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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장, 5장, 6장
거짓 가르침에 대한 분별, 예수님의 좋은 일꾼, 교회 안의 특정한 지체들, 목회자 예우, 믿음의 선한 싸움
<거짓 가름침에 대한 영 분별>
1~16절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성령'이 '말씀'하시는 수단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아마 성령이 바울에게 직접 계시 하신 것이거나 다른 이들을 통에 임한 예언이었을 것입니다. '밝히', 명시적으로 분명히 여기서 말한 후일은 분명 디모데의 시대를 포함합니다. 신약에서 전형적으로 그렇듯 이후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 이후 성령의 부어짐과 함께 시작된 시대를 가리킵니다. 거짓된 가르침을 고수하는 이들은 '믿음에서 떠나며' 이는 이 가르침이 참된 기독교의 경계 밖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이 오류의 근원은 마귀적인 것입니다. 이 거짓 교사들은 미혹하는 영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거짓 가르침과 거기서 비롯한 배교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놀라지 말고 계속 신실함을 유지해야 합니다(1절).
바울은 거짓 가르침의 몇 가지 내용을 밝히지만 이런 금지 규정을 귀결한 전반적인 견해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음식물'과 '혼인'에 대한 적절성의 문제는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서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 거짓된 가르침은 무엇을 부정하거나 포기하는냐로 거룩함을 평가하는 듯합니다. 이에 대응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의 선함과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즐기는 일에 적절함을 단언합니다(3~5절).
<안수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은사'란 아마도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하나님이 (예언을 통하여) 보여주시고 교회가 인식한 디모데의 사역에 대한 소명 및 재능과 관련된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받은 정확한 은사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14절).
디모데가 전심 전력해야 할 이 모든 일은 그의 행동과 가르침을 포함하는 12~13절에서 바울의 명한 일들입니다. 디모데의 바른 가르침과 실천에 있어서의 연대는 디모데 자신을 구원할 것입니다. 즉 디모데의 믿음 안에서 인내하도록 인도하며 디모데의 구원을 확증할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역은 듣는 자를 보호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입니다(15~16절).
<연령, 성별 등 교회 안에 특정한 지체들을 대하는 태도>
교회 안의 특정한 지체들은 어떻게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하는가, 앞에서 바울은 교회 안에 특정한 지체들의 초점을 맞추었고 이 부분에서는 비록 대상은 다르지만 다시 특정한 지체들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1~16절
5:1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
11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 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과부를 존대하라', 과부를 부양하는 일은 교회의 초창기부터 교회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일차적인 관심사는 교회가 어느 과부를 부양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가족이 없어야 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두 가지 핵심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부양 이전에 바울은 가족을 돌봐야할 의무와 젊은 과부는 재혼하는 것이 적절함을 강조합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한 직분으로서의 과부 계층을 염두에 두었다고 주장했지만 여기 진술된 주제는 궁핍한 이들에 대한 부양임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기 가족에 대한 부양은 극히 중요한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8절).
바울은 과부가 교회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으려면 어떤 자격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는 감독과 집사에 대한 조건에 나오는 한 문구의 여성형 입니다. 어떤 해석자들은 여기서의 요점은 3장에서 마찬가지로 배우자에 대한 정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바울이 남편 사후에 재혼을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실제적인 문제로서 교회의 도움을 부양할 친척이 가장 적은 과부들에게 집중시키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행실', 이 자격 조건의 목록은 경건한 나이든 여성의 상, 즉 젊은 여성들이 선망해야 할 모습을 제시합니다(9~10절).
'시집 가고자 함이니.... 정죄를 받느니라', 이 두 구절은 언뜻 보면 재혼을 정죄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에서는 재혼을 장려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또 다른 보다 구체적인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교회에 지원을 받는 이 과부들이 재혼하지 않고 지내기로 서약했거나 그래서 재혼하는 것은 곧 이 서약을 저버리는 셈이 되거나 아니면 이 젊은 과부들이 불신자와 결혼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 믿음을 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려는 어떤 면에서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다는 사실로 인해 촉발된 것이므로 중대한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바울의 우려하는 바는 불신자와의 재혼으로 (그 당시 문화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아내가 남편의 종교를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11~12절).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이는 신자의 행동이 불신자들의 인식에 미칠 영향에 대한 관심이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14절). '친척', 교회는 가족이 도움을 줄 수 없을 경우에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16절).
