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 말순씨, 오아시스, 너는 내 운명, 연예의 목적, 식스센스 - 약간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딱히 한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큰 틀에서 봤을때 아픔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주변 인물간의 관계 속에서 그 아픔을 치유 받거나 혹은 더 큰 상처를 주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사랑해 말순씨처럼 치유의 과정은 생략해 버리고 성장만을 보여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끝맺을 수도 있겠지만, 말아톤에서의 초원이가 스스로의 의지로 출전한 춘천마라톤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듯 아무래도 영화의 재미를 가늠짓는것은 치유나 상처의 과정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속에서 치유받는 오아시스의 두 주인공처럼, 치유되었지만 고통받을 너는 내 운명의 두 주인공의 모습처럼 고통과 치유의 두 모습을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연예의 목적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풀어냅니다. 과거의 사랑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강혜정과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박해일. 수많은 자물쇠를 채우며 어떤 남자도 들여놓은 적이 없던 그녀의 집에 박해일이 들어오게 되고, 그녀의 비밀과 눈물을 보게 되면서 영화는 뻔한 결말로 들어서는 듯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치유의 도식을 살짝 비틀어버리며 영화는 반전을 맞게 됩니다. 이해와 화합하며 치유하는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같은 상처를 주면서 두 사람을 같은 상황으로 만들어버리게 되고, 공평한 위치에서 그들은 진정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는거죠.
마지막 부분은 남자의 입장으로서 다소 경악스러운 설정으로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이런 재기발랄한 설정은 몇가지 더 찾아볼수가 있습니다. 유교적인 사상으로 가득했던 조선시대의 문란한 성을 다룬 스캔들의 모습처럼, 보수적으로만 인식되는 교사라는 직업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담론은 금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박해일의 낯뜨거운 성적 농담이 불쾌하기 보다는 통쾌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박해일의 존재입니다. 그간 그의 작품은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외치던 아이스크림 cf에서 보여지던 꽃미남 선생님의 모습만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연예의 목적의 양아치 선생님을 류승범같은 배우가 했다면 더 그럴듯한 모습이 나왔을지언정, 과거의 기억을 배반하며 보여주는 박해일이라는 캐릭터의 금기적 재미는 얻지 못했을 겁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캐릭터는 위험부담이 크기는 하나, 많은 감독들이 좋아하는 소재죠. 친절한 금자씨도 같은 맥락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연예의 목적은 성공했지만 금자씨는 실패했습니다. 문제는 배우의 역량이 아니라 박찬욱 감독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기획사의 잘못된 홍보입니다. tv만 틀면 나오는 너나 잘하세요! 라는 대사에 더이상 관객은 이영애에게서 대장금의 장금이를 찾지 않고 금자씨부터 찾게되고 말았죠. 금자씨를 다 본후,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씁쓸함이 느껴지던 것은 왜일까요.
금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는 성과 폭력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김기덕 감독입니다. 불편하기만 한 그의 영화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가 가장 다루고 싶은 주제는 아픔과 치유이고, 성과 폭력이라는 금기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한 장치라는걸 알수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건 그의 작품들이 갈수록 금기보다는 아픔과 치유라는 원론적 주제에 몰두해 가면서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제대로 본건 빈 집 밖에 없어서 대략적인 추측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크게 틀리진 않을것 같네요.)
금기라는 것은 때때로 김기덕표 영화들처럼 역겨움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올드보이처럼 근친상간이라는 위험한 금기마저 설득력있게 그려내 관객에게 짜릿한 자극을 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벼운 금기는 관객에게 통쾌함을 주고 상업적 성공까지 가능하게 합니다. 묻혀져 있던 북파간첩들을 다루었던 실미도, 한국 영화의 한계라는 금기를 깨버린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왕의 남자.
왕의남자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금기는 동성애입니다. 하지만 올드보이를 보았던 관객이 주홍글씨(한국영화)의 금기를 금기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디듯, 이미 많이 다루어져 밋밋할 수도 있는 동성애에 대한 소재를 왕실 안으로 끌어들이며, 금기의 자극을 높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금기는 예쁜 남자도 매력적일수도 있다는 이준기의 캐릭터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매력적으로 인식되온 남성 캐릭터는 근육질에 거친 남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몇년 사이 배용준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남성들이 점차 부각되어오긴 해왔지만, 여성스러운 남자는 논외의 대상이었죠.
왕의남자는 탄탄한 각본과 훌륭한 연기, 금기적 소재들이 어우러져 좋은 영화이기는 하나, 연출의 힘은 부족해 그저 좋은 영화에만 머무르고만 아쉬운 작품입니다. 감독 특유의 연출이나 감성은 보이지 않고 광대들의 볼거리와 탄탄한 각본에만 지나치게 의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툭툭 끊어지는 감정선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죠.
이러한 연출은 왕의남자와 같이 천만관객을 동원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강제규 감독이 만든 영화들에서 느껴지던 허전함. 그것은 주변인물과의 관계를 깊이 들어가지 않고, 관객이 스토리의 전개에 방해받지 않을만큼만 훑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출은 자칫 잘못하면 스토리의 붕괴를 불러올수도 있지만, 지루함을 없애고 긴장감을 높이는데에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빠른전개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지만, 왕의 남자는 실패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성공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물의 감정선입니다. 왕의남자가 인물들과의 관계를 빠르게 훑으며 최소한의 감정선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는 영화의 포인트를 분명히 인지하고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헐리웃에 진출해 sf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강제규 감독. 복수 3 부작을 통해 끊임없이 금기에 도전했던 박찬욱 감독. 과연, 한국을 넘어 헐리웃이라는 금기까지 깨뜨릴 수 있을지,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기대를 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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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글의 형식을 무시하면서 주제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과거에 보았던 영화들의 리뷰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써본 글인데 참 지저분한 글이 되버렸네요;; 아무튼 영화를 구조적 측면에서 보거나 연예의 목적에서 보여지는 강혜정의 방같은 상징적 사물들까지 이해하면서 보는것도 영화의 또다른 재미입니다.
이를테면, 박해일이 강혜정을 이해하게 된건 그녀의 과거를 알게되서가 아니라, 그녀의 방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는것이죠. 연예의 목적을 상당히 잘쓴 각본이라고 생각하는데, 톡톡 튀는 대사도 그 중 하나지만, 기존의 도식을 비틀고 금기를 건드리고 상징적 사물까지 적절히 이용했기 때문이죠.
왕의 남자 - 탄탄한 각본, 만족스런 연기, 밋밋한 연출 (스포 無)
첫댓글 연애의 목적의 강혜정의 방같은 상징은 형사에서 많이 보여지죠. 하지만 형사가 연애의 목적의 다른점은 그 상징까지 다 이해해야 영화의 스토리가 이해된다는점. 그냥 심심해서 쓴글입니다;;
연예의 목적 다른 이야기지만 박도령의 새로운 변신에 놀랐다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