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운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꽃피고 너도 꽃피면 풀밭이 온통 꽃밭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가곡의 즐거움을 체험하다 보면 내면의 더 큰 기쁨이 찾아온다.
“혹시 취미가 무엇이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이름 다음으로 많이 묻는 말이다. 사람들이 핸드폰을 가진 것처럼 취미 한두 개 정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마다 나는 ‘가곡 부르기’라고 한다. 이 취미를 갖기 전에는 독서 혹은 영화감상 정도로 둘러대곤 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이다. 집 앞 골목길에 피아노 교습소가 있었다. 파란 대문집 창가에서 피아노 반주와 함께 들려오는 ‘보리밭 사이 길로....’
시작하는 노래를 잊을 수가 없다. 하굣길에는 한참씩 창 밑을 서성이며 듣다가 노래가 끝나면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부터 가곡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향수처럼 쌓였던 것 같다.
칠 년 전 구월쯤이다. 모 지방신문에서 가곡 교실 수강생 모집 광고를 읽었다. 그다음 날 바로 수강신청을 했다. 첫 수업에는 10 여명이 모였다. 공부하면서 만나는 노래가 학창 시절에 부른 두서너 곡을 제외하면 거의 모르는 노래다. 한 곡씩 배워가며 부르니 즐거웠다. 가곡은 주로 시에 악곡을 붙여 만든 것으로 음률이 아름답다. 가가가 시에 가져온 것이 많아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칠 년 동안이나 목요일 오전에 하는 수업에 빠진 적이 없다. 배와 가슴에 공기를 가득 싣고 조금씩 숨을 내면서 고음과 저음으로 파도를 타면서 멀리 나아가는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
가곡 공부 시작한 지 4개월 무렵에 ‘가곡교실이 주관하는 ’송년음악회‘ 무대에 섰다. 검은색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마치 프로 성악가 기분을 냈다. 지금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노래 솜씨는 물론 복장도 촌스럽기 짝이 없다.’시작이 반이다‘하는 말처럼 이런 음악회도 일 년에 두 번씩 하니 벌써 십여 차례 참가했다. 아직도 무대에 서면 많이 떨려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무사히 무대 공연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마치 큰 대회 우승자처럼 온몸에 희열이 퍼진다. 지금은 경험이 쌓여 음악회의 사회까지 맡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가곡 부르기가 내 생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 년 전부터 대구 중구노인 복지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다른 아마추어 성악가들과 음악회를 열어 가곡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이 행사 이후 이 복지관 교육 강좌를 ’가곡교실‘을 열게 되었다. 직접 외부 강사를 초빙하고 수강생 모집에 애쓰니 점차 사람이 모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람의 일이란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가진 능력보다 훨씬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복지관에서 가곡 공부하는 회원들의 애로사항을 하나씩 의논하며 가곡의 즐거움을 함께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회원들이 나를 보면 “김상우씨는 가곡에 미친 사람입니다.”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나는 왜 경제적 이익이 없는데도 가곡 활동에 이렇게 열정적일까? 많은 취미 생활 가운데 가곡 부르기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혼신으로 노래를 부르면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간다. 자세를 바로 하고 폐활량을 키우니 건가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시니어들 가운데는 이 좋은 취미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분이 적지 않다. 이렇게 좋은 취미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잡아 주고 싶다.
오늘 아침 우리 ’가곡 교실‘ 단톡방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나무가 늙었다고 늙은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나무일수록 더욱더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더많은 사람들에게 가곡 부르기를 권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