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날아올랐어요
전세준
어둠속에서 몇 달은 밖으로 나온다.
얼굴을 살며시 내민다. 눈을 크게 뜬다 엄마의 품속보다 더 따사롭다.
파란 하늘이 햇살에 눈부시게 쏟아진다.
푸른 하늘이 머리 위에 내려앉고 있다. 아직 다 자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엄마가 밀어주는 맑은 젓 줄기를 타고 하얀 샘물을 받아먹으며 살 수 있다.
낮에는 온몸이 살랑살랑 봄바람이 내 몸을 덮어 준다.
밤이면 좀 무서운 생각이 들지만, 하늘 높이 떠 있는 별들의 친구들이 많아 외롭지 않다.
별들과 소곤소곤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즐거움이다. 또 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다. 별들의 속삭임도 듣고 달님이 온몸을 어루만져 주는 그 행복함이다. 내 삶에 더욱 힘을 보태준다.
“너는 참 좋겠다.!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바람과 훨훨 춤추며 세상구경 하는 소쩍새도 부럽다. 나는 엄마의 몸속에서 이 세상 구경을 한 후 한 번도 나들이해 본 일이 없다. 매일 엄마의 손에 붙들려 있다.
아니야! 모두 내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할런지도 모른다.
종일 가만있어도 어도 먹을 걱정 안 하니까. 나는 종일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럼 굶게 될 줄 모른다.
“너는 바람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있어도 엄마가 먹이를 날라다 주니 얼마나 좋니?”
소쩍새는 내가 부러운 모양이다.
“그래,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어!.”
나는 소쩍새보다 훨씬 편하지만,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다.
소쩍새가 오지 않는 날이며 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골짜기 아래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하얀 물줄기가 노래를 한다.
마주 보이는 앞산에는 나의 친구들이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앞산 중턱에 지은지 얼마안되는 깨끗한 사찰이 보인다. 여승만 사는 절이라 아침저녁 여스님의 불경 소리만 들린다. 가끔 다람쥐들이 쪼르르 쪼르르 엄마의 몸 줄기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에 나는 지 루함을 잊을 수 있어 좋다.
가끔 가난한 나무꾼 할아버지가 한 짐 가득 지고 가는 지개를 보면서 또 등산객들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따스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진달래 꽃 봉오리를 봄의 입김을 불어 넣어 연분홍 꽃잎 을 피게 했고, 엄마는 하늘로 뻗어나 갈 수많은 우리 나무 형제들을 꼭 잡고 밤낮없 이 키우느라고 고생을 한다.
깊은 땅속에서 일하는 우리 아버지가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도 못 받고있는 힘을 다해 가면서 우리들을 먹여 살리느라 계속 땅속으로 파고들어, 먹이를 위로 위로 보내주고 있는 그 아버지는 얼마나 힘이 들까.?
나는 아빠에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빠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무수한 형제들은 모두 아빠의 얼굴을 본 일이 없기에 얼굴을 알 수가 없다.
가끔 나무꾼 아저씨의 지게 위에 덩그랗게 올라앉아 마을로 내려가는 나무뿌리를 보 면
–우리 아버지도 저렇게 생겼을까?_
생각해 본다. 비록 아빠의 얼굴은 못 보았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빠에게 항상 고마 운 마음을 엄마를 통해 보내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엄마와 아빠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무성한 잎들만 키우고 있다. 그것도 모두 우 리들의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생활이라고 우리들은 소곤거리곤 한다.
엄마 아빠의 눈물 나게 비바람을 막아주고 우리들은 위로해 주며 또 옆으로 퍼져나 가며 흐르는 물기 노래와 참새 들 새들이 찾아와 노래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또 산중 턱 사찰에서 들려오는 여승의 목탁 소리와 밤마다 아기별등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 이틀, 또 한 달 두 달 바람을 의 노래를 들으며 생활은 계속된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살고있는 이 산마을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가 내 몸을 때리기 시작한다.
따사롭게만 자라오던 우리 형제들은 무더위를 쏟아놓는 이글이글 타는 해님을 원망 했지만 잠시 먹구름 속에서 굵은 빗방울과 바람이 우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비와 바람은 몇 날 며칠을 계속해 내린다.
맑음 물이 흐르던 골짜기 시냇물이 일 년 내내 볼 수 없었던 시뻘건 물이 넘쳐흐른 다.
