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짠돌이카페에 매일 들어와 글은 읽고 있지만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올리는 건
처음이예요. 저는 절대로 짠순이는 아닙니다.
아끼고자 노력은 하고 있지만 카페 회원분들에 비하면 짠순이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운 평범한 주부랍니다.
그래도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1. 우리가족은-
결혼 18년차 남편, 중고딩 두 딸과 살고 있는 외벌이 가족이예요.
자산이라고 내세울만한 재산은 많지 않지만 나름 카페에서 자극 받으면서
열심히 저축하고 있답니다.
저희는 장애인 부부입니다.
저는 청각장애 2급인이고 남편은 지체장애 6급이랍니다.
2. 꿈 많던 고등학생 때 장애인이 되다.
저는 고 1학년 때까지는 밝고 건강한 학생이였어요.
고 2학년 때 시신경염을 앓고 치료 받는 와중에 청력이 손상되었어요.
그 때는 시신경염으로 시신경을 손상 받아 잘 안 보이기 시작한 때라
청력이 떨어지는거에 미쳐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시신경염 진단을 늦게 받는 바람에 오른쪽 눈은 시신경 손상이 회복이 되지
않았고 왼쪽 눈은 회복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오른쪽 눈은 시야가 많이 좁고 잘 안 보여요.
이 때에 보청기도 착용했지만 장애 진단 받는 걸 몰라서 27살 무렵에
청각 장애 2급 진단을 받았네요.
장애인 1급 진단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청각장애인은 2급이 제일 안 좋은거래요. ㅠㅠ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고 결혼 전까지 10년정도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중간에 몸이 안 좋아서 쉬기도 했지만 대략 2000만원 좀 넘게 모았어요.
3. 결혼, 그리고 첫 딸 출산
20대 후반에 장애인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입니다.
남편도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초등학교 다닐 때
추락사고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서 장애가 생겼어요.
가진 것 없고 비밀 언덕 하나 없는 저희지만 열심히 살면 지금보다
나으리라 믿고 2001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였고 남편은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었어요. 남편이 살고 있던 1600만원 전세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됩니다.
제가 그 동안 모았던 2000만원 중에서 600만원은 결혼 비용과 필요한 혼수 준비로 쓰고 1400만원을 비상금으로 가져갔어요.
남편은 전세금 1600만원과 할부로 구입한 마티즈 한 대가 전 재산이였어요.
할부금이 부담되어 차를 팔고 싶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남편에게는
꼭 필요하던거라 할부금도 고스란히 안고 가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간판제작과 시공을 하는 공장에서 일했고 월급은 딱 90만원이였어요
자동차 할부금 20만원 내고, 남편 종신보험료를 내고나니 56만원 남더군요. 남편이 위험직종이다 보니 만일을 대비해서 특약 넣어서 종신보험을 가입했어요. 혹시라도 남편이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서요 ( 남편 미안~ )
힘들게 넣었던 종신보험 납입 만기가 이제 2년 남았답니다,
결혼 후 제가 바로 임신하면서 간간히 부업도 해보지만 수입이 워낙
적다보니 한 달에 20만원 저축도 힘들더군요.
그래도 먼 미래를 위해서 20만원씩 저금하면서 아끼고 살았어요.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큰 딸이 태어났어요.
큰 딸이 태어나니 입은 하나 늘었는데 수입은 그대로라 남편이
직장을 그만둡니다. 제가 결혼하면서 가지고 왔던 현금으로 트럭을 한 대
사고 마티즈를 팔았습니다.
트럭으로 남편이 일당직으로 간판제작 및 시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일만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일했어요.
그리고 저는 큰 딸이 돌이 지나고 걸아다닐 무렵부터 여성인력센터에서 홈패션과 양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천으로 무엇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배워두면 나중에 작게라도 창업을
할 수 있겠거니 싶어서 홈패션과 양재 과정을 열심히 배워서 수료했답니다.
하지만 수료한 홈패션과 양재로 일을 할 수는 없게 됩니다.
시력이 많이 안 좋아졌거든요.
남편의 수입은 공장 다닐때보다 2배 넘게 늘었고 2500만원 빌라 전세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둘 째를 임신하게 됩니다.
4. 둘 째딸 출산, 그리고 아픔... 우울빛 하늘
2005년에 둘 째딸을 낳았습니다.
임신 중기부터 관절들이 많이 아팠는데 출산 후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정도로 관절도 아프고 급기야는 양 쪽 눈이 또 안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의티를 갈아 입어야 할 정도로 땀을 비오듯 흘렀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응급으로 검사를 받았지만 병명이 나오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앓았던 시신경염도 아니라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나오지 않는 병명에 그저 가망이 없다고만 했습니다.
