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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
2022. 9. 18. 예수비전교회 창립주일낮예배 깨어 있는 교회(성도), 복이 있다
마태복음 24: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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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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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입장에서 생각하고, 치우친 시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타성에 젖어서 게을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정신적인 찌꺼기들이 쌓여서 구태를 반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기개발 코치 개리 비숍이 <시작의 기술(침대에 누워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7가지 무기)>이란 책을 썼습니다. 저자는 현상학을 이용해서 삶의 편견과 게으름, 정신적인 찌꺼기를 제거하고 진정한 나를 일깨워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자주 하는 생각이 삶을 바꾼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자신이 된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시작의 기술에 중요한 7가지가 있다. 첫째는 나는 의지가 있다.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구나 실제보다 마음속에서 일을 크게 키운다. 둘째는 나는 이기게 되어 있다. 자신의 위대함을 끌어내라. 셋째는 나는 할 수 있다. 풀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넷째는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한다. 왜? 성공은 불확실성 속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한다. 사람의 행동이 생각과 마음을 드러낸다. 행동이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여섯째는 나는 부단한 사람이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이 되지 않는다. 일곱째는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그냥 현재를 살게 된다. 시작이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 왜? 마지막에 따라 종말이 되기도 하고, 멸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말’과 ‘멸망’이 다르다. 종말은 모든 것의 끝이다. 멸망은 한 시기와 시대, 나라의 끝이다. 종말의 반대말이 창조(시작)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세상 종말의 반대말이다. 사람들이 시작할 때는 공을 들인다. 하지만 종말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 정신이 흐릿해진다. ‘태어난 때는 순서가 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누구에게나 죽음이 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래서 태어날 때보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천국)에 갈 때를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
여러분!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존 플레처(John Fletcher)가 말했습니다. “고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절대 외롭지 않다.” 고귀한 생각은 나를 더 키워가는 생각입니다. 남을 더 배려하는 생각입니다. 함께 더 좋아지는 생각입니다. 인생의 종말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합니까? 아니면 종말을 무시하고 방심하며 살고 있습니까? 깨어 있는 사람이 종말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절박하게 준비합니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해야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들이 항상 종말 신앙을 갖고 살아갑니다. 종말신앙이 약해지고, 없어지면 위기가 옵니다. 그래서 교회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종말론적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적(표)과 교회의 비전, 사랑과 믿음의 가치, 사역이 십자가의 복음에 근간을 두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 (그래야 나를 보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 2:20)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전 15:31) 내 자아가 죽어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살아갑니다.(고전 15:58)
오늘은 예수비전교회 창립주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어디에 세우기 원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반석(페트라/πετρα/petra) 위에 세우기 원하십니다. 그 반석이 그리스도의 고백입니다. ‘주(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왜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교회는 음부의 권세(필라이 하두/πυλαι ‘αδου/죽음, 지옥의 문)가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16:18)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나(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살후 2:14-15)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교회, 활력 있는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건강한 교회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 2:40) 건강한 교회는 믿음의 시작에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난이 장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믿음의 생명력을 끝까지 유지합니다. 활력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활력을 얻어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살아갑니다.(딤전 4:5) 항상 깨어 있어 영혼을 구원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복이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지금 나(우리)는 건강한 믿음으로 활력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는 제자들이 주께서 언제 임하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깨어 있으라(그레고레이테/γρηγορειτε/gregoreite)”는 말은 “정신 차리다, 경계하다, 주의하다, 지켜보다, 엄하게 정성을 기울이다, 신중하다”라는 뜻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낱낱이 조심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음과 행위가 사탄의 전략과 전술에 말려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이 영생을 받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 사람이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됩니다.(단 12:1-3)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마 25:13)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원하는 것과 육신이 약한 것 때문에 갈등을 겪습니다.(막 14:38)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연약한 육신의 생각을 따라 실수(패)합니다. 깨어 기도하면 온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방탕하게 됩니다. 방탕은 마음이 중심을 잃어 지나치게 사치하고 낭비하게 합니다. 술에 취하여 행복과 쾌락의 가치를 혼동하게 합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집니다. 이것이 불신앙의 표시입니다.(마 6:32)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여 장차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눅 21:34-36)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인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나는 주께서 언제 임하실지 모른다.’ 여기서 “알지 못하다(우크 오이다테/ουκ οιδατε/oyk oidate)”는 말은 “깨닫지 못하다, 생각하지 못하다, 지식을 갖지 못하다, 확신하지 못하다, 이해하지 못하다, 발견하지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이기기 위해서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 부름을 받고, 제자훈련을 받았던 시몬 베드로가 자신이 수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나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막 14:29,31) 하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민을 얼마나 알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심히 고민하며 죽게 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신 그 시간에 베드로는 피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삶이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깨어 있어야 자기 영혼을 돌아보고, 마귀를 경계합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뜰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심문을 받고 있을 때,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시험이 다가옵니다. 어정쩡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세상 사람들로 인해 시험을 받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 이 사람이 그의 도당이다.” 곁에 있었던 사람들도 말했습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그들 중의 하나이다.”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막 14:71)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나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손해가 될 때, 죽음이 목숨을 위협할 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도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 라고 세 번을 부인했습니다. 새벽에 닭이 두 번을 우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말씀이 번쩍 생각났습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다.’ 항상 깨어 있고, 항상 깨어 기도해야 시험을 경계합니다. 깨어 있어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시험을 이깁니다. 깨어 기도해야 죄와 허물을 울면서 회개합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비로서 알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을 받기 위해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사도가 되어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려라.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깨어 있는 사람이 항상 말씀을 전파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힘써 전파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범사에 오래 참습니다.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합니다.(딤후 4:2) 깨어 있는 사람이 주의 사랑으로 성도를 깨우고, 함께 교회공동체를 세웁니다.
