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손곡박씨들의 카페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조선시대 스크랩 유교에서 배울 것과 버릴 것..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이성무]님글
유승 박노동 추천 0 조회 56 12.11.07 16: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유교에서 배울 것과 버릴 것

이 성 무(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1. 유교에서 배울 것

1) 도덕성: 유교는 도덕사회, 도덕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유교가 사회윤리와 국가이념으로 작용하고 있던 전통사회에 있어서는 강력한 도덕성이 요구되었다. 그 도덕은 처음에는 실천윤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뒤에는 왜 그런 윤리가 필요한가를 따지는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으로 번져 나갔다. 이를테면 불교국가인 고려에서 지배사상은 불교에게 빼앗기고, 유교는 현실적인 국가․사회의 실천윤리로서만 작동하다가 주자학이 지배사상이 된 조선에서는 유교의 철학적, 형이상학적 연구가 성행한 것이다.

유교사상의 핵심은 인(仁) 이다. 인은 궁극적으로 사랑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천에 옮겨질 때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개념규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자도 인은 이런 것이라고 한 마디로 말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 달리 설명하고 있다. 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대표 덕목이다. 인이 밖으로 나타날 때는 의(義)가 되고, 절문(節文)으로 나타날 때는 예(禮)가 되며, 인의 옳은 것을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인이 상호관계를 할 때 신(信)이 된다. 그러므로 인을 한다(爲仁)는 것은 인을 행한다(行仁)는 것이다.

그런데 유교는 친친이쇄(親親而殺)를 강조한다. 사회윤리의 기초는 가족윤리이다. 그리고 가족윤리의 출발은 효제(孝悌)이다. 효는 종적인 생명의 전승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부모가 없으면 자녀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위로 조상으로, 아래로 자손 대대로 면면히 이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효는 천륜(天倫)인 것이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시켜서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상하관계로만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반면에 제는 횡적인 사회관계의 단초이다. 가장 가까운 형제간의 제에서부터 성긴 관계로 나아가서 만물에까지 미친다.

그러므로 공자도 효제는 인을 하는 근본(孝悌也者 爲仁之本與)이라 하지 않았는가? 맹자는 어버이를 섬기는 효친(孝親)만을 인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협의의 인이다. 협의의 인은 애(愛)의 원시상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인(仁)과 친(親)을 같은 의미로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친자간에만 효를 국한한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공자가 말하는 인이 아니다.

인은 공자가 창출한 개념이다. 물론 공자 이전에도 인이란 말이 쓰였지만 『논어』에서 집중적으로 쓰였다.『논어』에는 인자가 85장에 105번이나 나온다. 공자는 예악(禮樂)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을 창출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이 사람인 까닭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사람의 마음이 마비되고 타락했기 때문에 사회가 혼탁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진기를 회복하고, 자아통제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정당한 언행은 다 인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은 모든 덕의 총칭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효제(孝悌)․충서(忠恕)․경신(敬信)․공관(恭寬)․온량(溫良)․예양(禮讓)․염치(廉恥)․중용(中庸)․성정(誠正) 등의 모든 덕이 인의 한 단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으로 수신(修身)하고, 인으로 제가(齊家)하고, 인으로 치국(治國)하고, 인으로 평천하(平天下)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됨의 최고 준칙으로 생각하는 인과 그 단초로서의 효제는 현대사회에 계승해도 나쁠 것이 없다. 특히 자기 자신의 수양으로부터 시작해 국가사회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현대에 계승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먼저 정립하고, 미루어 다른 사람으로 미치게 하는 것은 여전히 실천의 기본 지침이 될 만 하다.(盡己之爲忠 推己及人曰恕)

2) 가족제도

가족은 원시 씨족사회부터 있어 왔다. 씨족이 발달해서 부족이 되고, 부족이 발달해 국가가 되었다. 그러니 가족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이다. 가족은 국가가 있기 전부터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 단위였다. 가족은 혈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천부적인 것이다. 하늘이 만들어 준 것이다. 그 때문에 가족은 어느 사회집단보다 공고하고 자연스럽다.

가부장제가 생기기 이전에는 어머니 밖에 모르기 때문에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수렵․농경․전쟁 등으로 남자의 노동력이 중시되면서 부계사회가 생기고, 잉여생산물의 분배를 놓고, 사유재산제도와 권력이 생기게 되었다. 가부장제가 강화됨에 따라 가족은 부자의 종적인 효가 중심개념으로 등장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친족, 동족, 향촌, 국가의 구성으로 확산되어 갔다. 일가(一家)․대가(大家)․국가(國家)에 “家”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은 국가 사회가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감당해 왔다. 산아(産兒)․육아(育兒)․협동노동(協同勞動)․양노(養老)․의료(醫療)․장례(葬禮)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가족은 유용한 점이 많았다. 신라통일 이후에 정복왕조가 들어선 적이 없는 한국의 가족은 더욱 그러하다. 가족이 모여서 이룬 향촌이 나라가 망해도 자생력을 가지는 것도 그 한 예이다. 그래서 Arnold Toynbee는 한국에서 하나만 가져가라고 한다면 가족제도를 가져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니 유교의 가족제도를 현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할 만 하다.

