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십삼년시월십일일(금).
산행 취소가 뒤집혔다. 설악산 암릉 등반허가까지 냈다가 취소할 뻔도 했다.
그렇게 가, 안가 하다 주말 금요일 저녁 일곱 시에 둔촌동을 출발한다. 삼백수인 최기호형(슬슬형), 김진성형(소봉형), 나 그리고 김성섭, 장경준 후배님들 다섯. 가을 설악산은 처음 아닐까? 방학 아니면 가기 힘든 산행이니까.
난 단풍이 반쯤 내려왔다는 소식에, 마침 약속 하나도 취소되어 갑자기 집을 나선다.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나의 특유한 소심함이 또 발동을 해서 갈등도 했다. 그러나 마술에 홀린 것 같이 나도 가기로 갑자기 결정한다. 설악 단풍을 언제 보랴! 안 가본 암릉을 언제 또 가랴! 에라 가자!! 출발 한 시간 전에 짐 싸느라 나 때문에 출발도 삼십분을 늦춘다. (난 이렇게 행복하다!)
묵직한 슬슬형 차가 둔촌동을 출발한다. 짐이 쌓여 뒤가 안보일 정도지만 늘 그러하듯 차모는 게 취미 및 특기인(?히히) 운전 도사 소봉형 운전. 어! 출발하자 금방 차가 밀린다. 이거 밤새 가는 거 아냐? 조금 돌아가니 막힘이 없다. 모델과 음식점이 즐비한 한강 가 도로(난 우리나라가 돈만 많으면 본초적인 쾌락을 이렇게 얻기 쉬운 지 미처 몰랐다.)를 시원하게 달려 서종 아이씨로 들어간다. 그길로 동홍천까지 일단 쫙~~
항상 우리들과 갈 때마다 모든 잘 것, 취사 장비 등 먹거리까지도 슬슬형이 꼼꼼하게 준비한다. 우리들과의 산행이 만사 제치고 일 순위! 우리랑 다니는 게 그렇게 좋다며 얘들처럼 웃는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차 밀리면 차 안에서 먹을 저녁으로 김밥까지 준비해 오셨다. 그것도 아주 맛있는 집 것. 어! 형은 안 먹어? 응 난 먹었어(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운전 안 하는 우리 셋은 깡통 맥주 하나씩 들이키며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한다.
천막 치고 술 한 잔 하는데 형이 말한다. 사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다고. 장염인지 걸려 화장실만 들락 달락 했다고, 그러면서 형수님이 싸주신 죽통을 보여주신다. 오늘 두 번째 식사. 소주는 생략.
일요일 뒤풀이 자리에서 비로소 말하신다. 출발 두어 시간 전까지 형수가 가지 말라고 말리셨다고 –아니 꼭 가야 해! - 이런 슬슬형이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은 더 감사하고 행복한 거다.
인제 원통 지나 미시령 넘도록 막힘없이 차가 잘 달린다. 주말 설악산인데 말이다. 오히려 우리가 의아해하며 세 시간여 만에 설악동 씨 지구 야영장 도착한다. 매표소 직원도 다 퇴근했는지 돈도 안 받는다. (
이박 동안 무료였다. 관리공단 직원들의 태업인지 내 일 아니라는 식이다. 작년 여름엔 잘 받았는데… 국립관리공단이면 큰 조직인데 이런 식이다. 내 생각- 이건 뭔가 조직 운영이 잘못된 것 아닐까? (미산! 에라 너나 잘해라!)
오토캠핑 시대에 걸맞게 한 동에 백만 원 대의 큰 천막이 아주 많다. 늦은 밤인데도 단풍 때문인지 계속 차가 들어오고 고기 구우며 도란도란하는 사람들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와! 모두들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이다. 행복들 하십니까? 그런데 말 그대로의 야외활동은 제대로 하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소봉형이 일침을 가한다.
간단한 한 잔. 슬슬형이 준비한 삼겹살 목살과 상추 마늘 등 일체라! 우린 그저 먹으면 된다. 하하! 선배는 장이 탈나 아무 것도 못 먹는데 후배들은 잘도 먹는다? 두런두런 산행 그리고 사는 얘기로 한 시가 많이 넘는다. 올 때부터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낼 산행할 수 있을까?는 잠 속으로 가져간다.
