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운중중
한편 백독존자, 사해신투와 함께 계곡의 사원을 나온 진각민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그마한 분지에 도착했다.
사해신투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음성을 낮추어 입을 열었다.
"바로 여기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 앞에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이 동굴은 천연동굴로써 매우 건조하며 또한 매끄러웠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괴규화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하... 노제,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진각민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풍진삼우가 오른쪽에 일렬로 앉아 있고, 부소연과 이인이란 서생도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왼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진각민이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자 더욱 가까이 서로 다가앉으면서 빙긋 웃어 보였다.
진각민은 할 일이 많은 몸이라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한 후 사해신투에게 물었다.
"신투는 무슨 일로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지?"
사해신투는 웃음을 거두더니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오늘날에 와서 사태는 점점 더 엄중하고 복잡해지니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겠고... 우선 앉으시오. 해천영감도 곧 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이인이라는 서생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탄식하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황산에 세 가지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금오궁, 하나는 칠대 문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형님입니다. 하지만 형님의 세력은 한 조직을 이루어야만이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잠시 멈추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황룡도장과 해천신수 그리고 영사형인 적지천리 부풍 등은 모두 황산에 도착했습니다. 만약 이 힘을 합친다면 금오궁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세력이라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자신합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라면 영도자가 없다는 것이오."
진각민은 얘기를 다 듣고 나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 누구의 명령도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룡도장이 비록 선배라고는 하지만 사해신투 등도 모두 그와 동일한 연배의 인물들인지라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몇 번이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결코 말은 하지 않았다.
백독존자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크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해 신투와 오래도록 상의해 봤지만 결국 누군가가 한 사람이 나와 모든 일을 주재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형님이 가장 적합합니다."
진각민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 같은 미진한 말학 후배가 어떻게 감히 무림의 명사들을 영도할 수 있겠나?"
백독존자는 정색을 하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선후배 관계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와 신투는 지금까지 강호 시비에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형님을 믿고 이렇게 나서게 된 겁니다. 그 외에도 영사형인 부풍과 황룡도장, 해천영감 등은 강호에 아무런 호승심도 없는 사람들인데 이번에 발벗고 나선 것은 형님과 군주와의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들도 아마 저희들 뜻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 후에 모두 도착할 것이니 조금 기다려 보십시오."
이때 사해신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노마두가 오는군."
부소연은 사해신투를 노려보았다.
사해신투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남들이 모두 그를 그렇게 칭하고 있는데 나라고 부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안 그런가?"
이때, 가벼운 바람이 일면서 적지천리 부풍이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진각민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의 예를 취했다.
"사형께선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부소연은 진각민이 자기의 아버지를 사형이라고 칭하자 냉랭한 눈초리로 쳐다보고는 적지천리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어째서 지금에야 오시는 거예요!"
부풍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다 큰 아이가 이게 무슨 어리광이냐? 내 사숙과 급히 논해야 할 일이 있다."
사숙이라는 말이 나오자 부소연의 안색이 돌연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방금 진각민이 자기 아버지에게 사형이라고 칭한 것을 듣고 내심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이제와서 아버지마저 그를 사숙이라고 칭하자 그녀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다.
그녀의 모든 희망은 사숙이라는 칭호와 함께 하나의 악몽으로 화하여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녀는 그 자리에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적지천리는 그녀가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상관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눈 후 진각민에게 다가서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자네는 일에 크나큰 변화가 생긴 것을 알고 있는가?"
진각민은 놀라면서 물었다.
"또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풍문에 듣자하니 금오궁이 각파 수뇌가 황산에 모여 있는 틈을 타서 각파 문하들을 유인해 장문직을 계승하게 했다고 하네. 나는 황산으로 급급히 달려오느라 자세하게 알아보지는 못했네."
사해신투가 급히 말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서 나도 소식을 들었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소."
바로 이때, 동굴 입구에 몇 개의 인영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황룡도장과 만리운연 육통이 들어왔다.
이어서 해천신수 부녀도 도착하여 그렇지 않아도 좁았던 동굴은 사람으로 가득 채워졌다.
서로들 인사를 나눈 후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람됨이 시원시원한 황룡도장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하... 여러분들을 다시 뵙게 되어 반갑소! 아무튼 이번 황산대회는 수백 년 내에 가장 큰 대회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수들이 운집했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대회가 단순히 무술을 비교하는 것이 아닌 정파와 사파간의 일대 혈투라는 것이오. 만약 이 일이 평상시에 발생했다면 이곳에 모인 친구들 중 한 사람만 가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빈도가 의기소침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을 모두 합친다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오."
