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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완전정복] Ep.28)
수아레스, 월드컵을 지배한 광기
“오, 오 또 또 물었나요!?”
“어, 어잇, 또 물었어요! 또 물었어요!”
- 2014 브라질 월드컵 우루과이 vs 이탈리아를 중계하던 SBS 해설 위원 박문성
내 또래 축구팬이라면 이 이름을 모를 수가 있을까? 루이스 수아레스, 우루과이를 넘어 전 세계를 대표했던 전설적인 골잡이다. 수아레스는 182cm의 건장한 체형을 가졌음에도 역동적인 움직임과 화려한 테크닉, 정교한 골결정력 이에 더해 눈부신 연계까지 보여주는 완벽한 스트라이커였다. 바르셀로나에서 MSN(Messi, Suarez, Neymar.jr)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트리오의 일원이었으며 트레블을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메시와 호날두가 지배하던 라 리가에서 4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다. 덕분에 수아레스는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리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수아레스가 실력만 월드클래스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는 기행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라고 주눅 드는 법은 없었다. 그는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의 '광기'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조국의 영웅 수(手)아레스
루이스 수아레스의 모국은 우루과이다. 우루과이가 어떤 나라인가? 초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1950년 20만 브라질 국민을 침묵하게 만들면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던 월드컵 초기를 대표하는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그 뒤론 내리막을 걸었다. 우승은커녕 4강 무대도 1970년이 마지막이었고 때때로 남미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대회인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10년은 달랐다. 스페인 리그에서 두 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한 디에고 포를란과 당시 유망주였던 수아레스와 에딘손 카바니를 앞세운 우루과이는 2승 1무로 조별 예선을 통과하며 우루과이의 부활을 알렸다. 16강 상대는 우리나라였다. 이날 루이스 수아레스는 절정의 골 감각을 보여주며 멀티골을 넣었고 2대1로 한국을 꺾고 8강에 진출한다. 특히 두 번째 골은 월드컵 최고의 골 후보에 오를만한 아름다운 슈팅이었다.
16강 한국전에서 환상적인 감아 차기로 멀티골을 완성시키는 수아레스, 이 골로 인해 우루과이는 8강에 진출하게 된다. (출처: FIFA 유튜브)
대망의 8강전, 우루과이와 수아레스는 아사모아 기안이 이끄는 ‘아프리카 돌풍’을 보여주던 가나를 마주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펼쳐지는 월드컵 무대에서 아프리카 최초로 4강 진출을 노리는 가나와 40년 만에 4강 진출을 노리는 우루과이, 양 팀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전후반 90분 이내에 승부를 내지 못했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에 들어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가나가 체력적인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루과이가 쉽사리 득점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나 싶었는데 연장 후반 추가시간, 가나의 마지막 프리킥 기회가 찾아왔다. 날카로운 크로스가 문전으로 올라간 뒤 가나 선수의 머리를 맞고 골문 방향으로 높게 떴다. 하지만 키퍼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가나 선수가 발리슛을 시도했으나 수아레스가 다리 겨우 움직여 막았다. 루즈 볼은 가나 선수의 완벽한 헤더로 이어졌고 그대로 득점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건이 발생한다. 수아레스가 손으로 블로킹을 시도해 골을 막은 것이다. 가나 선수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 주심을 쳐다보았다. 주심은 지체 없이 페널티 스폿을 가리킨 후 수아레스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들었다.
절체 절명의 순간 손으로 공을 막고 레드카드를 받은 수아레스, 수아레스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비신사적인 행위임은 틀림없다. (출처: FIFA 유튜브)
수아레스는 뻔뻔스럽게도 카드를 주는 주심에게 마치 ‘제가 왜요?’라는 표정과 작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평소처럼 항의는 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수아레스는 실낱같은 희망, 즉 기적 같은 페널티 킥 방어를 바랐을 것이다. 자신이 손으로 막지 않았다면 그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런 기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가나의 피케이 실축을 예측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수아레스 본인 역시 자신의 퇴장이 곧 우루과이의 월드컵 무대 퇴장이라 생각했는지 유니폼으로 얼굴을 감싸며 경기장을 쓸쓸히 빠져나갔다.
