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위스의 연금술사 파라셀수스는 약과 독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다음과 같은 말로 유명하다. “모든 물질에는 독성이 있으며, 독이 없는 물질은 없다. 독이냐 약이냐는 단지 적은가 많은가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서로 뗄 수 없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손바닥과 손등, 종이의 앞뒷면과 더 비슷하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독이 된다. 비소 같은 맹독도 미량을 사용하면 항암 효과가 있다며 연구 중이다.
스테로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약과 독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스테로이드는 너무나 강한 무기이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는 원래 몸에서 만들어지는, 그리고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중요한 호르몬 중 하나이다. 이러한 스테로이드는 아토피 등 피부질환, 천식과 각종 알레르기, 류마티스 관절염 등 류마티스성 질환, 그리고 퇴행성 관절염에서 말기 암환자의 통증 조절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질환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질환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 스테로이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이야말로 스테로이드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원에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경우는 꼭 필요한 경우, 다른 치료는 없는 경우, 초기에 짧은 기간 동안 병증을 확실히 잡은 후 중단하는 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테로이드가 ‘무서운’ 것은 몸 밖에서 스테로이드를 계속 제공하다 보면 몸에서 스스로 만들기를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간, 주로 1~2 주일 이내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몸에서 스스로 스테로이드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게 되는 그 1주일은 병증에 있어 ‘결정적인’ 시점이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나중에 탈 없이 깨끗이 낫기 때문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갑자기 이유도 모르면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돌발성 난청이라는 질환이 있다. 빨리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하고 점점 줄이다가 단기간 내에 약을 끊으면 청력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빨리 사용하는 것이지, 한 두 달 후 이미 청력은 손상되었는데 그 때 가서 스테로이드를 써봐야 소용이 없다.
또한 스테로이드는 쓰는 것보다도 끊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와 의논하지 않고 중단해 버리면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스테로이드를 끊거나 용량을 바꿀 때는 반드시 병원에서 지시한 복용 방법과 용량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문제는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사용할 때인데 이때는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저울질해보게 된다. 분명히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피부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 처음에는 피부가 갑자기 보드랍고 뾰루지가 다 낫는다. 피부가 회춘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한 달이 넘어가면 피부의 밑바탕을 받치고 있는 콜라겐이나 엘라스틴 같은 탄력 성분이 감소되어 피부가 약해지고, 쪼그라들고, 혈관은 확장되고 얇아진 피부 밑으로 혈관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된다. 여드름 같은 발진이 나기도 하고 멍도 잘 생기며, 세균이 감염되면 잘 낫지 않는다.
피부가 아니라 약으로 먹는 것 같이 전신적으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혈압이 올라가고 위에는 궤양에 올 수 있으며, 뼈가 약해져 골다공증이 오고 백내장도 올 수 있다. 얼굴이 달덩이처럼 둥글어지면서 어깨가 두툼해지고, 배가 나오고, 피부가 약해지는 모습은 스테로이드 부작용의 특징적인 모양인 ‘쿠싱(Cushing) 모습’이다.
이렇게까지 되면 몸의 면역 능력이 약해져서 세균이나 곰팡이에 감염되기 쉽고 쉽게 낫지 않는다. 정신적인 이상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 ‘쿠싱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전에 스테로이드가 규제되지 않고 유통되었을 때는 각종 ‘특효약’이라고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후 쿠싱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쿠싱 증후군에 걸리면 몸에서 스테로이드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데, 몸속에 스테로이드가 없으면 한마디로 생명이 위험하다.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이 경우는 스테로이드를 평생 복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스테로이드를 쓰게 되는 경우는, 사실 그 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들이다. 또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데에는 엄격한 기준과 방법들이 있다. 그러므로 장기 사용에 대해서는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다.
스테로이드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병원 밖에 널려있는 스테로이드들이다. 이렇게 위험한 스테로이드가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반약품에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일반 약품 중에는 의외로 상당량의 스테로이드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판되는 연고제나 안약 성분의 하나로 들어있는 것이다.
피부 연고제는 장기 사용 부작용도 문제이지만, 예를 들어 곰팡이 감염인 진균증은 항진균제를 사용해야 치료할 수 있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복합 연고’를 바른다면 더 악화될 수 있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면역을 억제해서 곰팡이가 더 자라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충혈된 눈을 맑게 해준다는 안약에 스테로이드가 들어있어 젊은 여성이 실명을 일으켰던 사건도 있었다. 문제의 스테로이드 안약에는 부작용이나 사용기간 등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두려운 스테로이드를 일반의약품에 첨가해 놓았으면서도 구입하는 사람들이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다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표시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용기에 성분명을 표시한 약품 중에서도 ‘스테로이드’ 라고 써있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스테로이드라는 성분은 여러 가지 상품명을 가지고 있는데, 종류에 따라 아주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성분명으로는 ‘하이드로코티손(Hydrocortisone)’ ‘프레드니손(Prednisone)’ ‘덱사메타손(Dexamethasone)’ 등이 있다. 제품의 성분에 위의 성분이나 또는 그와 유사한 이름이 적혀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설명서에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성분이라는 내용이 나오는지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것은,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1% 이내의 약한 강도 제품 외에는 의사의 처방없이 구입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테로이드’를 피하고 싶다면, 병원을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의논하면서 치료받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병원의 처방이야말로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가장 투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며, 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판단하여 최소한의 양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판단하는 것 역시 주치의가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생기기도 해 이렇게 노력을 하고도 피할 수 없는 스테로이드가 있다. 바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스테로이드이다. 스트레스 상황에 닥치면 누구나 부신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과잉 분비되고, 이러한 상황이 수 일, 수년간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피곤하고, 탈진하고, 뱃살이 늘어나고, 살이 빠지지 않고, 혈압이 올라가고 피부가 약해지고, 감기에 잘 걸리거나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면, 혹시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곰곰이 뒤돌아보자.
스트레스에는 개인 차이가 크므로, 남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나는 괜찮기도 하고, 남들은 개의치 않는데 나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 받는 압력, 명퇴에 대한 걱정,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 고부 갈등이나 가족간에 신경 써야 하는 소소한 일들, 대출금 갚을 걱정, 세금이 많이 나와 걱정, 걱정들은 끝이 없고 어느 순간 걱정에 파묻혀 버릴 수 있다. 그럴때 우리 몸 속에서는 스테로이드가 마구 만들어져 나온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포기하지 말고 주변 친지들이나 정신과, 가정의학과 의사 등 스트레스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것도 스테로이드를 피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김희진/을지의대 을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