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물잡이 인사드립니다^^
뭔 나이트 삐끼같은 멘트 같기도 하네요. 오늘은 비가 내리는 하루입니다. 비가 내리면 격해졌던 마음도 다소 가라앉고 비오는거 구경하는 한가함도 누려보고, 이래 저래 도심속에서 바라보는 비는 그 자체로 색다른 별미인 것 같네요. 그 동안 변변치 못하고 기럭지만 길어진 잡설 읽어주시고 성원해주신 여러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오늘로써 벌써 일기도 5번째네요. 일주일 정말 후딱가는것 같습니다. 어제 축구를 보면서 다소 성질이빠이 뻐쳤던 분들 잠시 제 일기로 마음이 달래졌으면 하는 작음 바램입니다. 오늘은 이사관련해서 에피소드와 덕무조아님의 급제안으로 연애담 올렸습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쿨쿨모삼천지교>
처음 중전과 신접살림은 서울대 밑의 단독주택에서 생활했다. 막내가 당시 학생이었고 그런 막내를 끼고 사는 조건으로 대장이 당초(신길동에서 살았던 일천오백만원 전세방)보다 약간의 웃돈 지원과 신용대출을 받아서 거금 3900백만원짜리 방을 얻었다. 신사리(신림동 사거리)에서 버스타고 올라오면 수많은 고시원들이 즐비한 대로 뒤쪽에 자리잡은 방두칸짜리 방이었다. 방의 크기는 둘째치고 시한폭탄하나를 달고 살아야했으니 중전의 신혼생활을 상당히 메롱했다고 볼수있다. 여기에 시동생이니 더 그랬을것이다. 예로부터 여자(우리 O.B.S .여사는 거의 여자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없는 세상을 살았기에 그 개념이 더욱더 이시키는 없었다. 이놈의 시키가 지 형수가 있던 없던간에(그렇게 누누이 O.B.S .여사가 주의를 주었건만) 훌떡 훌떡 벗고 다닌다. 맨 처음 당혹스러워하던 중전도 중화되어(지금이야 쿨쿨이와 나 이렇게 다 벗고다니니 거의 만성이 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충격자체였을 것이다. 하긴 처가집 구성원들이 그러다 보니 더욱더 그랬을거이다. 난 지금도 처가집 가면 여사님 앞에서 걍 옷을 갈아입는다. 처제가 있던 처형이 있던간에 가리지 않고.... 뭐 저런인간이 있나 하던 눈매가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순간 형부 어떤색 추리닝 드릴까요 한다) 갔고 당시 둘다 산업전선에 졸라 빼이치고 있을때였으니 그닥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았고 동생은 사법고시준비로 거의 여관방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주말이면 동생친구넘들 처들와서 먹이고 재우고 하다보니 중전과 난 틈만 나면 삐리리 해야만 했다. 어디 틈을 찾기가 쉬운가 아마도 그때의 여운이 남아서 그런지 더듬는것을(쿨쿨이 왈 변태같은 행동)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러고 쿨쿨이가 태어나고 막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지 형수앞에서 울면서(술에 쩌려서말이다) 나도 함부로 할수없는 포즈로 덤벼들었고 네사람의 생활에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카라고 이놈의 시키 기특한 짓도 많이 하고 했는데 연수원(당시 교대에 있었다) 들어가면서 슬슬 외박도 잦고 하더니만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정이들었는지 중전은 몇번을 말렸지만(난 중전한테 눈을 부라이면서 말리고) 놈은 그렇게 떠났다. 그런데 이렇게 출가한 넘이 술만 떡이되면 연어새끼처럼 다시 기어들어와 화장실에 웩웩거리고 그 등을 중전을 뚜드려 주고 생 난리 부르스를 추고 했다.