양병원에서 해결이 안되니 한의원에서 치료 받으면서 이 때 한약을 많이
지어 먹었고 4년동안 알뜰하게 모아서 저축했던 돈을 많이 쓰게 되었어요.
아픈 와중에도 가계부 마이너스 안나게 바보처럼 노력했던거 같아요.
태어나 한 달 지난 작은 딸은 서울 친정에 맡기고 5살된 큰 딸만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병과 싸우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앞이 잘 안 보이다보니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통신문을 받아 와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어요. 혼자 외출 한 번 하면 계단에서 발을 헛 딛어서
넘어지는 일이 많아서 다리는 항상 피멍이 들어 있었어요.
이러다보니 5살 큰 딸은 등원은 혼자하고
하원은 늦은 시간까지 있다고 남편이 일 마치면서 데려오곤 했어요.
이 때에 저는 매일 날이 흐린줄 알았어요.
하늘을 봐도 매일 흐렸거든요. 햇살이 안 보이니 하늘을 오랫동안 보아도
눈이 부시지 않았어요.
가끔 어린 딸에게
“ **야 오늘 날이 많이 흐리니? 비가 오는건가~ ”
물으면 딸은
“ 비 안 오는데... 하늘 엄청 맑은데... ” 하면서 해맑게 말하곤 했네요.
항상 하늘은 맑고 눈부셨는데 제 눈에만 어두운 우울빛 하늘이였어요.
관절 통증으로 한 번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서 한 번 앉으면
일어나야 될 일이 생기면 어린 딸에게 부탁하곤 했네요.
그 조그만한 아이가 밥 먹다가 물도 떠오고 반찬도 꺼내 오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통에 그릇들을 옮겨주곤 했어요.
어쩔 때에는 수퍼 심부름도 하고 엄마 옷 입는 것도 도와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앞도 제대로 못 보고 관절 통증으로 고통 받는 생활이
2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5. 호흡곤란으로 입원.... 드디어 병명이 나오다
2007년 3월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요. 단순 감기인줄 알았는데 급기야는 호흡곤란으로 입원을 하게 됩니다.
폐에 물이 많이 차서 산소호흡기를 해도 숨 쉬기가 힘들었어요.
병원에서는 폐암으로 의심을 하고 검사를 하게 됩니다.
폐에 있던 물을 빼고 10흘 정도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폐암이 의심 된다면서 의사들은 폐랑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폐 조직검사를 끝으로 희귀난치병을 진단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제 병을 전공한 의사가 없어서 수소문 끝에 대학병원에 계시다
개원한 의사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의사선생님은 퇴근 후 회진을 오셔서 저를 진료해
주셨습니다. 그 의사선생님이 지금의 제 주치의 선생님으로 정말 고마우신
분이세요.
의사선생님은 제가 이 병을 청각장애가 생겼던 고등 2학년 때부터 갖고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운 좋게 만난 선생님 덕분에 저는 조금씩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관절들도
아프지 않게 되었어요. 부작용이 많은 독한 약을 처음에 다량으로 사용해서 몸도 붓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지만 앞이 서서히 잘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난 2년의 시간을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감사했습니다.
퇴원을 하던 날 하늘을 보니 눈부신 햇살에 눈이 저절로 찡그려져서 계속
눈물이 나고 행복했습니다.
6. 내집마련.... 둘 째딸을 데려오다
퇴원 후 한 달도 안되어서 내 집이 생겼습니다.
살고 있던 집은 빌라인데다 바로 앞에 큰 건물이 막고 있어서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남편은 제게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집에 살게 하고 싶다고
퇴원하자마자 같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드디어 10년정도 된 24평 아파트를 2500만원 대출을 받고 구입하게 됩니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남향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단지 바로 옆에 붙어 있었어요. 고등학교도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있는 마음에 쏙 드는 아파트를 매매해서 이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산책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가까이에 큰 공원과 도서관은 최고의 내 집이였어요.
이사하던 날.... 드디어 둘 째딸을 데려왔습니다.
아빠, 엄마 떨어져 마음 아프게 한 딸이지만 부모님 덕분에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랐답니다
2년동안 부모님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지요. 양육비도 제대로 못 챙겨드리고
그저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만 부족하지 않게 챙겨드렸던거 같아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7. 대출금 갚기... 그리고 크레인 개인사업자가 되다.
이사한 후 대출금 갚기에 전력을 다합니다.