여기까지 말한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러 친구들께선 모두 이 천하에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으신 고인이시지만 이번의 일에 참여하게 된 것은 막군주의 관계와 한단선배의 전인인 진소협 때문이오. 하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목적은 금오궁 주인을 상대하는 데 있습니다. 일사불란한 행동을 위해서는 주도자가 있어야 하오. 여러분께선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시오?"
만리운연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해천선배를 추대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의 뜻은 어떠시오?"
백독존자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고 아무 말도 안했지만 사해신투는 미친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렇게 명성을 따진다면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다 자격이 있소. 하지만 명령을 내릴 자는 한 명도 없소."
이때 해천신수가 갑자기 크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허허... 육형께선 노부의 성격을 모르십니까? 노부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누구의 명령도 받아보지 않았지만 반면에 그 누구에게도 명령 내리는 것을 원치 않고 있소."
의견이 서로 엇갈리자 황룡도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의 일은 누가 누구를 명령하느냐가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누구든지 중간에서 연락하여 모든 사람의 협조가 일치하도록 하자는 것이오. 빈도는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진소협을 애호하고 있으니 그를 추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뜻은 어떠시오?"
능파선자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래요. 진상공께서 앞장서신다면 아버지께서도 찬성하실 거예요."
해천신수는 껄껄 웃으면서 능파선자를 가볍게 꾸짖었다.
"허허! 너는 왜 그리 방자하냐? 이 많은 선배들이 자리하고 계신데 네가 끼어들 여지가 어디 있느냐?"
능파선자는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버지께선 꼭 동의하실 것이며 또한 여러 선배님들께서도 굳이 반대하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해신투가 크게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낭자의 말씀이 맞소! 나와 백독존자는 찬성이오."
만리운연 육통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농담이오! 절대 그럴 수 없소!"
능파선자가 입을 삐쭉거리면서 막 반박을 하려고 할때 해천신수가 그 기미를 알아채고 냉랭히 소리쳤다.
"너는 입을 못 다물겠니!"
이 소리에 능파선자는 혓바닥을 쏙 내밀어 보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진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 노선배님들께서 후배를 이렇게 아껴주시는 것에 대해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대한 일을 어떻게 후배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백독존자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형님을 애호하는 것은 우정도 우정이지만 한편으론 한단노인과의 관계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이런 소용돌이 속에 자진해서 뛰어들었겠습니까?"
적지천리 부풍도 한 마디 끼어들었다.
"지금의 사태는 매우 위급하거늘 그 따위 무의미한 겸손은 그만 두고 우리 대응책이나 강구하세."
진각민은 사양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시선을 육통에게 옮겨 그의 의견을 물었다.
사실 육통인들 어찌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가 많은 선배들 앞에서 명성을 날리는 것을 원치 않겠는가?
그는 제자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 선배님의 의견이 정녕 그러하다면 그분들의 의견에 기꺼이 따르는 것이 후배된 도리가 아니겠느냐?"
이에 진각민은 공손히 예를 취했다.
"선배님들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미약한 힘이나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정색을 하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후배가 막북에 가 있을 때 금오궁이 황산 논검대회를 이용해 중원의 영웅들을 일망타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속셈은 과거 막군왕이 묘강을 정복했던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금오궁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막군왕이 묘강을 평정시켰던 것과 관계된 사람이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오궁이 어떠한 수단을 취할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매우 악랄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무당파 능풍도장의 말에 의하면 이번 황산대회는 원원대사와 녹림성자 등이 결정한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번 황산대회를 이용해 금오궁과 일대 결단을 내는 한편 천하의 사악한 세력을 섬멸시킬 생각인 것 같습니다."
진각민은 금오궁과 무림 칠대 문파의 상황을 대략 설명한 후 다시 몇 가지 의견을 제출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즉시 착수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금오궁이 어떠한 수단으로 중원무림의 사람을 대응할 것인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칠대 문파의 실력이 금오궁을 대적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분명히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떠한 태도와 수단을 취해야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때 황룡도장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말을 받았다.