“애들아! 여름 태풍이다. 모두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엄마는 밤낮없이 잠을 못 자고 우리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바람은 내 몸을 몹시 흔들었고 굵은 빗방울은 사정없이 내 몸을 내려치며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어지럽고 피곤했다. 그러나 엄마의 손을 놓는 순간이면 나는 산 아래로 아래로 떨어 져 정든 형제들과 엄마를 잊어버린다.
어떤 형제는 참다 참다 못해 엄마의 손을 놓아 버리고 골짜기 아래로 빙그르 몸을 빈 하늘로 날린다.
“엄마야!.”
외마디 소리를 남기고 날아간다. 그때마다 엄마는 온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눈물을 흘린다.
“얘들아 모두 정신을 똑똑히 차려라. 우리에게 하느님이 내리는 시련이다. 이 태풍을 이겨야 한다!.”
엄마는 비바람에 고통을 겪으며 눈물 흘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그렇다고 따사로웠던 그때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만 없었어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엄마의 팔을 꼭 잡고 참아야 했어요. 밤이면 더욱 무서웠어요.
며칠이 지났어요.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굵은 빗방울이 멎고 바람도 골짜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어요.
먹구름도 온통 비를 모두 쏟아놓고는 어디론가 흘러갔어요. 파란 하늘이 눈앞에 다가왔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 몸을 어루만져 주었어요. “휴-이제야.” 모두 들 얼굴을 마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어요.
“너, 무사했구나!.”
어디에 숨어있다 왔는지 소쩍새가 내 곁으로 다가왔어요.
“응, 나 혼났어! 그런데 너는?.”
“응, 우리 집은 비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렸어! 그래서 저기 있는 사찰 옆 수풀에 내 려가 숨어있었지. 이제 집을 다시 만들어야 해.” 소쩍새는 걱정이 되는 듯 여기저기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소쩍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나는 도와줄 수 없었어요.
“얘들아, 모두 눈물을 닦고 떠나간 우리 친구들의 새로운 탄생을 위해 고개를 숙이 자!.”
엄마의 슬픈 목소리에 우리들은 모두 얼굴을 닦고 고개를 숙였어요.
뜨거운 여름 햇살이 우리들을 멀리멀리 옮겨주었어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우리 곁을 떠나간 형제들이 다시 아름답게 태어나도록 해 주 셔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엄마의 기도가 끝났을 때, 산 중턱 절에서 점심 공양인지 스님들이 불경 소리와 목 탁 소리가 스피카를 타고 흘러나왔어요.
“너희들은 작년에 떠나간 너희들 형제들이 너희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란다. 너희들도 언젠가는 엄마 곁을 떠나고 다시 내년에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 테니 한 여름 부지런히 커서 착한 일을 많이 하여라. 그래야만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 단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너희들도 땅속에서 썩어 다시 무성한 가족들을 이룰 수 있단다!”
“엄마 곁에서 우리가 어떻게 착한 일을 할 수 있어요?.”
나는 엄마에게 물었어요.
“호호 착각한 어린이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란다. 엄마 곁을 떠나 아무도 모르게 착한 일을 해야지. 그 언제인가 모두 들 손을 잡아 줄 테니 그때 착한 일을 많이 하여라!. 아기들아.”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다정했어요.
우리들은 즐겁기만 했어요. 태풍이 물러간 하늘은 뭉게구름이 머리 위에서 쉬다 가고, 매미들의 합창이 다시 산 을 찌릉 찌릉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가을이 왔어요. 산골짜기에는 옛날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절에는 울긋불긋 등산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했어요.
마을로 나들이 갔다가 돌아온 소쩍새는 내 곁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어요.
“솥 적다 솥 적다!”
“얘야, 그렇게 풍년이 들었니.?”
“응, 대 풍년이야! 그래서 농부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고.”
“그래서 네가 솥이 작다고 자꾸 노래를 부르는구나! 밥을 많이 하려면 솥이 커야 하 는데...더구나 금년에는 풍년이니.”
“응, 그래 풍년이 들어 떡을 해 먹으려면 솥이 작아.”
소쩍새는 다시 노래를 불렀어요. 나와 우리 형제들은 앞산의 다른 친구들과 붉게 또는 누렇게 옷을 바꿔입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어느새 누런 옷으로 바꿔입고 있었어요.