남편 수입이 평균적으로 250만원정도 였는데 수입의 50%정도를 대출금을
갚았어요. 그 때 대출이자가 6%가 넘었으니 외벌이 수입으로 부담이 컸습니다. 드디어 2년 후 대출금을 다 갚고 그 사이에 아파트 매매가가 올랐습니다.
지방 아파트는 잘 안 오르는데 우리가 매입한 후 지방 아파트가 들썩이면서
생각보다 많이 오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서울처럼 억~ 단위로 오른건 아니랍니다.
대출금을 다 갚은 후 일당직으로 일하던 남편은 좀 더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1년정도 준비를 해서 대형화물차 면허증을 따고 크레인 개인사업자가 됩니다.
크레인이 1억 3천만원이였는데 모아두었던 3천만원과 집을 담보로 해서
1억을 빌려 크레인을 샀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해준 트럭을 팔고 돈을 보태서 중형차를 600만원 주고
중고로 사게 됩니다.
우리 딸들이 트럭 타는 걸 참 좋아하고 아파트에 주차를 해 놓으면
친구들에게도 우리차가 제일 크다고 자랑하곤 했었어요.
언제인가 동해로 트럭을 타고 여행을 갔었어요. 숙박하던 곳이 동생이 회사 직원 회원가로 저렴하게 해준 조금 으리으리한 리조트였어요.
으리번쩍한 자가용들이 주차된 곳에 트럭을 주차하고 내리니 지나가던
가족들이 쳐다보더군요.
7살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자꾸 쳐다보니깐 큰 딸이
“ 얘~ 우리 차 대빵 크지? "
하고 외치니
꼬마가
“ 응. 정말 대빵 크다. ”
꼬마 부모님과 저희 부부는 마주보며 살짝 웃었네요.
그 동안 열심히 일해준 트럭을 보내고 대출 1억과 함께 남편은
크레인 개인사업자가 되었습니다.
8. 1억의 대출을 안고.... 아껴야 된다.
1억의 대출이 생겼으니 아직 안정적이지 않은 외벌이 수입이라 무조건
아껴야 했습니다.
식비와 경조사비 외에는 무조건 아꼈어요.
아이들 옷도 둘째 낳기 전에 살던 집 이웃이였던 언니네 딸 옷을 물려 입었어요. 외출복은 물론 내복, 런닝, 양말까지 다 물려 입혔어요.
필요한 물품은 온라인 벼룩시장이나 아름다운가게에서 사서 쓰곤 했고요.
저나 남편이나 옷이나 신발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지라 있는데로 입고 다녔지
새로 뭘 사지는 않았어요.
신발장을 열면 남편은 신발이 딱 두컬레예요. 장애인 정형화로 운동화처럼
생긴 구두 두컬레이고요. 시중에서 살 수 있는게 아니라 발모양을 떠서 맞추는
거라 가격이 비싸거든요.
저는 운동화 두 컬레와 여름용 겨울용 슬리퍼와 스포츠 샌달 한 컬레가 다예요. 구두나 부츠, 예쁜 샌달 없어요.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 돈 아끼려고 안 산 이유도 있지만 손과 발에 염증을
달고 살다보니 딱 맞는 예쁜 신발은 신으면 아프거든요.
저는 가방도 산 적이 없어요. 여동생이 사용하던 프라다 정품 가방을 아이들 어렸을 때 쓰라고 주었었어요. 그 때는 프라다 가방이 뭔지 몰라서 기저귀 가방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장바구니 가방으로 험하게 매고 나녔어요.
프라다 가방이 여기저기 흠나기 시작할 무렵에 비싼 가방인걸 알았네요.
여동생도 변변한 가방 없는 언니를 위해 큰 마음 먹고 준거였다네요.
그 다음에 여동생은 코치 숄더백을 선물로 줬어요.
코치가 뭔지 모르는 언니가 또 장바구니로 쓸까 염려되어 몇 번이나
비싼 가방이라고 알려주었네요. 지금 코치 숄더백을 10년 가까이 매고
다니고 있어요. 몇 년은 더 끄덕없을거 같아요.
그리고 사교육도 많이 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꼭 원하는거나 필요한 거로
한 개씩만 배우게 했어요.
고등 2학년인 큰 딸은 사교육 없이 인강으로만 열심히 공부해요.
내신 준비는 교과서와 자습서로 무한반복하고 수능 준비는 인강을 반복해서 듣고 있거든요.
중등 2학년인 작은 딸은 영어만 따로 공부하고 있고요.
우리 집에서는 식비와 제 병원비가 그나마 많이 지출되는 항목이예요.
저는 모네타가계부를 쓰는데 예산 안에서 지출하려고 해요. 다른 항목은
빠듯하게 예산을 세우는데 식비는 좀 더 넉넉히 잡아요. 병원비는 예산을 세워도 제 건강 상태에 따라 변동이 생기는 항목이고요.
