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 미솔
한 남자가 버스에 오른다. 63빌딩에서 정류하는지 버스기사에게 묻는다.
남자가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대자 4,600원의 잔액이 찍힌다.
남자의 얼굴에 감격이 번진다. 더러운 얼굴에 오랫동안 면도하지 않아
제 멋대로 자란 수염과 흐트러진 긴 머리에 속옷도 없이 걸쳐진 양복상의.
버스 승객들이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 세상과 작별을 고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 남자는 비애의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낀다.
한 여자가 달려온다.
원피스 형태의 실내복 차림 여자가 흐트러진 긴 머리를 휘날리며
전속력으로 버스를 따라 잡으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내달리지만 결국 버스는 저 멀리 언덕배기를 넘어간다.
달리기를 포기한 여자가 안타까이 울음을 터뜨린다.
이때,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린다. 순간, 여자는 다시 버스를 향해 달린다.
드디어 여자가 버스에 오른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응시한다.
남자가 의아한 시선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가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넨다.
남자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여자가 미소를 보이자 남자도 가지런한 이빨을 보여준다.
둘은 뜨겁게 악수한다.
김씨 성을 가진 남자는 주식에 실패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회사에서 쫓겨나고 애인에게도 버림받았다.
자살을 택한 남자는 한강에 투신한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는 한강에 있는 밤섬으로 밀려오게 된다.
무인도에 도착한 남자는 다시 자살을 하기위해 목매달기를 시도한다.
이때 민방위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남자의 눈에 뜨인 피보다 붉은 사루비꽃.
쓰레기더미 무인도에서 절정의 아름다움으로 도도하게 피어있는 사루비아꽃울 보며
남자는 생의 가치를 깨닫는다.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일단 살아보자며 자살을 포기한 남자는
다시 자신을 수긍하며 자구책을 습득한다.
자기를 밀어낸 도시를 비웃으며 여의도를 향해 오줌 줄기를 내뿜는 것으로 오기를 부려보는 남자.
김씨 성을 가진 여자는 몇 년째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방안에만 있다.
사람 하나도 제대로 누울 공간이 없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한 여자의 방.
부스스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 아무렇게나 걸쳐진 옷.
그리고 무표정하면서 음울한 얼굴.
여자의 폐인 같은 모습은 이마 한 쪽에 보이는 흉터 외에도 무언가 영혼의 상처를 지닌 것 같다.
가족과도 단절을 하고 사는 그녀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문자로 부탁하며,
유일하게 소통하는 세상은 온라인 미니홈피다.
쓰레기더미 같은 자신의 방에서만 생활하지만 방안에서 1000보 걷기 등,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지낸다.
그녀의 일상 중에서 중요한 일은 망원카메라로 달의 사진을 찍는 일이다.
어느 날 그녀의 카메라 렌즈에 백사장에 그려진 ‘HELP’라는 단어가 포착된다.
그리고 숲속에서 어른대는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단조로운 일상을 이어오던 그녀에게 무인도의 남자 모습은 관음증을 유발시켰다.
그날 이후 그녀의 일상은 변화되었다.
세상의 문을 닫고 달팽이처럼 들어가 있는 그녀에게 남자를 지켜보는 새로운 일과가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남자를 관찰하던 여자가 남자에게 조금씩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자가 빈병에 넣어 보낸 안부 쪽지가 밤섬의 남자에게 전해지게 된다.
남자가 백사장에 ‘HOW ARE YOU’라고 써 놓는다. 여자가 망원렌즈로 그 모습을 지켜본다.
남자의 일상을 지켜보던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하는지도 알게 된다.
여자가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는 배달원에게 현관문 틈새로 십 만원짜리 수표를 밀어준다.
그러면서 밤섬으로 배달을 부탁한다. 밤섬으로 가는 교통편이 있을리 만무,
배달원은 자전거 페달을 밟듯 되어있는 오리 배를 저어 밤섬에 도착한다.
“짜장면 배달 왔어요!”
남자에게 퉁명스레 짜장면을 내어 놓는 배달원.