그런데 이런 기적 같은 일이? 키커 기안의 슈팅이 골포스트 상단을 맞으면서 벗어나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그러나 기안의 실축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수아레스가 원했던 대로 경기가 승부차기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루과이의 골키퍼 무슬레라가 두 번 연속으로 가나의 슈팅을 막아낸 것이다. 그렇게 우루과이는 40년 만에 4강에 진출하게 된다. 정말 드라마 같은 승부였다. 이날 수아레스는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지만 결정력이 모자라 좋은 기회를 수차례 날렸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우루과이 4강행의 일등공신은 신의 손을 보여준 수아레스일 것이다. 마라도나의 뒤를 이은 신의 손이 24년 만에 재탄생한 것이다.
여담으로 수아레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훈련 때 종종 골키퍼를 할 때가 있다. 그 성과가 오늘 드러난 것"이라 말했다. 이어 "자신이 손으로 막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동점골을 넣은 이 경기의 MVP 포를란 역시 PK가 선언되는 순간 탈락을 예감했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며 수아레스가 팀을 구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가나의 수비수 존 판실은 "같은 상황에서 손을 사용하는 행위를 할 가나 선수는 한 명도 없다"고 말하며 페어플레이를 저버린 수아레스의 행동을 비판했다. 많은 축구팬과 전문가들 역시 수아레스의 행동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가나의 에이스 기안의 PK 실축 이후 기뻐하는 수아레스, 조국을 구한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출처: FIFA 유튜브)
우루과이는 4강에서 스네이더와 로벤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3대 2로 아쉽게 탈락하고 만다. 주포인 수아레스가 퇴장 징계로 결장했음에도 우루과이는 분전하며 최선을 다했다. 동료 공격수인 디에고 포를란은 4강전과 3, 4위전에서 각각 멋진 득점을 보여주며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국내 팬들에겐 자블라니 마스터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하지만, 우루과이 국민들의 마음속 진정한 MVP는 조국의 기적적인 4강행을 만든 수아레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아프리카 최초의 4강 진출이라는 타이틀을 코앞에서 놓친 기안은 어머니에게 “아들아, 다시는 페널티 킥을 차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는 기안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수아레스의 두 번째 기행, 이렇게 수아레스는 월드컵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출처: beIN SPORTS)
필드 위의 드라큘라
수아레스는 2010년 월드컵 이전에도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선수였다. 월드컵에서도 세 골을 넣으며 주가를 올린 수아레스는 당연히 빅클럽의 영입 대상에 포함됐다. 그리고 2011년 1월, 잉글랜드의 명문 리버풀로 팀을 옮긴다. 적응기를 거친 수아레스는 2012-13 23골로 득점 2위, 그리고 2013-14 EPL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31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각종 올해의 선수상과 유러피언 골든슈 역시 수아레스의 차지였다.
시즌이 끝나고 수아레스는 당연히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우루과이는 잉글랜드, 이탈리아, 코스타리카와 조를 이루었다. 팀의 이름값을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죽음의 조로 불리었으며 어떤 팀이 16강에 진출할지는 축구팬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수아레스가 시즌 막판 무릎 반월판 부상을 당하며 갑작스레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PL을 평정한 수아레스의 무릎 상태는 모든 축구 팬과 언론의 집중 관심사였다. 몇몇 언론은 수아레스가 월드컵에서 뛸 수 없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에 수아레스는 월드컵에 출전할 것이라 말하며 우루과이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월드컵 바로 직전에 다친 거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결국 첫 경기인 코스타리카 전은 결장하게 된다. 이탈리아, 잉글랜드가 함께한 죽음의 조에서 승점 제물이라 생각했던 코스타리카는 의외의 선전을 보여주었고 우루과이를 3대 1로 꺾는 이변을 보여준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선 팀의 에이스 수아레스가 빠진 것이 뼈아팠다.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위해서라도 다음 경기인 잉글랜드 전에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수아레스는 다행히 이 날 복귀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으며, 멀티 골을 넣으며 우루과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수아레스의 두 골에 힘입은 우루과이는 난적 잉글랜드를 2대 1로 누르며 16강 진출을 향한 불씨를 되살렸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우루과이는 16강 진출을 위해서라면 승리가 필요했고 이탈리아는 무승부만 거두어도 됐던 상황.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한 우루과이는 승리를 위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빗장수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쉽게 골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후반 34분, 볼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두 선수가 갑작스레 쓰러졌다.
