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식용 호도나무와 가래(추자)나무가 9속 63종이 북반구 온대 지역과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장흥 귀족호도는 63종에 속하지 않은 장흥만이 가지고 있는 장흥의 나무이다. 장흥의 환경 특성상 식용 호도나무와 가래나무가 자연 교배되어 잡종강세로 변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식용 호도나무와 가래나무의 단점을 상호 보완한 세계에서 유일한 고풍스럽고 우아한 미를 자랑한다고 볼 수 있다. 잡종강세(雜種强勢)란 유전적인 조성(組成)이 다른 계통의 품종(品種)과 교배되면 잡종의 1세대가 양친보다 우수한 형질을 갖는 것이다. 유용한 잡종이 되기까지는 청정환경과 자연환경 측면이 크게 작용 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귀족호도는 식용호도의 껍질이 쉽게 부서지는 것을 단단하게 내과피(內果皮)를 보완하였고, 가래나무의 양끝이 뾰족하고 긴 타원형을 난상원형(卵狀圓形:알꼴 둥그런 모양)으로 형질을 개선하여 갸름하고 설 수 있으며 사람의 손바닥에 적절히 맞도록 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이종은 즉 씨앗을 파종한 실생(實生) 번식법으로는 종자가 퇴화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성번식(無性繁殖:접목,삽목,취목,휘묻이 등)에 의해서만 모체의 우수한 형질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 가 있다. 나뭇잎은 타원형의 소엽으로 차광 효과가 뛰어나며 나무줄기 또한 웅대 하면서도 귀족적인 멋을 느끼게 하여 열매와 아울러 조선 시대부터 옛 선현들께서 귀족호도라 불렀다고 사료된다. 귀족호도 나무는 지리학적으로 장흥권 자연환경 벨트(Belt) 내에서 10주가 조선 시대부터 자생 하였다고 판단된다. 귀족호도의 열매는 손 운동용으로 귀하게 여겨지지만 당초에는 염색제로 더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과실의 외피(外皮)는 머리 염색제 및 광목, 어망 등의 염색 원료로 많이 사용하였고 기호용으로는 옛 어르신들께서 즐겨 사용했던 담배를 피우는 담배 설대(물부리와 담배통 사이에 맞추는 가느다란 대통)에 귀족호도 나무껍질을 벗겨 촘촘히 감아 놓으면 설대에 환상적인 용(龍)무뉘가 그려져 오래전부터 귀족호도는 다른 호도나무와 달리 귀하게 여겨져 왔음이 분명 하다고 본다. 느티나무더러 귀목(貴木)이라 하는데 이 유래는 장흥 호도나무와 같이 귀하다고 해서 귀목, 귀족호도라 이름 붙여졌다고 구전(口傳)으로 전해오고 있다. 원래 귀(貴)자는 한자로 된 명사 앞에 쓰이며 상대편을 높이어 예의를 나타내거나 희귀하고 존귀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즉 oo님 귀하(貴下), oo귀중(貴中)과 더불어 물건을 높이어 이르는 표현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문화병, 테크노 스트레스(tecnostress) 등 신체의 체질개선 차원에서 장흥의 명품 귀족호도가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장흥의 귀족호도 나무의 현행 여건은 100여년 이상된 고목으로서 생산량이 저하되고 품질 또한 예년같이 않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장흥의 정통성을 살려 기존의 귀족호도 바탕위에 새로운 고품위 귀족호도를 연구 개발하여 세계속의 장흥호도로 극대화시켜 나가야 된다고 생각된다. 장흥 귀족호도 박물관에서는 귀족 1호부터 15호까지 다양한 형태의 호도를 육종 번식하는데 성공하여 장흥의 문화로 발 돋음 하기 위하여 산학연(産學硏) 협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 앞뜰에는 16년전(1988년) 귀족호도를 무성번식(無性繁殖)하여 재배한 한 그루가 우뚝 자리잡고 있으며 매년 10여벌씩 탐스러운 열매가 맺히고 있다. 앞으로 "문화장흥·환경장흥·생명장흥"으로 발 돋음 하기 위하여 한 그루의 귀족호도 나무를 심어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린 호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즐거움이 아마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 귀족호두<맨 왼쪽>등 각종 호두들(사진 위), 일반 호두 두세개 크기의 껍질 까기 전 귀족호두.(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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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귀족호두 비벼 돌리면
"와그락 짜그락" 치매도 훠이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에 열매들이 익어 떨어진다. 가장 흔한 것은 감이다. 감은 그래도 예전엔 시골 아이들에게 귀한 먹을 거리였지만 요즘 감은 까치도 좋은 것으로만 가려먹을 정도로 푸대접을 당하는 과일이 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우리 토종 열매 가운데 어느 과일보다도 귀한 대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있다. 이름도 귀한 값을 하여 ‘귀족호두’다.