버려진 짜장라면 봉투 안에 들어있는 소스를 보물처럼 간직한 채 짜장면을 소원하던 남자 앞에 꿈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짜장면, 삼선짜장면, 울면, 서비스로 따라 온 군만두가 방긋 웃고 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자와 달리,
“아무리 배달을 안 가는 곳이 없다지만…… 그릇은 그냥 가지시구요…….” 불만을 터뜨리는
배달원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격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음식 앞에서 황홀해하던 남자가 돌아서 가는 배달원을 다시 불러 세운다.
짜장면은 자신의 희망이니만큼 이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고 전해달라며.
의아해진 배달원이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배달통에 담고
짜증스레 오리배의 페달을 밟으며 돌아간다.
무인도에서 발견한 옥수수가 가을이면 알이 꽉 찬 채로 익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이 옥수수 가루를 내어서 짜장면을 만들어 먹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남자다.
자신의 손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일이 수몰되었던 자존심과 자아를 되살려내는 일인 듯
남자는 그렇게 짜장면을 돌려보냈다.
결국 남자는 옥수수 가루를 빻아서 면을 만들고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던 짜장소스를 넣어 울면서 짜장면을 먹는다.
남자의 이런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던 여자는 꽁꽁 얼었던 희망의 꽃망울을 개화시킨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절대 고립의 상태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
남자가 살고 있는 밤섬이 지구이며 여자가 그걸 지켜보는 화성인인지,
여자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화성에 살고 있는 남자를 지켜보는 것인지…….
남자는 태연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여자는 지구인지, 화성인지 모를 그곳에서
단 한 사람뿐인 남자를 가슴에 품게 된다.
남자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해질 즈음, 쓰레기수거를 하기 위해 밤섬에 들어온 사람들이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강압에 의해 자신만의 천국에서 쫓겨난다.
오랜 무인도 생활로 나름대로 익숙해진 남자는 다시 도시에 돌아갈 자신이 없다.
울며 저항하는 남자의 모습을 망원렌즈로 지켜보는 여자가 실내복 차림으로
햇빛 속으로 뛰쳐나간다. 여자가 대낮에 자신의 방문을 여는 일이란,
굼벵이가 햇살 속으로 나오듯 위험한 시도다. 오랜 시간 매미처럼 웅크려있던 그녀가 세상으로 나간 것이다.
민방위 사이렌 덕분에 버스가 멈추어주고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HOW ARE YOU?’ 김씨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잠시 의아하던 김씨 남자가 활짝 웃는다. 김씨 남자와 김씨 여자가 드디어,
세상으로 나가는 빗장을 여는 순간, 얼어 고립된 두 줄기의 강이 풀려 합류한다.
이제 그들은 따뜻한 온기로 졸졸 소리 내어 흐를 것이다.
풀린 강에는 금빛 비늘로 지느러미를 하늘거리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끝말잇기 방에 글울 올리다보니, 예전에 써두었던 영화리뷰가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혹시 안보셨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네~...오래전에 봤는데 또 보고싶어 지네요.ㅎ
리뷰 글, 즐독하고 갑니다^^
백송님께서도 관람하셨군요.
작품성과 짜임새가 좋아서 오래 기억되는 영화랍니다.^^
미솔님!!
굿모닝입니다~~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찾아보니 2009년
정려원 정재영 출연이네요
새로운 영화 리뷰 굿입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키티님 반갑습니다.
참 잘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덜 알려진 점이 아쉽더라구요.^^
@미솔 그니까요~~
자세한 리뷰로
보고싶은 영화입니다
저도 재밌게 봤던 영화네요
감독이 누구였더라 ~~ ???
검색해보니까~^^
감독 "이해준"
수상내역
2010
12회 우디네 극동영화제(골든 멀버리상(관객상), 블랙 드래곤 관객상)
2009
32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최우수 남우주연상)
29회 하와이국제영화제(넷팩상)
1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각본상)
17회 춘사국제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각본상)
상을 많이 받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