제가 건강이 안 좋다보니 먹는건 좋은거로 먹자는 주의라 일 주일에 한 번씩 유기농매장에서 주문을 해요. 유기농 매장에서 구입하기에는 비싼 품목들은 가까운 수퍼나 마트를 이용하고요.
유기농 매장이라도 제철 채소와 콩이나 두부류는 마트보다 저렴한 것도 많고요. 특히 달걀은 사육환경번호를 보고 사요.
이 부분에서는 동물복지 차원으로 육류와 생선을 안 먹는 둘 째딸 영향이 커요. A4용지 크기의 닭장에서 몇 마리씩 사육당하다 죽는 닭들을 알고 나서 초등 고학년 때부터 육류와 생선을 안 먹기 시작했어요.
사는동안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댤걀을 먹으면 점점
가축들의 사육환경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둘 째딸은 키도 작고 저체중이라 다른 음식이라도 좋은 걸 먹이려고
하다보니 식비가 짠테크에는 어울리지 않게 많이 나와요.
경조사비는 형편에 맞게 잘 챙기자는 생각이라 항상 나가는 지출이예요.
나한테 아끼면 알뜰이 되지만 남한테 아끼는건 인색한거잖아요.
그래서 부모님 병원비나 용돈, 경조사비는 형편에 맞게 잘 챙기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저한테 나가는 병원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요.
소액이지만 매 월 후원금도 내고 있답니다.
그 외에는 되도록 아끼려고 열심히 가계부 쓰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9. 1억의 대출금을 갚고.... 수입이 늘다.
이렇게 아끼고 모아서 3년만에 1억을 갚았어요.
그 사이에 일당직으로 일했을 때 보다 수입이 배로 늘었고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출도 좀 늘었지만 그 만큼 저축도 늘었답니다.
대출금이 없으니 현금도 점점 모여서 통장 잔고가 점점 빵빵해지고 있어요.
이사한 지 10년이 되어가니 20년차가 된 아파트에서 새아파트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기더군요.
하지만 힘들게 모은 목돈이라 안정적인 곳에 투자를 할 때까지
통장에 계속 예금을 하기로 했답니다.
10. 골괴사로 수술을 하다.
2018년 초에 갑자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투자를 하기 위해 재테크 책도 많이 읽고 가까운 곳에 다가구나 상가주택도
보러 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당장 투자를 못하더라도 많이 답사를 해봐야 안목이 생기잖아요.
그러던 차에 무릎이 많이 아파서 단순한 염증이겠지 하고 검사한
병원에서 골육종 의심을 받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어요.
수술을 하게된 의사선생님도 거의 골육종이 확실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정말 눈물 뚝뚝~ 흘리면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수술을 받고 입원하는 한 달 동안 남편은 일을 못하고 제 병간호를
하였어요. 남편은 전생에 저한테 빚을 졌는지 저 만나서 개고생 하고 있네요.
그래도 제가 아프면 항상 함께 해주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입원하는 동안 서울에 살고 있던 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남편 식사와 아이들을 챙겼어요. 마침 겨울방학 때라 두 딸들은 병원서 가까이에 살고 있던 남동생네가 데리고 있었고요. 그 때 남동생은 물론 올케, 여동생과 제부가 없었다면 남편과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웠어요.
입원하는 동안 수혈도 몇 번 받고 진통제도 맞아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일 주일 후 다행히 조직검사가 악성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제가 갖고 있는 병의 합병증으로 무릎뼈가 괴사한거였답니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기면서 감사함을 가졌습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되고 한 달 여만에 퇴원을 하는 바람에
큰 딸 중학교 졸업식을 못갔어요. ㅠㅠ
둘 째딸 초등학교 졸업식은 퇴원 날짜보다 일찍 퇴원을 해서 참석했어요.
하마터면 둘 째딸 졸업식도 못갈 뻔 했네요.
건강한 사람이면 2주면 상처가 아무는데 제 병 특성상 지혈이 잘 안되고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서 한 달을 입원하게 되었네요.
그래도 지금은 뛰는 건 힘들어도 걷는 건 큰 불편함이 없어요.
11. 작은 부자로 가는 길
하나. 돈보다 더 소중한 건 건강
한 번 심하게 아파 본 사람은 바로 수긍할거예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여기저기 아파 보니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어요.
짠생활도 좋지만 나와 가족의 건강이 언제나 우선이예요.
둘. 보험 가입하기
실손 보험 한 개쯤은 가입하는게 좋아요.
