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화(村庄神话)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개촌(開村)의 신성한 역사를 비롯하여, 마을에서 섬기는 당신의 좌정유래와 영험에 관한 신화.
역사
고대 제의에 관한 기록은 나라 단위로 이루어지는 국행제의에 집중되어 있으며,
후대로 내려와도 읍치(邑治) 성황사(城隍祠)에 대한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자연촌들이 성장하여 하나의 리(里)로서 독자적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16세기 이후는 마을 공동체 단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위해서 동신 신앙이 체계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 개촌의 역사나 마을 단위로 모신 신당 및 신격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사람이 죽어 당신이 된 인격신의 사례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22권 양산군 사묘(祠廟) 조에는 고려 태조를 도왔던 김인훈이 죽어
성황사신(城隍祠神)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26권 밀양도호부 사묘 조에는 역시 고려 태조를 도운 공이 있었던 손긍훈이 사후 성황사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오늘날의 당신화에서 반복되는 ‘현몽을 통한 신격 좌정’과 ‘원혼의 신격화’ 모티프는 이미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의 <탈해왕>과 <내물왕과 김제상> 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같은 책 권2 「기이」의 ‘가락국기’에 나타난 수로왕 ‘신당의 금기’도 오늘날의 당신화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모티프이다.
내용
마을신화는 마을에서 섬기는 당신에 관한 신화를 비롯하여,
개촌의 신성한 역사에 관해 말하는 신화적 언술을 포함한 개념이다.
나라에는 국가시조신화가 있고 가문에는 성씨시조신화가 있듯이, 마을에도 개촌시조에 관한 신화가 있었음직하다.
개촌시조는 사후 마을 당신으로 좌정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많다.
개촌시조에 관한 신화가 전하지 않는 것은 신화 집단의 부침과 이주 등으로 인해 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촌시조의 문중이 여전히 동성촌을 유지하고 산다고 해도,
그에 관한 기록은 족보나 문집의 체계로 편입되고 내용도 시조의 업적을 현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해안에는 동성촌은 아니지만 개촌시조를 당신으로 모신 마을들이 많이 있는데,
오랜 전승 과정에서 신화는 망각되고 본관과 성씨만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씨 터전에 ○씨 문전에 ○씨 배판”과 같은 향언이 함께 전하지만, 신화만큼 상징적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사의 전개 속에서 당신의 정체 및 신화가 망실된 후,
어떤 계기로 원혼신(冤魂神)이나 다른 연고가 있는 신적 존재가 당신으로 좌정하기도 한다.
현재는 원혼 당신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형적인 사례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의 죽동에 좌정한 금성대군이다.
금성대군 원혼이 자신을 모셔 달라고 권씨 부인에게 현몽하여,
동네 회의를 거친 후 모시게 되었다는 내용의 좌정담이 전한다.
마을에 일어난 원인 모를 괴변들이 신적 존재의 해코지로 밝혀져 그 존재를 동신으로 모시는 경우도 많다.
당신의 좌정 계기로 흔히 나타나는 것이 현몽과 해코지의 모티프이다.
동회에서 좌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신성의 섬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화는 그 신화를 신성시하는 집단의 것인 만큼,
마을 단위로 그 신성을 섬기는 데는 마을 공동체의 합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마을에서 신화인 것이 다른 마을에서는 한갓 전설일 수 있다.
원혼신 외에 산신이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한 사례도 있다.
충청남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에서는 옛날에는 3군의 수령이 함께 제사지냈다는
죽령 산신 다자구할머니를 당신으로 모신다.
문경새재의 신이 현몽하여 마을의 당신으로 모셔 왔다는 경상북도 의성군 접곡면 사촌리 사촌 마을의 사례도 흥미롭다.
그런가하면 경상북도 안동시와 봉화군 일대에는 공민왕 가족신군(家族神群)을 여러 마을에서 당신으로 섬기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일대에서 조기잡이 신으로 섬기는 임경업 장군도 가족신군의 형태를 취한다.
동제가 지속되는 마을에서는 당신의 영험을 강조하는 언술들이 지속적으로 형성된다.
궂은 일이 자꾸 일어나 당집을 옮기게 되었다든가,
신당이나 동제 금기를 어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든가 하는 영험담들은
마을신과 동민 사이에 이루어진 일종의 종교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동신 신앙이 지속되는 한, 이런 신성 체험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영험담들은 좌정담 못지않게 살아있는 신화로 주목되었다.
따라서 신화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자료의 언술 방식이 아니다.
마을 단위에서 그 신격을 대상으로 동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그 신성에 대한 마을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제야말로 당신화가 형성되고 전승될 수 있는 기반이다.
무엇보다 당신화가 마을신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동제의 지속적 수행을 통해서 신성의 상징으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특징
이 신화는 제주도 당본풀이처럼 동제에서 직접 구송되지는 않는다 해도
동제의 수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승될 뿐 아니라, 동신 신앙의 지속과 더불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나라와 가문의 개조신화는 기록되어 있는 데 비해서,
개촌시조 신화는 기록이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오랜 구전 과정에서 망실된 경우가 더 많다.
원혼신은 개촌시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마을신으로 자리잡은 존재들로서,
원혼신 가운데는 왕이나 장군, 대군도 있지만 이름 없이 죽어간 익명의 존재들이 더 많다.
이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점도 당신화의 한국적 특징이라 할 만하다.
의의
마을신화의 영험담들은 동신 신앙과 연관하여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신화 만들기(myth making)’의 실제로서 의의를 갖는다.
또한 원혼신의 신격화를 통해서는 신원(伸寃)이나 해원(解寃)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동해안 어촌 당신화 연구(이승철, 민속원, 2004),
문경화장마을의 당신화와 동제의 관계(한국민속학보9, (전)한국민속학회, 1996),
민속신화의 범주와 그 민속사회적 가치(천혜숙, 인문과학28,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8),
전남의 당신화 연구(표인주,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