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벌레와 이령 공주
임종삼
신라 천년의 고도 쪽샘지구 44호분의 주인공이 마침내 부활했다. 경주시 태종로 788번지 쪽샘유적발물관에서 탄생했다. 지하세계에 묻힌 지 무려 1500년 만의 일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표대로 쪽샘지구 44호분의 주인공은 소녀였다. 키 130cm 내외 10여 살 전후의 신라 공주였다. 공주의 이름은 아직 알 수 없다. 무덤에서 출토된 귀고리에도 은장도에도 공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신라 공주의 이름을 서둘러 불러 주고 싶었다. 귀고리의 이(珥)와 은방울의 령(鈴)을 따서 이령(珥鈴)으로 부르기로 하였다. 성은 김이요 이름은 이령.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말다래로 추정하면 이령공주는 곤충을 좋아했다. 월성 밖 계림에 서식하는 매미, 풍뎅이, 사슴벌레 등을 좋아했다. 그런 중에도 한여름에 나타나는 비단벌레를 특히 좋아했겠다. 어느 여름 날 공주는 아버지 소지왕 김비처(金毗處)에게 물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시나요?”
귀여운 막내딸 이령의 질문에 소지왕 김비처는 함박웃음을 띄며 대답했다.
“나는 말이다. 노을빛을 좋아한다. 붉은 저녁 노을을 좋아한다, 이령아 너는 무슨 빛을 좋아하느냐?”
“예, 저는 초록빛을 좋아해요”
“초록색이라? 온 산천이 다 초록색인데 그 흔한 빛을 좋아한단 말이냐?”
“예, 아바마마”
“초록빛을 좋아하는 이유라도 있느냐? 네 생각을 들어보고 싶구나!”
“예, 살아있는 동물들은 모두 붉은 피를 가졌잖아요. 말도 사슴도 사람도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노을빛도 붉은색이지 않느냐?”
“그래요 아바마마, 그런데 세상 만물은 동물과 식물로 크게 구분되잖아요. 그리고 말과 사슴같은 동물들은 모두 푸른 잎을 먹고 살잖아요”
“그렇지, 식물을 식량으로 살아가지. 그게 삼라만상이 살아가는 질서란다.”
“그래서 저는 초록을 좋아해요. 초록빛 나무가 없으면 온갖 동물도 살아갈 수 없잖아요”
“그래, 듣고 보니 공주의 생각이 아주 재미있구나!”
“예, 그런 중에도 저는 비단벌레를 특히 좋아해요. 비단벌레의 쪽빛 날개를 좋아해요. 오늘은 시종들과 비단벌레를 잡으러 계림으로 갈 거예요.”
“그래, 그것 참 즐거운 일이구나. 갈색 털을 가진 고라말를 타고 다녀 오너라.”
“예, 아바마마, 몇 마리 잡아다가 아바마마에게도 보여드릴께요.”
“그래라. 어서 다녀 오너라”
신라 공주 이령은 말타기를 좋아했다. 아버지 소지왕이 선물한 고라를 타고 계림 숲을 산책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때때로 계림 숲에는 사슴과 고라니가 나타나고 한여름에는 쪽빛 날개를 가진 비단벌레가 팽나무와 느티나무 줄기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
한여름 계림 숲에 나타나는 쪽빛 비단벌레는 신기했다. 어른 손가락 크기의 비단벌레의 날개는 햇빛을 받으면 무지개 빛으로 반짝였다. 시종들은 비단벌레를 무서워하였지만 이령 공주는 비단벌레를 귀여워하였다. 비단벌레를 잡아 손바닥 위에 놓고 쓰다듬기도 하고 창공으로 날려 날아가는 모습을 즐거워하였다. 소지왕은 선머슴아 같은 이령 공주를 사랑했다. 때때로 왕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