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들의 난동 축제 “맑시즘 2007”에 초청된 붉은 원숭이들 B: (“존 리즈” 누구인가?)> 구국결사대의 맑은샘 붉은 원숭이들의 조명, 오늘은 영국의 붉은 개코 원숭이 “린지 저먼”에 이어 멍청한 오랑우탄 “존 리즈” 차례다. 존 리즈는 현재 <영국 “리스펙트 사무총장”> 그리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인데, 필자는 이번 고려대학교에서 열리는 <맑시즘 2007>의 최고 핵심 해외 좌파 이론가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이 “존 리즈”가 쓰러져가는 현재의 사회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갖은 노력을 다하는 멍청한 영국의 숫오랑우탄이라면 앞서 소개했던 “린지 저먼”은 그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붉은 개코 암원숭이로 마치 이번 좌파들의 대회에 사상적으로 원숭이로써(사회주의자) 공통하지만, 저희들끼리도 살짝 노선 상 갈등요인이 있는 “유인원 부부”가 초대된 느낌이다. 존 리즈의 사상과 노선의 핵심은 “영국 노동당”에 원래 좌파이론과 다른 우파적 요소인 신자유주의를 뒤섞어 불량 에녹스를 만든 “앤서니 기든스”(맑은샘의 신좌익사상비판 시리즈편 앤서니 기든스 참조.)가 영향을 미친 “토니 블레어”를 사회주의에서 벋어났다고 비판하고, 영국 좌파의 새 활로를 찾는 인물인데, 역시 그 핵심은 구 쏘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충격을 받고, 좌파 변종중의 하나인 “트로츠키식으로 돌아가자......”, 라며 고전적 마르크시즘을 다시 해석하자고 하는 것이며(즉, 이는 레닌, 스탈린주의는 실패했으니,마르크스주의를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순수하게 해석했던, 트로츠키를 계승해 보자....), “린지 저먼”과 공통점은 “안토니오 그람시 사상”을 공유한다는 점이다.(*트로츠키와 안토니오 그람시는 맑은샘의 신 좌익사상비판 시리즈 참조....)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존 리즈의 사상이 나왔다고 볼수 있는데, 다음의 인터뷰를 통해서 마르크스를 영국인 존 리즈식으로 해석한 좌파 활동이 엿보여 진다 하겠다. (*다음은 존 리즈의 어느 얼치기 국내 기자와의 인터뷰) ------------------------------------------------------------------------------------------ A: <리스펙트 사무총장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 존 리즈 인터뷰> “미국 제국주의 전략의 성공 여부는 이라크에서 결정될 것이다” Q 현재 국제 반전 운동의 상황과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존 리즈: 내 생각으로는 유럽사회포럼이 현재 반전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초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사회포럼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점점 악화돼 가고 있는 시점에 열린다. 보고에 의하면 36개 도시와 마을이 미군의 통제권에서 벗어났으며 미군 장군들이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이 베트남전쟁 시기보다 더 나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선 2주 전에 영국 런던에서 유럽사회포럼이 개최될 것이며 이 행사의 마지막 날에는 거대한 반전 시위가 계획돼 있다. 만약에 이 반전시위가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이것은 제국주의자들에게 큰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Q 이라크가 아니라 다른 쟁점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존 리즈: 내 생각으로는 미국의 신세기 프로젝트와 미국 제국주의 전략의 성공 여부는 이라크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제 관계가 이라크 전쟁 결과에 따라 결정되게끔 구조화돼 있다. 이런 면에서 그 결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과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은 이라크 전쟁이라는 쟁점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제 운동 또한 포기하면 안 될 것이다. Q 미국 대선에 대한 입장을 설명해 달라. *존 리즈 : 이 쟁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났는데, 이 둘은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해 일부 참가자들은 부시의 패배를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활동가를 포함해 다른 참가자들은 민주당의 케리가 공화당의 부시와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나 또한 케리 정부가 부시의 외교 정책과 실질적으로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시가 만약 대선에서 크게 패배한다면 그것은 부시의 아젠다 전체에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부시의 패배 이후 케리가 부시의 아젠다를 그대로 추구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부시가 승리한다면 이것은 마치 미국 전체가 부시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시와 케리는 별 차이가 없는데 부시의 패배를 위한 운동을 하느냐는 비난은 표면적 급진주의일 뿐이며 실수라고 생각한다. Q 10·17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존 리즈 :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이라크 저항세력이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도달한 것 같다. 언론에서도 미국이 이라크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미국의 대선과 근접한 시기에 일어난다.> 우리는 항상 미국 제국주의가 이라크에서 패배할 수 있는 길은 미군과 미국 정권이 아랍인들의 저항이라는 모루와 국제 반전 운동이라는 망치 사이에 끼여 찌그러질 때뿐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10·17이 바로 모루와 망치가 만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Q 리스펙트의 성공 배경을 설명해 달라. *존 리즈: 먼저 리스펙트는 반전운동에서 <유기적으로 건설됐다.> 영국 전쟁저지연합 안에는<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주요 활동가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싶고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반대하며 노동당에서 대안을 찾는 많은 사람들도 전쟁저지연합 안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많은 경우 전쟁은 이들이 노동당으로부터 나오게 한 결정적인 쟁점이었다. 