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는 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전인 1941년 1월 5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비행기 회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으나 단지 테크닉만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교에 진학하긴 싫었던 그는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전공했다. 미야자끼는 대학 재학시절 만화에 뜻을 두고 만화연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실은 매체 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 였고, <사막의 백성>이라는 제목의 SF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킨 만화였다. 63년 대학 졸업 후에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애니메이터가 되는데, 입사이유는 "미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연수를 마친 후부터 <멍멍이 충신장>, <걸리버의 우주여행> 등의 작품에서 동화를 담당했다. 이 즈음 소련의 장편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게 되고 자신의 길에 확신을 얻는다. 그곳에서 미야자끼는 주도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서기장이 되었고 당시 부위원 장이었던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나는데, 이후 둘은 평생 창작의 동지로서 함께 하게 된다. 그 시절 미야자끼는 사상과 철학, 사회주의 등에 식견이 깊은 다카하타의 영향을 받으며, 다카하타가 감독을 맡게 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라는 장편 만화영화의 제작에 메인 스텝으로 참여하여 당시 상업 만화영화로서는 획기적인 여러 실험들을 한다. 그러나 너무 왕성했던 열정과 회사와의 마찰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었고, 결국 흥행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은 기존의 만화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 내면 심리의 묘사, 군중 드라마, 일반 민중의 생활상의 자세한 묘사 등이 훌륭했으며, 나중의 '지브리' 작품들의 원형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부터 미야자키 만화 영화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 주제, 사실적 표현기법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권력과 폭력에 대항한 이상적 사회건설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1971년에 다카하타와 함께 A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후인 1978년에 TV 애니메이션 <미 래 소년 코난>을 통해 연출자로 데뷔를 하였으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연출 데뷔는 그로부터 1년 후인 79년에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에서 이루어진다.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 <리틀 니모>의 연출을 포기하고 매달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같은 해 도쿠마 서점의 도움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다카하타 등과 함께 작업한 여러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주제와 형식을 통해 저패니메이션의 한 축이 되었고, 이 때부터 만들어진 미야자끼의 장편 만화영화들은 높은 완성도와 깊은 주제의식으로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사로잡게 된다. 86년 <천공의 성 라퓨타>, 88년 <이웃의 토토로>, 89년 <마녀 우편배달부>, 92년 <빨간 돼지> 등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래 그의 작품들에도 역시 과거 그가 관여했던 경험들이 관통하고 있으며, 사실적 표현기법을 통해 이상주의적 주제를 현실화시켜내는 그의 작업은 완숙함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장편 영화들을 감독하는 사이사이에 다카하타 감독의 87년 <문화기록영화 야나기가와 운하 이야기>의 제작, 91 년 <추억은 방울방울>의 제작프로듀서, 94년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의 기획을 담당하기도 했다. 92년 지브리의 신사옥을 도꾜에 준공한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아니마쥬' 연재를 10년 만에 종료했다. 95년 오랫동안 자신의 작화 감독으로 일해온 콘도 요시후미를 < 귀를 기울이면>을 통해 감독 데뷔시켰다. <귀를 기울이면>과 함께 자신의 단편을 상영한 미야자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알려진 <모노노께히메 >를 97년 여름에 개봉하였다.
작품 해설 및 줄거리 :
원작, 각본, 감독 : 미와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 1997년 작 / 극장용 장편 / 2시간 15분
<붉은 돼지> 이 후 5년만에 내놓은 마야자키 하야오의 최초의 시대극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또 한 편 제작 중에 있더군요. 뭐 본인이 많이 참가는 안했지만..) 제작비 20억엔,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 작화 장수 14만 4천장 등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여러 부문의 새로운 기록을 수립한 작품이기도 하죠. 또한 총매출액이 무려 470억만 엔(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4000억원정도...--; 지브리의 순수익은 600억원 가까이 된다고 하더군요)인 일본사상 최고의 흥행작품이기도 합니다. (음..헐리우드를 능가하는군)
이 작품은 원래 84년쯤에 일본TV의 특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다가 취소되었던 작품으로, 미와자키 감독은 언제가는 꼭 제작하리라 다짐했다고 합니다. 뭐 Newtype나 애니메쥬등의 인터뷰기사를 보면 항상 이 작품을 언급했었죠. 원령공주는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자연파괴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를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전작들에 비해서 약간의 폭력성이 더 가미된점이 없지 않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의 결정판이라 할만큼 구성이나 스토리, OST등 뭐 하나 나무랄데가 없는 작품입니다.
무로마치 시대의 일본, 자연과 인간 신이 동등한 지위로써 존재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에는 그 산을 대표하는 신들이 있었고, 신들은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인간도 신을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차츰 이런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문명의 진화를 택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신은 인간에게 쫓겨나고, 그 자리는 인간의 탐욕과 파괴로 뒤덮혔습니다. 신들은 분노하지만 인간들의 힘은 약해진 그들을 차츰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야마토시대에 패권다툼에서 패배한 에미시족들은 북쪽의 깊은 산골에서 은거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능력과 다른이들보다 훨씬 강한 힘을 소유한 부족이었고, 그래서 전설로만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져 왔습니다. 에미시족 왕가의 소년 아시타카는 마을로 돌진하는 멧돼지 재앙신을 발견하고, 재앙신을 죽이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마을과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서 재앙신을 죽입니다. 그로 인해서 아시타카는 피할 수 없는 고통속의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저주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절대신인 사슴신 뿐입니다. 아시타카는 멧돼지신이 재앙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고, 자신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 길을 떠납니다. 여행 도중 그는 지코라는 수도승을 만나서 재앙신이 생겨나게 된 이유가 자연의 파괴하는 인간과 그런 인간들에 맞서는 신들과의 싸움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안타까워 합니다.
그는 이 싸움을 멈추게 하려고 하지만, 문명의 발전을 추구하는 인간과 자연을 수호하려는 신들은 서로간에 조금의 타협과 이해도 용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산이라는 원령공주를 만나게 되고, 그는 그녀를 통해서 신들의 신인 사슴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꼭 어떻게 해서든지 봐보시길....
어지간한 오락성 영화보다는 백배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