한 밤에 화장실 가며 쳐다본 하늘- 반달이지만 진하지 않은 은하수도 보이고, 오리온의 삼태성도 남쪽 하늘 가운데 있고- 이렇게 난 오길 잘했어 하며 마음이 푸근해진다.
이천십삼년시월십이일(토). 여덟 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난다. 오늘은 시간 많이 안 걸리는 암릉길을 가니 서두르지 않는다. 아침은 사 먹기로 한다. 설악동 씨 지구 벗어나자마자 있는 식당으로 간다. 칠팔천 원 한다. 좀 비싼 느낌이지만 한 끼 만 원 대로 가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밥쌀은 중국에서 수입한 찐쌀로 한 것 같고 네 명 합한 반찬은 딱 네 가지, 쉰 것 같은 싸구려 김치 등 재활용한 것 같은 느낌의 반찬– 여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오는 곳인데 이렇게 ‘바가지 썼다‘라는 느낌이 들게 하면 다시 또 올까?
대변 화장실도 딱 두 칸, 그중 한 칸은 고장. 청소는 대충. 주변 상가들의 공용이니 이용하는 사람 수에 비하면 이건 너무 적다. 돈벌이에만 신경 쓰지 서비스는 뒷전 같아 씁쓸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장사치들 대부분이 돈만 보이고, 눈에 안 보이는 음식맛과 인정(人情)같은 향기가 왜 없는지 모르겠다. 정말 나라 다스리는 높은 분들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건 아닐까? (미산 선생! 나라에서 주는 연금이나 자알 받아먹고 살지 웬 나라 걱정하시나? 누가 내게 속삭인다. 그래 참 난 멍청하다.)
단풍철 행락객들이 몰리니 승용차 통행 불가다. 걷기엔 멀어 다행히 금방 금방 오는, 매표소 가는 데만 무료인 순환 버스를 이용한다. 차창 밖으로 본 설악산엔 단풍이 하나도 안 보인다. 아직 내려오지도 않은 단풍을 맞으러 가는 꼴이라 속이 좀 쓰리다.
더구나 설악산 거의가 신흥사 땅이라 문화재 관람료로 무려 일인당 삼천오백 원을 받는다. 신흥사엔 무지무지한 세계적인 보물이 있어 관람료를 최소 만 원쯤 받아야하는데 이 정도 받는 것도 우린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속이 또 무지 쓰리다. 신흥사 안 들리고 그냥 가서일까?
성섭은 국립공단직원 제복을 입고 왜 중들 대신 표 팔고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나랏일 보다 신흥사일이 더 중요하다? 하긴 불교가 천 년도 넘게 국교였고 지금도 높은 스님들은 도박에 룸싸롱에서 술도 하며 위세를 과시하니 그까지 것 불교 진흥을 위해 표 받는 일 좀 대신 하면 어때서? 안 한다면 칼부림 당해 볼 껴?
나 같은 구제 못 받을 중생만이 설악동에만 오면 속이 곱으로 쓰리고, 친애하는 국민을 위해 나랏일 하시는 분들은 너그러워 벌집 건드리길 싫어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도 신흥사 앞 광장에 앉으신 큰 청동좌불님이 미소를 보내신다. 무슨 뜻일까? 좀 떨어진 곳의 돌로 만든 곰돌이도 같이 웃고 있다.
공단 사무실에 가서 암벽등반 허가서도 꺼내오고, 화장실도 들려 비누 세수도 하며 마음의 산행 준비를 한다. 슬슬형은 견지하러 차를 몰고 남대천 가고. 우린 소통왕골로 들어서고…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매표소 지나 비룡폭포 가는 다리 위에서 보면 권금성을 바라보고 왼쪽의 뾰족한 봉우리인 노적봉으로 가는 암릉 길이다. 최고 난이도 오점 팔.)을 등반하러 간다. 난 일 년도 넘게 바위 안하다 하려니 바짝 긴장한다. 소봉형과 후배님 둘 다 선등할 수 있는 실력이니 늘 그렇듯 그걸 믿기로 한다. (이 역시 나의 행복함이다. 이러지 않으면 난 갈 수 없으니까)
비룡폭포 쪽으로 약 십 여분 가다 오른쪽 소토왕골로 들어선다. 작년엔 집사람과 같이 와 골짜기만 구경하고 울산바위로 갔었다. 지금은 암벽 등반하러 왔으니 실력 부족이라 긴장할밖에 없다. 암릉 길 초입에서 안전벨트 차며 장비를 단다. 난 선등을 서지 못하니 내가 쓸 장비만 차면 끝.
