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6일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백두산 초입,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했다.
'백하'는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강을 의미하는 말로
이도백하는 장백폭포에서 시작되는 강이라는 뜻인데
어쨌든 백두산 초입은 적송과 자작나무 군락,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등이
울창한 넓은 들판으로 시작이 되어
전체적인 지형은
화산분출이 약 6억년 전의 쥬라기에서 신생대 제4기까지 지속되었다는데
그 시기에 활발히 진행되었던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질 용암이 대량 유출되어
약 8,000㎢의 넓은 백두용암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경주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심양, 연길을 거쳐 쉬지않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도라지 같은 것을 산삼이라고 고함을 질러대고
돈 달라고 잡고 늘어지는 거지들을 뿌리치고
쉴새없이 귓가에 들리는 두풍선수의 입담을 매단 채 우리는 참 멀리도 왔다.
이제 우리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오른다.
(백두산 초입의 관문)
백두산은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吉林省)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중종조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1개의 큰 산줄기(백두대간: 백두산-지리산)와,
그리고 거기서 갈라져 나온 14개의 정맥과,
또 그 정맥들에서 갈려져 나온 수많은 지맥들로 이루어졌다고 했듯이
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많은 산들의 모태가 되는 산, 즉 백두대간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 바로
이 백두산인 것이다.
(천문봉에서 김대헌 선생님과 함께)
간 밤 우리는 연길에서 국경의 밤을 보았던가?
그러나 그 변경지대의 도시는 어느 택시 기사의 말에서 느끼듯이
이국적인 분위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 가서 외국에서 왔다 하지 마세요!"
백두산의 천지는 "3대가 적선을 해야 천지를 본다"라는 말이 있는데
기상 상태의 변화무상함으로 천지는 그 만큼 보기 힘든다는 말이렸다.
산 좋아하는 나야 바로 백두산을 등정하고 싶지만
시간 일정과 40여명의 단체, 현지 사정 등을 감안하여
천지까지는 지프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백두산 북면 장백폭포 코스로 하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프차로 천문봉(2670m)을 오르면서 생각해보니
멀리 뒤편 북족으로는 만주 대륙이 광활하게 펼쳐져있고
앞편 남쪽으로는 천문봉 넘어 천지가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들뜨기 시작했다.
백두산을 오르는 고원은 온통 녹색에 점점이 원색을 풀어 놓은 듯 하고
멀리 곳곳에 믿기지 않는 만년설이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었다.
3대의 적선은 커녕, 오늘의 날씨는 말 그대로 쾌청이다.
천지로 올라가는 도로는 지리산 성삼재보다도 완만한 경사 길로
천지까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었다.
중국인들이 '만만디'라고? 천만의 말씀, 그들도 자본주의의 돈 맛을 알았는지
1회라도 더 오르내리락 거려야 수입이 늘어나기에 목숨을 걸고 달린다.
언젠가 덕유산 덕유평전에서 만났던 원추리의 천지가 생각이 난 것은
해발이 이미 2,000m가 넘어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전개되는 푸른 초원은
화산재로 뒤덮여 회색빛인 능선 돌 틈 사이사이로 시작하여
지천으로 피어있는 백두산의 야생화들,
연미색이 미칠듯이 아름다운 두메양귀비,
하얀색, 연분홍색 들국화는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바위구절초가 아니던가?
(천지로 내려서며.........)
우리의 지프차는 천지 바로 밑에까지 가서 정차하고
가파른 왕모래 언덕을 50m정도 올라갔을까?
곧 천문봉에 서고 그 아래로 광활한 천지가 나타났다.
그 옛날 스페인의 장군 코르테스가 마야를 정벌하고
높은 성산에 올라서자마자 그 너머로 보았던 태평양에 크게 놀랐듯이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에 선 것이다.
천지를 둘러싼 16개 봉우리 중 6개는 중국 쪽에, 10개는 북한 쪽에 있다는데
우리가 올라선 봉우리는 천문봉(2670m) 쪽이었다.
백두산의 최고봉이자 백두대간의 출발점인 장군봉(2744m)이 남동쪽으로 바라다 보이고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너무나 멀어
아득히 희미하게 보이기만 한다.
이른 오후의 강한 태양은 작열하고 천지는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는 바다였다.
(천지에 선 나, 멀리 장군봉이 보인다)
천지 수면이 해발 약 2,100미터이고 천문봉이 약 2,670미터이니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바로 발밑에 있는 것이다.
칼데라호인 천지(天池)는 그 면적이 면적 9,165㎢, 최대수심 384m로
천지의 물은 북으로만 흘러나오는 달문을 통해 높이 67m의 장백폭포(長白瀑布)가 되어
이도백하[二道白河]로 떨어져 송화강(松花江:흑룡강의 최대 지류)으로 흐르고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두만강이 시작되는 상류가 되는
우리 민족의 물줄기의 원천이 된다.
그럼 남쪽에는 뭐가 있냐고?
백두산 장군봉에서 남으로는 한반도를 관통하는 거대한 산줄기,
백두대간이 남한의 지리산까지 뻗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백두산에 오를 것을 생각이나 했던가?