서민일수록 병에 걸리면 병원비로 극빈층에 될 수도 있거든요.
병에 걸리면 보험 가입도 힘들어져서 건강할 때 하나쯤은 가입하는게 좋아요.
저희 가족은 남편은 종신보험과 실손보험, 아이들은 실손보험 한 개씩,
그리고 저는 보험가입이 안되다가 2년 전에 간편심사로 가입한 생명보험이 있어요. 보험 가입 후 1년 만에 입원하면서 보험금을 받아서 도움이 되었어요.
남편 종신보험은 처음에는 납입하는데 부담이 되었지만 이제 납입 만기도
얼마 안 남았고 보장이 예전거라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노후에 현금이 부족하면 해지환급금도 생각보다 많고 연금 전환도 가능해요.
셋. 국민연금 임의 가입하기
남편은 개인사업자로 국민연금을 납입하고 있고 주부인 저는 임의가입해서
최저 금액으로 납입하고 있어요.
연금 받을 때쯤에는 부부 합해서 최저 생활비는 나올거 같아요.
열심히 납입하고 있어서 연금 받으려면 오래 살아야 되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이지만 그래도 연금 중에서는 기본이자
최고인거 같아요.
넷. 내 집 마련하기
부동산 폭락~ 어쩌고 해도 하늘아래 내 집 한 채는 꼭 필요한거 같아요.
내 집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은 전세로 사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되거든요.
똘똘한 내 집 한 채는 노후에 주택연금으로도 가능해서 든든한 노후자산이예요. 저희는 몇 년 후 평생 거주할 똘똘한 집 마련해서 노후에 주택연금 받을
생각이랍니다.
다섯. 목돈이 모아지면 투자하기
알뜰살뜰 저축하다보면 목돈이 모아져요. 통장 잔고가 빵빵해지는 순간이죠.
이제 이 돈을 적절하게 굴려야 되요.
저는 주식이나 펀드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이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은 다가구나 상가주택도 헉~ 소리나게 비싼 지역이 아니라
저희 부부도 곧 건물주를 바라볼 수 있을거 같아요.
여섯. 두 딸들 자립금 만들기
두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립금 목적으로 꾸준히 저축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독립할 시점에 자립금을 챙겨주고 싶어요.
경험해보니 많지 않은 돈이라도 목돈이 있는 상황에서의 출발은
여유있고 돈 모으기도 더 수월한거 같아요.
아이들 자립금 목적으로 하는 저축은 저희 자산에 넣지 않아요.
왜냐면 아이들 몫이니깐요.
12. 작은 사치, 힐링의 시간.
저는 일 주일에 두 세 번정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서관에 가요.
책을 빌릴 때도 있고 정기간행물실에서 잡지나 신문을 볼 때도 있어요.
그리고 나오기 전에 도서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라떼 한 잔 마시면서 카페에서 바라보는 공원은 보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거든요. 며 칠 전에는 카페라떼 마시면서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벚꽃을 보았어요. 어찌나 이쁜지 집에 와서도 아른아른 거리더군요.
라떼 종류에 따라서 2500원에서 3500원정도 하는 가격이라 짠테크 생활과는
어긋나지만 제 유일한 사치이자 힐링의 시간이랍니다.
13. 내가 절약을 하는 이유는...
첫 번째는 노후에 원하지 않는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지금은 남편이 40대 후반에 건강하고 정년이 없는 일을 하지만 많이 힘들고
위험이 따르는 육체 노동이예요. 더군다나 남편은 한 쪽 다리가 불편해서 오래
서있거나 걸으면 허리랑 무릎이 많이 아프거든요.
노후에는 남편이 하고 싶은 목공 일을 할 수 있게 작은 가게를 차려 주고 싶어요.
두 번째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부모 노후를 걱정 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부모 노후대비가 어느정도 되어 있어야 아이들도 부담 없이 자기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이들 자립금을 만들고 있는 건 적어도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저의 노력이랍니다.
14. 글을 마치면서....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니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어요.
요즘은 중간 중간 삶의 고비를 지나다보니 하루하루가 참 소중합니다.
제가 그 동안 미래의 두려움으로 소중한 하루를 놓치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카페 회원님들도 하루하루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건강하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부자되시길 바랍니다.
어머나.딸들 어렸을때 생각하니 가슴아프고.힘든 몸이여도 꿋꿋한 모습에 제 자신을 돌아보게됩니다
정독했어요:)
너무 멋지세요- 정말 열심히 읽었네요, 몸도 불편하신데,정말 대단하십니다. 좋은기운 받고갑니다. 앞으로도 화이팅 하세요 :)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이제 더이상 아프지마시고 꽃길만 걸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