"얼마 전 금오궁이 비열한 수단을 써서 삼광신니를 암습하여 막군주를 납치해 갔네. 빈도와 부형 그리고 육형 등은 그 일로 인해 막북까지 달려갔으나 도중에서 한 신비인물에 의해 막군주가 이미 구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다시 황산으로 달려온 것이네. 그런데 진소협은 그를 보지 못했나?"
진각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금오궁이 그 일로 후배에게 황산대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협박한 적은 있으나 그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그는 내심 문득 느끼는 것이 있어 급히 부소연에게 물었다.
"소연! 너는 막군주의 행방을 알고 있지 않느냐?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실의에 빠져 있던 부소연은 진각민이 막단봉을 묻자 옆에 앉아 있는 이인이라는 서생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이때 황룡도장이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큰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정말 대담하구나! 감히 빈도 앞에서 수작을 부리다니, 빨리 나와 이 사백에게 인사를 올리지 못하겠니?"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인이란 서생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황룡도장에게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질녀, 사백께 문안드립니다."
동굴 속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인이라 불리는 서생이 바로 그들이 지금까지 화제에 올렸던 막단봉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막단봉은 몸을 돌려 여러 선배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올렸다.
"후배, 여러 선배님들께 인사올립니다."
진각민은 두 눈이 휘둥그래져 넋을 잃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연, 저 계집애는 정말 맹랑하구나!'
이때 능파선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막단봉 앞으로 가더니 물었다.
"낭자가 바로 막단봉 낭자인가요?"
막단봉은 의혹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능파선자는 다시 부소연을 향해 물었다.
"당신이 바로 백의나찰인가요?"
부소연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요!"
일순 능파선자의 안색이 서리발같이 차갑게 변했다.
"본 낭자는 능파선자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놀리다니! 내 언젠가는 너희들에게 본 낭자의 무서운 맛을 보여주겠다."
막단봉은 본시 성격이 온순하여 생전 남과 다툴 줄을 모르는지라 이 말을 듣자 매우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부소연은 미리 예상을 했다는 듯이 차갑게 내뱉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본 낭자는 너를 기다리겠다!"
"팔월 십오일 황산대회가 끝나면 너를 찾아가겠다."
그러더니 휙 몸을 돌려 찬바람을 몰며 다시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노인들로서 그들의 사적인 시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해서 금오궁에 대한 대응책을 상의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해신투는 요 근래 황산 주위에서 보았던 일들을 모두 자세하게 얘기한 후 정중하게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개방이 무림의 정의를 위해 전 방파의 인원을 총동원해서 금오궁의 행동에 대해 감시하고 있으니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때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괴규화가 갑자기 땅이 꺼져라 장탄식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말씀드리기 매우 부끄럽기 짝이 없소. 개방이 비록 전력을 다하고 있기는 하나 많은 제자가 사살당했는 데도 별 단서를 잡지 못했소."
사해신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피차가 모두 자기의 사람들인데 겸손은 삼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괴규화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더럽기 짝이 없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내 강호에 나온 이래 이렇게 무서운 적수는 처음 보았소. 이번에 개방은 그야말로 쓴맛을 톡톡히 맛보았소."
사해신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하시고 어서 최근의 상황이나 상세하게 보고하시오."
괴규화는 눈알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쳤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러시오?"
이렇게 소리친 그는 진각민을 향해 말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있네. 첫째 문하 제자의 보고에 의하면 근래 황산에 온 금오궁 고수의 수는 오륙십 명에 달한다고 하오. 그러나 금오궁 주인이 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한 셈일세. 둘째로 칠대 문파 고수들이 녹림성자와 함께 얼마 전에 떠났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본방에 얘기하지 않았다네. 그리고 셋째로는 여러분들이 이곳 황산에 왔다는 소식을 금오궁이 이미 탐지해 갔다는 것이네. 아마 그들은 모든 주의력을 우리들에게 집중시킬 것이네. 특히 진소협 자네는 금오궁 주인에게 있어 눈 속의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게!"
진각민은 호기로운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을 받았다.
"하하하... 그들이 저에게 주의를 하던 안하던 간에 금오궁 주인과 생사를 판가름할 것이오."
이렇게 말한 그는 웃음을 거두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 선배님께서 이 미약한 후배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다면 지금 저는 곧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이어 그는 공수의 예를 취하고 나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지난 번 옥백검에 극독이 묻어 있던 것으로 보아 금오궁에도 독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오늘 이후부터 백독존자는 각별히 주의해서 금오궁이 황산대회에서 독을 사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 주시오."