호도 하면 천안의 명물 호도과자를 생각할 정도로 천안지방에서 나서 먹는 것을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귀족호도는 전남 장흥에서만 자생하고 일반 호도와는 씨에 알이 들어있지 않아서 달리 먹을 수가 없고 씨앗을 손놀이개감으로만 갖고 놀 수 있을 뿐이다. 귀족호도알 한 쌍(2개)의 가격이 백화점에서 30만원~120만원이니 과일값이 아니라 금값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전남 장흥읍 향양리에 귀족호도박물관(이라는 이색적인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 마당에 지금 귀족호도 알맹이들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다. 귀족호도 나무는 장흥에서만 자라는 것인데, 아주 오래전에는 열매를 먹을 수도 없는 귀찮은 나무라고 하여 뽑아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 뒤 귀족호도가 되면서 이 호도나무가 효도나무가 됐다는데, 지금 장흥군 전체에 10여 그루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의 위치는 서로 가르쳐주질 않는다.
귀족호도는 예로부터 어른들의 손놀이개감으로는 최고로 쳤다. 손안에 귀족호도알 2개를 쥐고 열심히 부벼돌리면 “와그락 짜그락”하는 소리가 명쾌하게 난다. 어떤 이는 이를 이른 봄 개구리 울음소리라고 귀히 여겼다. 또 어려운 자리에 갔다가 떠날 시간이 되면 귀족호도를 살짝 굴려서 점잖은 사람들끼리 신호를 하기도 했다. 호도는 원래 소리없이 굴리는 게 예법이다. 소리를 내면 ‘그만 돌아가라’는 신호로 알고 일어서던 게 옛 사람들의 은근한 풍류다. 제 손을 떠난 호도는 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래서 친한 벗이 오면 호도 알을 아예 놓고 담소했고, 사랑방을 나서며 슬며시 쥐고 가도 시비하지 않던 게 호도다. 귀족호도를 굴리면 온갖 신경이 모여있는 손바닥에 자극을 주어 머리가 명쾌해지고 치매예방 효과도 있다고 한다. 귀족호도를 오래 굴리다보면 한시라도 호도알과 떨어져 지낼 수가 없다고 한다. 잠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자야 속이 시원하다.
장흥 호도는 희귀한 데다 식용 호도와 달리 조각 칼도 안 들어갈 만큼 단단하고 주름이 깊어 지압용 노리개로는 그만이었다. 호도를 사러온 사람들 가운데 어떤이는 “어릴 때 어른들이 애지중지하던 호도를 만졌다가 호통을 당했던 기억이 아련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바로 귀족호도라는 것이다. 장흥군청 관계자는 “예전에돈봉투 건네기 뭐한 자리에 선물용으로 챙겨갔던 게 호도”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유명 백화점은 오동나무 상자에 귀족호도를 담아 한 쌍에 30만~120만원씩에 팔기도 한다. 장흥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 호도에 ‘귀족호도’라고 이름을 붙였고, 9월부터 10월 수확철에는 나무 아래에 아예 텐트를 치고 지킨다. “한 알에 수십만원씩하는 귀족호도를 귀한 자식 불알만큼이나 여긴다”는 게 장흥사람들의 호도자랑이다.
△ 장흥 귀족호두박물관장 김재원씨 |
그런데 예전에 갈아 먹을만한 땅에 난 호도나무들은 다 뽑아버려 현재 남아 있는 100년 이상 수령의 큰 나무는 9그루가 고작이다. 장흥군 농업기술센터가 5개년 계획으로 귀족호도 접붙이기 번식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4년. 천상 가지를 구해야 했다. 귀족호도 한 그루 소출이 스무마지기 농사보다 나았고, 가지 하나에서도 쌀 한가마니씩 열리던 시절. 군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수건ㆍ양말도 돌리고 음료수도 사들고 주인에게 통사정해서 서너가지씩 꺾어다가 번식을 시켰다. 때로는 어른들이 집을 비우는 장날을 틈타 그 집 사위나 아들 딸 설득해서 꺾어오게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200여 주의 2세 귀족호도는 군청과 법원 등 군내 각급 기관에 분양됐고, 일부는 일반 유실수 묘목 값의 10배인 그루당 5만원씩에 팔려나갔다.
귀족호도의 본격적인 증식사업은 지난 해 1월 시작됐다. 귀족호도 중에도 최고로 쳐줬던 유치면 늑용리 유아무개씨의 200년생 호도나무가 탐진댐 수몰지구에 들어 있었다. 태풍에 가장 굵은 가지가 찢겨서 옮겨심기도 불가능했던 터여서 유씨는 한해 2,000만원 소득을 내주던 그 나무를 목각용으로 팔았다. 농업기술센터 직원 김재원씨(46)는 그 나무에서 550주의 묘목을 만들었고, 군청을 통해 장흥군 10개 읍면 284개 마을마다 한 주씩 마을 나무로 기증됐다.
경제수령(약 20년)을 넘긴 나무에 열리는 호도는 약 150~200개. 이 가운데 귀족호도라고 부를 만한 명품을 고르면 50~60개(25벌 내외)에 불과하다. 양각 외에 명품 중의 명품으로 치는 3각이나 4각호도는 1,2개가 고작이다. 그래서 3,4각 호도의 색과 크기와 모양을 맞춰 한 쌍을 만드는 데는 2,3년은 걸린다고 한다.
장흥/글·사진 최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