리스펙트가 바로 이 기반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리스펙트는 이 문제말고도 노동당이 추진한 사회복지 정책과 경제 정책, 노조 권리에 대한 정책 등등에 대해 불만을 느낀 노조 활동가나 일반 노동당 지지자들의 정서, 즉 1백 년 넘게 노동당을 지지했던 우리 가족의 느낌처럼 노동당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는 오래 된 불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리스펙트는 이 같은 두 개의 흐름, 즉 사회복지와 경제적 측면에서 형성된 오랜 불만과 첨예한 쟁점인 반전이 만나 만들어진 정당이므로 출발부터 좋았다고 본다. Q 오늘날 혁명적 좌파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존 리즈: 오늘날 국제적으로 아주 분명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전후 시대의 사회민주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민주당이나 그와 성격이 비슷한 공산당이 위기에 빠져 있다. 그 결과 이들의 좌측에 공간이 열렸다. 이것은 영국에서는 리스펙트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사회당(SSP)으로 입증됐다. 독일도 비슷한 움직임이 보이고 프랑스에서는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이탈리아에서는 재건공산당(리폰다찌오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각 나라마다 형태가 다르지만 기존 사회민주주의의 좌측에서 새로운 공간을 메우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공간을 메우기 위한 모든 정당은 광범하며 개방적인 기반을 형성해야 하며 동시에 급진적이어야 한다. 오늘날의 분위기는 우익적이지 않고 오히려 급진적 분위기가 유력하다. <당연히 혁명적이지는 않다.>그러나 혁명적 좌파가 잘 개입한다면 이런 광범한 프로젝트가 새로운 공간을 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혁명적 좌파는 광범한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 혁명적 좌파와 좌파 전체에게 이로울 것이다. Q 한국의 일부 급진 좌파가 민주노동당이 개량주의 정당이어서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존 리즈: 아주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종파주의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펙트도 마찬가지다. 리스펙트는 종파주의의 무풍지대다. 종파주의자들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다. ------------------------- 이를 보면 구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붕괴한 오늘날에도 “존 리즈”같은 골수 사회주의자들이 이라크문제나 미국 네오콘에 맞서 “반전 평화운동”을 빌미로 한 세계적 좌파 연합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의 지지자들이나 간첩을 미국 민주당이나 영국 노동당에 심어 놓고 때로는 협력, 때로는 노선 비판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이들이 자주 보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좌파 잡지가 있다. 이름 하여 (“INTERNATIONAL SOCIALISM”)이라는 잡지다. 여기에 나타난 “존 리즈”의 붉은 오랑우탄적 생각을 한번 들여다 보고 분석해 보자...... --------------------------------------------------------------------------------------------- B :<대중정당, 혁명정당과 공동전선> ![]() Issue 97 of INTERNATIONAL SOCIALISM JOURNAL Published Winter 2002 Copyright © International Socialism 존 리즈(JOHN REES) 반자본주의 운동과 노동조합에서 급진주의가 부활하자 국제적으로 좌파들 사이에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의 주제는 ‘사회주의자는 어떤 종류의 당을 건설해야 하는가? 이다. 그것은 광범위한 사회주의 정당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혁명조직이어야 하는가?’ 이런 것이다. 이는 적어도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절 이래 사회주의 운동에서 수없이 벌어진 토론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편으로는 급진주의의 부활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민주의(사회 민주주의)와 전통적 공산당의 쇠퇴 때문에 이 논쟁은 새롭게 재기되었다. 머레이 스미스(Murray Smith)와 닉 멕커렐( Nick McKerrell)은 최근 전선(Frontline)이란 잡지의 최신 논문에서 이런 논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이 논문들은 본 잡지에도 재개시했다. 또한 머레이 스미스는 “사회주의 노동자당(SWP)”의 역사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우리가 이 논쟁의 요지를 서술하기 전에 좌파가 현 지점에 도달한 과정을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왔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는 4번의 시기로 계급투쟁을 구분할 수 있다. 처음은 전후 장기호황, 즉 사회적 안정 시기였다. 이는 1960년대 말에 끝났다. 그리고 급진주의가 장식했던 두 번째 시기가 뒤따랐다. 계급투쟁이 격렬해졌다. 이러한 상승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79년 마가렛 대쳐(Margaret Thatche)때까지 노동당 정부의 결정적인 지원을 받은 고용주들의 새로운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이 시점까지 세번째 시기인 퇴조기가 진행되었다. 이는 산업화된 지역에서 노동계급에게 벌어진 패배 중 가장 체계적인 것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10년동안 철강 노동자, 광부, 해운노동자, 인쇄공이 고용주와 국가와의 한판전투에서 패배했다. 네번째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식할 수 있었으며 1999년 시애틀 시위 이후에는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의식과 전투성의 부활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노동당에게 필연적으로 충격이었다. 경제적 팽창기 동안 노동당은 개량을 획득하고도 (자본주의 체제의 척도에서 잔존할 수 있었다.) 저성장과 스테그플레이션의 오랜 시기가 1970년대 초 이후 다가오자, 노동당 정부는 거의 개량을 제공하지 못하고 심지어 ‘경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분하에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그러나 개량주의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신뢰는 (주류대안인 보수당이 더 최악이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다.: 이 말은 존 리즈의 선동) 노동당에 대한 신봉은 역사상 가장 저조한 수준의 노동자 계급의 자기행동과, 더 급진적인 대안이 침식되고 있는 현실 때문에 강화되었다. 