흥분했던 숨을 잠시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니
바다같은 천지와 천지를 둘러싼 수많은 봉우리들,
그리고 녹색의 들판과 수많은 야생화들,
식물학박사 수준인 이종채선생님의 조언에 힘 입어 줏어 들은
백리향, 장군풀, 산할미꽃, 두메양귀비, 각씨투구꽃, 바위구절초, 만병초, 황기, 부채붓꽃, 동의나물, 메바꽃, 물매화 등과
아직 녹지 않은 눈과 화산석이 조화를 이룬 백두산은
그야말로 선인의 세계였다.
(천지의 유일한 물길의 통로, 달문)
죤 말로리가 "Because it is there!" 라고 했듯이
우리는 백두산에 간다기에 왔고, 오다보니 백두산정에 오른 것이다.
천지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 중 걸어서 하산하는 팀은 우리 밖에 없었는데
내려오면서 지천으로 깔린 두메양귀비와 패랭이꽃 비슷한 꽃 등 야생화들과
천지에서 유일하게 물이 빠져나오는 천지 북편의 협곡지대로 우리는 내려간다.
한라산 탐라계곡의 개미등능선의 두배쯤 되어보이는 절벽사면이 몇개씩이나 겹쳐있고
가파른 되비알의 화산석이 널린 너덜겅지대를 한동안 내려오는데
어렸을 때부터 존경했던 진경태선생님을 옆에서 모시게 되어
좋은 기분이 배가되었는데, 우리는 곧 천지에 발을 담근다.
천지에서 북편으로 유일하게 물이 빠져 흘러나가는 달문의 물은
얼음처럼 차고 물살이 세어 건너다가 떠내려갈 것 같았는데 나 먼저 건넜다.
그리고 天池.............
"이 좋은 날씨에 여기 천지에 왔으니 여한이 없다. 자! 소주나 한잔하자!"고 하시는
孫교장선생님의 제의로 몇배의 소주가 속을 지릿하게 만들고
급기야 백두산과 천지와 우리들의 감성과 세월의 변화, 갖은 잡생각들이 한데 뒤섞여
가벼운 취기 가운데에 묘한 쾌감이 마음을 간질인다.
그것은 여의도보다 넓다는 천지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분단된 조국의 모습과, 한국의 어느 도시와 비슷했던 연길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생각들,
南만주도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에서 나온 상실감, 그리고 쓰라림 같은 것들이 교차하여 만감이 떠 오르면서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우리는 일정에 쫓기어 이제 천지를 떠난다.
(장백폭포의 위용)
달문의 물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보면 장백폭포 위에 서게 되고
그 옆으로 설치된 시멘트 구조물의 계단을 따라
백두산 북편의 장백폭로 하단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면서도 뒤를 잡아 당기고 뒤를 돌아다 보게 하는 것은 역시 천지이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상념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에
우리들은 장백폭포 아래에 선다.
천지에서 유일하게 물길이 터진 달문으로 천지의 물이 흘러
가파른 지형 탓에 물살이 빠르게 장백폭포 쪽으로 치고 내려가
68m의 직벽으로 물은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면 떨어져 내리는데
중간에 있는 비탈진 벼랑에 부딪쳐 물보라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 물은 송화강으로 또 흑룡강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내려온 그날 밤
우리들은 백두산 초입의 산기슭의 숙소에 들었다.
밤마다 하얀 꿈을 꾸는 자작나무들은 우리들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고
우리는 자작나무 껍질에 연서를 쓰는 대신
백두산의 천지의 기억과 막 마셔댄 폭주의 취기에
날이 하얗게 될 때까지 우리가 선 땅의 의미를 새긴다.
안녕! 백두산아! 언젠가 다시 오리라!
(이도백하에서 본 백두산 북편 사면)
첫댓글 너무 멋지신데요~ㅋㅋ특히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사진....감동의 물결입니다~^^
배경이 너무 장엄해서 .... 엄숙하기까지. ... 샘요 정말 멋져요..
통일이되어서 꼭 한번은 찾아가야되는데..형님 후기 잘 읽고갑니다..
진짜로 감동입니다 ! ..역시.. 저도 한국인임에는 어쩔수 없는 모양입니다. ..회장님, 담에는 꼭 같이 가셔야지요 !! , 그리고 ..손윤락 교장선생님, 진경태 선생님, 이종채 선생님..모두 제 은사님이신데요..같이 가셨다니, 저도 참..반갑습니다. 옛날에 수업받던 생각도 나구요..^-^
많이 보시던 선생님들 얼굴 보니까 괜시리 학교 한 번 찾아 가고 싶어 집니다..^^; 다리 낳으면 가야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장관...
강산님 글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너무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사진이 넘 예술입니다...
회장님, 백두산천지를 말만들은 곳을 실체 사진으루보니까, 정말 장~엄하구 아름답기까지 합니당.. 나 평생 언제 저런곳에.... ^^ ㅎㅎ
아름 답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