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순간을 살아라 1-2편] 늘, 여기있다 | 고개만 돌리면, 바로 천국이다.(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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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페이지, 지금 이제 작가의 머리말에서 당부 이야기에요,
이 책에 대해서.
<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의 대화는
끊임없이 두 차원을 번갈아 오갈 것입니다. >
자, 한 가지 차원은 고통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계,
다른 한 가지 차원은 피안의 세계, 에덴 동산의 세계,
뭐 하늘 나라, 극락정토 이름을 뭐라고 해도 그 본질이 깨어나는 세계,
그 두 가지 차원을 번갈아 오갈 것입니다. 이 말도 이해되지요?
그쪽 차원을 다른 말로 하면 중도(中道)라고 할 수 있어요.
항상 우리들의, 지금 톨레는 중도라는 말을 안쓰지만, 우리들은 중도라는
말이 참 어울리기 때문에 항상 중도라는 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 중도(中道):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고와 낙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여기서는 나태·번뇌·노여움·어리석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에
집착하려고 하는 어떠한 일변도 모두 버려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참다운 진리가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무소득(無所得)의 상태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Daum 백과사전)
<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이쪽 차원의 세계는
우리 안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거짓된 세계 에고의 세계. >
눈이 에고면 이 세계도 에고의 세계가 펼쳐져요.
돼지의 눈에는 돼지 세계가 펼쳐진다
부처의 눈에는 불국토가, 부처의 세계가 펼쳐진다.
두 개의 세계, 돼지의 눈과 돼지의 세계,
또 부처 눈과 부처 세계, 부처 눈과 부처 세계를 중도라고 한다.
< 인간관계의 갈등에서부터 국가간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인간 형태의 본성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밝히고,
나아가서는 그런 습성이 인간의 무의식에까지 얼마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왜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할까요?
그것이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님을 알 때, 그래서 거짓을 거짓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진정한 변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러니까 거짓을 거짓이라는 걸 알아야 우리가 변할 수 있다.
이때 거짓의 핵심은 뭐냐, 에고다 이거에요.
에고가 참나가 아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변화가 시작된다.
저는 '진정한 변화'라는 요 요 동그라미 쳐놨어요.
왜냐하면 제가 마음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 자체가
'진정한 변화' 때문에.
인간한테 제일 중요한 일은 '진정한 변화' 같아요.
여러분, 그런 생각 안드세요?
인간이 얼마나 고집불통으로 안 변하는지 아시죠?
진정한 변화가 안돼. 잘 안되지요?
그래서 언제 진정한 변화가 되느냐?
거짓이 거짓임을 알 때 시작된다는.
자, 여기서 보세요.
생각에 거의 함몰되어서 산다. 이것이 거짓된 세계에요.
생각에, 생각 감정에 휘둘리면서 산다.
근데 진실된 세계는 생각 감정을 거리를 두고 바라봐서,
거기에 내가 떨어지지 않는다. 물들지 않는다.
거기에 이제 우리가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그런 그 목표에요.
<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언제나 환상과 고통 속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음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되돌아간다는 말도 무섭지 않나요?
비록 알아채도 다시 되돌아간다.
습관적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면 변화되어야 한다, 이거죠.
변화된다는 말은 생활에서 실천 되어야 한다, 이말이에요.
이 공부가, 여러분 이렇게 오시는 이유는 약발이 일주일은 가지요?
이렇게 배워두면 일주일간은 그래도 좀 적용하면서 이렇게 간다.
근데 일주 지나면 또 흐지부지 된다. 또 또 와가지고 또또 정신 차리고
이러면서 이제 자꾸 생활 습관이 바꿔가는 것이 된다.
<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의식의 심오한 변화에 대해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창조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
그러니까 톨레는 지금 여기에서 당장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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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
생활에서 실천한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기 생각을 보는 거에요.
여러분에게 지금 과제 우리 12주,
이번에 톨레 두 번째 강의가 12주 동안 이어지거든요?
12주 동안 우리 과제 - 관찰하기.
뭘 관찰하느냐? 생각을.
핵심 포인트는 생각이에요.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을 관찰하면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돼요.
그리고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 나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생각이 나가 아니고, 생각을 관찰해야 그 관찰하는 힘을
가지고 빠져나오고, 그리고 '관찰하는 것이 나다.'라는 깨달음이 온다.
근데 여러분 언제 관찰할 거예요, 생각을?
(이 시각, 지금.. 등등) 지금이네.
근데 생활에서는? 생활에서는 눈 뜨자마자.
눈 뜨자마자 항상 관찰해야 돼요.
오늘 아침에 저는 저를 관찰하니까 아무것도 없다가 의식 나오고
의식 속에 시간 공간이 나타나고 그리고 생각 감정도 관찰되지만
오늘은 보니까 제 몸이 관찰되더라구요.
그래서 기지개를 신나게 뻗었네. 일어나서 이런 것을 관찰한다 이거예요.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해서 기지개 펴다 보니까
한 쪽이 약간 약간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그럼 그걸 또 이렇게 풀어주는.
이해됐나요?