약간은 지루했지만, 이런 잘 알려진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은, (어떤 사회주의 조직의 전술은 계급투쟁이 지나온 시기를 이해하는 것에서 나와야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머레이 스미스는 사회주의 노동자당(SWP)의 발전이 사실 계급투쟁의 상황을 중심에 놓고, 문제의 핵심으로 공개적으로 토론 했을 때 조차, SWP는 계급투쟁상황에 거의 영향받지 않은 것으로 다룬다.1 요약하면, 중요한 관계가 다음처럼 있었다. 긴 호황동안 소규모의 조직적으로 느슨했으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명확한 선전그룹인 국제 사회주의자들(IS)이 건설될 수 있었다. 당시 노동당과 공산당이 좌파의 정치적 공간의 대부분을 독점했었다. 이는 1968년 변화했고, IS는 성장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소수였으나 진정한 노동자 계급에 뿌리박을 수 있었다. IS는 또한 효과적인 선동 작업을 감행할 능력을 발전시켰다. 1968년 이후 맹렬한 논쟁 끝에 새로운 상황에 더욱 효과적이기 위한 민주적 중앙집중조직이 되었다. 따라서 평조합원 신문, ‘여성의 소리’, ‘불꽃’의 발간을 포함한 더욱 공개적이고 선동적인 작업이 당조직의 ‘레닌주의적’ 형태의 강화와 더불어 존재했다. 머레이 스미스가 ‘종파적’ 정치계보가 ‘점차 권위주의적 조직’과 ‘손을 잡은’ 것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그는 다른 점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시를 잘못 평가하고 있다. ‘클리프(Cliff)가 이런 종파적 계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급투쟁의 퇴조기 이론을 발전시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클리프는 1978년 초반부터, 1968년이후 시기를 특징지었던 노동자 계급의 승리의 물결이 종국에 다다랐음을 지적했다. 그것은 사활적인 예견이었다. 대쳐의 당선이 대다수 좌파들보다 오히려 SWP에게는 충격이 덜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에 다가올 전투들, 특히 1984-1985년 광부파업을 그 덕분에 더 잘 준비했다.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시기에 벤주의(Bennism)의 부상, GLC와 리버풀(Liverpool)의 밀리턴트(Militant)가 이끈 위원회, ratecapping과 같은 정치적 전투도 무시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산업적 퇴조기와 정치적 상승기’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투쟁이 정치적 급진화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정치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세력들은 궁극적으로 고립되고 패배할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그리고 토니 벤(Tony Benn), 켄 리빙스턴(Ken Livingstone )과 밀리턴트에게 우리의 지적이 맞았음이 입증되었다. 우리 자신의 위치는 가능할 때 싸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혁명적 사상에 기반을 둔 조직을 크게 보존하는 것이었다. 다름 아닌 패배기 동안의 고립은 일종의 통행료였다. 선전수단, 생각의 습관, 조직의 형식이 거의 20년동안 조직을 지배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운동이 재생하면서 변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더 필요한 것도 있다. 그러나 패배기의 끝에 SWP는 노동당 좌파 조직들보다 계급투쟁의 새로운 지형에 더 많은 세력이 함께 참가하게끔 노력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ANL, 광부지원그룹, 세금인하 캠페인 같은 대중 캠페인에 깊이 참가했을때 조차, 우리가 시작부터 함께한 캠페인이 끝날 때 더 큰 혁명조직을 건설할 필요성을 망각하지 않았다. 다른 세력들은 다른 과정을 겪었다. 프랑스의 혁명적 공산주의연맹(LCR)은 자신의 회원들이 노동조합 혹은 캠페인 조직에 참여토록 하면서 생존했다. 이것이 과거에 더 효과적인 전략이던 아니던, 확실히 SWP가 직면한 것처럼 새로운 급진화와 당건설을 연결시키는데 문제점이 줄어든 조직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나는 지난 20년간 살아남아 마르크스주의자로써 남은 누구에게나 경의를 표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나 생존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단순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중요하게도 이것이 머레이 스미스와 닉 멕커렐이 제기한 핵심의문 즉 “노동당이 노동계급 계량주의 조직으로 끝났는가?” 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노동당의 본질) 닉 멕커렐이 주장했듯이 ‘개량주의 노동당이 공개적인 자본주의 조직으로 변환’ 되었는가? 만약 노동당이 끝났다면 이전에 점령당했던 모든 정치영역이 적어도 새로운 사회주의 정당에 개방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닉 멕커렐이 말했듯이, ‘노동당이 거대 기업가의 당으로 변환하면서 생긴 진공지대를 채울 통일된 사회주의 정당’이다.2 개량과 혁명사이의 구별점은 대립의 한 축이 몰락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드러났다. 따라서 조직된 개량주의 세력이 없다면 개량주의자와 혁명가사이의 행동일치, 즉 공동전선의 정의는 분명히 부적절하기 때문에, 공동전선은 불필요해졌다. 만약 이런 모든 상태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면, 혁명과 개량이라는 쟁점에 즉각 부딪치지 않고도 새로운 광범위한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온당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당이 부상하기 전인 19세기말에 존재했던 상황으로 돌아간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순간의 고요한 반발이 노동당에 대한 이런 분석은 사실과 거의 관련이 없음을 드러낸다. 1980년대 노동당 좌파의 패배가 한 세대 동안 노동당내 가장 우익적인 지도부에 자리를 넘겨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와 사회 계획안의 지도력으로의 적응은 주류정당 사이의 정치적 차이를 크게 소멸시켰다. 이런 사실은 노동계급 다수, 아마 절대다수와 노동당 지도부의 견해 및 분위기 사이의 엄청난 불균형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노동당이 개량주의 조직을 그만뒀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모든 정당은 정책뿐만 아니라 자신의 계급구성으로 정의된다.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영속하기 위한 정책과 지도력이 아니라 노동자들로 구성된 조직이기 때문에, 개량주의 정당이란 점에서 특히 사실이다. 이런 모순은 신노동당에서 극한까지 몰아붙여졌다. 그리고 이는 노동당에 독립적인 사회주의 조직에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노동당은 다음의 중요한 측면에서 노동자 계급에게 남아있다. 노동당원 개개인은 압도적으로 노동자계급이며, 심지어 당기구가 이전보다 중간계급요소에 더욱 지배받더라도 그렇다. 당의 투표기반도 압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이다. 대다수 선출직은 여전히 노동조합으로부터 자금을 받는다. 