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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세례
마태복음 3장 1-17절 2023-12-17
1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 마태복음 3장의 말씀을 보기 전에 1장과 2장을 간략하게 요약설명하겠습니다.
1장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말씀하신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종과 남녀 신분을 넘어서는 하나님 주권적인 구속사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이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되심을 알리고자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속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2장입니다.
1.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이 세상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2. 애굽으로 피난하시고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시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롱하는 갈리리 나사렛 예수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역시 이 땅에 사는 동안 억울한 일과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고난 당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는 우리 성도의 삶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저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삶 가운데 인내하며 평강 가운데 살아가시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 남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순복음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인 3장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세례요한의 역할
1절에 ‘그 때’에 라는 말은 마태복음 2장과는 약 30년간의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전파하였다고 합니다. 예루샬렘에서 전파해도 되는데 왜 광야에서 전파하였을까요?
예 2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예루샬렘이 애굽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연상케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2절에서 세례 요한의 첫 외침은 회개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고 외쳤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것을 외치는 자였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많은 선지자들이 자신의 모습은 감추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드러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역시 선지자로서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통하여,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고 나 자신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결국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되어 있는 모습에 불과합니다.
3절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4절에서 세례요한의 복장은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복장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다름을 보여주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지금 있는 삶의 자리에서 나올 것을, 돌이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11-14
11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말라기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구약에서 예언한 보낼 선지자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구약의 마지막 증인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례요한도 천국에 있는 자보다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말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의 역할은 자녀들의 마음을 주께로 돌아가게 하는 회개에 이르게 하는 선포였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사역이 아니였습니다.
마 7:15-23
15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세례 요한에게도 의문이 발생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 있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우리 모든 인간은 연약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는 살해위협에 시달리면서 마귀의 시험을 여러 번 당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 나는 구원을 받은 자입니까? 물어보았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연약한 것입니다.
구원이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니고 자신이 메시야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삶을 잘 살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길을 가면서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가는 순복음 사직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두 번째로 회개에 대해서 말씀 전하겠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회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보통 우리는 회개를 내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일에 대해서 뉘우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더 노력을 해서 보상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덕적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하면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행할 때가 많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많이 행하였기에 회개할 것이 없는 선택받은 백성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질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인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 생활하고 구제 생활하고 금식하면서 자신들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영적 교만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으로 있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서 있어야 하는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갔던 모습을 돌이켜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의 자리로 예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반성이나 뉘우침은 불신자들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반성을 하고 뉘우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유다도 자신의 죄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가룟유다를 회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가룟 유다가 자기 행동에 대해 뉘우치고 반성하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하나님의 나라로 그 마음이 돌이킴을 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돌이킴을 받는 것은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신자에게만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 또한 우리의 소관이 아닌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세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구원의 효력이 있을까요? 요한의 세례는 구원의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죄인이 주는 세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11절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의 세례는 아무것도 아니요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의 세례가 우리는 구원의 능력 안에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세례 요한은 구원의 능력도 주지 못하는 세례를 왜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았기에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미가 세례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이 것은 ‘지금 너희들이 가는 길은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길이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성공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고난이 가다리고 고통과 손해를 보게 되는 결과가 있는 길이라고 해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이 참된 생명의 길이니 그 길로만 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달라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4. 회개에 합당한 열매
7절에서 요한은 바리새인들 보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고, 8절에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강한 자기 확신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선하고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은 자신들만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하나님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느냐 지키지 못하느냐로 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세리와 창녀와 같은 사람들은 자연히 나쁜 나무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들이야말로 좋은 나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는 나쁜 나무인 세리나 창녀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자신들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독사의 자식‘이라는 독설을 받아야 했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좋은 열매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열매란 사람이 이것저것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렘 2:13에서 사람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즉 회개란 이 생명의 근원에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 여러 가지 열매들을 내어놓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에 다시 연결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십자가 앞에 나온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쌓으신 의를 바라보며 그 의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신자는 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남을 경험하면서 죄를 자복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만이 구원의 능력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하나님의 심판, 저주를 뜻합니다. 따라서 불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에게 덮쳐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저주의 자식임을 마음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이 불세례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좋은 나무란 자신이 나쁜 나무라는 것이 자신의 본질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이 이루신 의
이 세상에서 참된 의는 오직 예수님이 이루신 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의 몸을 입으시고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오신 낮아지심입니다.
세상에는 나름대로 의로 여기는 것이 많습니다. 선행을 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고, 불의에 대해 참지 않는 것도 의로운 것이고, 양심을 지키면서 뇌물을 받지 않는 것도 의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의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규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로 규정하신 것은 오직 예수님이 이루신 의 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의로만 하늘의 생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하늘이 세상에 대해 닫혀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세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저주이고 사망인 것입니다.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세상에 대해 하늘이 닫힌 상태인 것입니다. 사망에 처한 세상에 생명의 문이 열린 것인데, 그 문이 바로 의를 이루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때문에 참된 신자는 오직 예수님의 의를 믿으며 그 의를 인생에 가장 귀한 선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역할의 선지자였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잘못을 범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나를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 회개란 세상을 향한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해 다시 마음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십자가의 의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3. 세례란 세상을 향하는 나의 모습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의 자세가 이제 예수님을 향해 가겠노라고, 비록 고난과 손해가 당하더라도 주님의 길로 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쌓으신 의를 바라보며 그 의가 구원의 능력임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5. 이 세상의 참된 의는 예수님의 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의만 믿으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