만기를 넘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한다 무려 오천만원으로 쌍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존만한 집구석에 그 만한 돈이라니.... 이래 저래 또다시 기러기 생활을 할려고 하는데 중전이 이왕 이사할것 같으면 아파트로 가자고 누가 아파트 실어서 그런가 그 놈의 돈이 문제지 하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비자금을 조성해놓았고 여사님한테 약간의 도움 그리고 담보대를 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말에 혹해서 그래 이왕 저지르는일 크게 하자는 생각에 우리 세사람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다녔고 가격과 위치등 대비해서 적정한 곳에 급매로 나온 물건을 확보하고 계약했다. 백일을 갓넘긴 신통치 않는 쿨쿨이를 대장이 업고 가고(정말 O.B.S .여사와 같이 업어가면서 룰루랄라하고 가더라, 퍼스터 썬이 집이사하는데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말이다. 나중에 쿨쿨이 데리러 갔더니만 집이 이상해져있더라. 단독이고 워낙 아끼시는 분들이라 난방도 잘안해 썰렁해야하는데. 아 이건 열대지방 온도나 다름없는 온도유지, 쿨쿨이 감기라도 들까봐 온 창문을 방풍지로 메워싼 헌신, 열풍기에 가습기까지 아 이 양반들 손자가 좋긴 좋나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중전과 둘 열나 흥분되서 날마다(전 주인이 미리 짐을 빼주는 아량을 배풀어 주었다) 퇴근하고 집에가서 슬고 딱고 그리고 눈이 마추지면 삐리리도(물론 무릎팍은 졸라 아팠다) 하고 그렇게 해서 어찌되었던 간에 이사(대림동)를 했다.
물론 둘다 직장과는 거리가 더 멀어졌지만 아파트 생활을 처음해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고 그랬다. 근처에 보라매공원도 있어 유모차 끌고 산책도 갔다 오고 대형마트가 지척이라 점심 해결(요즘은 가본지 좀 되서 잘몰라도 그 당시만 해도 시식코너가 너무 잘되있어서 한 두바퀴 돌면 정말 배부르게 먹는다. 일식,양식,중식,한식,고기,등등)도 하고 기저귀한보퉁이 사들고 오고, 그렇게 오순도순(물론 수시로 방문하는 대장과 O.B.S .여사로 인해 덜 했지만) 난생처음으로 세상걱정없이 살았던것 같다. 어린집이 재롱잔치에 가서 놀아주고 서울 방방곳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놀고 정말 추억만들기에 여념했던 시간들이었다. 물론 WBC, IMF 지랄인지 뭔지 하는것 땜에 한때 휘청거리고 했지만 말이다. 중전은 쿨쿨이 교육을 위해서 아예 전업주부로 나섰고 매일 둘이서 알콩달콩하게 보내는 나날이었고 난 웬만한 술자리를 뒤로 하고 쿨쿨이 커가는 모습에 흠뿍빠져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중전이 동기모임을 다녀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사가야한다고 한다. 엥 뭔소리 하니까 동네가 돈없는 사람 살기는 좋은데 교육문제가 그렇다고 한다. 듣고 보니 틀린말은 아니여서 심각한 모드로 삶을 터전을 옮기는 작전을 폈다. 물론 여기에는 아주 작은 나의 삐짐도 한몫을 했다고 밝혀둔다. 애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점심시간때 애들 밥주면서 기도를 시킨다. "날마다 우리에게 맛있는 점심을 주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주말에 집에서 밥을 먹을때 애가 아무생각없이 흥얼거린다. 나는 애야 밥은 하느님이 주는게 아니라 아빠가 뽕빨라게 벌어서 주는 거야 라고 정정해줘도 말을 안듣는다. 하루는 어린이집에 전화에서 민원제기를 했다. 기도좀 생략해달라고 어린것들이 뭐알아서 그러냐고..... (아 물론 종교적인 모독이 아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말라. 뭐 오해해도 별 할말은 없지만) 이에 촉발된 쿨쿨모삼천지교는 레이다망과 지인들의 소스 등등을 감안해서 초등입학전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에이 가는 김에 평수도 넓히고 복도식에서 계단식으로 바꾸고 이래저래 출혈하면서 이사를 했다.