여전히 노동조합은 의심할 바 없이 올해 노동당대회에 참여할 것이고, 노동당이 보수당 2중대라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듯한 태도로 여전히 노동당에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수당이나 자유민주당대회에서 노동계급의 대중조직은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개인 금융 우선권(Private Finance Initiative)에 대해 반발하지 않았다. 그런 반발은 노동조합,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와 노동당사이에 강력한 조직적 고리가 남아있기 때문에 노동당 대회에서만 단지 가능하다. 개량주의 조직과 그들의 노동계급지지자들 사이의 격렬한 모순이 현대 정치무대의 중요한 면이다. 그러나 개량주의 의식과 개량주의 조직이 모조리 이면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 혁명가들이 이런 세력들과 연관 맺는 방식의 문제를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만든다. (공동전선 건설) 노동당에 환상을 갖지 않는 일부 노동자들은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Scottish Socialist Party- SSP)이나 사회주의자동맹(Socialist Alliance)같은 다른 사회주의 조직을 지지하는 걸 간단하게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언뜻보기만 해도, 노동당의 실패와 사회주의적 대안이 가능한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소수이다. 노동당과 결별하고 있는 다수는 불균등하고 부분적으로, 상이한 속도로 다양한 쟁점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해서 노동당에게 소스라치게 놀랐을 지 모르지만, 선거에서는 노동당에 여전히 투표한다. 그들은 PFI를 싫어해서, 이 쟁점에서 정부와 노동당 위원회와 싸울 노동조합내의 혁명가들과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합내의 존재하는 정치기금을 여전히 지지한다. 그들은 혁명가들과 함께 나찌에 대항하고 외국인에 대한 데이비드 브런켓(David Blunkett)의 태도를 싫어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노동당증을 반납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닉 맥커렐이 모든 이런 문제가 하나의 사회주의 조직에서 한 묶음으로 단순히 정리될 거라고 확신하는게 잘못된 이유다. 광범위한 다양한 공동전선에 SWP가 참여하는 것에 반대해서 주장하면서, 그는 ‘만약 모든 이런 캠페인이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한다면, 다수가 참여하는 단결된 사회주의 정당이 스코틀랜드에서 취한 방식으로 영국전역에서 이런 쟁점에 참여하면 얼마나 더 강력하겠는가?’고 말한다. 3 대답은 결코 운동이 더 강력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약해질 수도 있다. 전쟁에 반대해서 사회주의자와 함께할 의지를 가진 사람들 자신이 사회주의자일 필요는 없고, 우리는 그들이 구호민이나 반자본주의에 대해 우리와 동의한다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나찌에 대항해 싸울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자들과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각각의 공동전선이 인식에서 특정목표에 대해 특별하게 건설되어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속의 의식의 다양성과 불균등성을 과소평가하면, 이미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거나, 최소한 사회주의자와 한 덩어리의 얽힌 사상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을 제한하게 된다. 이는 당이 종파적 모델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고, 공동전선개념을 하나의 정당전선으로 전락시킨다. 노동계급운동내의 의식이 불균등하다는 사실은 단순히 공동전선건설에 등을 돌리는건 역효과라는 걸 뜻한다. 즉 머레이 스미스가 말하듯이,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의 부르주아화’의 일부로, 혹은 그들을 ‘사회주의자로 지칭하지 않기 위해, 개량주의자 혹은 단순한 사민주의자로’ 그들을 지칭하는 것은 ‘언어의 오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4 필요한 것은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통일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형태에 대한 조심스런 토론이다. 같은 시간 혁명가들과 개량주의자들에게 그들의 광범위한 차이를 토론할 기회도 제공된다. 이런 토론의 과정에서 혁명가들은 자신의 사상, 투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의 실제화를 통해 개량주의자들에게 효과적으로 혁명적 조직에 참여하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공동전선의 즉각적인 목표가 개량주의자와 혁명가 모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투쟁하는 조직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이룰 수 없다. 노동당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은 단지 새로운 보수당에 속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자와 함께 합시다’>란 선동만으로 그들을 깨우칠 수는 없다. 머레이 스미스의 공동전선에 대한 처방은 첫 지점부터 자기모순이다. 머레이는 노동당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량주의의 소멸을 주장한다. 그러나 베트남 연대 캠페인(Vietnam Solidarity Campaign )처럼 전쟁반대 연합(the Stop the War Coalition)이 ‘혁명가들, 개량주의자들,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참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했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래 최대의 정치집회인 9월 28일 런던 가두집회에 40만명을 참여시킨 조직에 대해 평가절하에서는 더했다. 이날 다수의 노동당 국회의원, 11개의 전국노조의 지지자, 무슬림 조직의 대표자, 녹색당, CND의 지지자와 혁명적 좌파가 함께 참가했다. 머레이의 설명은 또한 실제로도 틀렸다. 그는 반나찌동맹(Anti Nazi League)을 SWP의 전선체로 묘사한다. 그러나 세가지 중요한 경우(1970년대말 국민전선(National Front )의 부상, 1990년대초 데렉 비콘(Derek Beackon)이 런던동부에서 BNP위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리고 오늘날 다시) ANL은 파시스트에 대항해서 수만명을 성공적으로 조직했다. 이는 혁명가들과 노동당분파와 노동조합운동이 함께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ANL은 PCS, GMB, CWU, MSF, FBU and RMT을 포함한 7개의 전국노조의 지지를 받았다. ANL을 이끄는 위원회는 노동당 국회의원인 존 크라이어(John Cryer)와 마크 헨드릭(Mark Hendrick), 노동당 MEP인 그린 포드(Glyn Ford), 런던시당국(Greater London Authority)의 렌 두발(Len Duvall)과 FBU, CWU and TSSA의 전국 집행부 대표자들을 포함한 ANL회의에서 선출되었다. 