백독존자는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명심해서 거행하겠습니다."
진각민은 엄숙한 낯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해천 선배님께서는 칠대 문파의 흑도상의 인물들과 관계를 가지고 계시니 암중에서 연락을 취해 힘을 모아 금오궁과의 일전에 대비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해천신수는 능파선자를 한 번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대답했다.
"노부 명심하겠소."
이번엔 황룡도장 차례였다.
"황룡사백께서 막군왕과 교정이 깊다는 것은 무림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황산대회 때 황룡사백께선 막군왕이 피살된 경위를 천하 무림인들에게 공개하는 한편 금오궁의 음모를 폭로시켜 주십시오. 그것은 싸움에 앞서 하나의 심리전이므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잠시 숨을 돌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부사형과 사해신투께선 행적이 표연하시나 오늘부터 복면인으로 변장하시어 황산 주위를 감시하면서 구경하러 온 무림인들을 보호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하다고 느끼실 때는 수시로 연락해 주십시오."
부풍과 사해신투도 공손히 대답했다.
진각민은 시선을 돌려 부소연, 막단봉 그리고 능파선자 세 여자에게 고정시키며 엄숙하게 말했다.
"의외의 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늘 이 시간부터 황산대회가 끝날 때까지 내 말을 어겨서는 안 되오."
막단봉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소연은 아무 표정도 없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능파선자는 냉랭히 코웃음을 치더니 소리쳤다.
"흥!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이때 해천신수가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자 능파선자는 움찔 놀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각민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여러 노선배님들께서 별 문제가 없으시다면 지금 곧 나가보십시오. 그리고 매일 밤 이곳에서 한 번씩 만나기로 하지요."
그의 모든 명령이 떨어지자 무림의 명사들은 분분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렇게 되자 동굴 안은 텅 비고 오직 부소연과 막단봉 그리고 진각민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진각민은 막단봉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봉매가 금오궁으로 납치되어 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오? 어떻게 해서 빠져나온 것인지 그 경위를 얘기해 보시오."
막단봉은 가볍게 탄식을 했다.
"황룡사백께서 저더러 암자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에는 깊은 뜻이 있으셨을 거예요. 내가 사부를 만나고서야 금오궁이 저를 해칠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당시 저는 별로 주의하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오궁의 사람들이 저를 뒤쫓아 왔지요. 그날 밤 사부님께서 주무실 때 갑자기 기습해 와 사부님께선 부상을 당하셨고, 저는 그들 손에 잡혔지요. 만약 중도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은 이인의 구조를 받지 않았다면 결과는 엄중했을 거예요."
"그 이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았소?"
"자상스러운 음성만 들었을 뿐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어요."
진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모든 일은 그 한 사람의 행위일 가능성이 있소."
"진상공께선 알고 계세요?"
"모르죠. 하지만 수차에 걸쳐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소."
이때 백의나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공력은 매우 고강해요. 제가 아버지와 함께 막북에 있을 때 역시 그에 의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진각민은 일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길래 많은 사람을 도우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까?'
부소연은 그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자 가볍게 밀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멍청히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어떻게 군웅들을 영도한다는 것이지요?"
진각민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얼떨결에 대답했다.
"어! 그래....."
이렇게 대답하면서 계속 그 신비인물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금오궁의 동정을 알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부소연은 진각민이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겨 있자 은근히 부화가 나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매우 세심한 막단봉은 진각민이 중대한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부소연을 잡아끌었다.
"우리 밖으로 나가서 얘기해. 그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부소연은 어렸을 적부터 매우 고독하게 자랐기 때문에 형제가 없는 환경에서 고집스러운 성격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막단봉을 알게 되고부터 무형중에 마치 혈육 같은 친밀한 감정이 생겨나 그녀의 말에 매우 잘 따랐다.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막단봉과 함께 동굴 밖으로 나갔다.
막단봉은 이때 갑자기 부소연이 능파선자와 결투할 것을 약속한 일이 생각나 원망섞인 어조로 말했다.
"아까 무엇 때문에 차낭자와 결투를 약속했지? 그런 사소한 오해로 싸울 것까지는 없잖아?"
