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가자 울고 님은 잡고 아니 놓네 석양은 재를 넘고 갈길은 천리로다 저 님아 가는 날 잡지 말고 지는 해를 잡아라
서경덕(徐敬德)
1489~1546.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花潭). 가세가 빈곤하여 독학으로 13세에 '서경(書經)'을 읽고 복잡한 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을 스스로 터득했으며, 18세에는 '대학(大學)'을 읽고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를 깨달았다.
여러 지방을 유람한 후 산림에 묻혀 후진 교육에 힘을 기울이던 중, 조광조의 천거가 있었으나 사양하고 역시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또한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여러 편의 기행시를 남겼다. 개성(開城) 동문 밖 화담(花潭)에 초막을 짓고 도학을 비롯하여 수학 · 역학 등의 연구로 여생을 보내었다.
명기 황진이이 유혹을 뿌리친 일화가 전하며, 선조 때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화담 서경덕 선생 야화
조선 중종 때,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조선 500년 역사상 시를 가장 잘 쓴 시인 중의 한 여인이다. 그리고 조선 선비의 대표라 할 화담 서경덕은 난세에 세상에 출사하지 않고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걸은 조선의 대표적인 처사(處士)인데 화담 서경덕(徐敬德)과 조선 최고의 기생 황진이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개성의 기생 황진이는 서경덕을 평생의 연인으로 두는 목표를 세웠지만 서경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진이는 여인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를 터득한 도인’ 이 되어 서경덕과 훗날 사제지간(師弟之間)으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황진이의 애달픈 戀情에 대한 서경덕의 시로 나타난 感情으로 응대한 시를 통하여 두 사람만의 참을 수 없는 애틋한 戀書를 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먼저 황진이의 시를 보자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물이 있을쏘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아 가고 아니 오노매라. 다음은 서경덕의 시를 보자. 조선 중종 때 서경덕이 황진이를 대상으로 지은 시인데 《해동가요》에 실려 있다.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이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그 인가) 하노라. 두 사람(서경덕, 황진이)은 松都 三絶(박연폭포, 서경덕,황진이)의 하나로 불리워지게 된다. 서경덕과 황진이에 얽힌 야화가 있는데 황진이가 낸 문제 "點一二口 牛頭不出" 의 풀이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명기가 되려면 미색뿐만 아니라, 글과 가무에 아주 능하여야 되는데 명기 황진이에 대한 명성은 팔도에 널리 알려져 많은 당대의 한량들이 天下絕色 황진이를 찾아가서 연정을 말하였는데 황진이는 한량들의 청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문제를 내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에게 청을 들어준다고 하였다. 황진이가 낸 문제는 "點一二口 牛頭不出" 이었는데 이에 대한 답을 하는 사람에게 청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선비들도 황진이가 낸 이 문제를 풀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하루 행색은 비록 남루하였지만 어느 선비가 황진이의 집을 찾게 되었는데 황진이는 선비의 범상치 않은 기상을 보고 주안상을 차려 선비에게 대접하며 새로 집필묵을 갈아 선비에게 ‘點一二口 牛頭不出’ 에 대하여 답을 청하였다. 선비는 황진이의 글귀를 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황진이의 명주 속치마를 펼치게 한 후 단필로 "許" 라고 썼다.
황진이가 낸 문제에 대하여 선비는 "許" 라고 한 것이다. 말씀(言) 자가 되고 牛頭不出은 ‘소 머리에 뿔이 없다’는 의미이므로 牛에서 머리(뿔)를 떼어 버리면 午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글자를 합치면 허락할 許자다. 결국 황진이는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를 이렇게 시로 표현한 것이었다. 선비의 답을 본 황진이는 선비에게 일어나 큰 절 삼배를 하였다. 절을 삼배한다는 의미는 산 사람에게는 한 번, 죽은 사람에게는 두 번 하는게 절을 하는 관례인데 절을 세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첫 정절을 바치는 남자에게 하는 여인의 法道인 것이다. “여인은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자기와 정을 通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女爲悅己者容" 이라는 의미이다. 그날 밤 선비와 황진이는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후 선비는 문 창호지에 시 한수를 적어놓고 홀연히 떠났다. 물은 고이면 강이 되지 못하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아니한다. 내가 가는 곳이 집이오 하늘은 이불이며 목마르면 이슬을 마시고 배 고프면 草根木皮가 있는데 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느냐 시를 본 황진이는 선비를 잊지 못하고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워하였다. 황진이는 선비를 수년간 찾아 해맨 끝에 어느 절에 선비가 머물고 있다는 풍문을 듣고 찾아가서 그를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황진이는 선비와 꿈같은 재회의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는 선비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선비와 꿈 같은 재회의 첫 밤을 보낸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기색이 없는 선비에게 “낭군님 해가 중천인데 왜 기침하시지 않으시는지요” 그러자 선비는 두 눈을 감은 채 이 절간엔 인심이 야박한 중놈들만 살아 오장이 뒤틀려 그런다고 하였다. 진이는 선비의 말을 듣고서는 급히 마을로 내려가 거나한 술상을 봐 절간으로 부리나케 돌아왔는데 그런데 하룻밤 회포를 풀었던 선비의 방 앞 툇마루엔 선비는 간데 없고 진이가 선비에게 바쳤던 비단 가죽 신발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수년을 찾아 해맨 끝에 재회한 선비가 하룻밤을 보낸뒤 홀연히 떠나버린 것을 알고 진이는 망연자실하였다.
그러나 이내 선비의 고고한 심정을 깨달은 진이는 ‘선비의 사랑은 소유해도 선비의 몸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진이는 선비의 깊고 높은 큰 사랑을 받았다 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평생을 선비를 흠모하며 師弟之間으로 살았다. 황진이가 평생 그토록 사랑한 선비는 花潭 서경덕 이었다. 佳人薄命 : '아름다운 여인은 운명이 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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