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를 접으며/후기後記]
그동안(2020년 12월 14일∼2021년 8월 9일) 써온 찬샘편지 108통을 소책자로 묶습니다.
그리고 이제 졸문의 편지 행진을 잠시 멈추려 합니다.
8개월새 108통이라니? 내가 아는, 내가 사랑하고 친애하던 가족, 형제, 친구, 지인들에게
이틀에 한 편꼴로 글편지를 보낸 것이지요.
200자 원고지로 치자면 2000장이 약간 넘습니다.
감회感懷가 남다릅니다.
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참 무던합니다.
시켜서 했다면 죽어도 못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약갼의 의무감도 있었는지 모릅니다. 흐흐.
대부분 꼭두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쓴 것이지요.
왕년에도(2008년 4월 21일∼2009년 1월 7일) 108통의 편지를 써
『은행잎편지 108통』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원고지 2200여장, 그때의 분량도 지금도 비슷하더군요.
아, 나는 왜 편지를 쓸 생각을 쉼없이 했을까요?
참으로 별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의 얘기들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유식하게 말하자면, 우수마발牛溲馬勃(소오줌과 말똥)이 태반일 것입니다.
마음이 허허로운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으로 40여년만에 귀향한 지 만 2년.
가장 먼저 자연自然이 눈앞에 펼쳐진 채 다가왔습니다.
보는 것마다 새롭고 신기했다는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을 진작에 배우지 못한 게 안타까웠습니다.
버킷리스트 1, 2위(판소리와 붓글씨)를 뒤로 한 채, 농사를 배워보려 했으나,
이것도 저것도 못한, 또다시 반거들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지난해 연말, 누군가와 글로 대화를 시작한 게 예전의 ‘은행잎편지’ 속편이 된 셈입니다.
백팔(108)이라는 숫자는 재가불자在家佛者도 아니면서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그동안에도 글의 문패(제목)을 정해놓고 108편 글의 행진을 여러 번 했지요(자유인일기, 직딩일기, 오목교통신,
너더리통신, 찬샘통신, 휴먼일기, 행복어칼럼, 우천산고, 생활속이야기 등).
선지식善知識들도 어려울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우매한 중생의 희망사항일 것입니다.
‘글자 공해公害’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으나,
노년(유엔의 발표에 의하면 65세는 중년이라더군요)에
한적한 요양원에서 나의 졸문들을 모두 읽어보며 빙긋이 웃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편지를 받으신 백 여덟 분(서너 통을 연거푸 받은 분도 있겠지요)은 짐작하시겠지만,
편지는 나의 소리없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큐피드의
화살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 사는 초록별이 하루라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서양인들처럼은 입에 발린 듯은 아닐지라도
사랑은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보내지 못한, 보낼 수 없는 수신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들도 소통이 쉽지 않고,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잊혀지거나 여러 상황으로 갈등을 빚은 소중한 친구들도 많더군요.
좋아서 화들짝 웃으며 보낸 편지도 있고, 거의 울면서 기진맥진 쓴 편지도 있습니다.
나의 유식有識을 전달하고자 인문학특강 형식의 편지도 있습니다.
편지로 인해 훨씬 더 끈끈해진 예도 많습니다. 편지는 그런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수신자受信者가 아닌데도 어쩌면 사적인 편지들로 눈을 어지럽힌 죄도 클 것입니다만,
사람 사는 이야기인만큼 이해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우체통의 문을 잠시 폐쇄하려는 까닭은 조금은 지쳤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지치다니요? 사랑이 없는 세상은 ‘캄캄 동굴’입니다. 사랑을 멈출 수야 있겠습니까?
다만, 다시 새삼스럽게 ‘삶의 호흡呼吸’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날이 쉬이 왔으면 합니다.
들판에 벼꽃이 곧 피려고 합니다.
검실검심한 벼들이 바람에 넘실넘실거리는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습니다.
오늘은 말복이라는군요. 어제 우리말겨루기에서 우리말을 하나 배웠습니다.
‘복달더위’도 물러납니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선선합니다.
처서가 내일모레라더군요.
이렇게 한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과 두 며느리, 그리고 여섯 살 손자 윤슬이가
새삼 고맙습니다.
효녀 3총사인 여동생들도 친정 오래비 생각이 각별합니다.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모두 모두 내내 평강하시기를 빕니다.
8월 10일 아침
임실 우거에서 절합니다
첫댓글 많은 글 쓰시느라 수고많으셨어요
어떤 주제로 다시 출발할지 다시 기대가 큽니다.
농촌 일과 어르신 돌봄이 보통일이 아니건만, 주체하기 어려운 글감덕분에 108통 완주했소이다. 축하드리옵나이다.
덕분에 같은 중년으로서 삶의 엔돌핀이란 화두에 많은 도움이 되어 감사드리고, 머리 잠시 식히면서 새로운 108개 구상 잘 하시기 기원드리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