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누가복음 14:25~35
제목: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
● 성숙한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그리스도인•성도 등의 의미들도 대강은 비슷한 것이지만 소위 ‘제자도’라고 하는 누가복음 14:25~35을 읽어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더 성숙하고 부담되는 표현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롬8:15)•그리스도인(롬8:9)•성도(롬8:27) 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을 먼저 읽어 보고 나서 누가복음 14:25~35을 다시 읽어 보시면 그 느낌이 올 것입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위 성경구절들을 보면,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으면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령께서 성도를 위해서 간구를 해주시므로 우리 입장에서 별다르게 아무 것도 안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제자도(눅14:25~35)를 읽어보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며(눅14:27)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 하십니다. 차원 높은 성숙을 요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입니다.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 묵상자는 이전에 몇 번 구원의 확신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구원받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자는 주관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확신과 관련하여, (1) 정통 기독교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선에서 끝납니다(예: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18장). (2) 구원파 등 이단은 ‘반드시 확신을 가져야만 구원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3) 알미니안과 천주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천주교는 죽은 다음에 연옥에 가서 패자부활전이나 세컨드 찬스를 잡는다는 기괴한 주장을 합니다. 개혁주의는 신중하게 확신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구원의 확신을 인정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3항). 현실적으로•신앙적으로 이 구원의 확신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을 걸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제자도를 인정하고 제자 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예정론의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개혁주의 신조인 도르트 신조(셋째넷째 교리 15항)조차도 “우리는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믿음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사는 자들에 대해 호의적인 방법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 말하며 구원의 확신에 기초한 신앙고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 혹시라도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회심했는지 혹은 회심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때, 그가 바른 교리와 믿음에 근거하여 신앙고백을 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고 삶의 변화가 분명하다면 회심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심령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되며 때로는 그 열매가 분명하게 보일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고백을 하고, 어느 정도 겉모습으로 변화된 삶을 보이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면 비난이 그를 인정하고 판단한 교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특히 교회에서 직분자를 임명하거나 사역자를 부를 때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딤전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
지역의 유형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판단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합니다. 정확하고 완전한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있습니다. 위선자•나일론이나 너무 연약한 초신자에게 교회의 일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딤전5: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
딤전5:9~10에 나오듯이 그 믿음에 대해서 검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정한 구원의 은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이 묵상 서두에 말씀드린 하나님의 자녀(롬8:15)•그리스도인(롬8:9)•성도(롬8:27) 등 기초적인 것 이외에, 오늘 성경본문과 같이 제자도와 같은 높은 수준도 제시하고 있으며(눅14:25~35), 교회 내에서 위선자를 분별하도록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별하는 것은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개인이 칭의 이후 성화•영화의 길로 전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성경은 아래 말씀처럼 위선자•이단 등 불순물에 대한 분별과 처리를 요구하십니다.
계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2: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 한편, 성숙한 성도들은 아직 회심이 일어나지 않은 영혼에 대해서 은혜의 수단으로 들어가도록 사랑으로 따뜻하게 격려해 주고 그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라면 어떠한 죄인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원동력이 되시는 주님께서 그 영혼에게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도를 걷는 성숙한 성도들은 우월한 위치에서 교만한 태도로 초신자나 연약한 영혼들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탁월해서 선택한 것이 결코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때문임을 겸손하고 철저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1: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첫댓글 정통 교리와 초신자, 기성신자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추정(推定): 어떤 사실에 대해 "반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그것을 올바른 것으로 인정하여 효과를 발생시키는 일.
잘 알겠습니다.
네, 추정은 반대 되는 증거가 나오면 깨지는 것으로 압니다. 신실한 성도인 것으로 추정되다가 위선자라는 증거가 나오면 그 추정은 깨지는 것이지요.
