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꼬리 잡기
김석돈
대체 며칠이나 굶겼던가
오늘은 뭔 일 있어도
말문이라도 열어 줘야지
말고삐 움켜쥔 할미
작심하고 말 사냥 나선다
발 없이도 천 리를 간다는 말
한때는
말꾼들 틈에 넘치던 말발
혼자 주체하지 못해
고삐 풀린 듯 날뛰기도 했지
말재간 믿고 주인 말도 여물 먹듯 삼키던 말
뒷방에 매여 말이 고프다
산책길, 수변공원 둘러봐도
말 만나 말 풀어놓을
말마당도 말동무도 보이질 않네
벤치 한쪽 비워놓고 기다려보지만,
가랑잎 하나 빈말처럼 내려앉을 뿐
말 사냥은커녕
말꼬리 한번 잡아보지 못한 할미
체면 말이 아니다
말머리 돌리는 거 보아하니
굶주린 말 다독이며 말풍선이나 불어줄 모양이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말(문자)인 것처럼, 말(문자)이 없는 인간의 삶과 문화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다. 말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는데, 사물의 인식기능과 사유의 기능과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최초의 사물과 사건을 인식하는 것은 감성(직관)이 담당하고, 최초의 사물과 사건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하여 이름(개념)을 명명하는 것은 이성이 담당한다. 인상의 수용성은 최초의 사물과 사건을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것을 말하고, 사유의 자발성은 최초의 사물과 사건에 이름을 부여하는 사유의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인상의 수용성과 사유의 자발성 이외에도 우리 인간들은 말을 통하여 사유와 감정과 지식을 주고 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도우며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음식물은 인간의 동체성을 보존해 주고, 말은 인간의 정신을 살아 움직이게 해준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말이 고프면 가족이나 친지, 또는 그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양가가 풍부하고, 가장 그 종류가 많은 음식은 말이며, 이 말의 원산지와 그 종류는 전체 인류의 숫자보다도 많다고 할 수가 있다. 미국인과 인디언의 말, 중남미인과 스페인의 말,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말,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말, 터키인과 아랍인의 말, 인도인과 네팔인의 말, 중국인과 티벳인의 말, 태국인과 베트남인의 말, 한국인과 일본인의 말 등이 있고, 모든 말들에는 지문이 있어, 부모형제와 쌍둥이의 말도 그 소리와 결이 다르다. 사랑과 믿음의 말, 약속과 신뢰의 말, 상호 비난과 험담의 말, 상호 토론과 비판의 말, 정복자와 약탈자의 말, 천사와 악마의 말, 사기꾼과 도둑놈의 말들이 있고, 사과와 배 같은 말, 쌀밥과 보리밥 같은 말, 딸기와 앵두 같은 말, 메주와 콩 같은 말, 똥과 오줌 같은 말, 화가 나서 길길이 날 뛰는 말,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말, 빈대와 벼룩 같은 말, 모기와 파리 같은 말, 조강지처와 애첩 같은 말, 신사와 거지 같은 말, 충신과 간신같은 말들이 있다. 인간은 모두가 다같이 말의 생산공장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나 홀로’ 먹는 혼잣말(독백)만큼 무미건조하고 맛 없는 음식은 없다.
“대체 며칠이나 굶겼던가”는 독거할미의 한탄이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말들의 소외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늘은 뭔 일 있어도/ 말문이라도 열어 줘야지/ 말고삐 움켜쥔 할미/ 작심하고 말 사냥”을 나서보지만, “발 없이도 천 리를 간다는 말”은 흔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다. 산책길에도 혼잣말이 살고, 수변공원에도 혼잣말이 산다. 말마당에도 혼잣말이 살고, 말동무도 혼잣말을 따라 사라져 가고 없다. “벤치 한쪽 비워놓고 기다려보지만/ 가랑잎 하나 빈말처럼 내려앉을 뿐”, 온천하가 적막강산일 뿐이다. “한때는/ 말꾼들 틈에 넘치던 말발”과 “혼자 주체하지 못해/ 고삐 풀린 듯 날뛰기도” 했던 말들과, “말재간 믿고 주인 말도 여물 먹듯 삼키던 말”들도, 다 혼잣말이 되어 말이 고픈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말이 고프다는 것이고, 말이 고프다는 것은 말동무를 찾지 못해, 말을 찾아 헤매다가 말고픔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도 하늘의 형벌이고, 오래 산다는 것도 하늘의 형벌이다. 말이 고프면 우울하고 쓸쓸하고, 우울하고 쓸쓸하면 저절로 죽고 싶어진다. “말 사냥은 커녕/ 말꼬리 한번 잡아보지 못한 할미”, “말머리 돌리는 거 보아하니/ 굶주린 말 다독이며 말풍선이나 불어줄 모양이다.”
김석돈 시인의 [말꼬리 잡기]는 독거할미의 ‘말 사냥의 노래’이며, 그 처절한 삶의 현장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말 사냥의 과제가 말꼬리는 커녕, 굶주린 말 다독이며 말풍선이나 불어준다는 도로아미타불의 수고로 끝난다는 것, 이것은 비극도 아니고 인간의 죽음을 뜻한다.
혼잣말은 말의 죽음이고, 인간의 죽음이며, 혼잣말은 모든 역사의 종말을 뜻한다.
자연과학이 인간의 수명을 필요 이상으로 늘리고 ‘장수만세의 세상’을 연 것도 같지만, 그러나 장수만세의 세상은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인간의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거할미의 [말꼬리 잡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저승길이 가장 행복한 길이다. 김석돈 시인의 [말꼬리 잡기]는 그의 언어학의 승리이자 심리학의 승리이고, 이 언어학과 심리학을 가장 극적인 현실주의로 승화시킨 장인 정신의 승리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