천천히 오르막을 오른다. 등반 시작 지점까지 약 십 여분을 오른 것 같다. 몸이 불어 놓으니 힘들다. 이젠 살과의 전쟁도 해야 한다. 바위를 딛고 잡고 서서히 오르기 시작. 열 시 반쯤 됐나?
성섭이가 처음 가는 길인데도 제일 어려운 선등을 선다. 처음 가는 길은 누구나 다 어려운데 선등까지라! 그런데도 잘도 간다.
난 속으론 힘들고, 낭떠러지 같은 곳에 서면 살 떨리지만 내색도 못하고 죽어라 가야만 한다. 오늘따라 바람은 왜 세게 불어오는지 모르겠다.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으면 몸이 둔해져 불편하지만 할 수 없이 걸친 채로 간다. 콧물도 슬슬 나온다.
등 뒤를 잠깐 돌아본다. 설악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불동 계곡에서 저항령 넘어오는 계곡에서 흐르는 시내가 합쳐져 눈앞에 지나간다. 울산바위가 한 컷의 사진이다. 멋지다. 달마봉의 달마대사님이 배를 쑥 내밀고 누워계신다. 신흥사 땡중들을 박살내고 누우시지 좀…
오른쪽 권금성 산장이 눈높이에 맞춰있다. 확성기 소리가 바람에 묻어온다. 저기서 우릴 보고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난 단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말로 합리화 한다. 이 바윗길이 얼마나 재미있고 전망 좋은데…
항상 안전하게 주의하며 오른다. 바위틈을 잡으니 손도 약간 까진다. 그래도 모르고 즐겁게 간다. 아차! 발톱을 제때 안 깎아 꽉 끼는 암벽화에 발가락이 매우 아프다. 준비 부족이니 내가 감수해야 한다. 잠시지만 유비무환을 느낀다. 내려가면 금세 잊을 거지만…
계속 마음에선 말한다. 왜 사서 고생이지? 에이 땅에 내려가면 이젠 겁도 나고 실력도 없으니 오늘부로 바위 은퇴! 걷기 산행만 해야지 뭐……진짜 이 생각만 가득하다. 그러다가 오른쪽의 멀리 이름 없는 폭포(여기서 아니면 못 보는)와 주변 경치를 보면 쏙 들어가기도 하고…
줄로 몸이 연결되었으나 가끔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간다. 낑낑거리며 잡고 딛고 아래 저 먼 계곡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은 그러나 숲의 이불에 사뿐히 누울 것 같은 기분도 느끼며, 가끔 다리도 덜덜 떨며 한 마디 한 마디 등반한다. 계곡 사이로 좌우에 서 있는, 크고 뾰족한 연이어 있는 바위들도 곁눈질하며……
피너클(칼날 같은 암릉)을 지날 땐 고도감 때문에 아찔아찔하다. 손은 머리 위 칼날 등에, 발은 칼날 벽에 있지만 발과 눈 아랜 바로 계곡! 다행히 미끄럽지 않아 천천히 옆으로, 손 가면 발 따라가며 간다. 나를 확보해 주는 동료가 있는데 뭐가 겁나?
약간 누운 있는(오버행) 바위틈에 손을 넣어 힘을 주고 오른발은 끼우고 일어선다. 앞서 가서 내 몸을 줄로 연결해 주는 성섭에게 바짝 당겨달라고 애교? 부린다. 그래서 가슴까지 오는 바위 턱을 겨우 넘는다. 손은 여기저기 긁히고, 무릎은 서서히 까져 오고 그러나 바위 하는 맛은 조금 느끼고…정말 왜 사서 이 고생하지?
정상이 바로 눈 앞. 가장 난이도 높은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왼 다리를 옆으로 쭉 뻗어 발을 딛고, 두 손에 힘을 주고 허리 정도의 높이를 오른다. 그리고 조금씩 잡고 딛고 하며 간다. 역시 고도감이 있어 살 떨린다. 하하 되도록 아래를 보지 말 것.
