개원한 곳이기도 하다.
구정원은 본래는 1935년 교도인 신영기의 개인주택이었지만 희사받아 교정원의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1964년 교정원 사무실 신축에 따라, 반백년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이후 남자 교무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금강원은 1927년 건축된 건물로 박중빈이 변산의 봉래정사에서 익산성지로 옮긴 후 최초로 세워진 처소 공간이다. 1939년 종법실이 신축되기 전까지 10여년 동안 이곳에서 제자들을 지도하였다.
대각전은 법신불 일원상이 봉안된 공간으로 1935년 지어졌다. 1945년 증축되어 현재의 불단으로 개수되었으며, 1986년 제2대 성업봉찬대회를 통해 주변이 황등석으로 조경되었다. 정기 법회 등이 열리고 있다.
정신원은 본래 팔타원 황정신행의 집으로 1941년 지어졌으며, 희사받아 1948년 익산교당 창립 시 교당으로 사용되었다.
청하원은 본래 종사 이공주의 집으로 1932년 지어졌다. 이후 희사받아 초기 교단의 소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한편 1936년 원불교를 감시하기 위한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본원실은 익산성지 내에서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다. ‘불법연구회’의 간판이 처음 걸렸던 곳이며, 대종사의 거처였다. 이후 함석지붕과 유리창이 생겼으나, 1985년에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보수하였다.
종법실은 구조실이라고도 불리며 1928년 지어졌다. 박중빈이 열반 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이며, 후계자인 정산 송규도 종법실에 거처하였다. 이후 종법실이 신축되면서 현재는 소태산 대종사, 정산 종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 성탑은 박중빈이 열반 후 묻힌 곳으로, 1949년 세워졌다. 황등석으로 만들었고, 기단은 연화를 양각하였으며 5층 탑신과 개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이라 각명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 성비는 1953년 세워졌으며 성탑 동남쪽에 있다.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 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竝序)’라는 비문은 정산 송규가 지었으며, 강암 송성용이 글씨를 썼다.
의의와 평가
원불교 익산성지 내에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들은 개량 한옥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일식 주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관의 존재와 외관으로 보이는 유리 미세기문, 각재기둥, 시멘트 기와, 함석차양 등은 근대 주택이 가지는 일반적인 특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기법이 혼용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초창기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건축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원불교 익산성지는 원불교의 교화, 교육, 자선 등 구세성업(救世聖業)을 전개하고 있는 전법 성지로서, 문화재이긴 하나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원불교의 종교적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하는 현재 진행형의 공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3확장영역 접기
『원불교전서』(원불교정화사, 1977)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대사전』(원불교출판사, 2013)
원불교100년총람편집위원회, 『원불교100년총람』(원불교출판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