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일이 생겨 아들 차를 잠깐 빌려 썼다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갑자기 엔진
출력이 뚝 떨어지는 고장이 생겨, 정비공장을 전전하며 고생했던 이야기입니다.
들르는 곳마다 정비공들이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는데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더니
결국엔 “부란자 집”까지 가야 하는 걸로 결론이 나더군요.
물어 물어 겨우 “부란자 집”을 찾아가, 호된 값을 치르면서 분해 수리 하는데
정비공이 뭘 만질 때마다 제가 들여다 보며 자꾸 물으니 짜증 짜증입니다.
작업에 방해된다며 정비공이 투덜대거나 말거나 안면몰수하고 기어이 몇 시간을
들여다 본 끝에 드디어 “부란자”의 구조를 완전히 숙지하는 성과를 얻었지요.
우선 용어부터 정리하자면, 젊은 정비공이 매우 당당하게 말하는 “부란자”는,
자동차 정비학원에서의 정식 용어로는 연료압축분사장치입니다.
연료필터를 거쳐온 디젤유를 플런저(Plunger)형 펌프를 이용하여 높은 압력으로
올려서는 엔진 속의 연료분사밸브로 보내주는 장치지요.
그러니 그들이 학원에서 배운 대로 “연료압축장치”라 했으면, 저도 알아 듣고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며 들여다보지 않을 텐데, 기어이 “부란자”라 합니다.
제 짐작으로는, 장치 중의 중요 부품인 플런저(Plunger)방식 펌프를 일본식으로
발음하여 플런저 à 부란자라 하면서 생긴 말인 것 같더군요.
아무튼 목소리를 낮춰 살살 달래가면서 부품의 이름 하나 하나를 물어볼 때마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말이 대부분 일본식 발음입니다.
쇼바, 데후, 후앙, 리데나, 세루모타, 밋숑, 뷰다 같은 해괴한 말들이지요.
은근히 약이 오른 저도, 기어이 따라다니면서 쇼바는 충격 완충기, 데후라는 건
차동기어라 해야 한다며 지적질을 했더니, 자기도 다 알고 있답니다.
그렇게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굳이 되지도 않은 일본말 찌꺼기를 쓰느냐 했더니
대답하는 말이 참으로 걸작입니다.
그래야 노숙해 보이고 아주 전문가답게 보인다나요!
그래, 하기야 대학교수들은 모두들 뭔 소린지 모를 영어단어만 늘어놓고 있지요.
의사들도, 혹시 환자가 알아들을까 봐 무슨 소린지 모를 이야기만 주고받습니다.
그러니 자동차 정비하는 사람도, 어리숙한 차 주인을 상대로 전문가다운 권위를
보이려면, 차 주인이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의 권위가 꼭 이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세워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