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설을 활용한 고구려의 흔적
몽촌토성 발굴조사는 1989년을 끝으로 20여 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다가 2013년 11월부터 재개되어 현재 북문지 일원에 관한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선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문화층 발굴조사는 마무리되었고, 2016년부터는 삼국시대(백제·고구려) 문화층을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몽촌토성의 성격과 변천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궁(宮)’자로 판단되는 글자를 찍은 백제토기 조각, ‘사람 얼굴’을 새긴 백제토기 뚜껑, 중국 육조(六朝) 도자기, 왜(倭)의 스에키(須惠器), 가야토기 등의 유물은 몽촌토성이 중국과 일본, 가야 지역 간의 교류를 담당하는 지배층의 거주 공간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고대 도성(都城) 유적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례가 없는 폭 10m의 ‘회(回)’자형 회전교차로를 중심으로 남북도로와 동서도로, 성내 순환도로가 뻗어나가는 도로망을 갖춘 공간 구획은 백제가 처음부터 몽촌토성을 계획적으로 조성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백제 문화층 위의 고구려 문화층에서는 기존의 백제 도로를 수축(修築)1)해 사용한 고구려 도로, 백제 생활면 위에 흙을 다져 올려 대지(垈地)를 조성하고 시설한 고구려 건물지와 수혈유구(竪穴遺構)2), ‘회’자형 회전교차로의 안쪽에 조성된 집수지(集水池)3) 등이 확인되었다. 이들 시설은 고구려가 몽촌토성을 점유하고 상당 기간 거점성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고고학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국내 최초로 출토된 고구려 목간과 목제 쟁기
2020년 이후 몽촌토성 발굴조사는 집수지와 고구려 도로 하층(下層)의 백제 도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중 하나는 사방 14m 규모의 정사각형으로 만든 집수지로 그간 국내에서 조사된 목곽집수지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한다. 집수지 내부에서는 목간(木簡), 목제 쟁기 등 중요 유물과 함께 당시의 생활문화상과 고환경(古環境)을 복원할 수 있는 동물 뼈, 조개껍데기, 씨앗류, 미화석(微化石)4) 등 다양한 유기질 자료가 출토되었다. 집수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 목간과 목제 쟁기는 국내에서 출토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고구려시대 것으로 고대 목간 및 농업기술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쟁기는 술과 날 부분, 손잡이로 이루어진 쟁기의 기본 구조에 비녀5)와 분살6)을 갖추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쟁기의 구조적 특징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형태로 함경도 지역의 쟁기인 ‘가대기’와 같은 구조이다. 이런 이유로 몽촌토성 출토 목제 쟁기는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한국 고대 쟁기의 구조와 변천 연구에 중요한 실물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
향후 몽촌토성 발굴조사는 성내의 주요 시설물이 분포할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과 성벽, 해자(垓子) 등에 관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몽촌토성의 구조와 성격, 나아가 한성백제 왕도의 실체가 점차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1) 수축(修築): 집, 제방, 성 등을 고쳐 짓거나 고쳐 쌓는 것
2) 수혈유구(竪穴遺構): 구덩이처럼 땅을 움푹하게 파서 만든 유구
3) 집수지(集水池): 물을 모아 두는 성안의 중요 시설물
4) 미화석(微化石): 꽃가루, 식물규소체, 기생충 알 등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체의 흔적
5) 비녀: 술에 가로질러 끼워진 쟁기 부품의 하나로 양끝에 분살을 결구해 술에 분살을 고정하는 기능을 한다.
6) 분살: 쟁기날 양옆에 붙은 부품 중 하나. 보습으로 간 흙을 밀어서 이랑을 높여 주고 이랑 벽면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동아시아 쟁기 조사』, 89쪽).
글, 사진. 박중균(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장)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2-11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