오랜만의 바위에 후등인데도 겁이 무척 생겨나 솔직히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걸 잊게 해 주는, 그래서 온 역시 설악산이다.
눈 바로 앞에 토왕폭포가 몸 쭉 뻗은 긴 뱀처럼 걸려 있다. 저 유명한 폭포! 빙벽을 위해 몇 명이 죽었을까? 산 바위 얼음이 뭔지…
[蛇足. 어느 해 눈 오고 얼음 언 저 폭포 하단 꼭대기에서 하강하려다 실수로 몸이 날아 내려오는 걸 순간적으로 봤다. ‘저 친군 죽었군!’ 난 바로 밑에서 그걸 보고 고개를 돌린 적이 있었는데… (팔십 미터를 날아 내려온 타 산악회 후배의 동생은 멀쩡하게 발목만 삔 걸로 끝이었다.)]
이젠 어려운(?) 등반은 거의 끝이다.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토왕골의 ‘별을 따는 소년들’을 본다. 몇 년 전에 갔지? 노적봉 정상을 좀 지나 바위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역시 아침 식당 밥처럼 이천 오백 원 값을 못한다. 상하지 않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반쯤 먹는다. 먹을 만하게 못 만드나? 우린 불광동 김밥(북한산 가려고 불광동에서 버스 타야할 때 사는 김밥- 한 번 사곤 다신 안 산다.)이 여기도 있다고 웃으며 먹는다.
하산 시작. 이젠 걸어가는 길이라며 몸과 몸을 줄로 연결 안하고 바윗길을 계속 내려 가야한다. 아차하면 저 멀리 아래로 나르는, 그러나 잡고 딛고 조금은 쉬운 내려가기(클라이밍다운) 그런 길로 계속 간다. 가끔 가끔 살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저쪽 아래에서 사람들이 하강하고 있다. 최고수 손정준씨 일행이다. 소봉형이 그 실내 암장을 다녀 거의 다 안다. 새벽 두 시에 ‘솜다리 길’을 하려했으나 바람이 세차고 추워 ‘사인의 우정길’ 을 끝내고 하강 중이란다.
마지막 구간에서 줄을 빌려 하강 두 번 한다. 등산화로 갈아 신는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길이 남아 있다. 계속 내리막이고 돌길이라 아차하면 돌 굴리기 십상이다. 돌 굴려 아래 내려가는 사람 맞으면 큰일! 정말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간다. 난 거의 한 시간 정도 내려 온 것 같다. 계곡 바닥에 도착해 한숨 돌린다. 거의 여섯 시간 걸렸나?
내려오는 길 계곡 오솔길에서 보라색 투구꽃을 소봉형에게서 배운다. 그냥 지나치지 않으니 이 아니 즐겁지 아니한가? ‘바위만이 산이 아니다‘를 실감한다.
여기 오면 목 추기러 늘 가는 ‘이쁜이네’ 집으로 간다. 비룡폭포 가는 길의 가게다. 묵 파전 막걸리 그리고 주인장이 늘 주는 쌈 채(이번엔 신선초란다.). 하루 종일 살 떨린 오늘의 나를 잊는다. 형과 후배님들에게 속으로 감사해하며 한 잔 쭉 들이킨다. 아 맛있다! 이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겨.
소봉형이 슬슬형에게 전화한다. 칠십 여 마리의 피라미 갈겨니 황어 새끼- 배도 다 따 놓으셨단다. 보나마나 우릴 위해 튀김과 매운탕 하려고 추운 물속에서 하루 종일 잡았을 거다.
슬슬형은 야영장에 오자마자 튀김 준비로 바쁘시다. 들어오다 사 오신 밀가루를 물에 타고, 식용류를 끓이고 야채 준비하고…천막 안에 둘러 앉아 성섭과 같이 튀겨내며 (에그, 내가 삼 십여 마리 물고기 머리를 가위로 잘랐다. 죄 없는 놈들 목을 쳤다. 신흥사 땡초들에게 형벌 가하듯이…) 한 잔 쭉~ 이다. 매운탕으로 밥까지 잘 먹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미산 선생! 내년 환갑 아니신가? 나이에 맞게 우아한 여행을 해야지 애들처럼 땅 바닥에서 자고, 이삼 일 이도 잘 안 닦고, 세수도 안하며, 땀 냄새 풀풀 나는 옷 일주일씩 좋다고 입고 다니며, 뭐가 좋아 헤헤 거리는 짓 그만하심이 어떠신지?)
