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도련은 빠르게 본모습을 갖추어 갔다. 구대문파에서 총력을 기 울인 덕분에 건물은 금세 올려졌고, 사람들 또한 속속 모여들기 시작 했다. 덕분에 안휘성은 활기가 넘쳐 났다. 태풍의 핵으로 등장한 정도련, 천하의 간자들과 시선이 안휘성으 로 몰려들었다. 안휘성에서 정도련이 급부상하고 있을 때 사천성에서는 천왕성과 십자서의 격돌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천왕성은 어떻게 하든 사 천성에 교두보를 확보하려 하고 있었고, 십자성은 그들을 저지해야 했다. 때문에 사천에서는 연일 무시무시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면에서는 십자성이 유리한 형국이었다.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을 보인 천왕성에 비해 그들은 아직 보여 주지 않은 모습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사천의 절대강자 인 당문이 있었다. 당문의 합세 덕분에 조금씩이긴 했지만 십자성이 천왕성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곧 십자성이 천왕성을 사천성에서 몰아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십자성이 오직 천왕성에만 집중할 수 있는 데 반해 천왕성에서는 십자성과 함께 또 한 사람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적무강의 북진. 양동계로 십자성을 상대하려던 천왕성은 적무강이라는 의외의 복 병을 만남으로써 커다란 타격을 입어야 했다. 적무강 한 사람 때문 에 내몽고를 돌아 산서성을 통해 호북성으로 진격하려던 그들의 작 전은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사람 때문에 천왕성의 천하 계획이 완전히 수정된 것이다. 천왕성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리고 사천성의 십자성 총타에도 새 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두두두! 커다란 사두마차가 십자성의 총타에 들어서고 있었다. 연일 치열한 격전을 치른 총타의 무인들은 피곤한 얼굴에도 불구 하고 공터에 도열해 있었다. 천왕성과의 격전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던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의 빛이 떠올라 있었 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은 전신을 흑색 보 갑으로 두르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근 오백여 명에 이르는 남자들, 그들이 바로 십자서의 정예 중 하나인 흑기대(黑騎隊)였다. 밀릴 대로 밀린 사천성의 전투를 십자성에게 유리하게 흐름을 바 꿔 놓은 자들이 바로 흑기대였다. 단지 오백 명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천왕성의 무인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평소 대주인 청호문의 명령 외에는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던 그들이 이렇듯 일반 무인들과 함께 도열해 있는 것은 그만큼 오늘 이곳에 오는 사람이 거물이기 때문이었다. 무인들의 맨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각진 얼구에 덥수룩한 턱수염이 인상적인 남자가 바로 이곳 사천 총타의 총타주인 구문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마치 사자와 같은 인상과 박력을 풍기는 남자, 그가 바로 십자성의 최정예 중의 하나인 흑기대를 이끌고 있는 청호문이었다. 십자성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황을 뒤집은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 이라 할 수 있었다. 십자성이 실세들인 그들이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다 른 곳으로 눈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두두두! 점점 마차의 바퀴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에 따 라 구문해와 청호문의 얼굴에 떠오른 긴장의 빛도 더욱 커져 갔다. 마침내 사두마차가 그들의 눈앞에 멈춰 섰다. 마차를 몰고 온 마 부는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마차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주인님, 도착했습니다." "음!" "그럼......"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은발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청호문과 구문해가 일제히 포권을 하며 외쳤다. "무상의 총타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옵니다." 뒤를 이어 사천 총타의 무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쿵ㅡ! 그들의 외침은 거대한 울림이 되어 성도에 울려 퍼졌다. 무상 사무독의 입가에 은밀한 웃음이 떠올랐다. "오랜만이군, 총타주, 흑기대주.'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예, 무상 어르신." 사무독의 말에 구문해와 청호문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였 다. 그들의 눈에는 존경의 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십자성의 실세 중 실세인 무상 사무독,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 지 아는 사람은 오직 성주인 마영백밖에 없다. 나머지는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진실한 내력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리도 경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다. 십자성의 무저뇌가 생긴 이후 가장 많은 거마들을 집어넣은 사람 이 바로 그였다. 철부쌍괴뿐 아니라 수많은 전대의 거마들이 그의 손 에 분루를 흘려야 했다. 