3) 선비정신

선비는 유교교양을 갖춘 문사(文士)나, 그 후보자인 독서인층을 말한다. 고대사회의 “士”는 군사(軍士)․무사(武士)를 의미했고, 15세기 이전에는 문사를 의미했으며, 16세기 사림정치 시대에는 선비를 의미했다. 사림파는 15세기 후반기부터 훈구파와 대결해 4대사화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나, 선조 조에 사림의 세상이 되면서부터 사림이 중심이 되는 사림정치 시대가 열렸다.

문치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특히 무력을 가진 무사들의 정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도덕주의요, 대간(臺諫)․경연(經筵)․사관(史官) 제도가 그런 것들이다. 유교경전은 도덕을 강조하고, 역사는 사례를 제공하며, 사림의 여론이 국론을 좌우했다. 그들의 신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쳤고, 신분제도를 만들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벼슬이 있던 없던 선비들은 마음공부를 해야만 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이 그들의 목표였다. 하늘이 개인에게 품부한 착한 마음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경(敬)이 그 핵심이다. 예의와 염치를 지키고 출처(出處)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나 신념(信念)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대간이 목숨을 걸고 간쟁(諫諍)하는 것이나, 선비가 도끼를 메고 대궐 앞에 엎드려 상소하다가 귀양가거나 죽음을 당하는 것이 그 예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 대신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진 최명길․이경석, 왜군이나 후금군을 끝까지 물리치고 장열하게 죽은 이순신이나 남이흥도 있다. 심지어는 일제에게 나라가 망하자 자기는 관리가 아니라 죽을 명분은 없지만 나라가 망하는데 아무도 죽는 사람이 없으니 내라도 죽어야겠다고 하며 절명시를 써 놓고 죽은 매천(梅泉) 황현(黃鉉)의 예도 있다.

이러한 꼿꼿한 선비정신은 현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도 좋다. 딱히 유교를 내 세우지 않더라도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하는 태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살아남게 하는 정신적 자산이 될 수 있다.

4) 교육열

한국에는 고려․조선시대에 과거제도가 있었다. 과거에는 문과․무과․잡과가 있었는데 문과가 가장 중시되었다. 문치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문과를 급제해야만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전력투구를 해 문과 준비를 해야만 했다. 경쟁이 치열했다. 문벌이 좋다고 꼭 문과에 급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사립학교를 세워 특수한 과거준비교육을 시켜야만 했다. 가정교사도 동원하고, 훌륭한 선생 문하에 들어가야만 했다. 모범답안지인 초집(抄集)을 만들어 외우기도 하고, 시험지를 유출하거나 대리시험을 치는 등 부정행위도 불사했다.

그러다 보니 교육열이 높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요즈음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과열되어 과외열풍이 일어나고, 특수학교가 유행하며,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이러한 부작용을 척결할 수 있다면 교육열은 계승할 만 하다. 한국에서 과외를 받아 본 학생이라야 외국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딸 수 있는 것도 한국의 교육열 때문이다. 잘 활용하고 부작용을 없애가야 할 것이다.

5) 근면정신

한국 사람은 부지런하다. 국토가 척박해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데다가 4계절이 뚜렷해 다모작을 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다. 국토의 2/3가 산이요, 그 산 마저 장년기 화강암 덩어리라 나무도 잘 자라지 않고, 계절풍 지역이라 늘 가물다가 비가 7-8월에만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통에 농사에 적합지 않다. 그런데도 1960년도 이전까지 우리는 농업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농업국가에서 발달한 유교 때문인지, 유교는 농업사회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은 새벽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 보리 고개를 넘기고 살아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은 배고픈 한 근면정신을 버릴 수 없었다. 열사의 나라 공사장에서 횃불을 켜 놓고 밤새도록 일한 것도 그러한 근면정신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한 근면정신은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인 자산으로서 계속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요즈음 한국이 좀 살게 되었다고 나태해지고 일은 점점 조금 할 테니 돈은 점점 많이 달라는 노동쟁의만 심하게 해서 되겠는가? 그렇게 하고도 잘 사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6) 자연사랑

유교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한다. 유교는 농업사회의 지도이념이었기 때문에 자연을 배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인본주의가 두드러져 인간 상호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지만 나아가서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으로 확산되어 갔다. 서양 과학문명이 근대화를 앞당긴 것은 사실이나 자연을 회손하고, 공해를 유발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내세워 일찍부터 자연친화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자연을 경외해 산천․바람․구름․우뢰․비․메뿌리․바다․늪에 철따라 제사했다. 그리고 지리도참사상(地理圖讖思想)에 의해 지세를 따라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을 가려 짖고, 편의에 의해 산허리를 끊거나 강줄기를 바꾸지 않았다. 집을 지을 때도 기둥 하나 정도는 자연목 그대로 두어서 모든 것을 인공으로 하지 않았다. 지세에 따라 집의 규모를 알맞게 정했고, 신분에 따라 집의 칸수도 제한했다.