자리 경합 도중 키엘리니의 어깨를 깨무는 수아레스, 저러면서 자신의 이빨을 부여잡는 게 웃음 포인트다. (출처: FIFA 유튜브)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고 다른 선수들도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쓰러진 선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수비수 키엘리니, 그리고 수아레스였다. 키엘리니는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고 수아레스는 .. 다름 아닌 치아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리플레이 영상이 이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수아레스가 키엘리니의 어깨를 이빨로 깨문 것이다. 키엘리니는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며 자신의 옷을 제껴 어깨를 심판에게 보여주었다. 수아레스는 뻔뻔스럽게 자신의 치아를 부여잡으며 아픈척하는 할리우드를 보여주었다.
경기는 세트피스에서 우루과이 수비수 디에고 고딘의 극적인 헤더 결승골로 우루과이가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경기 결과보다 더욱 이슈가 됐던 것은 수아레스의 깨물기였다. 모든 언론이 수아레스의 기이한 행동을 다뤘다. 문제는 수아레스가 상대 선수를 깨문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0년 아약스에서 한 번, 2013년 리버풀에서 첼시의 수비수 이바노비치를 물며 두 번, 그리고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세 번째로 물며 깨물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국내 팬들은 수아레스를 '치아레스'라고 조롱했으며 세계 각지 언론은 수아레스의 행동에 맹비난을 펼쳤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는 수아레스에게 결국 다음 경기 출전 징계 결정과 더불어 4개월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게 된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무대인 월드컵에서 깨물기와 같은 비신사적인 행위를 다신 용납치 않겠다는 FIFA의 강력한 의지였다. 팀의 에이스를 잃은 우루과이는 16강에서 콜롬비아에게 신성 하메스 로드리게스에게 2골을 헌납하며 탈락하고 만다.
자신의 어깨를 보여주며 수아레스에게 물린 자국이 있음을 어필하는 키엘리니와 자기가 물어놓고 이빨을 부여잡는 수아레스의 모습이다. 월드컵 칼럼을 쓰면서 가장 코믹했던 장면이다. (출처: skysports)
마지막 도전을 앞둔 수아레스
4개월 징계는 수아레스에게 있어서 큰 위기였다. 월드컵은 물론 다음 2014-15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시즌 초반 수아레스를 기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아레스의 기량을 믿고 그를 영입했다. 무려 6500만 파운드(한화 약 1050억)에 달하는 거액의 이적료였다.
그 후 수아레스는 FC 바르셀로나에서 6 시즌 간 283경기에서 198골을 넣으면서 라 리가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 팀의 레전드로 남을 만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5-16 시즌에는 리그에서 무려 40골을 넣으며 메시, 호날두가 독식하던 라 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2020년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21골을 넣으며 아틀레티코의 7년 만에 리그 우승의 크게 기여했다. 그중 무려 11골이 팀의 승리를 확정 짓는 결승골이었을 정도로 우승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천하의 수아레스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노쇠화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떠나야 했고 현재 고국인 우루과이에서 마지막 월드컵 도전을 앞두고 있다. 수아레스는 레반도프스키, 벤제마와 더불어 명실상부 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고 2010년대로 한정하면 이들 중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레전더리 공격수다. 과연 수아레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마지막 불꽃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열흘 뒤, 수아레스와 한국은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맞붙는다. 수아레스의 마지막 도전은 응원하지만, 그가 한국전에서는 활약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아니면 또다시 기행을 보여주면 월드컵 기행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재밌는 상황이 일어날지도?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경기가 끝나고 수아레스는 박지성을 먼저 찾아가 유니폼 교환을 했다. 과연 이번 한국과의 경기에서 두 팀과 수아레스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한국 파이팅 (출처: 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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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드라큘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