여러분! 깨어 준비하는 사람이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본문 4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여기서 “집주인(오이코데스포테스/οικοδεσποτης/)”은 “가장, 집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도둑(클렙테스/κλεπτης/kleptes)”은 “도적, 횡령자”이란 뜻입니다. 깨어 있어야 인생을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깨어 있어야 시간의 도둑을 맞지 않습니다. 깨어 있어야 세속주의에 인생을 도둑맞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왜 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도둑은 도둑질을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원수는 사람이 잘 때에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독보리)를 덧뿌리고 갔습니다.(마 13:25)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잠을 잘 때 성장을 방해하는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마귀는 사람의 손에 잡힐 듯 잡히는 것들이 많게 합니다. 삶의 곳간에 더 많은 것들을 채우라고 부추깁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양육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종말을 예언하시고, 종말론적 신앙과 역사관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사도로 보내서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가라지를 뽑는데 열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소명과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깨어 있어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영생을 도둑맞지 않습니다.
깨어 있는 성도는 자신의 시간을 셀 수 있는 지혜의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시 90:12) 깨어 있는 성도는 세월을 아낍니다.(redeem the time)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기 위해서입니다.(요 10:10) 예수님께서는 시간의 종착역에서 방황하는 인생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죽음에서 해방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한 영혼이 영생을 얻고, 영생의 확신이 있어야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교회공동체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4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깨어 있는 사람은 방심하지 않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삽니다. 어느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왔을 때 의사가 말했습니다. “연봉이 높을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것을 아십니까? 전형적인 최고경영자들이 가진 병입니다.”
둘째는 깨어 있는 사람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됩니다. 본문 4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여기서 “충성하다(피스토스/πιστος/pistos)”는 말은 “믿을 만하다, 신실하다, 신뢰하다, 확신하다, 진실하다”라는 뜻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하는 사람에게 밟은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수 14:8) 먼저 충성된 종은 적은 일에도 신실하게 감당합니다. 적은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겸손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만큼 공정하고, 올바르게 양식을 나눠줍니다. 충성된 종은 어떤 일을 맡겨도 ‘아멘’으로 순종합니다.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고후 1:19-20)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종에게 많은 것을 맡겨주십니다. 주인의 즐거움(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주십니다.(마 25:21) 충성된 종은 믿는 사람들의 모델이 됩니다. 믿음의 모델을 무엇으로 보여줍니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본이 되라.”(딤전 4:12)
다음으로 지혜 있는 종은 매사에 사려가 깊고, 신중합니다. 슬기롭고, 총명하게 사명을 감당합니다. “지혜 있다(프흐로니모스/φρονιμος/phronimos)”는 말은 “사려 깊다, 슬기롭다, 신중하다, 총명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슬기로운 사람들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10처녀와 같다. 슬기로운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 신랑이 더디 오자 다 졸고, 잠을 잤다. 그 밤중에 소리가 나서 신랑을 맞았다. 기름을 보충했던 다섯 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마 25:1,4-6,10) 지혜로운 종이 항상 깨어서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왕상 3:9)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사람의 형편을 잘 살펴서 사명을 감당합니다. 지혜로운 종은 주인이 맡겨준 사람들에게 양식을 잘 나누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종이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나눠주기 원하십니다.(시 104:15)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늘 양식으로 만족하게 하셨습니다.(시 105:40) 지혜로운 종이 사람들에게 하늘 양식, 생명의 양식으로 만족하게 나눠주기 원하십니다.
셋째는 깨어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교회공동체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4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여기서 “복(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ς/makarios)”은 “최고의 축복, 행복한 사람, 축복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주인의 뜻을 알고, 실행합니다. 성서신학자 윌리엄 바클레이 박사가 말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절대 복종이요, 절대 겸손이요, 절대 충성이다.” 깨어 있는 성도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자기 마음을 경영합니다. 깨어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함께 품고, 같은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봅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빌 2:2-4)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착하고, 충성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공동체가 함께 축제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어서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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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