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농업에도 협동조합이 대세
Posted by 유주하 on Tuesday, June 4, 2013 · 0 Comments
농업에도 협동조합이 대세
먼 길도 함께 가면 편하게 간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 자리를 잡는 귀농인은 자칫 섬이 되기 쉽다. 이웃들과는 서먹하고 농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해 몸은 몸대로 힘들고 마음은 마음대로 외로워지게 된다. 어렵사리 시골생활에 적응하고 이런저런 일거리를 처리하는 데에 이골이 난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위기를 피하기는 어렵다. 바로 농산물의 판로 개척이다.
귀농의 진짜 고비는 수확을 마친 다음에 찾아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귀농인이 재배 과정뿐만 아니라 판로 개척 과정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농산물은 보관 과정에서 변질되는 일이 많아 무작정 쌓아 놓을 수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팔지 못한다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작물이 대부분이다.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다량으로 수확하고서도 판로가 시원치 않아 꼼짝없이 헐값에 물건을 처리하는 일도 있다. 특히 이런 상황을 잘 파고드는 것이 농산물 유통업자들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물을 기대보다 낮은 가격에 넘겨야 하는 귀농인들은 농사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마냥 유통업자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본적으로 산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제품을 구매해 소비지에게 공급하는 것은 유통업자의 기본 역할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유통 마진을 줄여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직거래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27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14년까지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 법률을 제정하고 현재 4% 수준인 직거래를 2016년까지 전체 유통물량의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제 귀농인들은 농업뿐만 아니라 판매와 유통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사정에 맞게 적당한 지역과 작물을 선택하고 농촌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수준으로 농업 생산성을 갖춰야 하며, 최종적으로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판로의 개척과 관리까지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를 두고 한 귀농인은 “정부가 귀농인에게 ‘올라운드플레이어’가 되라고 주문하고 있다”며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고맙지만, 점점 생존을 위한 요구 사항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다양한 귀농의 당면 과제들을 좀 더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개인 단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들을 협동조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귀농의 다양한 문제 협동조합으로 해결한다
농촌 적응, 농업 생산성 향상, 판로 개척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진 귀농인들이 최근 협동조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간 협동조합은 농협·수협·신협 등과 관련한 8개의 특별법으로 묶여 있어 개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5명 이상이 모이면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1844년 영국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으로 처음 등장한 협동조합은 세계적으로 170만 개로 늘어나면서 조합원 수는 약 10억 명에 달한다. 그동안 협동조합에 대한 정의도 다양해졌다. 정부가 규정하는 협동조합은 “자주적, 자립적, 자치적인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복리증진과 상부상조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조직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국 농무성의 정의를 예를 들 수 있는데 “이용자가 소유하고, 이용자가 통제하며, 이용규모를 기준으로 이익을 배분하는 사업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썬키스트(Sunkist)’를 들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감귤 브랜드인 썬키스트는 도매상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감귤 재배 농가들이 공동으로 판매와 유통을 시도하면서 만들어졌다. 썬키스트는 현재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6000여 감귤 재배 농가를 조합원으로 하고 엄격한 품질관리로 유명하다.
귀농인들에게 협동조합은 특히 판로 개척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귀농인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자신의 작물을 좀 더 체계적인 형태로 규모 있게 유통하면서 소비자들과 직거래 창구를 마련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커뮤니티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기존 지역 작목반을 보조해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능도 담당할 수 있다.
5월 2일 창립총회를 열어 본격 출범을 알린 제주 귀농·귀촌협동조합은 서울 등 다른 시도에서 직장 생활 후 은퇴해 제주지역으로 가서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창립한 조합으로, 향후 조합원을 확대 모집해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하고 소비하는 형태의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이들은 이 외에도 빈 농가주택 정보 제공, 맞춤형 농업 관련 교육 및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농가 펜션·게스트하우스 안내, 농가주택 임대 및 리모델링 조합원 제공 등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농산물 유통의 새로운 대세, 생활협동조합
80년대 중반 농가 살리기, 도농교류 형태로 자리를 잡은 생활협동조합은 최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86년 작은 쌀가게에서 시작한 한살림은 전국 21개 지역생활협동조합과 36만 가구의 도시회원, 2000여 세대의 생산자 회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은 생활협동조합으로 현재 연간 2500억원 규모의 친환경 농산물을 유통하고 있다. 1997년 출발한 아이쿱생협도 17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3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은 생산자의 생산, 관리 상황을 투명하게 소비자 조합원에게 공개하면서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쌓는 한편, 생산자 농가에는 예측 가능한 수요와 조직적인 유통망을 제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 앞으로도 협동조합이 귀농인들의 수익 향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최근 생활협동조합의 성장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귀농인이 협동조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조합 간 협동을 통해 대규모 조직의 이점을 획득해야 한다. 일례로 경기도 이천의 장호원과 충북 음성의 감곡에 있는 복숭아 관련 지역농업협동조합들은 서로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고 수익을 높이기 위해 공동 브랜드 ‘햇사레’를 만들어 협력하고 있다. 협동조합에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있지만, 귀농인의 필요 사항을 고려할 때 영리적인 부분에서 이점이 부족하다면 그 존재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형 농장이나 유통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협동조합 간의 연합을 통해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능률을 높여야 한다.
협동조합 설립 절차
발기인 모집(5인 이상) → 정관 작성(목적, 명칭, 구역 등 포함) →설립동의자 모집 →창립총회(설립동의자 과반수 출석, 2/3 이상 찬성) →설립신고(발기인->시,도지사) →사무 인수인계(발기인->이사장) →출자금 납입(조합원->이사장) →설립등기(관할 등기소) →협동조합(법인격 부여)
*사정에 따라 설립동의자 모집 후 정관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창립 총회 개최 이전에는 정관을 작성해야 한다.
*서울시는 4개 권역별로 협동조합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전화(1544-5077)로 문의하면 발신지 근접센터로 자동 연결, 전화 및 방문 상담이 가능하다.
유주하 zooha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