(너 나 그래라 이놈아!!)
성섭이 한손에 튀긴 물고기 잡고 한 잔 하는 사진을 형수님과 집사람들에게 전송한다. 슬슬형도 언제 아팠냐는 듯 한잔 쭉쭉~ 하하 – 산에만 오면 이렇게 즐거운 일이 생기는데 정말 오길 잘했지 뭐!! 그렇게 야영 둘째 날이 금방 지난 간다.
열 시 반 쯤 치우고 자려고 눕다. 에이! 옆의 천막, 혼자 온 놈이 게걸거리며 그 옆 사람들과 떠들어댄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열 시 넘어 떠들면 추방인데 이놈은 계속이다. ‘남자가 바람피우는 게 다 마누라 때문’이라며 떠든다. 한 술 더 떠 잠자면서 노래는 크게 틀어 놓고…
노랫소리에 잠이 와야 말이지, 뒤척이다 화장실 갈 겸, 끄라고 할 겸 일어난다. 그러나 코 골고 자는 놈 깨울 수도 없고…별 잠시 쳐다보다 다시 누우니 그제야 꺼진다. 별 개×× 같은 놈! 벌써 두 시가 훨씬 넘었다.
야영 문화도 많이 고쳐져야 선진국 된다. 백만 원대의 비싼 장비를 차에 가득 싣고 와 그저 고기나 구워 한잔하고 침낭 속에서 자는 걸로 야영 끝은 아닌데…남을 위한 배려도 모르면 그건 야영이 아닌데…(에이 내 걱정이나 하자!)
이천십삼년시월십삼일(일).
여섯 시에 일어나 어제 남은 밥과 매운탕에 라면 두 개 더 끓여 아침을 해결한다. 슬슬형이 아침 준비하는 새, 우린 천막 걷고 짐 꾸린다. 오랜만에 구수한 숭늉도 먹는다. 이렇게 호사다. 약간 춥지만 뜨거운 게 몸에 들어가니 좋다.
한계령 넘어 장수대 바로 지나면 미륵장군봉이 양쪽에 있다. 안산으로 연결된 암릉 길이 ‘몽유도원도’ 이다. 작년인가 슬슬형 소봉형과 셋이서 등반했다. 난이도 오점 칠이지만 작년에 소봉형 선등으로 가볍게 올라간 느낌이 든 길이다.
여덟 시쯤 무료로 잔 야영장에서 나와 양양 시내에서 김밥을 산다. 김밥나라 것이지만 불광동 김밥 집에서 납품한 것 같았다. 맛있는 김밥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원…돈 더 받고 맛있게 만들면 좋은 텐데…슬슬형이 어제 사온 둔촌동 단풍잎 김밥 집처럼(이천팔 백 원)말이다. (에이 생각 말자!)
한계령을 넘어 오는데 주차장엔 관광버스와 자가용이 즐비하다. 댈만한 곳은 다 대어있다. 본격적인 단풍철은 아니지만 오색에서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그리고 주전골로 흘림골로 가려는 등산객이 쏟아져 나왔다. 불법주차면 벌금입니다 하고 양양경찰서에서 곳곳에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가히 ‘레저의 시대’다.
장수대 좀 지나 미륵장군봉 들머리에 굽은 길 한편으로 차 몇 대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면서 주차 때문에 걱정했는데 마침 한 자리가 비워있다. 조금 늦었으면 댈 데도 없었다. 만약 없었다면 그대로 서울로 왔을까?
히히 난 속으로 그러길 바랐는데…잠도 제대로 못 잔데다, 단풍도 거의 안 보이고, 어제 살 떨 만큼 떨었으니(히히) 바위도 겁나고, 작년에 오른 길이고…암릉 길 시작점에서 마침 슬슬형도 낚시 안하고 계곡 산책하겠다고 하니 ‘나도 같이’ 했다가 슬슬형의 ‘쓸데없는 소리 마!’ 한마디에 장비를 몸에 걸친다.
