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가? 무언가 나에게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사실 사도들조차도 예수님 뒤에서 자리싸움을 했다. 수많은 군중들도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울 생각을 했다. 우리 또한 그런 생각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분의 뒤를 따를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무언가 이득을 바라고 따른다면,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외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자들이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면서도 결국 십자가의 길에선 예수님을 배반한 것처럼, 그리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땐 환호를 외치던 군중들이 그분의 십자가의 길에서는 돌변하여 야유를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정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한 이들은 그 어떤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를 것이다. 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말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103위 순교성인과 수많은 순교자들은 신앙을 위해 자신을 포기한 채 날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른 분들이다. 자신의 지위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모든 것을 포기하였고, 박해의 고통이라는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죽음’도 피하지 않으신 분들이다. 순교자들이라고 자신이 소중하지 않았거나 고통과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단지 그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를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께 성부 하느님이 전부였듯이 그들에게도 하느님이 전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도 말릴 수 없었던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하느님을 향한 사랑!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