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세계평화 안보포럼
모두가 원하는 행복
금화불교 현성 김수호
1. 이번 주제는 종교적 思考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또는 수행하면서 가졌던 생각들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무리는 한결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행복이라는 단어로 대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복을 추구하여 나감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그 착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슬프고 슬프다 할 것입니다. 왜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지속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가지고 원인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을 가진 무리는 특별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이라는 삶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으면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삶이 지속되는지 또는 삶이 한 생으로 끝나는지 등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지금 벌어진 삶이 전부라는 착오가 그런 반복된 오류를 행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서로의 문제를 함께 공유하는 하나임을 바르게 알지 못함으로 그 원인을 가진다고 결론을 지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부처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으로 온법계가 하나이며 모든 생명무리는 상호 이어진 역할을 통해 삶을 엮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이 세상 가장 귀하고 존귀한 것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때 나에게 일어난 생각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과 나를 통하여 가장 사랑할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나는 또 다시 지금 대하고 있는 상대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지어 공책에 낙서를 해놓았던 일들이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그 이후 어느 날 책장위에 있던 톨스토이 인생론집을 보다가 그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어린시절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충격이었습니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결론을 지어놓았고 그 이후 책을 보지 않는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늘 사색하고 관찰하는 습성이 강하게 생겨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명들은 생각을 공유하며 삶의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결론짓고 스스로의 삶 속에 모두가 함께 한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길들여 가며 지내온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태양 속에도 우리는 삶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그 환경에 맞는 생명의 몸을 형성하면 가능하다는 이론을 스스로 짓기도 하였습니다. 저 태양이 뜨거워도 그것도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 생명 활동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가진다면 나의 논리는 충분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또한 우리 몸 역시 공동체의 집단 구조임을 인식한다면 수많은 생명무리가 함께 한 공덕으로 삶이라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에 집착하다보면 근본원인을 외면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택하였는지의 목적을 이해한다면 원인을 찾아 원인에 따라 치유함이 가장 빠른 길이라 할 것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시간의 문제를 가지고 나타나는 빠르고 늦음의 현상 공간성의 문제라 할 것입니다. 전쟁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빠르게 사용하는 행위가 가져다준 아픔이라는 결과물이라 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늘 함께 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같은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공동체 상호존재의 관계형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은 늘 투쟁적 행위로 엮어져 가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경쟁적 행위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과를 따라 이루어지는 업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이룩되어지는 현상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 지닌 생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은 언제나 행복을 발원하고 목적으로 삼아 이룩하여 가는 길을 밝힌 부처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오래전 쓴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화합이 주는 공덕과 적을 막는 길
현성 김수호
우리는 항상 좋은 날을 맞이합니다. 지금 이 공간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성스러운 장소이며 너무도 감사해야 할 곳입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가 만난 것은 역사적인 엄청난 사건이며 기억할 만한 만남인 것입니다. 이곳은 부처님을 이야기하고 부처임을 확신하는 다짐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랜 생을 살아오면서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연속하고 있는지 기억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나에 대한 어떠한 정보에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영원한 무지의 정보만으로 자신을 믿지 못하고 항상 다른 곳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를 보호하는 것과 이웃과 온 우주를 보호하는 것은 자신을 알고 내가 또한 다른 것들이 나와 어떤 관계이며 무슨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내 몸이며 내 마음이며 내 생각이며 기억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화합의 의미와 화합이 가진 모습을 바로 아는 곳에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적이 되고 공격의 대상이 되어 있거나 내가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공격한다면 결코 화합을 인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적이라는 존재를 막아가는 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장아함유행경 나오는 내용중 부처님이 라자가하 영축산에서 천이백오십인의 비구들과 더불어 계실 적에 마가다왕 아자타삿투는 밧지국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밧지국은 나라는 적으나 많은 자원과 부지런함으로 경제력를 갖추어 항상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였습니다. 이에 마가다왕은 욕심이 생겨 밧지국을 정복하여 많은 자원과 풍요로운 마가다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에 신하들을 모아 놓고 그러한 사실을 의논하게 하였습니다. 마가다국이 많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영토가 크기는 하나 밧지국의 풍요로움에는 견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신하들과 의논하여 부처님에게 밧지국을 정복할 수 있는지 묻고자 지혜로운 신하 우사를 부처님께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우사는 오백대의 수레와 기마 이천, 병사 이천을 거느리고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우사가 부처님께 마가다왕의 인사를 전하고 밧지국을 정복하고자 하는 마가다왕의 이야기를 하며 밧지국을 정복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밧지국을 다녀온 아난다를 불러 아난다가 본 밧지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물어가며 일곱 가지를 들어 밧지국을 정복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1. 밧지국 사람은 자주 모임을 가지고 바른 일을 서로 의논하여 몸소 실천한다.