그들의 면면을 살려보자면 그야말로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잔심독수(殘心毒手), 또는 은발의 학살자라고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 따위가 아니었다. 그만큼 가공할 무력과 심계, 그리고 잔혹한 심성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때문에 십자성에 소속 돼 있는 무인들은 하나같이 사무독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 것은 구문해와 청호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들이 커다란 권력 과 실력을 가졌다고 하나 사무독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어린아이 수 준일 수밖에 없었다. 문상인 문수영이 심계로 인정을 받는다면 사무독은 그야말로 십자 성을 대표하는 무력인 셈이다. 사무독은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보고는 내실에서 받겠다. 준비해 오도록." "존ㅡ명!" 구문해와 청호문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총타의 내실은 상당히 소박했다. 넓은 방을 채우고 있는 것은 커 다란 책상과 약간의 가구들뿐, 그 이외의 호사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총타를 맡고 있는 구문해의 성품 탓이었다. 워낙 강경하고 소 탈한 성품 탓에 사치품들에는 눈조차 돌리지 않았다. 천생 무골이 바 로 그였다. 사무독은 내실이 마음에 드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평 소 구문해가 앉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구문해와 청호문이 그의 앞 에 기립했다. "현재의 상황을 말해 보도록." "예! 현재 사천성에는 천왕성의 마도육문 중 최소한 두 개의 문파 가 전력을 투입힌 것으로 보입니다." 구문해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보고했다. "그곳이 어딘가?" "하나는 패천문이 확실한데 다른 하나는 아직 정보가 부족해 확실 치 않습니다. 아마도 여러 문파에서 정예를 뽑아 합류시킨 듯 보입니 다." "패천문에 관한 정보는?" "거기 책상 위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마도육문 중에서도 가장 패도적인 자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볼 수 있 습니다. 무공마저도 강공 일변도이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도육문 중 서열 3위라고 합니다." "흠~! 흥미롭군." "패천문의 이곳 책임자는?"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조만간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이 알려질 겁 니다." "최대한 빨리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도록. 움직이는 것은 정보 가 모두 모아진 다음에 한다." "알겠습니다." 사무독의 시선이 청호문에게 향했다. "이곳에 흑기대의 모든 전력이 투입된 것인가?" "그렇습니다. 오백 명 전원이 투입됐습니다." "잘됐군. 흑기대는 대기하면서 나의 명령을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사무독의 은색 눈이 반짝였다.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보고서를 들면서 말했다. "천왕성을 친 후에 정도련을 친다. 구대문파 따위가 두 번 다시 십자성에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을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에 전혀 감정의 고저가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 는 순간 구문해와 청호문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라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남자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사무독이 사신(死神)으로 보였다. 적무강은 너른 초원을 달렸다. 말은 북방 혈통답게 엄청난 지구력 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지난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리고도 지칠 줄 을 몰랐다. 이곳은 이제는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몽골인들의 구역이었다. 한때 중원을 지배했던 원은 이제 북쪽 초원에서 부족 단위로 분열했 다. 개개인의 부족의 힘은 아직도 막강했지만 예전 원의 태조처럼 강 력한 힘을 가진 대족장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제 그들은 자신들끼리의 세력다툼으로 지리멸렬해 가고 있는 상황이 었다. 적무강은 모래바람을 뚫고 길을 걸었다. 이제 겨울이 다시 시작되 려 하고 있었다. 때문에 초원의 풀들은 모조리 말라 죽고, 황량한 모 래 바람만이 자신의 위세를 자랑했다. "겨울이라......그것도 좋겠지. 하얀 눈은 모든 것을 다 덮을 테니 까." 적무강은 하가하게 중얼거리며 바닥을 살폈다. 이미 천왕성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 모두가 만형통과 곽부종 덕분이었다. 그들의 가공할 정보력 덕분에 적무강은 천왕성이 이동해 온 경로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오히려 그들의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천왕성에 대한 추적을 할 수 있었다. 이미 낭혈문의 무인들이 지나간 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바닥에는 그 들이 말을 달렸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천에 달하는 남자들 이 지나간 곳은 제아무리 잘 숨겨도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우르릉~! 그때 초원 북쪽에서부터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 보니 한바탕 비가 내릴 듯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음!" 적무강은 나직이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일단은 비를 피해야겠군." 