지금 현재 이곳으로 이사와서 9년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중간에 사업한다고 집팔아 전세를 들어갔지만 같은 아파트 같은동에서 호수만 다르게 연장해서 9년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내가 살고 있는 강동쪽은 공기는 도심에 비해서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리고 학교도 가깝고 물론 내 사무실도 가깝고 중전의 약국도 가깝고 거의 환상의 입지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모든게 쾌세라일수는 없듯이 이놈의 아파트의 가장 단점은 둘이다. 금연아파트인지 지랄인지 인증받아 담배는 상가 그것도 아주 귀퉁에서 피던지 아니면 단지밖을 벗어나야 한다는 드러운 점, 그리고 결정적인 단점은 층간소음이다. 왠만하면 넘어가는데 내 성격자체가 좋은게 좋은거라고 참고 넘어가는데 그 한계를 벗어난 소음으로 인해 허구헌날 이놈의 아파트는 지랄염병학고 짭새들이 출동할 정도로 유명한 아파트이다. 쉬하는 소리는 기본에 멍멍이들의 발톱긁어대는 소리, 다행이도 붕가붕가하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지만 별별 소리를 상호간에 공유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닭장이다. 닭장속에 닭들이 꼬꼬덱 하듯이 아침저녁밤으로 꼬꼬거린다. 쿨쿨이 보다 나은 교육여건을 조성할려고 중전과 나는 학교를 다소 먼곳으로 보냈고 이에 부응해서 쿨쿨이는 전교석차 150대로 호응해주었다. 물론 이런 이전이 쿨쿨이의 성적을 향상시키거나 하지는 절대 아니지만 그저 보편타당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하는 일념의 발동이다. 전날에서도 언급했지만 임차기간 만료와 더불어 고등학교 진학으로 인해 정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일요일부터 시작된 탐색전으로 물건을 하나 찜해주었다. 비록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쿨쿨모삼천지교라는 대의아래 새로운 터전으로 보금자리를 다시 옴기기로 한 것이다.
많지 않는 이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을 했다. 그리고 이놈의 나라 동네마다 그 문화적 속성이 지랄같으니 그 지랄리즘에 부화뇌동할 수 밖에 없고 또 다른 문화속으로 한발 나아가는 심정은 여러가지로 복잡하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처럼 진화해오는 과정에서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과 흡수가 없었다면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을수 없었을 것이다. 자 다시 새로운 세상속으로 우리는 나아간다.
아 자꾸 일기가 내의도와는 상관없이 요상한 방면으로 흘러 버린다. 이번에는 존경하는 "덕무조아"님이 밥상에 숟가락 하나더 올려달란다. 이거 걍 생깔려고 했지만 독클에 미치는 아우라를 생각하면 경을 칠것 같고 이래 저래 제품 설명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 방향을 살짝 틀어 보기로 한다.
이름하여 "중전 꼬시기" 이다.
본 제품 포괄 설명에서도 언급 했듯이 중전은 머리가 엄청나게 영리하고, 성격은 명성황후 빰칠 정도의 포스를 가지고 있는 뇨자이다. 근데 난 이런 뇨자들을 보면 왠지 더 끌리면서 아 저거 자빠뜨려야겠다는 강력한 욕구를 잠재울수 없는 모드가 발동한다.(물론 지금은 절대 아니다. 뭐 그럴만한 욕구자체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그랬다가는 시체말로 반품처리 되기 때문이다) 과외학생들의 누나, 언니, 이모, 그리고 줌마들이 몇몇를 소개를 했다. 참한 규수이니 한번 잘해보라고 근데 하나 같이 필이 오지 않는 그 밥에 그 나물들이었다. 이래 저래 고민끝에 동생 친구넘들에게도 마수의 덫을 놓았고(술에 밥에 정말 밑빠진 독에 물붇기 감내하면서 투자했다. 이 존만아들은 처 드실때는 졸라 드시면서 뒤끝이 메롱한 인간들이다.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 들면서 지들이 가진 패를 야금야금 꺼내드는 한마디로 선수들이었던 것이다. 투자대비해서 그 수익율은 거의 없는 형국을 이어갔고 결국 난 깨끗히 포기하고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냥 줄창나게 퍼 드시도록 밥상을 차려드렸다. 아무생각없이...)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고 흘렀다.
때는 1993년 내 기억으로는 살인적인 좃같은 더위로 인해 어물전 꼴뚜기처럼 흐물흐물해졌던 그 해 초여름 느닷없는 낭보가 회기동에서 날라왔다. 경영을 전공했던 동생친구넘이 하도 졸라대는 판에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라는 리포터를 넘겨주었다. 사실 다들 아시겠지만 내가 한 스피커한다. 면접관들 벙찌게 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선두에 선 전사 그리고 맑스형님의 지론으로 똘똘뭉친 머리통에서 나오는 수려한 입담은 왠만한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국무역론 수업은 조를 편성해서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했고, 난 주둥이만 가지고(나머지는 자료 만들고 기타등등) 그 학점 짜다는 교수님의 콧대를 꺽었으니... 여하튼 이 자료를 고스란히 그놈에게 전달해주었고(말했듯이 이미 자선사업가로 변신했으니 뭔들 못 주겠는가) 그넘은 약간의 조사와 그림등 자료를 믹싱하고 리믹스하여 졸라 어마어마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결사보은의 차원으로 소개팅(음 기존의 소개팅보다는 순도가 상당히 높은 소개팅이었다)을 주선하기로 했다는 낭보. 그것도 아주 참신하면서 머리좋은 규수라는 점. 덤으로 평생 쌋다맨을 할수 있는 약대생이라는 말(음 까자 솔직하게 졸라 젤 땡긴 말이었다 쌋다맨)에 난 그냥 담배를 물고 있던 입이 절로 벌어지면서 만세 삼창을 했다.