부소연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 계집의 앙칼진 모습만 보아도 화가 나 죽겠어! 내가 그런 것에 꺾일 줄 알아? 흥! 어림도 없지!"
이렇게 말한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그녀는 상공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더니 동굴 안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막단봉은 그녀의 얘기를 듣고 나자 절로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에그! 그런 얘기를 망측하게 나에게 해 주다니, 너도 꽤나 엉뚱하구나!"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들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서로 껴안고 배꼽이 빠질 정도로 깔깔대고 웃었다.
동굴 안에 있던 진각민은 깊은 생각 끝에 고개를 들어보다가 그녀들이 보이지 않자 급히 동굴 밖으로 달려나왔다.
그는 두 여자가 한참 재미나게 얘기하고 있는 걸 보자 조용히 몸을 날려 계곡 밖으로 달려갔다.
막 계곡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섬세한 인영이 나타나 조금 전에 군웅들이 모여 있었던 동굴 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인영의 신법은 매우 경쾌해 한 번 뛰는데 사오 장은 능히 나갔다.
진각민은 내심 느끼는 바가 있어 생각했다.
'이 자만 잡으면 금오궁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어느 새 진각민과 얼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가까이 보니 상대는 한 젊은 문사였다.
진각민은 그 사람을 생포하기 위하여 암중에서 소리도 없이 몸을 날려 상대의 목덜미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타난 사람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손이 거의 목덜미에 닿을 순간에 나타난 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이 장 밖으로 피해 버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머리에 두른 두건이 진각민의 손에 잡히자 검고 윤기있는 머리카락이 늘어졌다.
순간 진각민은 안색이 급변했다. 상대는 딴 사람 아닌 바로 조씨의 폐허가 된 장원에서 부소연과 싸웠던 묘강쌍교 중의 한 명인 연옥방이었다. 그러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소리쳤다.
"당신은.....?"
연옥방은 정신을 가다듬고 진각민의 위아래를 한동안 살펴보더니 한참 만에야 냉랭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이것 보세요! 당신은 풍진삼우와 어떤 관계예요?"
"친구 사이라 할 수 있소."
"당신은 소마두라 불리우는 진소협을 알고 있나요?"
진각민은 다소 안색이 변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여자가 어째서 나를 찾는 것일까?'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알고는 있지만 그를 무엇 때문에 찾는 것이오?"
"그와 긴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어디 있는지 좀 불러 주시겠어요?"
진각민은 담담하게 웃었다.
"소생은 진각민과 둘도 없는 친구이니 나에게 얘기해도 상관이 없소. 무슨 일인지 얘기해 보시오."
"진소협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얘기할 수 없어요."
진각민은 그녀의 초조한 표정을 보자 무슨 급한 용무가 있을 것이라고 느껴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낭자가 만약 금오궁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 진각민을 찾는 것이라면 내 즉시 그를 불러내겠소. 하지만 기타 사적인 일이라면 그를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오."
연옥방은 조급함을 참지 못하면서 말했다.
"물론 금오궁의 일로 찾는 것이죠. 더구나 이 일은 화급을 다투는 일이니 어서 만나게 해 줘요."
진각민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낭자가 만나고자 하는 진각민은 바로 나요."
연옥방은 그의 말을 듣자 노기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내가 지금 농담하고 있는 줄 아세요?"
진각민은 허리춤에서 백옥적을 꺼내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을 가짜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연옥방은 그제서야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남은 급해 죽겠는데 당신은 농담을 하려고 하다니....."
진각민은 가까이 다가서면서 물었다.
"낭자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았는지 얘기해 보시오. 만약 난처한 일이 아니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소!"
"어려운 부탁이지만 검중일괴와 소면추혼 옥판관을 구해 주시고 저희 자매를 이 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진각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들은 모두가 금오궁의 사람인데 어째서 나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이오!"
연옥방은 가벼운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전번에 우리 네 사람이 명령을 받고 조씨의 폐원에서 풍진삼우와 싸울 때 도중에서 당신들이 뛰어들어 일이 파경에 이르렀지만 금오궁으로 돌아간 후 네 사람이 모두 부상 하나 당하지 않고 돌아온 것을 본 금오궁주는 우리가 풍진삼우를 일부러 도와 줬다고 의심해 즉시 검중일괴와 옥판관 두 사람을 감금시켰지요. 우리 두 자매는 그래도 사부와 깊은 관계를 참작하여 문책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무형중에 연금을 당하여 행동에 대한 자유가 없습니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단 말이오?"
