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강아지가 3마리가 있어요.’와 ‘우리 집은 3층이에요.’라고 할 때의 수를 읽는 방법은 다르다. 각각 ‘세 마리’와 ‘삼층’이라고 해야 옳은데, 초등 1학년에겐 이 개념의 구분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영어에서도 기수와 서수가 있듯이 우리도 수를 읽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영어의 경우 기수는 기록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서수는 순서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말하자면 기수는 원투쓰리이고 서수는 first second third.로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와 달라 우리 사회통념상의 관행과 일정한 상황 원칙에 따라 사용된다. ‘떡집은 1층, 학원은 2층’처럼 차례와 번호를 나타내거나 길이 무게 등의 측정단위가 붙은 수는 ‘일 이 삼’으로 읽고, ‘인절미 5개 주세요.’와 같이 개수와 횟수를 나타낼 때는 ‘하나 둘 셋’으로 읽는다. 그런데 딱 부러진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읽을 때 ‘일곱 시 다섯 분’하면 틀린 표현이 되고 ‘일곱 시 오 분’ 해야 옳다. 시와 분초의 기준이 또 다르다.
테이블 넘버를 적어놓은 식당에서 종업원이 유독 18번 테이블은 열여덟 번이라고 호명한다. 여기에 무슨 구멍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지경이니 초등 1학년 아이가 <씨8>을 ‘씨팔’이라 읽었다 해서 그리 잘 못되고 우스운 일인가. 굳이 하자를 들먹이자면 저‘씨팔’을 그‘씨팔’로 듣고 상상하면서 키득거리는 무리들의 관념 아닌가. 처녀 담임선생이 순간 당황한 것도 사전에도 없는 발칙한 단어를 상상했던 탓이리라.
시인도 재밌어하고 맞장구를 쳤기에 이런 시도 써진 것 아닌가. 요즘은 온갖 외래어와 축약어, 파생어와 은어들이 뒤섞여 현란하게 사용되고 있어 발음만 듣고는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의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하다. 79년도 직장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막 여상을 나온 여직원이 한명 배속되었다. 반듯하기로 소문난 박 대리가 신문을 보다가 “아니 사람이 타고난 대로 살면 되지 꼭 ‘이쁜이 수술’까지 해야 돼?” “안 그래 미스 송? 미스 송은 예뻐서 이런 고민할 일은 없겠네!”
당시 신문의 줄 광고를 보고 한 마디 한 것인데, 둘레 사람들은 모두 킥킥거렸고, 그 미스 송도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도 그 박 대리의 어안이 벙벙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치인의 흥망성쇠는 말 속에 있다는 말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말꼬리 자르기’는 뭐고 ‘말꼬리 물고 늘어지기‘는 또 무언가. 병채만이 ‘세상의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칠’ 자격이 있고, 그걸 욕으로 알아듣는 자 모두 ‘씨팔! 씨팔!’소리를 들어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