오키바리 콜 닝기리 아싸 가오리~~~~ 원래 잡혀있었던 부산원정사업은 물론 자동 취소되었다. 그리고 6월 25일(송구하다 이점은 내가 잡은 날이 아니였으니...) 오후 4시에 경희대 앞 그 이름도 찬란한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카페에서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졌고. 첫 눈에 난 이 뇨자 잡자, 아니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잡아야 한다는 일념하에 버라이어티 쇼를 방불케할 정도로 작업 멘트를 날렸다, 중간 중간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난 니한데 맛이 갔어라는 느낌을 던져주고, 마치 바른 생활사나이의 표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밀고 나갔다. 물론 옥에 티도 있었지만, 죈장할 저녁을 먹는데 철판볶음집에서 그냥 그녀가 남긴 것을 먹고 말았으니(물론 그녀의 동의를 구하긴 했지만 ㅠㅠ) 생각해봐라 말 졸라 많이해서 배고프고 그리고 난 지금도 밥을 남기는것은 용납하지 못하는데 아 하여튼 그래도 그녀가 기분좋게 웃길래 맛나게 먹었다. 첫만남은 이렇게 갔고, 난 그녀를 회기역에서 깍듯히 배웅을 해주고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똥차와 순환선을 타고 아지트로 빽홈했다.
그리고 바로 동생친구넘에게 콜하여 번호를 땃다. 물론 이작업도 작전의 일환이었다. 직접 물어볼수 있지만 나름 궁금즘을 증폭시키기위한 일환 ㅎㅎ 그리고 뜸을 좀 더 들이고 정말 내 손가락을 짜를뻔할 정도로 수하기를 들었나 놨다 했지만 그 인내의 시간을 극복하고 딱 삼일뒤에 전화를 넣었고 예상대로 놀란 반응 바로 두번째 만남을 가져다. 두번째는 종각역 교보문고에서 근데 그날따라 왜그리도 인간들이 많은지 그리고 더웠으니 훌러당 벗고 다니는 여우들땜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내가 먼저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해메였는데 그녀가 먼저 저기요~~ 아 이게 무슨 쪽팔리는 시츄에이션인가 바로 정정하여 와 여자의 변신은 몰라보겠네요. 여고생인지 알았네요 라는 멘트로 당시 상황을 모면했다. 그리고 의정부역까지 바래다 주었고, 그렇게 그해 여름은 그녀의 뒤꽁무니를 쫒아서 줄기장창 더운줄도 모르고 보냈다. 그리고 난 계속해서 그녀의 빈틈을 노렸고, 술도 먹여보고 (물론 중전은 나 보다 주량이 더 세다. 왠만해서는 안 취한다 그 피가 어디가겠는가 ㅎㅎ) 분위기도 잡아보고 자취방으로 유인도 해서 기회도 엿보고 별별 짓거리를 다해봤지만 틈이 잘 보이지 않더라.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 예수님, 부처님, 알라님 감솨 드디어 때가 찾아온것이다. 제약회사 인턴생활을 할때(그 회사가 신도림역에 있었다) 회식으로 너무 늦어버린 그녀 전화가 왔다. 약간의 취기도 있기, 너무 늦어서 전철끝어졌다고, 세상에나 난 바로 택시타고 픽업해서 자취방으로 왓고 그날 따라 동생넘도 외박 정말 천우신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그렇게 그녀와의 뜻하지 않는 밤이 찾아왔고 난 부푼맘을 진정시키며 난 니가 원하지 않으면 날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둥 온갖 안심책을 동원했고 그녀의 의심을 풀었다. 아 근데 그녀 너무 나를 믿었는지 그냥 골아 떨어져버렸다. 이런 줸장할~~ 결국 나도 귀퉁이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아오는 여명을 맞이했다. 근데 역사는 동트기전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이상은 각자의 상상속으로~~~~(이러지마 자기야 안돼 헉 이상은 나의 멘트였다 이말 이해안되면 머리에 두손을 올려놓고 다시한번 생각해봐라)