"금오궁 주인은 이미 황산을 떠났고 기타 고수들은 각기 일이 있어 그 틈을 타 이렇게 구원을 청하러 온 것이에요."
진각민의 두 눈에서 일순 괴이한 광채가 폭사되었다.
"금오궁주가 이미 떠났단 말이오? 그럼 그는 어디로 갔단 말이오?"
"그런 엄밀한 비밀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진소협은 저희들과 관계가 없는 사람의 말을 쉽게 믿지는 않을 거예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사문에 대해서는 잠시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저의 사부는 금오궁주와 깊은 관계가 있어요. 저의 사부께서는 그녀와 깊은 관계가 있지만 성격은 정반대예요. 이런 고초를 이해해 주기 바래요. 그리고 검중일괴와 소면추혼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가사와의 관계 때문에 금오궁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저의 자매가 어찌 보고만 있겠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소협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금오궁과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그리고 당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몇몇 선배 인물들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오궁 역시 당신들을 가장 주의하고 있어요. 저의 자매는 천남에 있을 때 당신의 사람됨을 듣고 익히 알고 있었지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가볍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이내 정색을 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저희 자매는 본시 당신께 많은 일을 얘기해 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저희들이 그저 무사히 황산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금오궁 주인이나 천남도상의 무림 친구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어요. 솔직히 말씀드려 이 일은 당신에게 이익이 있을 뿐 손해될 것은 없어요. 믿건 안 믿건 그건 당신 생각에 달렸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진각민은 우선 그녀의 말을 승낙하는 것이 상책이라 느꼈다.
이로 인해 금오궁의 소굴을 탐지해 내는 한편 이 관계를 이용해 천남 무림의 몇몇 친구와 사귈 수도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즉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보아하니 시국이 매우 급한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이 어떻소?"
연옥방은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
"진소협께서 이렇게 도의에 밝으시니 소매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금오궁은 지금 모든 힘을 소협 그리고 소협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시키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 돼요. 제가 소협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 뿐이에요."
진각민은 묘강쌍교 중의 하나인 소묘녀 연옥방과 한참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일진의 예리한 바람소리가 이는 것 같더니 한 줄기의 검은 인영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유성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누구일까? 다름아닌 홍의라마 다론바였다.
연옥방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안색이 급변했다.
그러나 다론바는 진각민이 소규화로 변장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진각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진의 괴소를 터뜨리더니 갑자기 연옥방의 앞으로 곧장 걸어나갔다.
그러자 연옥방은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다론바는 음탕하게 웃어젖혔다.
"후후후... 지금 네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오직 두 갈래 길뿐이다. 그 하나는 나를 순종하는 것이지....."
다론바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내 오늘밤의 일을 모두 덮어줄 뿐 아니라 너에게도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을 보장하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친히 말하지 않아도 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라마는 오래 전부터 묘강쌍교에게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두 자매의 사문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 것은 그들이 금오궁 주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때, 그녀가 적과 내통하는 장면을 직접 잡아내자 즉시 본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론바는 시꺼멓게 죽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연옥방은 자기의 이런 행위가 그만 금오궁 사람들에게 발견을 당하자 정신이 나갈 듯 크게 놀랐다.
그런데 다시 다론바가 꼬투리를 잡고 한 발 한 발 위협하듯 다가오자 그녀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 앙칼지게 고함을 터뜨렸다.
"이놈, 한 걸음만 더 다가온다면 본 낭자가 널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어서 썩 물러나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다론바는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마치 그녀에게 덮치려는 듯 양팔을 벌리고 천천히 앞으로 접근을 해왔다.
"흐흐흐흐....."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귀에 거슬리는 괴소가 모골을 송연하게 하리만큼 터져나왔다
그때였다.
창!
하고 맑고 예리한 파공음이 터져나오더니 연옥방은 요도를 휙! 뽑아들고 싸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 며칠 동안 나는 너의 그 음흉한 계략에 진절머리가 났다. 오늘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니 어서 머뭇거리지 말고 덤벼라!"
다론바는 음침한 괴소를 연신 입가에 흘리며 능글맞게 말을 꺼냈다.
"너무 그렇게 서두를 건 없다. 너는 금오궁이 반역자에게 대해 어떠한 처벌을 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