물론 우리는 이런 종류의 공동전선에 전체 노동당과 TUC도 참여하도록 강제할 세력들도 함께하길 원한다. 그러나 현재 ANL은 공동전선건설의 매우 효과적인 실례로써 보여진다. 결국 머레이는 스스로 공동전선의 정의를 제한된 기간동안 단일쟁점(예를 들면 최근 몇 년 동안 영국좌파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인 캠페인)으로 한정시켰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균열되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협소한 정의다. 실제로 공동전선이란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교화시킨 가장 유명한 작업은, 1930년대 파시즘에 대한 트로츠키 저술이다. 우리는 여기서 더 광범위한 접근법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서 공동전선의 기본적인 형태’로 설명되었다. 왜냐면 노동조합은 임금과 작업환경에 대한 일반적인 투쟁에서 혁명가들과 개량주의자들을 단결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물론 단일쟁점도 아니고 일시적인 조직도 아니다. 더구나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자체도 공동전선으로 설명했다. ‘소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농민 계급)가 권력투쟁의 격변기에 참여하는 환경 하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공동전선이다.’ 소비에트는 물론 자신의 위원들, 하위위원회, 군사기구, 신문, 모금수단을 지닌 영구적 조직이었다. 심지어 봉기시기조차 공동전선건설의 필요성은, 개량주의자와 개량주의 조직이 개량주의 지도자의 반동적 정치 때문에 단순하게 무익하고 공허하다고 선언될 수만은 없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공산당이 예행기간동안 압도다수의 노동자들을 자신의 깃발아래로 단결시키므로써 조직노동자들로부터 다른 정당들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건재하다면, 소비에트는 결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그런 기대에 어떤 근거도 없음을 실제로 입증한다…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다수에게 가장 중요하고, 조직노동자 대오에서 절대적인 지도적 위치를 논란에 여지 없이 점유할 수 있다.5 한쪽 극단으로는 노동조합이, 다른 쪽 극단으로는 소비에트가 공동전선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주의자동맹(Socialist Alliance)을 특별한 형태의 공동전선으로 설명해서 엄청난 이론적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머레이 스미스는 자신의 공동전선에 대한 좁은 이해 때문에 타락에 이를 수도 있다. 머레이과 닉 멕커넬은 당 형태를 띠는 어떤 조직도 공동전선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회주의자 동맹은 확실히 당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다. 당원, 강령, 정책, 위원회, 선출된 지도부가 그것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투표자에게는 사회주의자 동맹은 당으로 보이며,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동맹의 정치적 건설과정에서 혁명가들인 SWP같은 사람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아닌 전직 노동당원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동맹은 공동전선이다. 사회주의자 연합의 강령은 최소강령에서는 혁명가들에게 적합하고, 최대강령에서는 전직 노동당원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 위원회에서 SWP당원들은 소수이다. SSP는 다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더 나은 건 아니다. 14명의 위원회원 중 11명이 한 그룹에서 나왔으며, 그들 모두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들은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혁명정당보다는 정치적으로 낮은 당원자격을 요구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동맹과 다른 정치적 자세를 견지하는데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더 중요하게 SSP는 오만하게도 머레이 스미스가 믿듯이 스스로를 혁명적 분파의 특별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그들은 공동전선의 필요성을 놓쳤기 때문에, (즉 모든 공동전선은 단일한 정당전선 이여야만 하기 때문에) SSP는 모든 대중 캠페인은 당 자신의 구호하에 있거나 SSP세력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대중정당구조가 오랜 종파주의를 떨쳐버릴 걸로 예측하면서, 자신의 손을 잡지 않고, SSP에 가입하지 않는 개량주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단지 ‘새로운 보수당원’이라고 말하는, 종파적 태도를 재창조했다. 이는 SSP가 도달한 진정 가치 있는 선거 성공, 제노바와 다른 반자본주의 행사에 결집한 자신의 기록,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현재 이라크전에 대항한 투쟁 모두에 대해서 SWP와 SWP가 영국에서 참여한 공동전선보다 훨씬 나약하다. 예를 들면 정치자금투쟁을 이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훨씬 더 새로워진 사회주의자동맹이다. 이는 올해 자신의 1000여개의 강력한 회의와 노조회의에 강력한 개입을 해왔다. SSP는 SWP가 특히CWU와 RMT에서 시작한 평조합원 신문과 비교해서 어떤 산업 공동전선조직도 하지 못했다. 이는 예를 들면 전쟁에 반대하는데에서나, 나찌와 싸우는 데에서 조직이 올바른 입장에 있느냐 없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SSP는 이런 쟁점과 일련의 다른 문제들에서도 SWP와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쟁점은 단어와 정책이 아니라 실제와 행동이다. 쟁점에서 핵심은 SSP처럼 구성된 당이 공동전선을 통해 다른 이들과 관련을 맺는 혁명조직으로써 다른 세력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가 아닌가 이다. 이런 부조화가 드러나는 이유는 대중정당 모델이 혁명과 개량사이의 주된 차이점이 있는 곳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것으로 간주하면서) 당의 통일을 강요하고, 공동전선에서 공동행동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서는 (공동행동이 더 이상 필요없는 것으로 간주하므로서) 당의 우선권을 주장해서 종파주의를 낳기 때문이다. 닉 맥커넬은 이런 편견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공동전선 캠페인이 특정 쟁점에서도 필요할 지 모른다고 인정하는 반면, 그는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의 역사적 임무는 반세계화운동이 정치화시킨 노동계급과 젊은이들에게 표지로써 행동할 수 있을 하나의 단일한 다원화한 사회주의 정당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6 그러나 행동에서의 진정한 단일성은 개량과 혁명 같은 원칙적 문제에서의 분리에 의존한다. 