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023.12.16.)
1. 조금 일찍 토요일, 양동에 내려왔다. 지난 주 오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주말에 온도가 급강하한다는 일기예보에 걱정이 되어서이다. 현재 단기거주하고 있는 양평의 양동은 파주의 교하보다도 훨씬 춥다. 보통 2-3도는 더 내려가는 것같다.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 기온은 올 겨울 처음이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같아 서두른 것이다. 어쨌든 1년 동안은 이 집의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밤 11시부터 한기가 느껴져 날씨앱을 보니 영하 10도가 넘었고 새벽에는 15도를 예보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 영상 20도 가까웠던 따뜻한 날씨가 급격하게 변동하고 있는 것이다.
2. 하지만 이런 급변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날씨의 안정성이 사라진 것은 현재의 일상이 되었다. 기온의 변화뿐 아니라, 미세먼지의 강도 높은 침공, 수온 상승으로 인한 물고기 자원의 감소 등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지구 곳곳에서 특별하지만 결코 특별하지 않은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위기는 자연현상뿐 아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국가의 소멸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고, 전 세계에서 벌어진 전쟁은 계속되는 갈등과 위기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창조한, 인류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의 고조는 언젠가 인간의 멸망을 우리 손으로 자행하게 하는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인간들은 갈등을 제거하기보다는 파괴와 증오의 세계로 들어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공격성을 수직상승시키고 있다. 문제해결보다는 누군가를 공격함으로써 단기적 만족감을 얻으려는 지극히 위험한 어리석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3. 최근 개봉한 백남준의 예술적 일대기를 기록한 <백남준 :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한 평론가는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백남준은 기술이 가져온 진보를 ‘정보의 고속도로’라는 청사진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한 척의 배가 무한한 바다의 영역을 헤쳐나가야 하는 위험한 항해‘로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했던 과학과 기술의 세계가 어느 순간 우리를 억압하고 말살하는 위험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4. 이렇듯 자연도, 사회도, 과학도, 우리에게 어떤 완전한 안정과 희망을 제공해줄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80년대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발표했던 크리슈나무리티는 안정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불안과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안락한 삶‘과 ’행복‘은 누구나 꿈꾸는 삶의 형태이지만 이러한 것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불안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삶을 위하여 재태크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며 물질적 자산을 늘리려는 시도는 결국 평생 이러한 경제적 사슬에 메이기 만들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을 향한 집착은 이웃의 사소한 불편에 대한 관용마저 빼앗아 불필요한 분쟁 속에서 평화를 잃게 하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확보하여 자신의 삶을 보존하려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물질적 집착과 정신적 불안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5. 무엇이든 안정되고 예측하기 어려워진 세계 속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완전하게 준비하려는 태도보다는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변덕스럽다면 그것에 맞추고, 수입이 줄어든다면 그것에 맞추고, 인간관계가 변한다면 그것에 맞추고, 그렇게 시간과 공간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상실과 달라짐을 위협으로 느끼지 말고 다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기 위한 유연함과 집착으로부터의 자유가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혼돈과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피하려 할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 욕망의 크기를 줄이고 위험을 응시하면서 현재를 직면하는 것, 그것이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직면하는 것, 현재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우리에게 ’상실‘과 ’퇴락‘을 가져 오지만, 또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창조‘와 ’적응‘의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때론 따뜻한 파주의 아파트에 머무는 대신 양동의 차가운 집을 찾아오듯이 말이다.
첫댓글 - 춥다. 추위에 대한 저항보다는 조용한 응시가 필요한 때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 기댈 것은 오직 하나, 따뜻한 봄이 다가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