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대한 시 모음
차례
낙엽 / 정호승
낙엽 / 정현종
낙엽 / 도종환
낙엽 한 장 / 오봉옥
놀라워라 / 박남준
노란 잎 / 도종환
낙엽 밟았다는 사건 / 복효근
11월의 낙엽 / 최영미
낙엽 / 이재무
밝은 낙엽 / 황동규
낙엽은 지는데(노래) / 조영남
낙엽 / 정호승
내 가는 길을 묻지 마세요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지 마세요
가을이 가고 또 가을이 가면
언젠가는 그대 실뿌리 곁에
살며시 살며시 누워 있겠어요
- 정호승,『풀잎에도 상처가 있다』(열림원, 2002)
낙엽 / 정현종
사람들 발길이 낸
길을 덮은 낙엽이여
의도한 듯이
길들을 지운 낙엽이여
길을 잘 보여주는구나
마침내 네가 길이로구나
- 정현종,『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문학과지성사, 2018)
낙엽 / 도종환
헤어지자
상처 한 줄 네 가슴 긋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
수없이 헤어지자
네 몸에 남았던 내 몸의 흔적
고요히 되가져가자
허공에 찍었던 발자국 가져가는 새처럼
강물에 담았던 그림자 가져가는 달빛처럼
흔적 없이 헤어지자
오늘 또다시 떠나는 수천의 낙엽
낙엽
-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문학동네, 1994)
낙엽 한 장 / 오봉옥
배낭에 따라붙은 낙엽 한 장
그냥 떼어버릴 일 아니다
그 나무의 전생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한 번
손을 내밀어보는 이유가
필시 또 있었을 것이니
- 오봉옥,『섯!』(천년의시작, 2018)
놀라워라 / 박남준
낙엽 하나 땅에 떨어졌다
어떤 나비의 애벌레에게 몸을 내주었나
삭은 뼈처럼 드러난 잎맥들 방울방울
이슬을 매달아 햇빛을 굴린다
그 모습 열반한 선승의 사리 아닌가 생각하는데
몸의 어느 구석에 생기가 남아 있었던가
가을볕에 뒤척이다 발끝부터 토르르-륵
동그랗게 말았다 번데기 같다
가지에서 떨어져 허공을 부유하다
나비를 꿈꾸었는가
놀라워라 저 낙엽
- 박남준,『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실천문학사, 2010)
노란 잎 / 도종환
누구나 혼자 가을로 간다
누구나 혼자 조용히 물든다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 인생의 가을도 그러하리라
몸을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에도
파르르 떨리는 마음
저녁이 오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저 노란 잎의 황홀한 적막을 보라
은행나무도
우리도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 도종환, 『사월 바다』(창비, 2016)
낙엽 밟았다는 사건 / 복효근
밟히는 순간 아득히
부서지는 낙엽들의 소리
내가 걸음을 갑자기 멈춘 것은,
오후 약속을 잊은 것은 그 소리 탓이었다
그녀는 기다리다 떠나갔고
나는 언덕에서 네 시 기차가 떠나는 소리를 듣는다
- 한 생生이 낙엽 부서지는 소리로 바뀔 수 있다니
또 발밑에선 낙엽이 부서지고
먼 곳에선 새가 난다
누군가 또 약속을 잊고
누군가 또 기차를 바꿔 타나보다
낙엽 소리에
먼 하늘 별이 돋는다
- 복효근,『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달아실출판사, 2017)
11월의 낙엽 / 최영미
가을비에 젖은 아스팔트.
돌아보면,
떨어질 잎이 하나 남아 있었나.
천둥에 떨고 번개에 갈라진 잎사귀.
심심한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이 되어주고
종이보다 가벼운 몸으로
더러운 뒷골목을 지키던 너.
허술한 나뭇가지에 목숨을 부지하고
식물의 운명에 순종했던,
상처투성이의 몸에 햇살이 닿으면
촘촘한 세월의 무늬가 드러나지만,
이대로 세차게 흔들리다
누군가의 가슴바닥에
훅, 떨어졌으면……
첫눈이 내려 무거운 눈을 매달고
허공에서 부서지기 전에,
순한 흙에 덮여 잠들었으면……
낙엽의 비문(碑文)을 읽을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최영미,『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 2009)
낙엽 / 이재무
시를 지망하는 학생이 보내온
시 한 편이 나를 울린다
세 행 짜리 짧은 시가 오늘 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한 가지에 나서 자라는 동안
만나지 못하더니 낙엽 되어 비로소
바닥에 한몸으로 포개져 있다"
그렇구나 우리 지척에 살면서도
전화로만 안부 챙기고 만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부음이 오고 경황 중에 달려가서야
만나는구나 잠시잠깐 쓸쓸히 그렇게 만나는구나
죽음만이 떨어져 멀어진 얼굴들 불러모으는구나
- 이재무,『푸른 고집』(천년의시작, 2004)
밝은 낙엽 / 황동규
그래, 젊음 뒤로 늙음이 오지 않고
밝은 낙엽들이 왔다.
샤워하고 욕조를 나오다
몸의 동체(胴體)를 일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숨 한번 크게 쉬었다. 늙음을 제대로 맞으려면
착지법(着地法)을 제대로 익혔어야?
그래, 기(氣)부터 채우자!
가을바람 기차게 부는 날
용의 등뼈 능선 사자산을 찾아 나선 길
긴 굽이 하나 돌자 얇은 반달 하나 하늘에 박혀 있고
나무들이 빨강 노랑 갈색 깃들을 날리는 마른 개울가엔
누군가 돌부처로 새기려 드는 걸 온몸으로 막은 듯
목과 허리에 깊은 상처 받은 바위 하나 서서
품으로 날아드는 색깔들을 밝은 흐름으로 만들고 있다.
어떤 나무의 분신이면 어떤가,
착지, 착지, 땅이 재촉하는데?
밝음 하나를 공중에서 낚아챈다. 바람결에 놓친다.
착지, 착지, 땅이 재촉하는데
밝은 몸 한 장
땅 어느 구석에 슬며시 내려앉지 않고
뒤집혔다 바로잡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구나.
-『창작과 비평』142호(2008년 겨울호)
◇ 낙엽은 지는데(1988)
작사 / 김양화, 작곡 / 임석호, 노래 / 조영남
https://www.youtube.com/watch?v=BUE_-y8_FGA
마른잎 굴러 바람에 흩날릴 때
생각나는 그 사람 오늘도 기다리네
왜 이다지 그리워 하면서
왜 이렇게 잊어야 하나
낙엽이 지면 다시 온다던 당신
어이해서 못 오나
낙엽은 지는데
지금도 서로 서로 사랑하면서
왜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낙엽이 지면 그리워지는 당신
만날 수가 없구나
낙엽은 지는데
[출처] 주제별 시 모음 108.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