우리는 적절하게 조직적으로 수많은 원칙들에서 분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단일한 행동을 할 매우 시급한 쟁점에서 적절하게 결정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대중정당에서 원칙적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에 완전히 마비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는 다른 이들과 함께 행동할 전술적 쟁점을 결코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원칙들에 기반해 조직적 분리를 한다면, 우리가 주장하는 즉각적인 질문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더 쉽다. 이것이 레닌이 이탈리아 혁명가들에게 그들이 투라티(Turrati )가 주도하는 오랜 사회주의 정당에 남았을 때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투라티와 함께하기 위해 투라티와 결별해라’고 말했다.(*이 말은 좌파적 혁명성공을 위해 때로는 철저히 위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하고, 우리 사회의 현재, 우파 색깔을 내는 좌파 출신 인사들을 유심히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맑은샘)) (혁명정당의 필요성) 혁명조직의 필요성은 머레이 스미스가 암시하듯, 단순히 개량주의 정당의 존재 때문은 결코 아니다. 혁명조직의 정당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세 가지 매우 다른 근본적인 특징의 본질에 실제로 기반 한다. 즉 국가, 자본가 계급, 노동계급의식의 본질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이 지난 10년 동안 변화했다면 혁명정당에 반대하는 논쟁이 일부 중요성을 가진다. 만약 국가가 대중운동의 단순한 압력에도 더 순종적으로 다소간 되었다면, 또 사회주의가 이전 국가 기구를 완벽히 뒤엎지 않고도 가능하다면, 선언적 목표의 하나로써 이를 갖지 않는 당에 대한 논쟁은 신뢰할 만 하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의회민주주의에서도 불구하고, 국가의 자국민에 대한 행동준비는 이전만큼 오히려 강력하다. 이점에 대한 의심은 2001년 제노바에서 시위도중 날아갔다. 카를로 줄리아니(Carlo Giuliani)란 청년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줬다. 경제 권력의 계급화와 대중적 압력에 대한 그들의 면역성이 지난 10년동안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자본가 계급의 경제적 권력을 사회의 완전한 변화를 겪지 않고서는 넘겨받을 수 없다는 것이 어느 때보다 명확하다. 1970년대 초반 이후 무엇보다 이런 논쟁에서 휠씬 생동적인 새로운 세대에게 이런 필요성을 설명하는 정당이 여전히 (사활적으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의식의 본질은 그것이 불균등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실천과 노동운동에서의 지적 경험으로 일부 노동자들은 다른 이보다 빨리 정치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광범위한 노동계급운동과 관련해서 소수에 대한 이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분석의 명료성과 실천의 통일성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 줄 수 있는 분리된 조직으로 그들을 모으는 것이다. 만약 정치적으로 더 의식적이고 덜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사람들이 동일한 조직에 공존한다면, 이론적 혼란과 실천적 마비로 결론날 것이다. 스페인혁명에서 POUM과 독일혁명에서 USPD의 나약함이 그 예이다. 후자들이 SPD에서 평가했듯이 이점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사이의 결정적 차이였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기회주의와 싸워야 할 필요를 정치적으로 이론적으로 동의했다. 그들사이의 논쟁은 기회주의에 대항한 캠페인이 혁명정당내에서 이론적투쟁으로 되어야 하는냐 마느냐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놓여있었다… 즉 조직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하는냐 마느냐의 문제에 놓여있었다7. 머레이 스미스는 SSP가 레닌주의 당 개념을 포기했지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시점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전술적 입장에서 망설이지는 않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는 회의적인 일반화다. SSP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주도하는 지도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적이다. SSP는 축적된 이론적 자본에 기생하고 있다. 그리고 지도부와 동일한 혁명적 정치로 훈련되지 않은 새로운 회원들에게 도전받을 만한 크기가 아직은 아니다. 혁명적 정치에 새로운 공약이 없다면 SSP가 성장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혁명가들과 비혁명가들 사이에 일반적인 입장에 대한 느슨한 결합이 하루하루 그런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머레이 스미스는 SSP내부의 마르크스주의 조류의 강력함이 미래의 방향을 정할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로자룩셈부르크가 직면했던 딜레마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자가 이론적 토론에서 승리하더라도, 당의 실행부가 일반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요소에 특히 그렇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당 전체의 통일된 행동으로 어떻게 변환시킬 수 있을까? 기본적인 사회주의 정치에 폭넓게 동의하는 동지들과 함께, 사회주의 동맹 같은 일상적 조직에서 통일이 잘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원칙문제에 대해서는 행동의 독립이 유지 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러한 접근법은 광범위한 공동 조직의 덕목이다. 왜냐면 개량과 혁명의 더 광범위한 쟁점이 드러나지 않는 척하거나 전술적 전략적 쟁점에 관계없는 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머레이 스미스는 레닌주의 당이론을 포기하면서 수반된 어떤 이데올로기적 혼동도 없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근 기고문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노동자 정당에 대한 수고’에서 머레이 스미스는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는 모든 전망이 포화상태인 것처럼 썼다. 그러나 SWP와의 논쟁과 관련된 가장 최근 기사에서 그는 대중 정당의 형성은 단순히 현재 국면에서는 혁명적 좌파의 영향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처럼 썼다. 