2. 어른과 젊은이들이 서로 화목하며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윗사람을 아랫사람이 서로 공경한다.
3. 사람들은 법을 받들어 삼가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
4.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순종한다.
5. 조상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
6.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여 웃고 농담할 때도 그 말이 음란하지 않다.
7. 수행자를 공경하고 계행이 청정한 이를 존경하며 보호하고 공양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그 나라는 평온하며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며 앞을 더욱 흥할 것이다 하시며 우사에게 이야기함으로써 풍요로움을 얻는 지혜를 일깨워서 마가다왕의 지혜를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화합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부처님이 우사에게 전해준 밧지국의 모습을 통하여 마가다국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일깨우고 그 결과가 풍요로움으로 나타난 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싸움이 결코 풍요로움을 주지 못함을 밝혀 화합의 묘를 일깨운 커다란 지혜의 그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화합하게 하여야 하며 그 화합의 힘으로 이웃 그리고 온 우주법계를 화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화합하면 온 우주법계가 화합하고 내가 화합하지 못하면 우주법계가 시끄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정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몸은 작게는 먼지보다 작고 크게는 우주보다 큰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보살이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하나 움직일 때마다 세상이 흔들리고 내 마음이 아플 때마다 세상이 아픈 것입니다. 우리는 화합 어디서 오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화합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할 때까지 자신을 길들여 가야 합니다. 항상 고요롭고 격하지 않는 삶을 엮어 나가고 실천해야 합니다. 작게는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을 없애야 하며 크게는 분별하여 나누는 차별행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분별심이 사라져야 진정한 부처님의 지혜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난 이유이며 이 자리에 있는 까닭인 것입니다. 서로에게 감사하여 우리가 서로 함께 하는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손과 발이 서로 달라도 함께 움직이고 함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2010년 7월 11일 성은 현성
[ 천안호, PCC-772 천안함 ]
현성 김수호
우리는 우주인이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국가의 일원으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비록 큰 아픔을 간직한 천안함 침몰 사건을 겪고 있지만 차분하게 그리고 실리있게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저는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였고 예비군 군종인 향승을 잠시 하였으며 지금은 군부대 법회를 주관하는 민간 성직자와 군인권 상담위원, 육군교도소 교정위원으로 불교단체 대표로 군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애국자니 뭐니 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연 따라 하다 보니 지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군 당국 모두 신중하고 진실해야 하며 바쁘지 않게 체계적으로 대응이 필요하며 정치적 원맨쇼 같은 행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 입니다. 이제 냉정하게 먼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있는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처음 천안함 침몰 소식을 접하였을 때 아, 큰 울타리가 무너졌구나! 왜 부족함을 눈치채지 못 하였을까? 우리는 결국 승리로부터 가까이 있지 않았구나! 하는 탄식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그후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내보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우리 국민은 국가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경제적인 측면의 손실과 그 보호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을 국민에게 보여 사건의 진실성을 이해시키고 앞으로 국가 보호의 완전한 방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자주 대하는 곳이 군부대라서 그 특성 때문인지 무엇이든 큰 울타리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나를 보호하는 먼곳의 울타리, 그 울타리를 튼튼하게 할 의무와 책임을 우리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속 지구라는 한 구역에서 세계를 울타리 삼으려면 적이 없어야 할 것이며 적이 있으면 내 편인 동료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 동료는 진실과 성실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내하며 꾸준한 정진으로 나아가면 어느 누구도 적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화합하고 존중하며 자애로움이 있는 곳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화합하고 있는지, 서로 존중하고 자애로움으로 살아가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가 서로 신뢰를 잃어버리고 대립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지 살펴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민족은 결집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라는 경계를 가지고 나누어져 있지만 우리는 나누어져서는 안되는 한 핏줄입니다. 미래의 역사는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아프지 않게 때로는 약이 되는 지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며 화합하는 그런 기막힌 처방 말입니다.