에라 언제 또 해! 가자! 서서히 바윗길을 오른다. 두 세 마디는 거의 평지 걷는 수준. 그리고 첫 하강. 약 이십 미터. 이어 오솔길 오르막, 바윗길 오르막의 연속. 난 숨을 헐떡이며 맨 뒤로 따라 올라간다. 역시 처음 가는 성섭의 선등이다. (한 번 보고 등반하는 ‘온 싸이트’는 쉬운 게 아니라고 내내 소봉형이 말한다.)
평면 같은 바위 구간(슬랩)을 오른다. 발가락은 아프지, 힘은 빠졌지 오르기 어렵지, 에라 바위에 박은 볼트 구멍에 암벽 등반 시 내가 목에 늘 걸고 다니는 줄을 넣어 손목에 걸고 동작 후 잘 벗겨지게 한 다음 팔을 당겨 몸을 올린다. 그리고 볼트 대가리를 딛고 선다. 그러나 이건 암벽 등반 자격이 없는 거다. 완전 커닝! (헤헤, 오늘만 그런 게 아닌데…실력이 부족해 따라 가려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나의 합리화라고 이해해 주시길…)
오점 육이라고 개념도에 나온 크랙(바위가 벌어진 틈) 구간에서 난 잊었다. 오른발을 바위틈에 쿡 집어 놓고 일어서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팔만 넣고 몸을 끌어 당겨 오르려니 용만 쓰고 팔뚝은 다 까지고 숨은 헉헉대고…이 돌 머리 그렇게 감이 없었다. 어! 작년에 쉽게 올랐는데…
두 번째 하강. 어제부터 하강기에 줄 넣는 게 이상하게 느껴져 서너 번 다시하길 반복한다. 감이 완전히 없으니 개념도 상실이다. 잘못하면 사고 나니 시간 걸리고 쪽 팔리더라도 다시 또다시 한 나다. 이 돌대가리 어디에 써?
그래도 가야지 뭐. 건너편 미륵장군봉 바윗길엔 주말이라 그런지 약 삼십 여명이 등반 중이다. 주말 인수봉처럼 붐빈다. 폭발적인 암벽 인구의 증가다. 암벽 등반엔 무슨 마약이 있나? 건너편 가리봉엔 언제 가보나? 지금 입산 금지니, 나 죽기 전에 가려나? 라고 소봉형이 말한다.
여긴 지금 힘은 들지만 전망 좋은 비싼 집이다. 그래 암릉 등반은 이게 맛이야! 한참을 또 걸어 오른다. 멀리서 보면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은데 죽 나있다. 난 걸을 땐 등산화, 바위 만나면 암벽화로 재빨리 갈아 신는다. 발톱을 때 되어 안 깎은 벌을 톡톡히 받는다. 죄 지으면 벌 받는 게 당연하다. 참는다. 등반 한 마디 남기고, 맛없는 김밥으로 점심. 난 반만 먹는다. 지치니 입맛도 없다.
드디어 마지막 삼단 계단식 짧은 크랙 구간. 두 번째로 간다. 내가 해야 할 장비 회수도 제대로 안하고 세 번째 오는 이에게 미룬다. 저번엔 그냥 힘 안들이고 올라갔는데 이번엔 헤맨다. 약간 오버행이라 몸이 약간 뒤로 젖혀지니 균형 잡기가 힘들다. 그러나 마지막 구간이니 용을 써 오른다. 헉헉 – 끝.
개념도 상으론 걸어 다니는 제일 쉬운 암릉 길이라는데 오늘따라 난 왜 이렇게 어려운지…야! 몸이 불었으니 당연하지 소봉형이 말한다. 에이 실력 없으면 은퇴! 일명 돼지코(확보용 겸 하강용 장비. 페즐사 제품)를 경준에게 주고 은퇴해? 마침 또 농담으로 경준이 줘! 한다. 그래서 열 번도 더 은퇴한다. 하하!
이제 어제처럼 제일 어려운 걸어서 내려가는 길. 가팔라서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줄을 잡으라고 저 계곡 바닥까지 매달아 놨다.
어! 하산 갈림길 초입에 슬슬형이 앉아 있다. 내려가기도 힘든 비탈길을 걸어서 올라왔다. 어휴 노인네가!! 오르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두 시쯤 인데도 점심 같이 하려고 기다렸다고 말한다. 우린 벌써 먹었는데(죄송!). 한술 더 떴다. 그 찬 계곡물에 알탕도(전신 목욕) 했단다. 어휴 못 말려요!
