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색구간 / 황인찬
너무 깊이 잠들어 차고지까지 들어가 버린 사람의 꿈을 보았네 아주 슬프고 쓸쓸한 꿈이었네 꿈에서 깨고 나서야 그게 내 꿈인 줄을 알았지만 깨기 전에는 이렇게 슬픈 꿈이 내 꿈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네
차고지에 들어간 열차는 언젠가 다시 차고지를 나오겠지만 꿈속에 들어간 사람의 꿈은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를 않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이 어두운 차고지에 혼자 남아 있다면 어쩌나 그런 생각에 도무지 꿈에서 깰 수가 없었네
—계간 《詩로 여는 세상》 2023년 겨울호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 황인찬
점심에는 모두가 묶여 있어요 잠시 어딘가로 떠났다가 금방 모두 돌아와요
어떤 사람은 산책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 빠지고
사람들은 공원의 주변을 계속 헤매고 있고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이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이해와는 무관한 것이군요 그 또한 이해합니다
오후의 온화한 빛 아래로 결별 중인 연인들 심각하고 슬픈 얼굴이군요 이별 후의 자유를 기대하고 있어요
공원 외에 어딘가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산책은 계속됩니다
점심에는 모두가 묶여 있으니까요
물에 빠진 사람이 물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희지의 세계 / 황희찬
저녁에는 양들을 이끌로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원의 고요가 초원의 어둠을 두드릴 때마다
양들은 아무 일 없어도 메메메 운다
풍경이 흔들리는 밤이 올 때
목양견 미주는 희지의 하얀 배 위에 머리를 누인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익힌 콩과 말린 고기가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것이 희지의 세계다
희지는 혼다 산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황인찬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 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 가는 먼 집, 눈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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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 1988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