중전은 프랑스영화를 좋아한다 당시 프랑스 국기색깔에 맞추어 블루 레드 화이트간 뭔가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졸라 닝기리 재미없는(물론 난 열심히 극장안에서 퍼질러 잤다 눈치 못채게) 영화를 보면서도 예술성 운운했고, 그녀가 약사고시를 준비할때 난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남의 학교 도서관에 자리잡고(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경비아저씨는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정말 자기대학 학생인줄 알고 엄청 친절하게 해주셨다) 그녀가 의정부에서 올려고 하니 교통편이 마땅하지 않아 내가 그 짓을 했다. 그녀 오면 난 엎어져 자고 그래도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분위기 만들려고 해도 그녀는 그야말로 꽃아놓은 보리자루만치 쉬하러 갈때 아니면 일어나질 않고 ㅠㅠ 그렇게 난 이중고속에서 공부를 했는지 기억도 없이 시간이 흘러고, 그녀는 졸업을 했고 알만한 제약회사에 취업을 했다. 난 여전히 학생신분으로 그녀와 데이트를 즐겼고 내가 졸업할때 그녀도 월차를 내고 참석했고 대장과 O.B.S 여사도 한눈에 뻑갔고 급물살을 탓다. 처음 정여사님과 O.B.S 여사의 만남(서울 프라자호텔 한정식집이었는데 졸라 비샀다.부가세에 봉사료 포함해서 네사람 밥값이 헐 물론 할부인생 할부로 긁었지만 그 출혈은 이만저만 여파가 컸다)은 가히 압권이었다. 정여사님 마땅치 않는 자세에 O.B.S 여사도 귀죽지 않는 고 자세 뭐 판을 깨자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우리 중전의 포스가 발동했다. 엄마 나 이사람하고 결혼할거고 이미 잠도 잤어 !!!! 정여사님 드시던 신선로 국물이 튀어나오고 우리 O.B.S 여사 흐뭇한 입가의 미소 뭐 이렇게 대세는 기울러 버렸다. 상황 종료!!. 그래 인간은 나쁜넘은 아닌것 알겠고, 잘 해라보라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끝....랄랄랄 ㅎㅎㅎ
뭐 지금도 난 중전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 얼마나 데찬 여사인가.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결혼(이미 결혼식의 이벤트는 소개했으니 생략한다)은 동생넘과의 동거를 출발로 약간은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살아오고 있다. 물론 중간에 처남이 한 1년 더부살이 했다. 그러니 지금도 내 말은 하늘이 두쪽나도 진실인지 알고 있다. 나라는 제품과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단 하나 예외는 있다. 짐작하다시피 다름아닌 중전이다. 지금도 중전의 말은 하늘의 법과 같고(쿨쿨이 이넘도 여기엔 그 어떠한 토도 안단다. 달아봤자 덕될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가 판단하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수용이 된다. 하지만 중전 역시 여자이고 엄마이고 아내이기에 나 같은 제품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쿨쿨이라는 운활류가 그 틈속에서 부드럽게 굴러가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졸라 행복하다. 샘내도 어쩔수 없이 행복한 것이다. |
첫댓글 마음에 드는 반려자를 만난 다는 거, ~
이카페 총각 칼활님 그리고 둘리님 아~ 그러고 보니 가을하늘아래님이 요즘 안보이네요.
그리고 김작가님을 비롯해 (이름 ???...)노처녀들~
물잡이님이 올리신 사용설명서 ("일명 중전 꼬시기")를
꼼꼼히 읽어 보시고 참고 하시라는 당부를 드립니다.
마음이 드는 짝을 이러고 만나다는 거...ㅎㅎㅎ(얼래리꼴래리~ㅎㅎ)
한편의 재미난 연애소설을 읽듯이 콩닥거리며 저 작문의 글을 단번에 읽었답니다.
그나저나 인천분님은 댓글 안달고 어데 가셨는지?
상품에 눈먼 벗을 위해 눈물 삼키고 기사도정신을 발휘해 일등 댓글을 제게 양보하신건가요?
