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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경남 김해서 열린 '제54회 청룡기 전국 고교축구대회'에서 학교관계자들과 동문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는 강릉중앙고 선수단의 모습 ⓒ K스포츠티비
축구 도시 강원도의 고교축구 선두주자인 강릉중앙고(구 강릉농공고). 1980~90년대 고교축구를 호령하던 영광도 잠시 2000년대 들어 급격한 쇠퇴기를 걸었던 강릉중앙고의 힘찬 비상이 이제 화려하게 펼쳐질 일만 남았다. 저학년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 기초 설계 작업에 나선 가운데 축구부 창단 80주년에 명가재건을 위한 로드맵을 하나둘씩 그려나가고 있다. '흙 속의 진주'들을 화려한 '보석'으로 캐내려는 강릉중앙고의 장기 플랜은 축구 도시 강원도의 이미지 제고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리고 있다.
김학범(성남FC 감독), 김현석(강릉중앙고 감독), 우성용(광성중 감독)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거쳐간 강릉중앙고는 1980~90년대 고교축구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강호였다. 매년 강릉 단오제 때 라이벌 강릉제일고(前 강릉상고)과의 농-상전은 이미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이를 토대로 우수 자원들이 대거 배출되며 한국축구의 토양을 든든하게 세웠다. 각 종 대회에서 수많은 입상 성적은 보너스였다. 축구에 대한 열기 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원도민들의 자랑이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강릉중앙고에게 21세기 도래와 함께 큰 시련이 찾아왔다. 수도권 지역에 신흥 명문팀 창단과 프로 산하 유스팀의 출현으로 인해 지역 우수 자원들을 대거 뺏기면서 선수 스카웃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뜩이나 지역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와중에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중되면서 팀 운영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팀 성적도 자연스럽게 곤두박질을 쳤다. 2012년 김영욱(경남FC)을 앞세워 춘계연맹전 정상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각 종 대회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고교축구 전통의 강호라는 자존심에 분명 큰 상처였다.
그럼에도 강릉중앙고는 좌절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모교 사령탑에 부임한 김현석 감독의 합류는 강릉중앙고에 자그마한 변화의 물결을 선사했다. 현역시절 울산의 '레전드'라고 불릴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 출신인 김 감독은 아들뻘 되는 선수들에 정신력과 기술적인 부분 등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며 팀의 새로운 뼈대를 입혔다. 기량과 정신력 등이 완성된 프로 선수들과 달리 고교 선수들은 감정 변화의 폭이 크기에 정신력과 의욕 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앞섰다. 부임 첫 해 고교축구 적응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선수들과 소통을 통해 어수선한 팀 분위기도 새롭게 정비하며 잡음을 없앴다.
"프로는 기량과 정신력 등 모든 면이 갖춰진 선수들이다. 선수 개개인보다 한 시즌을 끌고가는 과정에서 컨디션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그에 반해 학원축구는 아직 어리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다. 컨디션 조절과 단점 보완은 물론, 가지고 있는 강점 극대화에 심리 상담 등 해야될 역할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학교와 학부모님들의 기대치는 물론, 우리 팀은 동문회가 워낙 활성화 되다보니 세 가지를 충족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최대한 먼저 다가가서 같이 호흡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프로축구 K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출신 '가물치' 김현석(위 사진) 감독은 지난해 초부터 모교 축구부 지휘봉을 잡으면서 이른 시간 팀을 정상권에 올려 놓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 사진 이 기 동 기자
김 감독 부임 2년차를 맞은 올 시즌은 기초 설계의 중간 지점까지 놓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시즌 첫 대회인 춘계연맹전에서 유성생명과학고(대전)에 져 32강에 만족한 강릉중앙고는 권역 리그에서도 강릉문성고에 밀려 준우승에 그치더니 전반기 왕중왕전 64강에서도 용호고(경기)에 역전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저학년 선수들이 즐비한 탓에 위기관리능력에서 많은 허점을 노출했고, 후반 중반 이후 고학년 선수들이 주축인 상대팀들의 맹공에 체력 부담을 노출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한 살 터울의 차이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대목이었다.
그러나 강릉중앙고는 상반기 때 경험을 통해 분명 한 뼘 성장해있었다. 지난 8월 김해 청룡기 대회는 강릉중앙고의 저력을 제대로 일깨워준 무대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춘계연맹전 준우승팀 오상고(경북)에 승부차기 승리를 거둔 강릉중앙고는 최종전 별내유나이티드 U-18(경기), 16강 창녕고(경남), 8강 대신고(서울), 준결승 거제고(경남) 등 강팀들을 모두 접전 끝에 돌려세우며 녹록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특히 토너먼트 여정은 그야말로 '미러클'이었다. 상대팀들 모두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끈끈한 팀워크와 정신력으로 승리를 거머쥐며 중위권 전력이라는 주변의 평가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결승에서 부경고(부산)에 져 준우승에 만족했지만, 저학년 선수들을 주축으로 준우승의 성과를 일궈내며 희망을 밝혔다.
"모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적어도 내년 시즌에 성적을 내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청룡기 대회 때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줘서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모교 축구부가 많이 주저앉은 상황에서 어떻게 끌어올릴지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다행히 학교 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서 나름대로 고교축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됐다. 강릉은 내가 축구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꿈을 키워준 곳이다. 그동안 강원도 축구가 많이 침체됐기에 이를 되살려야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역량을 다 발휘해서 강원도 축구를 더 끌어올리고 싶다."