“야! 너 옷이 매우 곱다!.”
“아니야, 네 옷이 더 고와!.”
우리들은 서로 새로 입은 옷들을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었어요.
초록색 보다 울긋불긋한 옷이 더욱 곱고 아름다웠으나 나는 어쩐지 마음이 슬퍼졌어 요. 내가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곧 엄마와 모든 형제들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 너 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형제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당장 곱 고 아름다움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어요. “얘들아, 나도 이젠 팔이 아프구나. 모두들 떠나야 한다. 부디 어디에 가더라도 착한 일 많이 해서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너라!.”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매미들의 합창이 끝났지도 오래되었어요. 어느듯 싸늘한 가을 나날이 다가왔어요.
엄마는 우리들의 손을 흔들며 슬픈 미소를 띠었어요. 이때부터 우리 형제들은 하나 둘 엄마 곁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야! 신난다”
“엄마, 안녕. 흐흐흑.”
“.....”
“아이 어지러워!.”
“형아! 잘 가!.”
공중으로 맴돌며,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들이가 신나는 형제들이 엄마의 정이 그리운 듯 눈물을 흘리며 한 둘 떠나기 시작했어요. 나는 엄마의 따뜻한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엄마의 손이 점점 차가워지고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 더 견딜 수 없어요. 나는 어느 날 엄마의 손을 놓아버렸어요. 내가 제일 마지막 떠나는 것이에요. 엄마의 마음은 텅 빈 듯 위 윙 슬픈 노래를 불렀어요.
“그렇게 엄마 곁을 떠나기 싫니?.”
“응.”
“그래도 가야 한다. 가기 싫어도 언젠가는 한번은 가야 해.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거 야.”
나는 엄마 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꼭 감고 엄마의 손을 놓아버 렸어요. 순간 빙그르 어지럽고 무서워졌어요. 나는 골짜기 아래로 아래로 까마득히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얼마쯤 떨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찬바람이 온몸을 휩쓸며 골짜기를 벗어나 산 중턱 으로 다시 치솟아 올랐어요. -4- 나는 바람이 곤두박질치며 눈을 꼭 감았어요.
바위틈으로 냇가로, 지붕 위로, 산길에, 곳곳에 흩어진 형제들을 생각했어요. 착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또 어디에 가서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어요.
눈을 떴어요.
내가 머리를 쿵 하고 부딪히며 내려앉은 곳은 산 중턱 절 마당이었어요. 다행히 매일 내려다보이던 사찰이였기 때문에 마음은 조금 놓였어요
“야, 그 녀석 매우 예쁘네!.”
내가 땅에 막 떨어진 순간 내 앞을 지나던 등산복 차림의 청년이 나를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피며 법당 옆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나는 왈칵 겁이 났어요.
이 청년이 나를 보고 예쁘다 했으니 혹 집에 가지고 가서 책갈피에 넣어놓는 날이면 나는 다시 엄마 곁에 새로 태어 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청년은 한동안 나를 이리저리 살펴 보았어요. 아마 혼자 등산을 온 것 같았어요. 그 청년은 하늘을 쳐다보며 무엇이 생각난 듯 책 을 꺼내 내 몸을 올려놓고 내 몸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는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어요. 무슨 일이 있는 듯 얼굴은 퍽 어두워 보였어요.
“녀석. 어디로 갔을까?.”
그는 집 나간 동생을 찾아다니고 있었어요. 동생은 몸이 아프다며 집을 나간 것이 퍽 오랜 나날이 흘렀어요. 어서 동생을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나는 그가 갑자기 그가 측은해졌어요. 그리고 어서 동생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면 혼 자 중얼거렸어요.
청년은 나를 배낭에 넣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얼마쯤 걸었을까. 그는 나를 다시 꺼내 들었어요.
“나뭇잎아! 멀리멀리 흘러가거라 그리고 희야가 옆에 가거든 내가 찾고 있다는 소식 을 좀 알려주렴!.”
그 청년은 슬픈 얼굴로 높은 바위에 올라가 나를 허공으로 날려버렸어요. 나는 빙그르 돌며 바람을 타고 아래로 내려 흘렀어요.