드디어 첫빠따로 아씨님이 등장하셨네요^^
물욕이고 뭐고 중요한것은 공지한 사실대로 첫빠따 인정합니다요 ㅎㅎㅎ
글고 중전꼬시기를 잘못 응용하면 삼대가 줄고생할수도 있다는 점을 특별히
명시못한 점 이 댓글을 통해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아씨님, 가을하늘아래님은 제가 한번 수배해보겠습니다. ^^
그리고 물잡이님의 사용설명서는 아주 큰 참고가 되었습니다.ㅋㅋㅋ
일등 댓글! 축하드려요.
아씨님이 일등하시도록 제가 인천분님의 인터넷망을 마비시켜두었더랬습니다. ^^
아씨님이 상품 받으시면 저의 공도 잊지 마셔요~!! ㅋㅋㅋ
아니 그런 내막이 도사리고 있었군요 ㅎㅎ
짠~~둘리총각 좋은 정보가 있다고 소문이 제주도까지 들려서 이렇게 나왔어요~~^^ 아씨님 꼼꼼히 읽고 읽고 또 읽겠습니다 ^^ 그리고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신 물잡이님께 감사드립니다 ^^
아 둘리님 안보여서 걱정 했는데.. 엄청 반갑습니다..
둘리님을 비롯해 울 독서클럽 총각 처자들 혼례식에는 반드시 축의금 보내겠습니다요.
축시도 한편 써서...
와우!
아씨님이 첫댓글!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고 싶었으나 새치기 당함)한걸로 하고, (역쉬 물욕앞에서는 고상한분도 ㅋㅋ)
삐리리, 붕가붕가, 자빠XX다, 등등 주옥같은 표현에 쌌다맨(응?), 이러지마 자기야 안되 헉 등의 건전명랑한 사실묘사까지 쥐깁니다요...이러다가 이거..이 일기만 19금의 딱지가 붙을지도...뭐 그래야 물잡이님이 7일간의 일기 초대박터트리는거 아니겠수? 19금 일기!!!! 이거 쥐긴다! 하하
오늘은 그래도 두번째..5일중에 1등 4번 2등 두번이면..어흠!!!
ㅎㅎㅎ 인천분님의 댓글은 항상 저에게 박카스같은 피로회복제 역활을 하네요
나른한 오후에 인천분님의 댓글로 다시한번 기분좋게 시작합니다.
이미 4연패를 하셨기에 느긋한 포스까지 엿볼수 있네요 ㅎㅎㅎ
좋은 하루 되시고요~~~
나이트 삐끼..ㅋㅋ 아씨님 말처럼 연애소설같은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셨군요. 부럽습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결론내릴지 오래인데..다만규정 혹은, 예외사항으로다 넘기겠습니다..^^ 부처님법 만나기가 <백천만겁난조우>라 했는데 저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게 사랑+결혼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졸라행복..졸라부럽지만...그 모든 것이 님이 평소에 쌓은 선업의 그림자이고 또 님의 대장님부터 윗선조들의 음덕이 아니신가 사료됩니다. 계속해서 행복하시옵고..주옥같은 야그선물이나 펑펑 쏟아내 주시길..^^
고참 스마트폰이 좋은게 바로 이점이네요 ㅎㅎ
부팅없이도 아들 눈치보지않고 다만. 한참터치 하다보면
할말을 잊어버린다거가 불편하지만요 ㅋ
뭐 저도 방통님의 말씀처럼 선조들의 음덕이 아닌가 하네요
음덕이란게 별거 있나요..^^ 인물 좋을 것 같고..말주변도 좋을 것 같고..성격도 좋을 것 같고..특히 머리도 엄청 좋으신 것 같고...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등등 이런 것도 조금은 타고 난다는 생각..^^ 아 그리고...님의 글 흡입력도 있고 재미도 있는데..그림이 빠졌네요. 장서 사진이라도 좀 구경시켜주시길...한마디로 삐끼가...ㅎㅎ
음. 온라인이나 이렇게 글만 봐서 제품 디자인을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 다시한번 고지합니다^^
그저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통님^^
워낙 귀차니즘의 대가라 ㅎㅎㅎ 그러고 보니까 다들 사진도 올리고 하시던데
일기와 댓글, 답글까지 다. 읽다보니. 그야말로 장편소설이네요. 거기다가. 저의 부탁까지 첨부되다보니. 하염없이. 길어진것 같습니다만 흥미는 진진했습니다. 혼자. 큭큭대며. 열심히. 읽는데. 집사람이. 그 소릴. 듣고. 왔기에. 함께. 처음부터. 다시. 읽었네요. 파란만장한. 물잡이님의. 인생역정과. 껄쭉한. 입담에. 둘이. 포복졸도 했습니다. 우리의. 신혼시절을. 떠올렸지요. 저흰. 1300만원. 전세에서. 시작했지요. 전세는. 1000만원. 대출받아 얻었구요. 지나고보니. 다. 추억이고. 그리워지는군요.
