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날로그 감성의 벌레 아빠입니다.
지난주에 다녀왔던 직지사 단풍놀이는 '한국제지(주)'의 초청이었습니다.
한국제지는 한국 최초로 종이 공장을 설립한 회사입니다.
현재 한국제지는 울산에 본 공장이 소재하고 있습니다.
종이...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는 이름입니다.
온 라인 세상이 된 요즈음은 더 정겹게 느껴지는...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고 디자인 일을 하면서 평생을 종이와 함께 살아온 벌레 아빠...
어쩌면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울산까지 다녀온 건지 모르죠.
다소 바쁘긴 했지만 나름 보람 있게 다녀온 한국제지 공장 견학.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종이 만드는 과정을 담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상상을 뛰어넘는 '종이 만들기'... 같이 보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둘러본 공장 풍경.
온통 시멘트와 철근 구조물 밖에 보이지 않지만
빈 곳을 찾아 나무도 심고 담쟁이덩굴로 회색 벽을 가린
단정한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강의실 건물 입구에 붙어있는 썩 괜찮은 상패...
노력하는 회사라는 증거이겠지요?
한국제지는 1958년 안양에서 창립한 이후 줄곧 성장해오며
오직 '종이 만들기'에만 전념을 해온, 말 그대로 종이 만드는 회사입니다.
왕년에 공부 좀 했을 법한 인상을 가진 선임 연구원의
회사 소개와 경영 이념, 비전 설명이 있었습니다.
고객의 가치와 미래를 창조하는... 등 흔히들 말하는 비전 외에
한 가지 특이한 경영 이념이 눈에 뜨였습니다.
"가능한 타인의 자본을 끌어 들이거나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투자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이 있는 말입니다.
두둥~ 드디어 공장 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은 온산 공장 초지 3호기가 가동하는 현장입니다.
초지기란 종이를 만드는 기계를 말하며
현재 초지 4호기까지 가동 중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시고 과연 종이를 만드는 초지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세요.
종이를 만드는 재료는 펄프 원료와 물인데
펄프 원료는 단 1%, 나머지 99%는 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이 생산은 '물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며
저 기계들의 대부분은 물을 말리는 장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희석식 원료 분사기로 균일한 원료를 분사해서
물 즉, 수분을 말리는 1차 단계입니다.
앞으로 보시는 사진들은 모두 수분을 말리는 과정으로 보시면 됩니다.
물을 말리던 날리던 그건 기계가 할 노릇이겠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계 미학'에 대한 것인데요... 한 번 보시죠.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기계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 어떤 기계가 만들어질 때 기획적으로 '디자인'이 먼저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필요'에 의해서 모양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절로 어떤 원칙이 생겨나고
그 원칙들이 모여서 '전혀 기대치 않았던 새로운 미(美)'가 생겨납니다.
그것을 바로 우리는 '기계 미학'이라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연출된 것이 없지만
조명과 조형성 그리고 색감에서도 묘한 매력이 느껴집니다.
고열이 발생되는 위험한 곳이라 유리로 막았을 뿐인데
빛과 수증기에 의해 아름다운 색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 비슷한 사진들이 많아서 중간 생략...
이 단계는 '표면 사이징'이라는 단계로
카피지의 특성 최적화, 정전기 방지, 토너 접착성 등을 관장합니다.
초지기가 있는 공장은 1년 12달 실내 온도가 35도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다녀야 하며
소음으로 인해 방문객들에게는 헤드 셋과 귀마개를 제공합니다.
어쨌거나 이 거대한 기계가 풍겨내는 '기계미'는 멋지기만 합니다.
'캘린더 링'이라고 하는 단계입니다.
종이로서의 균일한 두께 프로파일과 우수한 표면 평활성을 관장합니다.
중간에 사진도 건너뛰고 제가 설명도 제대로 못 들었지만
자료 삼아 찍은 생산 단계 이미지를 확인했으니 비슷하기는 할 겁니다.
방사선 표시가 있기는 하지만 인체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극히 미미한 양이라 위험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종이는 복사용지로 쓰이는 '백상지'이며
한국제지가 자랑하는 복사지 '밀크'의 생산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생산 공정 자체가 99% 기계에 의해 운용되며
기계 조작과 극히 일부분에서만 사람의 손이 간다고 합니다.
지폭이 가장 넓은 종이를 생산해내는 초지 4호기의 위용입니다.
공정은 초지 3호기와 비슷하니 별도의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어떠세요? 아름답지 않나요?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보았던 공장과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액션 영화 등에서 공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림을 멋지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현대 미술을 감상하다 보면 종종 기계의 부분으로 만들어진
작품과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기계미를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 위에서 99%가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물을 증발시키기 위해서는 열이 필요하겠지요?
