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 3,14-18; 루카 1,39-56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가시는데요, ‘서둘러’ 가신다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엘리사벳과 성모님께서 성령으로 가득 차서 말씀하시는데, 엘리사벳의 기쁨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 못 낳던 여자가 아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처지도 아니었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으셨는데,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두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신다는 사실이 경이롭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하신 일을 찬미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하신 일을 두고 찬미하시며 당신이 그 도구가 되셨음을 기뻐하고 계십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인데요, 개신교의 예수님은 여성적인 이미지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좀 부드러운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비해 가톨릭은, 여성적인 것은 모두 성모님께 투영하고 남성적인 것은 모두 예수님께 투사해서 가톨릭의 예수님은 딱딱하고 황제 같은 이미지이고, 성모님은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만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동의가 되는 말입니다.
사실 성모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이시지만 강건하고 용감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오늘 성모님의 노래만 봐도 그렇습니다. ‘통지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이건 정권교체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로마 제국이 식민 통치를 하고 있던 시대에 길거리에서 이렇게 노래하시면 잡혀가실 수 있습니다. 뒤이어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노래하십니다. 한마디로 세상이 뒤집힌다는 말씀이신데 이런 노래를 하시는 성모님의 강인함과 용감함을 얼마나 묵상하고 본받으려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오늘 새벽에 김성현 스테파노 신부님 장례미사가 몽골에서 봉헌되었습니다. 몽골에서 23년간 선교하시다가 지난 금요일 하느님 품으로 가신 김성현 신부님의 삶은,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많이 비슷해 보이는데요,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셨을 때 김성현 신부님이 많이 부러워하셨다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죽고 싶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대전가톨릭대학교 인근의 군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셨고, 김성현 신부님은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부제 기간을 보내시고 교수로 가르치기도 하셨으니, 두 분은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꿈을 키우시기도 했습니다.
두 신부님은 생전에 만나신 적은 없답니다. 그렇더라도, 하늘나라에서 두 분이 성모님과 엘리사벳처럼 반가이 재회하시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시지 않을까 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셨기에 하늘나라에서 성모님과 함께 이 노래를 감사로운 마음으로 부르시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