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万波息笛)
집필자 김화경(金和經)
정의
신문왕이 바다의 용에게 얻은 신기한 대나무 피리인 만파식적에 관한 전설.
역사
인간에게 신기한 대보(大寶)나 신인을 증여한 증여담이다.
이 유형의 설화에는 <연오랑세오녀>, <처용설화>, <천사옥대>, <보양이목>, <진표전간>, <거타지설화>,
<낙산사 연기설화>, <대정설화> 등이 있다.
줄거리
해관 박숙청이 신문왕께 한 작은 산이 감은사를 향해 떠 온다고 보고하였다.
일관이 점을 쳐서 이는 용신 문무왕과 천신 김유신이 문무왕에게 대보를 줄 징조라고 아뢰었다.
왕이 그달 이렛날 이견대로 거동하고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와서 산 모양은 거북처럼 생겼고
그 위에 대 막대가 한 개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친다고 하였다.
왕이 감은사에 묵던 이튿날 대가 합쳐서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이레 동안 캄캄하다가
16일이 되어서야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왕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자 용이 검은 옥대를 가져와 바치고
“이 대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으시면 천하가 화평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금과 옥으로 시주하고 칙사가 대를 꺾어 바다에서 나왔다. 왕의 행차가 돌아와
그 대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의 천존고방에 간직하였다.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끝나고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잦아졌으므로
이름을 ‘거센 물결을 자게 하는 대[萬波息笛]’라 하여 국보로 일컬었다.
변이
이야기의 구성 요소 중 부래섬, 대, 피리, 피리의 명칭, 피리의 기능은 항체로 전승되고 있다.
반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대체로 생략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오늘날 <만파식적설화>가 증여담의 보편 구조로 기억․전승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
발생학적으로는 국가적 제의에 근거한 설화 혹은 용신굿의 구술상관물로 볼 수 있다.
신앙적으로는 토착룡․호법룡․호국룡이 결합한 한국 고유의 호국불교신앙과 관계가 있다.
정치적으로는 신문왕 당대의 국내외 문제 해결과 김씨 왕족의 정통성 확립과 관련된다.
사상적으로는 예악을 강조하는 유교 정치이념의 표방을 나타내며,
음악적으로는 신라 나름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한다.
특징
<유리전설>이나 <지하대적퇴치설화>는 주인공의 의지로 신성한 물건이나 사람을 찾아 귀환한다는 점에서 탐색담이다.
<만파식적설화>는 수령자의 지위와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수령자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증여담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파식적설화>는 다른 탐색담과 구별된다.
의의
<만파식적설화>는 신문왕이 신성 징표를 획득하는 신비체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신비체험은 통일 직후 신라의 종교, 사상, 정치, 음악 등을 함축하는 문화 기호이다.
이는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으로 전개되는 신라 중대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만파식적설화의 서사구조와 역사적 의미(박진태, 국어교육125, 한국어교육학회, 2008),
만파식적설화의 역사적 의미(김남형, 한국학논집38,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9),
만파식적설화의 연구(장장식, 국제어문6․7, 국제어문학회, 1986),
만파식적설화의 형성과 의의(김상현, 한국사연구34, 한국사연구회, 1981),
방언에서 본 만파식적과 문무왕릉(서정범, 한국민속학8, 한국민속학회, 1975).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