@천이다 그런 뜻이 있군요. 하나님은 확정하지만 인간은 추정하는 능력 밖에는 없는 거네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장 3항
절대로 틀림없는 이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 , 참 신자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많은 난관들에 부딪히고 난 연후에야 그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들을 그가 성령을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 색다른 특별 계시 없이도 , 통상적인 방편들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그 확신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에게는 자기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의 마음은 성령 안에서 화평과 희락으로 넘치고 ,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가 넘치고 , 또한 복종하는 일에 있어서는 힘있고 유쾌하게 한다. 이 같은 것들을 확신에서 오는 당연한 열매들이다. 그러므로 이 확신을 갖게 되면 사람들은 결코 방탕한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 확신은 성도의 견인에 간접적으로 연결이 되고, 알미니안과 천주교는 성도의 견인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확신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 같습니다.
@천이다 I see!
도르트 신조 샛째넷째 교리 제15항: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합당한 태도
... 더 나아가서, 자신들의 신앙을 밖으로 고백하고 그들의 삶을 갱생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사도들의 본을 따라 가장 호의적으로 판단하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무엇이 있으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없는 것을 있게 부르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그들보다 우리를 더 낫게 여기며 거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외적인 신앙고백이 절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사회에 밝힘으로써 자신을 구별하고 복음에 매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ㅠㅠ...아직 뒷다리 정도 밖에 안나온 예비 개구리 이지만 올챙이 시절을 잊지않는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는 금이빨집회도 다니고 신비주의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과거의 저와 비슷한 분들에게 강경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좀더 친절하고 관용적인 태도로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는 것을 있게 부르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기억하겠습니다.
@아파르 확률적으로 신비주의에 데인 분들이 개혁주의로 전향을 많이 하더라고요. 마니교에서 회심한 후 기독교신자가 된 어거스틴, 천주교에 있다가 회심한 후 종교개혁을 한 루터•칼빈•쯔빙글리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부르시면 급격한 좋은 변화를 겪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8장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자들은 계속 성장해서 예수님의 제자로까지 부르심을 받아 끝까지 충성하다가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최고의 삶일 것입니다. 거듭난 자라면 누구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분량 만큼 제자로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데,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주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이 제자의 길인 것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 비해 지금은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때가 될 수록 믿음으로 순전하게 사는 자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주님 오실 때 '착하고 충성된 제자'로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제자도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셔서 오늘도 좋은 묵상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건전한 주석과도 비슷한 분위기를 보이는 코람데오님의 좋은 댓글에 공감하고 고맙습니다.
댓글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IVP 성경주석』에서 눅14:25-35 제작도에 대한 해설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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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35 제자도의 대가(참고. 마 10:37-38; 5:13; 막 9:50)
이 21-24절에 예시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복음'이라는 주제를 직접 거론하 기에 앞서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여시는 잔치에 응할 때 수반되는 엄중한 요구를 제시하신다. 제자도는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기꺼이 가족 및 자신의 주장보다 앞에 놓는 자세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 ‘자기 십자가를 지고’가 말 그대로 순교할 각오를 한다는 뜻이든 은유적으로 개인의 모든 욕망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는 뜻이든 - 자신을 완전히 부인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끝까지 따라가지 못할 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을 부인하는 데 포함된 대가를 따져 봐야한다. 건축업자가 예상보다 자금이 빨리 떨어져서 건물을 짓다 말고 버려두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더 강한 적과 교전을 하기에 앞서 자기 군대의 힘을 따져 보지 않는 사령관도 얼마나 어리석은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는 제자는, 맛을 잃어버려서 음식을 만드는 데
맛을 잃어버려서 음식을 만드는 데 부적합하거나 심지어 땅에도 쓸모없게 된 소금과 같다. 그런 소금은 다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 26절. ‘미워한다'는 말은 '덜 사랑한다'는 뜻이다. 27절.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이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즉시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유대 지방에서는 일반적인 사건이었다(참고. 9:23). 34절. '소금'으로 사용되곤 했던 혼합물은 소금의 내용물을 잃어버리고 쓸모없게 될 수 있었다. 소금은 땅을 불모지로 만들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하다. 아마도 잡초를 죽이거나 거름의 발효를 지연시키는 용도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있다.
『IVP 성경주석』(복음서), PP.228~229.
제자도에 대해 무게감 있게 일깨워 주시는 글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격려와 공감의 댓글에 감사합니다. 즐주 및 기쁜 주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