만약 전자가 사실이라면 광범위한 계급투쟁 정당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조류가 여전히 남아있는가? 왜 모든 각개의 혁명적 조직은 해소되지 않는가? 그러나 만약 후자가 사실이라면, 혁명가들은 혁명적 정치에 기반하지 않은 조직에 참여한 동지들에게 자신의 진정한 색깔을 언제 드러내야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노동당과 이전 밀리턴트(Militant) 그룹의 관계처럼 보인다. 그 핵심은 공동전선 조직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관 맺는 독립된 혁명정당이 광범위한 사회주의 정당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인식의 부정이다. 그들은 개량과 혁명사이의 구분이 현대정치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다는걸 정치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런 논쟁이 SSP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 반갑다. SSP는 참으로 오랜 퇴조기동안 좌파가 빠진 무력증을 깨뜨리는 대담한 시도다. 확실히 SSP는 선거에서도 성공했다. 그리고 좌파의 모든 사람은 이러한 성공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거적 성공이 한 가지 형태의 정당의 권위 있는 취득물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비슷한 수준의 투표율이 매우 다양한 좌익 조직에 의해 획득되었다. 이태리에서 재건공산당, 프랑스에서 혁명적 조직인 LCR과 종파적 조직인 뤼떼 오블리에(Lutte Ouvrière)가 그랬다. 하크니(Hackney) 시장선거에서 폴풋(Paul Foot)의 경우처럼 사회주의자 동맹이 획득한 득표가 SSP의 득표와 비교해서 더 호전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SSP는 광범위한 비판적 전략적 쟁점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노동계급투쟁?? 부활의 시초에 있다.> 가장 중요한 투쟁과 가장 어려운 결정이 여전히 눈앞에 놓여있다. 오늘 최상의 주의를 기울려 그것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이런 시도에서 승리를 거머쥐기를 희망할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운동과 노동계급에 가장 가능한 깊게 뿌리박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그날 그날의 가장 중요한 쟁점에서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는 노동계급의 통일된 조직을 건설하는데 새로운 긴급상황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전통에 기반할 필요 또한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이런 쟁점에서 명확하게 발휘된다.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외에 어떤 대안도 없다는 점이 바로 그 전통이다. Notes 1. On the downturn, see S Jeffreys, 'Striking into the 1980s', International Socialism 5 (Summer 1979); T Cliff, 'The Balance of Class Forces in Britain Today', International Socialism 6 (Autumn 1979); A Callinicos, 'The Rank and File Movement Today', International Socialism 17 (Autumn 1982). On Women's Voice, see L James and A Paczuska, 'Socialism Needs Feminism', International Socialism 14 (Autumn 1981). Tony Cliff's reply was Class Struggle and Women's Liberation (London, 1984), some chapters of which originally appeared as articles in this journal. Lindsey German's response can be found in Sex, Class and Socialism (London, 1989). 2. N McKerrell, 'The United Front Today', Frontline 8 (September/October 2002), www.redflag.org.uk, reprinted in this journal. 3. Ibid. 4. The first description is from Murray Smith's most recent article in Frontline, reprinted in this journal. The second is from his 'Notes on the Workers' Party', reprinted in International Socialist Discussion Bulletin no 1 (July 2002). 5. L Trotsky, The Struggle Against Fascism in Germany (Penguin, 1975), pp170-171. 6. N McKerrell, op cit. 7. G Lukács, 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Merlin, 1971), p284. --------------------------------------------------------------------------------------------- C. <우리는 붉은 영국의 오랑우탄, “존 리즈의 종말”을 만들어야 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유애국동지 여러분............. 위에 나타난 “존 리즈”의 인터뷰와 "International Socialism의 기고문“에 나타난 그의 주장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어렵게 말할 필요없이, 재미있는 것은 첫째, <그들은 영구히 근원적으로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에게 물을 것입니다. “구 쏘련이 붕괴하고 동구권 공산 국가들이 붕괴 했는데 무슨 소리 하는가?” 하고,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 붕괴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이처럼 전세계적인 조직이 여전히 건재해 있습니다. 이들의 입장도 개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한물갔다는 것을 때로는 인정 하지만, 그들의 공적인 입장에서, 공적인 위치에서는 도저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즉, “ 구 쏘련과 공산주의 종주국은 붕괴했지만, 그것은 레닌과 스탈린의 실패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고 해석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원래 폭력혁명보다, 사회 상부구조, 즉, 문화, 종교, 지식인 부분에 문화적으로 침투했으며 이탈리아 파시즘에 의해 감옥에서 옥사한 좌파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를 추종하자는 것이며, 스탈린에게 살해당한 “트로츠키”를 다시 보자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원래 사회주의는 무척 휴머니즘 적이다.”라고 오늘날에도 프롤레타리아(노동자, 농민, 도시지식 근로자층)을 계속 선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의 근원은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이들의 이념은 “마르크스주의” 가 확실하고 여타 권력을 잡았던 노선들을 동지 때에 따라서는 여전히 협력활용, 때에 따라서는 비판 합니다. 