적은 스스로 적이라고 여기게 되면 적이 수없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동반자라고 신뢰한다면 결국 같이 호흡하는 동료가 될 것입니다. 깊은 인내로 깊은 정진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며 합니다. 누군가의 화합된 지혜가 절실함을 느낍니다. 그 지혜는 모든 이들의 마음 가운데 있으니 하나둘 내놓아 쌓다 보면 커단란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부처님 제자들은 다시 한번 큰 정진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슬픈 천암함 침몰을 거름으로 하여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는 지혜를 통하여 전몰장병의 왕생극락을 기원합시다.
23년전 인천 주안에 있는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정진할 적 잠깐 쉬는 동안에 잔디밭을 걷다가 계단에서 검정개미와 붉은개미 무리가 서로 죽이고 싸우는 전쟁터를 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멈추게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설탕을 가지고 나가서 싸움터에 설탕을 뿌리고 그곳에 설탕이 녹을 정도의 아주 적은 물을 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개미들이 모두 설탕물을 먹느라고 싸우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저마다 옆에 있는 검정개미 붉은개미 모두 한 식구처럼 서로 설탕물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개미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 그곳에서는 개미 전쟁이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 4월 15일
성은 현성 합장
[결론]
4. 이상의 글을 바탕으로 살펴 우리는 소통하는 하나임을 인식하면 평등을 성취하는 것이며 함께 나아감에 착함이 있으면 평화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전쟁과 평화의 논제를 결론짓고자 합입니다.
2016년 7월 16일 죵교 세계평화 안보포럼
소질문
1. 귀 경서에서는 경서의 내용이 법(法)이라고 기록되어있는가?
답 : 불교가 말하는 법이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통하여 본래 청정하여 장애가 없는 자신으로 바르게 나아가는 것을 밝혀 놓은 것이 불교의 교리요 교리를 통하여 스스로 이룩하라고 일깨우는 것을 가르침이다 이를 법이라 한다.
2.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이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답 : 법은 진리를 밝혀 바르게 가고자 함을 이끄는 것으로 법을 알지 못하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잘못된 행위로 생사를 반복하는 육도 윤회를 원인 가진다고 보고 스스로 지은 인과를 따라 천당 지옥을 오고가는 일은 반복함을 밝혀 바른 법을 따라 모든 생명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설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법이라 할 것이다. 법이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과를 따라 나타남을 통하여 바르게 가는 것을 이끄는 가르침이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법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함이 이번 질문의 답이라 할 것입니다.
3. 죄를 짓게 하는 욕심 때문에 법을 지키지 않게 되고, 이 불법(不法)의 마음이 전쟁을 일으켜 평화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기록이 있는가?
답 : 부처님의 가르침 사성제 고집멸도에서 고통의 근원은 모으려는 집착심이라 했습니다. 고통이 생겨나는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라 하여 삼독심인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으로 온법계가 아름다운 극락정토, 그와같음을 밝혀놓았다. 전쟁은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여 자신이 최고라고 하는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주제 발표에 올린 글들을 참고하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세가지 질문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 한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경서에 대한 의지력은 삼가야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경서는 시간이라는 장애로부터 간혹 잘못된 기록이 추가 되거나 또는 고의적 목적으로 악용되어져 해석 또는 조작되어짐으로 늘 스스로가 수행하여 바르게 살필 수 있는 성현의 지위를 이룩하고 성취하여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종교적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합니다. 그 까닭은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이 저마다 귀하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평등 평화의 완성인 자신의 본 성품으로 돌아가는 부처를 이루는 것
2. 모든 생명의 삶 공동체 속에서 평등 평화를 실현하는 전륜성왕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가지 가운데 무력이 아닌 덕으로 온세상을 통일하는 전륜성왕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할까합니다. 제 자신이 그동안 자신 있게 말해 온 것이 지구상 대한민국을 빼고는 어느 나라도 홍익인간 이념을 가지고 정신의 뿌리로 이어저온 나라는 없다는 사실만으로 전륜성왕은 우리 단군의 자손 대한민국이 이룩할 것이라고 수없이 장담하여왔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의 이념 정신을 오랜 역사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단군의 역사성 회복에 노력하는 분들이 세계 각처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상으로 끝맺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