내려가다 왼발이 미끄러지며 잡은 줄에 손이 쓸려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에 일원짜리 만하게 피부 껍질이 까진 상처가 났다. 쓰리다. 신경 쓰며 천천히 살살 내려온다. 어라! 바위보다 더 어렵다? 약 삼십분 걸렸나? 팔뚝까지 까진 데가 많아 계곡찬물로 씻으니 아리다. 영광뿐인 상처? 그러나 니들이 알기나 해? 이 맛을? 헤헤 마음으론 큰소리다. 이 돌 머린…
세시 십오 분에 서울로 출발한다. 차 안 막히길 빈다. 스마트 폰으로 정보를 받는다. 와! 역시 저걸 사야 할까보다. 춘천 간 고속도로가 칠십 킬로미터 지체란다. 홍천에서 양평 쪽 국도로 가기로 한다. 잘 달린다. 어! 어! 양평 시내 좀 지나 오빈에서부터 서다 가다다. 하긴 전엔 이 길 뿐이라 강원도 갔다 올 때마다 막혔는데 뭐!
두 번이나 샛길(알죠? 운전 도사 소봉형이 운전하는 것)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 약 삼십 분 정도 앞지른다. 경험상의 길눈이 참 중요하다. 창문을 열고 넘어가는 해를 쳐다본다. 오늘따라 더 붉다. 더 예쁘다. 앞으로 저 노을을 얼마만큼 보다 죽을까? 하는 무심한 생각이 갑자기 든다. 아! 세월의 무서움이여!
꾸역꾸역 가다 팔당대교 건너면서 잘 차가 빠진다. 휴! 둔촌동 족발 집으로 간다. 거의 네 시간 걸렸다. 약 두 배. 그래도 일곱 시 반엔 뒤풀이 시작. 차 놓고 온 슬슬형과 차 두고 가는 소봉형 그리고 산악회 회장인 성섭, 만년 총무인 경준과 쨍하며 잔을 맞댄다. 우린 한 덩어리다!
아홉 시 쯤 소주 셋, 막걸리 셋, 병맥주 둘로 뒤풀이를 마친다. 자주 바위를 하길 모두 바라며, 다른 회원들도 많이 참석하길 다섯 명 다 원하며 끝낸다. 난 든든한 선․후배님 덕에 단풍 없는 가을 설악산 산행을 무사히 끝낸다. 진짜 정말 고마운 거다.
집에 와 배낭 정리하고 씻고 집사람과 찬 맥주 한잔을 더 한다. 몸은 지쳤지만 기분은 최고다. 작지만 정말 행복한 이번 산행의 순간순간을 품에 안고 잠든다. 누가 뭐래도 난 운 좋은 놈임을 느끼며 말이다.
이천십삼년시월십사일.월. 저녁. 未山
첫댓글 소니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작업을 하니 정신이 없네요.
나머지 사진은 야구 끝나고 올립니다... 죄송
사족...소니 카메라가 중간에 말썽을 부려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
스맛폰의사진 순서가 엉망으로 저장이 되어 있네요. 이해할 수 없는일...
"은퇴"같은 소리 하지마라.
네가 같이하니 산행후기가 정말 멋지다!!
고생했고 내년엔 더 열심히!!
기호형!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바위를 한다는것 정말 좋고 신이 준 선물이다. 미산 한잔 하며 우린 한덩이다 외치자.
소봉 운전 고맙고 이번엔 엄살 없어 최고. 회장의 튀김은 빠작 겨울산행에서도 얼음깨고 낚시해야겠지!~!
총무가 준 10만원 거하게 쓰것다.담엔 쬐끔 보태서 더 주라. 소주 반병값이 부족하이^*^
자 모두들 건강이 최고야 모두건강하자.
고마운 일입니다. 신의 도움없이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이 가능할까 싶습니다..우리끼리 만든 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답습니다.
글도 사진도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이...조금씩 전해집니다. 형들...고맙습니다.
반갑다!!
잘 지내지?
요즘 큰딸 애들을 일주일에 이틀씩 봐주고 있어...
내가 애 키울 땐 몰랐던 육아의 어려움을 이제사 하나씩 배운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이제라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사람 한테 잘 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