반갑습니다 덕무조아님^^
덕분에 중전과의 옛날 추억한번 되집어 보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덕무조아님도 거금으로 신혼을 출발하셨군요 ㅎㅎ
맞습니다 정말 그리워지는 추억이네요
이 땅에 서식하는 이른바 "남자"들의 심각한 착각중의 하나...
자신이 여인의 늪에 빠진줄 모르고 자신이 여자를 낚거나 혹은 꼬셨다고 생각하는...
님의 당시의 정황증거들을 과학적으로 고찰해 보건대....
님이 중전을 꼬신 것이 아니라 중전이 치밀한 전략으로 님을 낚으신것입니다.
궁중어법으로 말하면 간택을 당하신것이고 요즘어법으로는 길가다 로또 맞은 셈...ㅎ
그나저나 글 읽다가 눈 튀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ㅎ
안녕하세요 해리슨로드님^^
아 스토리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ㅎㅎㅎ 음 이거 다시 한번 제고해 봐야 할것 같네요
로또 상금 일부라도 쉐워하자고 ㅎㅎㅎ
저는 1박2일동안 봤습니다. ㅎㅎㅎ
어제 자기 전에 핸드폰으로 읽었는데, 읽다가 지쳐 잠들었다는...ㅋㅋㅋ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옆에 나뒹굴고 있는 핸드폰 주워들고 다시 읽기 재개!!
그렇게 1박 2일을 읽었답니다. ㅎㅎㅎ
"나 이 남자랑 이미 잠도 잤어!!!" 크~ 중전마마 넘 멋짐!!
그런데, "이러지마 자기야, 안돼, 헉!"
이 부분이 물잡이님의 멘트였다고 하는 부분은 이해가 안되서 수십번을 읽었네요. ㅋ
헐~~~ 1박2일로 일기를 봤다는 우리 김작가님 대단하십니다^^
그 멘트가 바로 와닿지 않았다는 것은 결혼해보면 바로 바로
접수된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게 바로 해리슨로드님이 말한 간택(이라고 말하지만 강택으로 읽어야 함)당한 직접적인 증거 아니겠수?
역시 인천분님의 통찰력은 뛰어나십니다 ㅎㅎㅎ
물잡이 사용 설명서 첫 번째 일기를 읽으면서 이 사람 상당히 별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글을 풀어 가는 솜씨나 일상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19금 맞구요. 우리 세대만 소통할 수 있는 이야기........ㅎㅎ
연애담은 언제나 들어도 재밌네요.
해리슨로드님 말씀처럼 님이 중전을 꼬신것이 아니라 중전의 치밀하고 야무진 계획에 의해
낚이신 게 분명히 맞는 듯 합니다. ㅎㅎ
근데 글을 읽을 수록 어투나 단어 선택은 상당히 불량스러운데 진짜 모습은 상당히 진실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의의 싸나이........어쨌든 읽다보니 퇴근 시간이 되었네요.
꾸무리한 날씨에 이 일기가 활력소가 되었네요.
아 제가 낚인거네여^^ 이거 다시한번 생각해볼만한 중대한 사건입니다^^
여태까정 내가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ㅠㅠ ㅎㅎㅎ
아 근테 새벽풀님 잘못알고 계신게 있어요 어투나 단어선택만큼 진짜 모습도 상당히
불량한 제품 맞습니다요 ㅎㅎ
퇴근시간까정 읽어주시고 감사드립니다~~~
연애담 중의 '도자기'(도서관 자리 잡아주는 자기라는 애칭으로 우리는 썼었는데.....)부분을 읽다 보니,
그만한 공력을 들였던 친구를 홀대했던 제가 바보였네요.저런 중전 대접 받을 수 있었을 텐데......ㅋㅋ
ㅎㅎㅎ '도자기'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