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09 생일날 미역국

어제는 빙혼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매년 특정한 탄생을 위한 생일이 아닌 365일 건강하게 살아가는 생일을 지내며 살려고 하였더니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난 나에게 아내가 소고기 미역국을 떠 먹여(?) 주니 비로소 일요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 어린 시절의 생일은 잘 기억나지 않고 성장을 하여 엄마의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항상 모내기철에 맞추어 논두렁에서 막걸리에 새참으로 생일을 맞았고 더 커서는 일하느라 생일이 오히려 불필요하였는데 - 중국에 와서 결혼을 하고 나니 아내가 생일날에는 꼭 미역국을 끓여 주는 바람에 비로소 내 생일 아침을 맞을 수가 있는 것이다. - 실은 생일날에는 생일을 맞은 쉐이들을 위한 미역국이 아니라 자식을 낳느라 기력이 달린 엄마들에게 바치는 국이 바로 미역국인데 어째서 쉐이들 낳느라 고생한 엄마들보다 쉐이들이 더 지랄들 하는지 도통 나는 알지를 모르겠다. - 하기야 자기가 원하지도 않은 생명을 얻은 후 힘겹게 엄마의 조그만 탯줄 길을 통해서 광명을 찾은 어린 생명들의 처절한 인생 첫 발걸음에 대한 축복을 할 수도 있으리라. -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지만 공장에 도착하여 일이 밀려 밖에 나갈 생각도 못하고 소변을 참아가며 생일날 생라면을 깨물어 먹어가며 하루 종일 간신히 최종 법원 자료를 만드느라 난 미치는 줄 알았다. - 내가 싼 똥도 치우려면 더럽기만 한데 남의 똥을 치우는 일처럼 힘든 일이 있으랴.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쉐이들은 한쪽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을 터인데 무슨 일복이 많아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을 맡아 3개월을 버티어 왔는지 모르겠다. - 자료 작성 와중에 어버이날이라고 하여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는데 아..글세 두 분 내외간에 나란히 병원에 누워 계신다는 비보를 듣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외아들은 하염없이 혼자서 말없는 눈물만 흘릴 수밖에. - 생로병사의 그늘이 이제는 나에게도 다가 와 조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뒤 이제는 부모님이 돌아가실 날이 얼만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참으로 인생 덧없음을 알겠다. - 품에서 애지중지 키워 놓은 외아들은 저 혼자 잘 먹고 살겠다고 멀리 이국땅으로 도망을 가 버리고 두 노인네는 팔다리도 성치 않아 병원에 누워 계신다니 참으로 마음 답답, 갑갑할 따름이다. - 누이들에게도 전화를 하였다. 다행히 누이들이 병든 부모님을 자주 돌보아 주는 바람에 한시름을 덜었지만 아들이라는 멍에를 지닌 숙명은 나로서는 부모형제들에게 죄인으로 살아갈 뿐이로다. - 누나도 어느 덧 쉰이 되고 막내도 마흔이 다 되는 까닭에 이제는 부모님보다도 우리 새끼들이 부모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 그마나 효도이리라. - 어버이날에는 어버이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를 해야 하는 데 어버이는 병상에 누워 있고 이제는 감사를 하고 싶어도 감사를 드릴 수 없으니 나도 늙으면 현재 어버이처럼 병상에 누워 찾아오지도 않는 쉐이 그리면서 눈물을 적시게 될 것 같다. -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쳐 어둠이 밀려올 즈음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의 호화성찬(?)이 나를 맞이하여 피곤이 순간에 싹 가시고 말았다. - 오래 동안 졸인 돼지갈비찜, 신선한 소라 찜, 5년 동안 그렇게 먹고 싶다고 보채도 비싸다고 절대로 사 주지 않던 화장실 냄새가 폴폴 풍겨나는 두리안까지 사다 놓고, 조기 한 마리 구워 놓고 조그만 케익에 초를 켜서 불을 붙여 불으니 오매...삶이란 일단은 살고 보는 것. - 죽네 사네, 아무리 피곤하고 짜증이 나고 일에 지쳐 또 다시 빠삐용을 꿈꾸더라도 가끔은 오로지 이 세상에 나만을 위한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동을 맞으리로다. - 장모님이 담가 보내주신 장백산 포도주에 장뇌삼으로 담근 인삼주를 섞어 어쩐 일로 아내가 먼저 권하니 술 한 잔 또 한 잔...그러다 아내는 고양이 밥 주러 나가고 나는 다시 또 한 잔.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새벽 4시. - 지치고 빈속에 술안주가 아름다워 65도가 넘는 담근 술을 마시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가 다시 또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밥 말아 억지로 떠 먹여 주니 이제야 빈속에 뜨거운 소고기 국물이 진입을 하니 위장이 비로소 안정이 되었도다. - 요즘 회사에서 관리자 식당을 없애고 공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반 지나 사람 빙혼이야 그 동안 겪은 고생에 비하면 이조차도 호화스러운 지라 별일이 없건만 이런 식사에 익숙하지 않은 주재원들은 매일 점심때마다 고민이 생기지만 별 수가 없다. - 머리가 아파 이런 주절을 읊조렸더니 뽀개질 듯한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니 다시 또 힘을 내어 오늘의 일과를 정리하고 마무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