<목사, 감독, 장로에 대한 예우와 범죄 혐의 고발>
17~25절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25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다스리는', 장로(목사)의 역할은 권위, 특히 믿음과 가르침에 있어서의 권위를 내포합니다. '수고'(헬, '코파이오') 4:10에서도 수고로 번역된 이 말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고단한 일을 뜻합니다. 그와 같은 "말씀과 가르침"의 수고에 대해서는 '배나 존경'해야 하며 여기에는 재정적 보수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배나"라는 말은 넉넉한 사례나 재정적 부양에 합당한 존경을 더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목사들에게 두 배의 보수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사들이 넉넉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나타냅니다(17절).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 25장4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이 구절은 소 주인에게 소가 밟아 떠는 일부를 먹도록 허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것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그것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 말은 눅 10:17의 직접 인용입니다(참조, 마 10:10). 따라서 바울은 이미 예수님의 진술에 대한 글로된 기록 복음서를 성경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8절)
'두 세 증인', 지도자에 대한 고발은 실체가 없는 혐의에 근거해선 안 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야 할 이들은 범죄한 장로들, 즉 교회가 영적인 지도자들로 신뢰한 그 신뢰를 배신하고 죄를 짓는 장로들입니다. 그런 공적인 책임은 다른 교회 지체들에게 적용되는 징계 절차를 넘어서며 장로(목사)의 자격을 잃지 않은 죄는 감춰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회중에게 재확인시 합니다. 이런 공적인 책임의 결과로 나머지 사람들도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나머지 장로들을 가리키지만 나머지 회중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19~20절).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의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바울은 이 명령을 하늘의 법정 앞에서 전달되는 명령으로 표현함으로써 엄숙한 어조를 덧붙입니다. 천사들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마지막 심판에 관여한다는 사실에 근거 합니다(21절).
<경솔하게 안수하지 말것>
'안수', 섬김을 위해 구별하는 일, '경솔히', 교인들이 부주의로 어떤 일에 장로를 세우면 그 장로의 미래의 죄에 대해 연루됩니다(22절).
<건강을 위해 약간의 포도주는 허용>
이 구절이 이단락의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는 전적으로 분명하지 않습니다. 물만 마시는 것은 보통 금욕주의를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금욕주의에 비춰볼 때 바울은 5:22, 24에서 정결함에 대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면서 디모데가 포도주를 조금씩 사용하는 데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여기서는 디모데의 건강을 위해 포도주의 효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3절).
<탐심,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
거짓 교사들의 탐욕, 여기서 거짓 교사들의 우려는 그들의 탐욕과 그들의 명백히 물질적 이득을 위해 믿음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1~10절
6: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이 요약적 진술은 앞의 내용 및 뒤에 내용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십중팔구 앞부분의 가르침을 가리키지만 어떤 이들은 이를 이 편지에서 바울이 지금까지 가르쳐온 모든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이 건전한 가르침은 거짓 교사들과 대조를 이룹니다(2절).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예수님의 구체적인 진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복음과 그 윤리적 함의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에서 나온다는 점을 확언합니다. '경건에 관한 교훈', 참된 사도직 가르침은 거짓 가르침의 부정적 효과와 반대로 경건과 잘 어울리고 경건으로 인도합니다(3절).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거짓 교사들은 목회 서신에서 보통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이들로 일컬어집니다. 복음은 진리이므로 복음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잘못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충분한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물질적인 재산과 건강을 주실 것이라고 잘못되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에 따라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5절).
영원한 관점은 신자들이 탐욕의 유혹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며 그 결과 신자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이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족'합니다(6~8절).
여기서 정죄하는 것은 '부하려 하는' 욕심이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게 사용할 경우에 물질적인 것들 그 자체는 아닙니다. 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따라서 이는 '돈을 사랑함'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며 바울은 이를 '일만 악의 뿌리'로 규정합니다. 거짓 가르침과 부자가 되려는 욕심 사이에 관련성은 교회의 시초부터 골칫거리였습니다. '믿음에서 떠나', 이는 "돈을 사랑함"은 해로울 뿐만 아니라 어떤 이들로 하여금 믿음을 부인하게 하고 자신이 불신자임을 드러나게 한다는 경고입니다(9~10절).
<믿음의 선한 싸움>
11~21절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디모데에 대한 언급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거짓 교사들과 대조되는 디모데의 권위와 태도를 확인시켜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선지자에 대해 자주 사용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는 명령은 죄를 멀리하고 미덕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삶과 관련됩니다(11~12절).
또 다른 엄숙한 '명령',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님의 '선한 증언'은 신자들의 "선한 증언"의 본보기입니다(13~14절).
디모데는 에베소에 현재 그의 사역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지만 언젠가 '가까이 가지 못할 빚에' 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바라보며 수고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비교해볼 때 얼마나 하찮은 지를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춥니다15~16절2.
<부자들을 향한 명령>
직접적으로 부유한 신자들을 겨냥한 명령이 이 대목에 나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 교사들에게서 보이는 부에 대한 잘못된 관점에 대한 교정책을 제공합니다. 더 나아가 재물은 단지 이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제물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말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로 이어지는 것은 적절합니다. 미래에 대비하여 재물을 사용하라는 부한 자들에 대한 명령은 그들이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드러낸다는 뜻이거나 그들이 하늘에서 더 큰 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거나 또는 둘 다를 의미합니다.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부자들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더 이상 없겠지만 자신이 일하는 시간에 다른 이들을 위해 "선한 사업"을 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데 사용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18절).
<디모데를 향한 마지막 권면>
이 짧은 맺음말에서 바울은 디모데의 사명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네게 부탁한 것', 복음, '거짓된 지식', 이 편지의 다른 곳에서 다른 거짓 가르침, 어떤 이들은 이 말을 그 거짓 가르침이 일종의 영지주의였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는 매우 빈약합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생각에 대한 바울의 비판에 또 다른 예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지식"이라고 일컬음으로써 스스로 잘난 줄 착각하겠지만 그들은 "진리"(즉, 복음)를 거부하므로 그들의 가르침은 참된 지식이 될 수 없습니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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