예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벙커 C유를 때서 종이를 말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인근 금속 공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이용하는
기술을 접목하여 기업 간의 'Win-Win 전략'으로 적극 활용한다고 합니다.
정해진 사이즈대로 재단을 하는 과정입니다.
거대한 종이뭉치... 멋지기도 하지만 위압적입니다.
이 많은 종이를 생산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무를 베어야 할까요?
하지만 벌목 운운은 옛날이야기라고 합니다.
요즈음 인도네시아 등 열대지역의 '나무 밭'에서 미리미리 키운다고 합니다.
따라서 자연 훼손이니 어쩌니 하는 말은 뭘 모르는 소리가 되는 겁니다.
똑같은 재질의 복사지라 하더라도 주원료인 물의 구성 성분에 의해
미세한 특성이 구분 지어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물로 인해 종이의 DNA가 결정된다는 말인데요...
종이를 바꾸면 복사기에서 걸림 현상이 생기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랍니다.
지금 보시고 있는 사진은 한국제지의 정수장 이미지입니다.
물의 색이 뿌옇게 보이는 이유는 현재 정수 중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한 번 사용한 물을 정수시켜서 다시 재활용하는 것인데요
그런 말을 듣고 보니 한국제지가 얼마나 친환경적인 회사인지 믿음이 가더라고요.
종이를 정해진 규격에 의해 세로 사이즈로 자르는 장치라는데...
제 눈에는 이런 것도 마냥 멋지게 보입니다.
위에 보이는 장치가 앞뒤로 움직이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복사지가 생산되는 겁니다.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너도 나도 얘도 쟤도 똑같이 재단된 A4 용지는 정해진 수순대로
나란히 나란히 사이좋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다음 차례로 넘어갑니다.
견학을 온 모든 사람들도 종이를 따라 쫄랑쫄랑... ^^
자동화 장치에 의해 패키징이 끝나면
팔레트 위에 옮겨진 후 자동 래핑 기계가 래핑을 끝내고 출고를 하면... 끝!!!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원 스톱'이라는 거...
그렇다면 아까 밖에서 보았던 이 거대한 탱크는 물탱크?
이런 것을 미학에서는 '거대미(巨大美)'라고 하는데요...
아무 데나 '美' 자를 갖다 붙인다고 할까 봐 안 한 말로 칠게요. ^^
... 그런데 진짜로 그런 말 있답니다.
위에서 보신 모든 공정을 거쳐 생산된 복사지는
이곳 실험실에서 각종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복사지 팩이 보이길래... 선물로 주나 했더니... 김칫국이었습니다.
음... 저 아무래도 너무 공짜를 밝히는 것 같습니다.
아~ 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
한국제지에서 자신 있게 추천하는 제품은 '밀크'외에도
고급 용지의 대명사인 러프 글로스紙 '아르떼'가 있습니다.
아르떼는 무광택 용지로 표면이 거칠어 인쇄 시 잉크가 깊숙이 스며들어
아주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는 특수지입니다.
또한 일반 종이의 그램 수에 비해 50~60그램 더 나가며 건조성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아르떼'... 저희 동화책에도 한 번 써보고 싶군요.
위에 보시는 샘플 책들 역시 아르떼로 제작된 것인데요
언뜻 보기에도 인쇄가 아주 잘 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공장 견학을 끝내고 강당으로 돌아와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에 응답할 두 분이서 번갈아 답을 하셨는데
생각 외로 상당히 많은 질문이 쏟아져 오히려 저분들이 먼저
제발 식사하러 가자고 사정을 했다는... 와중에 저도 한 질문 던졌다는...
★
생전 처음으로 가 본 공장 견학... 한국제지(주)...
참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착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같은 작은 업자들이 종이를 쓰면 얼마나 쓴다고
해마다 초청을 해서 저런 자리를 만들까요?
'종이의 미래'에 대해서 제가 물었을 때 저들은 당당히 말하더군요.
"종이의 미래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한국제지가 초대했던 60여 명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회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번 행사를 위해 애써 주신 출제모(출판 제작 모밈) 이시우 님과
한국제지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게 귀하고 뜻깊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상으로 한국제지(주)에서 주최한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여행 세 번째' 행사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미를 추구하는 벌레 아빠 올림
이 글은 한국제지(주)가 초청한 출제모(출판 제작 모임)의 회원으로서
공장 견학 후 솔직 담백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첫댓글 저희 회사 대표님과 이사님이 가셨는데 바쁜 일정 빼곤 다 좋으셨다고 합니다.
내년 행사에는 꼭 참석해서 훌륭한 회사 한국제지를 현장에서 만나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