그는 말을 몰아 눈앞에 보이는 산을 향해 달렸다. 일단 숲 속에 들 어가면 커다란 나무 밑에라도 말과 자신이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곳은 있을 것이다. 말은 힘차게 달려 금방 숲 속에 도착했다. 그와 동시에 마침내 하 늘에서 비가 힘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나뭇잎 사이로 차가운 빗물이 느껴졌다. 적무강은 숲 속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밑으로 말을 끌고 갔다. 장 정 둘이 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 정도로 나무의 밑동은 굵었다. 그만 큼 나뭇잎도 무성해서 장대처럼 내리는 비도 나무 그늘은 쉽게 침범 하지 못했다. 덕분에 적무강과 말은 폭우처럼 쏟아지는 장대비를 겨 우 피할 수 있었다. 푸스스! 젖었던 적무강의 옷이 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금세 말랐다. 그 스스로가 운공을 하지 않아도 화륜심결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움직이며 그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적무강은 말을 나무 한쪽에 묶어 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봇 짐에서 쇠고기를 말려 만든 육포를 꺼냈다. 그리고 조금씩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는 육포를 한 입 베어 물고 최소한 수십 번을 씹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씹은 후 삼키면 위에서 부담 없이 고스란히 흡수가 된다. 특히 이토록 오랜 시간 노숙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몸 을 최대한 가볍게 해 둬야 했다. 그렇기에 적무강은 필요한 양만큼 만 육포를 씹었다. 끝없이 쏟아질 것만 같던 비는 잠시 후 흔적도 없이 그쳤다. 물기 를 촉촉이 머금은 나뭇잎과 풀잎만이 비가 왔었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 그나마도 없었다면 적무강도 방금 전까지 그토록 거세게 비가 내 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북방의 날씨는 변덕스러 웠다. "북방에는 곧 겨울이 닥쳐온다. 그 전에 모든 것을 결판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저들은 천왕성에 꼭꼭 숨겠지......" 적무강은 다시 육포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신경은 지금 한없이 예리하게 일어서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 금을 전시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디서 적이 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뇌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몸이 그에 준하 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끝없이 화륜심결이 일어나 몸을 돌고 있었다. 그것 은 이미 그가 따로 운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 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그의 몸은 항상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 었다. 스르릉! 적무강은 도집에서 두 자루의 도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자신이 소림사에서 직접 만든 도이고, 다른 하나는 생사도 였다. 두 자루의 도는 적무강의 무릎에 올려진 채 나직하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적무강에게 있어 두 자루의 도는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생사도는 그에게 있어 죽음과 파괴를 상징한다. 적씨 가문 삼백 년 의 한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생사도는 이름처럼 그야말로 죽음과 가장 밀접한 도였다. 때문에 일단 생사도가 펼쳐지면 그 누구도 죽 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것이 적씨 가문의 의지였고, 또한 적무 강의 결심이었다. 생과 사를 구분하는 도, 생사도. 또 한 자루의 도, 그것은 적무강이 소림에서 참오하며 만든 도였 다. 생사도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의미를 가지는 도였다. 웅웅! 적무강의 손길이 닿자 도가 나직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생사도와 는 비할 수 없는 미약한 울음이었지만 그래도 도명을 울릴 정도의 명도였다. 사문(思雯), 서문아를 생각해서 만든 도였다. 그래서 이름에 서문 아의 가운데 자를 붙였다.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사문을 만들었고, 사문을 볼 때마다 서문아를 생각 했다. 때문에 사문은 그의 의지의 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스윽! 적무강은 품에서 하얀 천을 꺼내 생사도와 사문을 정성스럽게 닦 았다. 마치 유리처럼 그의 모습이 도면에 비칠 정도로 닦았다. 그는 지금 단지 도만 닦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까지 닦고 있 는 것이었다. 도와 자신의 일체, 자신이 곧 도이고, 도가 곧 자신이 었다. 그러니 내 몸처럼 아끼고 닦을 수밖에. 그러나 적무강은 계속해서 열중할 수 없었다. "꺄ㅡ아악!" 숲 속에서 여인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적무강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도를 바라보 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을 끌고 비명 소리 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인혈(天刃血) 제5권 19 "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기쁨을 주고 사랑받는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즐독!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