지금 과학기술의 발달로 개발이 광범하게 진행되고, 그 때문에 산천이 훼손되고, 경관이 망쳐지고 있다. 공장․생활 폐수 때문에 물이 오염되고, 도시에서는 공기가 오염되어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쓰레기․원자력폐기물을 파묻을 데가 적당치 않다고 고민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해에 시달리는 지금 유교의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자연사랑 정신을 계승할 만 하다.

2. 유교에서 버릴 것

1) 차별주의

공자는 현․불초(賢不肖)를 인정했다. 사람 가운데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적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가족․사회․국가에서는 남자와 여자, 적자와 서자, 어른과 아이, 천인과 양인, 양반과 상놈, 문관과 무관을 차별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양반 귀족들이 그들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든 규범이기는 하다.

특히 천인의 자식은 천인이 되게 하는 일천즉천(一賤則賤)과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를 금고(禁錮)하는 서얼차대법(庶孼差待法)은 악법 중의 악법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의 능력을 말살한 것이다. 그 가운데 인재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것은 기술을 천인들이 맡게 하고, 그들을 가렴주구해 그 기술을 자손에게 전수되지 않게 한 것과 함께 망국적인 제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근절되어야 한다. 오히려 누구나 능력을 발휘해 영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2) 파당주의

파당주의는 식민지 시대에 일본사람들에 의해 매도된 바 있다. 당파성이 민족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식민통치를 위한 한국민 비하의 일 예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조선 후기 200년간의 당쟁시대에는 그런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림정치의 부산물로서 일시적인 역사적 산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이 많아 일찍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구분이 있었고, 산등성이로 구분된 크고 작은 분지에 소국들이 발달했다. 이것은 호족의 근거지로서 뒤에 지역적 활거주의의 바탕인 향촌공동체로 자생력을 가지고 강인하게 지속되었다. 이른바 고향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낳아서, 여기서 크고, 여기서 혼인하고, 여기서 죽어 여기에 묻혔다. 그러다 보니 견문이 국한되고 정보가 제한되어 파당을 이루려 한 것은 아니나 습관과 인간관계 때문에 파당을 짓게 된 것이다.

크게는 3국과 후3국이 그랬다. 기호․영남․호남이 아직까지도 갈려 있지 않는가? 조선후기의 당파도 결국 혈연․지연․학연 따라 생긴 것이다. 그리고 작게는 종친회․향우회․ 동창회가 성행하고 설․추석 연휴 때 귀성 인파를 보면 아직도 파당주의가 계속될 기반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다.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 경쟁하는 무한경쟁 시대이다. 이런 때에 혈연․지연․학연을 바탕으로 하는 파당주의는 근절되어야 한다. 정치나 경제․사회에서 이러한 파당주의가 아직도 난무하고 있다는데 저윽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 연고주의

연고주의는 파당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혈연․지연․학연을 따라 청탁과 줄서기가 유행하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 검은 돈이 오간다. 대통령 주변의 친․인척 비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이권과 돈이 거래되고, 그 사이에 연고․연줄이 개재한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부패한 자본주의를 연줄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비아냥거렸다. 물질 만능의 서구 자본주의가 위기에 봉착하는 대신, 20 세기의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한국․싱가폴․대만․중국 등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부상하자 일부 서구학자들 사이에 유교 자본주의 이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IMF를 거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동아시아의 자본주의는 연줄 자본주의라고 매도했다.

어떻든 연줄 자본주의라고 하는 “연줄”이 유교와 꼭 관련이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에 유교의 연고주의를 그렇게 부른다면 과감히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권력의 집중에서 나온 보편적 부작용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4) 명분주의

한국인은 명분(名分)을, 일본 사람은 의리를, 중국 사람은 실리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다. 붓 한 자루 쥐고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자는 척화론도 명분주의의 극치다.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산다. 무슨 일을 하려면 실리보다도 명분을 먼저 따진다. 그러다 보니 실리에 뒤진다.

일본 사람은 오야붕-꼬붕 사회였기 때문에 강자의 의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실력으로 오야붕을 꺾을 때까지는.... 반면에 중국 사람은 잦은 오랑캐의 침략을 받고 역사의 절반 이상을 그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신용을 바탕으로 한 실리를 중시했다. 반면에 한국은외적을 방위할 준비를 하기보다는 외교관을 내세워 왜 처 들어 오느냐를 따지는 나라다. 남북이 대치해 있으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 우리끼리 잘 해보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명분이라고 다 나뿔 것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리보다 못지 않게 중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명분에만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명분을 따지더라도 실리를 계산에 넣고 따져야 할 것이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