산길에 널려있던 헤어진 형제들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어요. 그러나 나는 희야라는 그 청년의 동생에게 꼭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허공을 날면서 나는 은근히 걱정 속에 묻혀버렸어요.
수풀 속이나, 나무 위, 또는 바위틈에 떨어져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으면 어쩌 나 싶었어요. 그러나 다행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에 살며시 내려앉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을 짓밟고 지나가면서 하루, 또 하루가 지났어요.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내 얼굴을 밟으며 지나갔지만 나는 누가 희야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어요.
나는 바람에 이리저리 쫓기며 굴려다녔어요. 가끔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이상한 글씨가 적혀있는 나를 덥썩 들어보기도 했어요. “허, 재밋는 사람도 있군.”
하며 나를 다시 날려 보내곤 했어요.다.
나는 그때마다 자리를 옮겨갔어요. 나는 어떻게 하던지 그 청년의 소식을 희야라는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 며 아픔을 참으며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요.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얼굴의 글씨는 그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 “어마?.”
혼자 힘없이 산길을 올라오던 예쁜 소녀가 나를 집어 든 순간 토끼처럼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놀래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 이 사람이다!.”
나도 몰래 소리를 와락 질렀어요. 그 소녀는 듣지 못했어요. 소녀는 금시 눈물을 흘리며 나를 자기 가슴에 포근히 안아주었어요. “오빠가 여기까지.”
소녀는 피곤한 듯 길옆 바위에 걸터앉았어요.
“오빠, 난 오빠를 만나면 않되. 그럼 오빠는 더 나보다 괴로워 할 텐데.... 나, 절에 가서 몇 달 수양하다가 오빠 곁으로 갈게. 집으로 돌아가요!.”
소녀는 나를 가슴에 안은채 흑흑 느끼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러내렸어요.
-옳지 되었다. 자꾸자꾸 오르면 오빠는 만날 수 있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 소녀가 자꾸자꾸 산으로 올라가기를 바랬어요.
그 청년이 나를 날려 보낸 곳이 바로 산 위였어요. 그러나 그 사람이 아직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나는 생각도 못 했어요.
소녀는 더 산을 오르지 않고 처음 그 청년을 만난 사찰로 들어갔어요. 어쩜 그 소녀가 가여워진다는 생각이 가슴에 차올랐어요. 어디가 아픈지 몰라도 하루속히 완쾌되었으면 하는 마음속에 가득 찼어요.
소녀는 불상 앞에 삼배를 올리고 다시 나를 들고 법당 뒤쪽 바위로 올라가 앉으며 나 를 어루만지며 다시 눈물을 흘렸어요.
나도 왈컥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겨울 참았어요.
“오빠, 이 나뭇잎. 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오빠를 집에서 만나는 날 오빠에게 보 여줄게.”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마한 가방을 열고 책을 폈어요. 놀랍게도 책 페이지 여 기저기에 같은 형제는 아니지만 열 가지 나뭇잎들이 배시시 웃으면서 반겨 주었어요.
소녀는 살며시 책갈피 속에 나를 넣어버렸다, 순간
-아! 이제 어쩌나! 엄마 곁에 다시 태어날 수 없게되옸네!.-
눈물이 핑 돌았어요. 나는 땅속에 묻혀 내 몸이 썩어야 다시 엄마 곁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요.
책 갈피 속에서는 내 몸이 썩을 수 없어요. -
그러나 어쩔 수 없어...그 청년의 글을 이 소녀에게 전해 주겠다는 이 사실이 나는 더 자랑스러웠어요.
엄마가 말하는 착한 일이 이런 것 일런지도 몰라. 이제 긴 잠이나 푹 자면서 이들 오누이가 다시 만나 나를 꺼내보며 웃을 날을 기다려야해.-
나는 엄마 곁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것이 슬펐으나 착한 일을 했다는 즐거움 때문 에 어둠 속에서 잠잘 수 있었어요.
나는 지금도 잠을 자면서 비구니 스님의 불경 소리를 아침 저녁 들을 수 있어 한층 마음이 가벼웠어요.
이 소녀가 집으로 돌아간 후에라도 이 목탁 소리를 나의 자장가로 깊은 잠에 빠져들 어 가곤 했어요. 그리고 꿈속에서나마 내년에 다시 태어날 나의 형제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가득 차오르며 마음은 푸른 숲을 지나 하늘로 날아올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