그 노선 주도권은 “누가 과연 확실하고 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입니다.> 아시다시피, 영국의 중도좌파 이론가 “앤서니 기든스”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자들을 살릴려고 우파의 “신자유주의”를 가미해 “제3의 길”이라는 중도좌파 섞어찌게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주창하고 수상까지 올랐지만 ,사실상 이론적으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섞어질 수 없는 이론 입니다.(앤서니 기든스는 맑은샘의 신좌익사상 비판 시리즈 참조....) 처음에 영국 노동자들을 선동했고, 노동자들의 추앙을 받으며, 수상 관저에 입성했던 블레어가 좌파들의 강한 혁명노선에서 변해서 인간적으로 사상적으로 우파성향으로 변한 계기는 “영국 왕실의 다이애나비 교통사고 사건” 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 노동당 불레어의 참모진들은 왕실의 “앨리자베스 여왕”에게 온 국민이 추모하는 다이애나를 위해 빨리 버킹검 궁으로 돌아오고, 궁에 조기를 걸라“고 영국언론을 조종해 압력을 행사했으나 앨리자베스는 왕실의 오랜 전통과 권위를 생각하고, 표퓰리즘적 행동을 하며 왕실의 권위에 늘 흠집을 내고 다니는 다이애나와 사이가 나빴던 관계 때문에 블레어 참모진과 한창 힘겨루기에 돌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멍청한 대다수 감정적인 영국국민들 때문에 여왕은 결국 지혜를 발휘해 궁으로 돌아오고 조기를 표했으며 이로 인해 블레어의 압력과 작전이 희석되는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블레어가 여왕과 가까워지고 인간적인 존경과 연민의 정이 발생해 블레어의 제3의 길은 영국 좌파에서 배신했다는 인식을 좌파들에게 심어준 것이었습니다. 후에 블레어는 수상으로로써 국익을 생각하고 부시를 도와 이라크를 자유민주주의화 하는데 자국의 전투병력을 보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이는 현재 미국의 텍사스 중질유가 비밀리에 2020-30년, 거의 바닥이 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경제적 관계가 있는 모든 자유서방국가들은 부시의 편을 들어야 자국이 건재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바로 좌파들은 국제적으로 이를 노리는데, 위의 “죤 리즈”의 기고문에도 나타났 듯, 좌파들은 이를 <미국과 협조하는 서방국가들 대 이라크의 석유를 프랑스나 독일로 팔자는 논리의 껍데기>를 악용하는 것이며, 당시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은 이들 좌파들 편을 들어 부시에 반대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지적할 것은 좌파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경제 경기가 호황 일때는 숨어서 자신들의 국제조직을 교묘히 확대해 놓고, 경기가 불황 일때는 온갖 선전, 선동으로 폭력시위, 혁명을 꿈꾼다는 것이기에, 동구권과 쏘련이 붕괴했다해서 좌파들이 죽고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필자는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토니블레어를 좋아한다는 부류들, 노무현과 그 일당 열우당, 노사견들은 모두 좌파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을 처지에 있지 않는가? 하는 측면도 있다고 필자는 묻고 싶습니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 아직도 블레어를 추종하고 좋아 하십니까? 정신차리든가 당을 나가시기를 바랄 정도로 실망입니다........ 이재오, 인명진 , 고진화, 홍준표, 원희룡 위장 김진홍 모두 다 마찬 가지입니다......... 정체성 분명히 하시오........이번에 우리는 반드시 좌파와 중도위장에 대해서도 심판을 내릴 것입니다. 프랑스의 대중우파 지도자 “사르코지”가 당선되고 영국에서는 부시의 강아지로 돌변한 블레어가 실각한 사실을 똑똑히 보고 말하시오.......낡아빠진 군상들이여 셋째, <이들은 늘 위장을 하고 거짓말을 하면서도, 사실상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은택을 늘 입고 자생하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늘 숨깁니다.> 이 사실은 긴말 하지 않아도 좀 예리한 독자들이라면 위 “죤 리즈” 자신이 한 말 가지고도 금방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리고 존 리즈가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던 시기가 영국에서도 영국병을 치유했던 “마거릿 대처 수상”이 집권했던 시기라는 사실을 명심 합시다..... 넷째,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세계적 몰락과 새 진로를 위해, 대개 가장 잘 인용하는 좌파 인물이 “안토니오 그람시”, “트로츠키” 같은 순수 사회주의 사상의 인물인데, 이를 악용하지만 근본적으로 마르크시즘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즉, 이것은 유럽에서도 단순무지한 폭력혁명의 노동자 시위들이 지탄을 받자, 부드럽고 비폭력적인 얼굴로 마르크시즘을 위장해 사회의 상부구조, 교회, 문화, 종교, 지식인, 전문가 그룹 부문을 끊임없이 위장 침투해서 세력화장을 한다는 것이지만 결국 이것의 근본적인 목적은 노동자를 위한 프롤레타리아만을 위한 도구조직으로써의 활용이다는 점입니다. 필자는 이들의 위선과 가식과 거짓을 깨부술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히 사실에 입각해서 좌파들의 구조적인 위선과 구조적인 시스템의 모순을 폭로하고 깨부수어야 ?磯募? 점입니다. 이번 고려대학에서 열리는 “맑시즘 2007” 붉은 원숭이 난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자유민주주의의 의지와 정체성 이념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의 시금석이 될 것 입니다. 이번 붉은 난동은 김정일을 위한, 김대중과 노무현을 위한, 한국의 모든 좌파들을 위한 총체적 난동의 핵심전략이며, 좌파모임을 숨긴 새 위장정당의 신장개업과 그 노선 투쟁 정리를 위한 시금석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제적인 인터내셔날 연대조직을 강화하러온 붉은 오랑우탄 “죤 리즈”의 몇개 남지 않은 머리털을 다 뽑아 버리던지, 머리통에 기름을 붇고 화끈하게 태워 버려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가이지 영국의 쓰레기통속, 붉은 오랑우탄 존 리즈의 것이 아닙니다..........한심한 고려대학인들이여, 그대들이 한국의 지성이라고 지금 말할 수 있습니까?......... --------------------------------------------------------------------------- 나는 외친다 " Reds Monky, Go Home," " Reds Monky, Go to garbage" " Reds Monky, Go to Hell " " 가라 가라 가라 마 썩은 원숭이 놈들아.........!!!!" " 불구덩이와 지옥으로 꺼져라 사탄 XX들아..........!!!!" ------------------------------------------------------------------------------------- |
첫댓글 좌파는 물러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