청룡기 대회 준우승의 파급 효과는 상당했다. 청룡기 이후 곧바로 치러진 추계연맹전에서도 기존 선수들이 자신감 넘치는 경기운영과 함께 위기관리능력이 향상되면서 경기의 질이 한층 높아졌다. 천안제일고(충남)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8강에 만족한 것은 아쉽지만, 저학년 선수들이 고학년 경기에 꾸준하게 뛰면서 다져진 면역력은 기존 팀들에 결코 뒤질 것이 없었다. 심지어 대학팀들과 연습경기에서도 대등함을 잃지 않는 등 자신감과 팀 조직력 또한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후반기 강원A 리그에서는 4전 전승으로 '퍼펙트 우승'을 써내리는 등 독보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청룡기 준우승 이후 확실히 선수들에게 많은 변화가 눈에 보였다. 대회 당시에는 몰랐는데 후반기 리그를 하다보니 선수들의 플레이가 한단계 올라섰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청룡기 대회를 치르면서 자신감은 물론, 조직력과 경기운영, 위기관리능력 등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후반기 리그 때는 1학년 선수들에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고, 시즌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주입을 시켰다. 저학년 때 성적을 냈다고 해서 자만감에 빠지면 내년 시즌 고학년 때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커진다. 그 부분이 제일 우려스럽다. 훈련보다 정신력 강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편이다."
▲지난 7월 경남 김해서 열린 '제54회 청룡기 전국 고교축구대회' 결승전에서 부경고와 일전을 펼치고 있는 강릉중앙고 선수들의 모습, 강릉중앙고는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 K스포츠티비
수도권 명문 팀들과 프로 산하 유스팀들의 존재로 우수 유망주 스카웃에 어려움이 많은 강릉중앙고는 검증된 선수들보다 덜 여물어진 선수들을 육성해서 팀의 경쟁력 증대를 꾀하고 있다. 아직 성장 폭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는 연령대라 성적보다 선수 개개인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김 감독의 품 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샛별'들이 숨겨놓은 잠재력을 마음껏 폭발하고 있다. 주인공은 해결사 안수현과 장호승, 양요셉이다. 나란히 강릉중앙고의 화력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 '공격 3인방'은 순도높은 결정력과 활발한 움직임 등을 앞세워 강릉중앙고 전력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 감독 부임 이후 세밀함과 경기운영 등도 일취월장하며 내년 시즌 활약상을 기대케하고 있다.
"강원도가 축구 메카고, 이전 강릉농공고가 명문 소리를 들어도 선수 스카웃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우리 팀 선수들이 중학교 시절 프로 산하 유스팀으로 갈 레벨의 선수들이 아니었다. 강원도에서 좋은 선수라는 평가를 받아도 전국적으로 놓고보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타 지역에서 오는 선수들이 프로 산하 유스팀과 수도권 명문 팀들에 밀집된 상황이다. 특급 선수 스카웃에는 어려움이 따르기에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잘 훈련시키고 다듬어서 좋은 상품으로 판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청룡기 준우승은 했어도 선수 스카웃과 육성이 우리 팀의 과제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될지는 미지수라도 육성과 결과를 모두 잡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안)수현, (장)호승, (양)요셉이 모두 공격라인에서 특색이 있는 선수들이다. 각기다른 강점을 토대로 발전 가능성이 많다. 수현, 호승, 요셉이 뿐만 아니라 (박)성호, (박)민수, (신)현진이 등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이다. 지금 2학년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는 편이다. 어린 선수들이라 성적보다는 개개인이 앞으로 발전하는 방향에 대해 지도하고 있다. 좋은 선수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성적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 있는 요소다."
학교와 학부모, 총동문회 등의 전폭적인 지원이 한데 어우러진 강릉중앙고는 올 시즌 발굴의 성적에도 여전히 만족을 몰랐다. 1학년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포커스를 맞춰서 팀 전체 스쿼드 구상에 더욱 탄력을 낸다는 복안이다. 2학년 선수들이 많은 상황이라 돌발상황 때 1학년 선수들의 지원사격은 필수 아닌 필수다. 매번 경기 때마다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총동문회의 열정적인 응원과 학부모들의 헌신 등도 강릉중앙고 축구부의 세대교체 작업을 덧칠해주고 있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좀 더 끌어올려서 '화룡점정'을 이루려는 강릉중앙고의 야망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지금 2학년 선수들이 많아 1학년 선수들의 출전 시간이 짧다. 그러면서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2학년 선수들이 1학년때부터 경기를 계속 뛰던 선수들이다. 1학년 선수들을 빨리 끌어올려야 내년 시즌 이맘때가 닥칠 때 누수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까지 했던 패턴을 고수하면서 성적을 냈다는 안일함을 없애기 위해 정신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 시즌 총동문회와 학부모님, 학교 측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기에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학부모님, 동문회의 지원이 잘 어우러지면 강릉중앙고 축구부는 더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잡음없이 꾸준히 노력해서 전국 상위권 레벨에도 당당히 자리하는 것이 목표다." -이상 강릉중앙고 김현석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