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바보가 있었다. 그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달아났지만 벗어나지 못한 채 끝내 힘이 다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늘 속으로만 들어갔어도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을…." 도가(道家)의 대표주자 장자(莊子) 제물편에 나오는 우화 '그림자 도망치기' 내용이다. 그림자는 욕망을 의미하며 세속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이를 떨쳐버릴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옛 사람들은 세속이 미치지 않는 그곳을 그림자도 쉬는, '식영(息影) 세계'로 불렀다. 신선을 꿈꾸는 산림(山林) 선비의 이상향이다. 현실 세계에서 가장 부합하는 곳을 찾는다면 어디쯤 될까. 옛 선비들은 죽향(竹鄕)인 담양을 꼽은 듯하다. 담양에는 유독 명유(名儒)들의 정자(亭子)가 많다. 현실 정치에 낙담한 조선 사림들은 담양에 은거하면서 세상을 조롱하고 풍류를 즐겼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적막함, 오밀조밀하면서도 온갖 화려함을 뽐내는 산과 계곡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
담양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다. 삶의 속도를 늦추자는 '느림의 미학'이 뜨고 있는 요즘 담양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인증도 받았다. 담양 관광의 출발은 단연 정자 기행이다. 송순이 세운 면앙정에는 그의 과거급제 60년 축하연에서 송강 정철, 고경명, 임제, 이후백 등 제자들이 직접 가마를 매 스승을 기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송강정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탄생지다. 장자 우화를 본떠 이름 붙인 식영정에서는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식영정 사선(四仙)이 별뫼(성산)와 자미탄(창계천) 등 경치 좋은 주위 20곳을 택해 20수씩 식영정이십영(詠) 80수를 지었다. 전통 원림(園林) 중 으뜸으로 치는 소쇄원은 계류(溪流)를 사이에 두고 제월당, 광풍각 등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의 어울림이 절묘하며, 환벽당(環壁堂)은 그 이름처럼 푸름을 둘렀다. 명옥헌에는 '선비나무'라는 배롱나무 고목들이 숲처럼 우거졌다. 정자들은 자동차로 몇 분 거리에 몰려 있다. 소쇄원~환벽당~한국가사문학관~취가정~식영정~취가정~서하당~부용당 코스는 걸어서도 둘러볼 수 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어찌 빼놓을까. 국도 24호선을 따라 나 있는 가로수 길은 8.5㎞. 높이 20m에 달하는 울창한 나무들이 양쪽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다. 길을 걸으면 숲속 동굴을 지나가는 착각이 든다. '스님이 누워 있는' 형상인 추월산은 가을에 꼭 가봐야 한단다. 툭툭 붓 터치를 한 듯 단풍이 기암절벽에 묻어 있다. 발 아래로 담양호가 펼쳐진다. 이를 사이에 두고 추월산과 마주보고 있는 금성산성. 내남문 망루와 노적봉으로 이어진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외남문 쪽 튀어나온 성곽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경외감마저 든다. 사람 인(人)자 3개를 겹쳐 놓은 모양인 삼인산은 이성계가 제를 올리고 왕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담양 하면 대나무다. 담양읍 향교리 약 16만㎡(5만평)에 대숲인 죽녹원이 조성돼 있다. 죽림욕을 할 수 있으며 숲 속에 산책할 수 있는 길을 여럿 만들어 놓았다. 비 오는 날이면 음이온이 일반 숲보다 10배나 더 많이 생긴단다. 좀 비싸긴 하지만 대를 종이처럼 가공해 만든 죽제품은 멋스러움이 그만이다. 댓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도 나온다. 녹차와 흡사하지만 뒷맛에 대나무향이 은은하다. 대통밥도 담양이 원조다. 창평면 삼지천 마을은 전통 한옥이 잘 보존돼 있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곳 마을에서는 쌀엿을 만드는 집들이 많다. 달지 않고 치아에도 달라붙지 않는다. 창평시장에는 돼지내장ㆍ머리고기 국밥집이 여럿 있다. 담양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전라남도는 '슬로시티'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창평걷기, '시와 그늘이 있는 소쇄원'과 '400년을 함께한 문화유산 관방제림' 둘러보기 등 탐방행사와 한과ㆍ쌀엿 만들기, 창평 고씨 종갓집 전통장 체험 등 다양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전남도청 관광정책과 (061)286-5222 담양군청은 △초록빛 세상 대나무 투어 △가사문학과 정자문화 투어 △웰빙체험 투어 등 3개 버스투어를 시행하고 있다. 담양군청 문화관광과 (061)380-3154 ■ 담양으로 가는 길 ◆ 대중교통 ▲고속버스=서울 출발~담양 도착(강남고속버스 터미널 오전 10시, 오후 4시 하루 2회 운행) ▲열차(KTX)=용산역 출발~광주 송정리역 도착~담양행 직행버스 10분 간격 운행, 소쇄원행(225번 187번) 1시간 간격 운행 ◆ 자가용=서울 출발~서해안 고속도로~고창JC에서 광주 방면으로 진입~담양JC에서 담양 방면으로 진행~담양IC 진출~약 5㎞ 진행하면 담양읍내 [담양 = 배한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