관찰은 내가 깨어 있으면 내 몸도 관찰되고 생각 감정도 관찰되고
바깥의 현상들도 관찰되고 안팎으로 깨어서
눈이 천 개 있는 것처럼 다 살핀다.
그래서 몸이 뭔가 찌뿌둥하면 풀어준다.
천 수 천 안(千手千眼)을 쓴다 이거예요.
그러면 천 수 천 안을 못 쓰는 것은 관찰 못하면 못 쓰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관찰이 우리 일상의 수행이다.
그러니까 이거를 꾸준하게 합시다.
깨면서부터, 매일매일 깨면서
그래서 안팎으로 계속 관찰하는 삶.
근데 그것이 우리가 이 세계의 고통의 세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그런 길인 거죠. 그렇게 우리가 살아갑시다.
자, <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 의식의 심오한 변화에 대해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창조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이때 마음은 생각, 감정이에요.)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생각 감정을 보라 이거예요. 생각 감정을 보라.
보면 거리가 생기고 거리가 커질수록 빠져나오는 거다, 이거죠.
빠져나오면 생각 감정은 왔다 가고
생각 감정을 보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있다, 이거에요.
생각 감정을 보는 것은 늘, 늘 여기에 있다.
그게 지금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다.
< '어떻게 하면' 나날의 삶 속에서 선연한 깨달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깨달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여러분, 바로 위에서 지금 "어떻게 하면"이 두 번 나오거든요?
첫 번째 어떻게 하면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랬죠.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응운하항복기심(應云何降伏其心)',
마땅히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항복 받을까요? 됐지요.
생각 감정을 어떻게 하면 항복 받을까요?
벗어나면 항복 받는다.
두 번째는 '응운하주(應云何住)',
그 마음을 마땅히 어떻게 주(住), 머무를까요?
이 말은 벗어난 그 마음,
벗어난 그 상태를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이죠. 맞습니까?
그러니까 생각을 생각 감정을 관찰하면
생각 감정으로부터 거리가 생기고,
이것을 자주하면 할수록 이 거리가 확립되어서
쉽게 휘말려들지 않는다.
쉽게 휘말려들지 않으면
내가 깨어 있는 의식 상태가 계속 유지가 된다.
그러면 그 상태를 뭐라고 부르느냐?
우리들은 그 상태를 선(禪)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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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 감정에 휘말려 들지 않은 상태를 선禪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그 선의 상태가, '내가 해야지, 해야지'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까먹죠?
여러분 그렇지 않나요? 자기도 모르게 까먹는다.
까먹을 때마다 다시 생각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깨어 있는 의식 상태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뭔가 스위치가 필요하다.
여러분, 이 말도 이해 되세요?
이거 없으면 자꾸 까먹고, 또 까먹고, 또 까먹어 버린다.
그러면 까먹은 상태에서 다시 돌이키려면 스위치가 필요한데,
그 스위치를 우리 선에서는 방법을 찾아낸 게 '화두'라고 부른다.
화두의 대표적인 것은 < 이것이 무엇인가 >,
줄여서 < 이 뭣고 >죠.
이때 이것이 뭐예요?
지금 깨어있는 의식이죠. 생각을 보는 의식.
그러니까, 이것이 무엇인가를 자기가 스위치를 가지고 있으면
까먹을 때 마다 < 이 뭣고 > 하면 이것이 불이 들어온다.
스위치 없으면 여러분, 까먹은 상태가 오래 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 이 뭣고 >라고 하는 걸 가지고 계속 스위치를 켜려고 한다.
그게 하나의 방편이에요. 이해되죠?
그러니까 여기서 지금 두 가지,
첫 번째는 어떻게 하면 생각, 감정을 항복 받을까요?
관찰해라. 관찰하면 빠져나온다.
두 번째, 어떻게 하면 그러면 빠져나온 상태를 유지할까요?
잊어버릴 때마다 화두를 냅시다, 그거예요.
지금 오케이?
다음, < 또한 이 책은 정보 전달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읽어 나가면서
새로워진 의식 속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 대목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 스스로~ >
자, 여러분 보세요.
지금 이 순간 물질이 있는데 물질만 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깨어 있는 것들이 있죠.
그럼 깨어 있는 이것을 느낄 때, 여기에 생각이 지금 있어요, 없어요?
여기 깨어 있을 때, 생각이 없지 않나요?
생각이 없으면 과거 있어요, 없어요?
지금 이 자리에 어제의 일이 있어요? 없어요?
미래가 있습니까? 여기에? 과거 없고 미래가 없다.
왜 없냐? 생각이 없어서.
의식이 깨어 있는 화두를 들었을 때,
< 이 뭣고 >를 해서 화두를 들었을 때의 상태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의식이 깨어 있으면 생각이 없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없지요.
뭐만 있는가?
지금 이 순간인데, 놀랍게도 이 순간은 그대로 계속 이 순간이었나요?
이 순간은 계속 이 순간이죠.
그래서 이걸 '늘'이라고 불렀다. 늘, 늘 한결같은 것.
지금 이 순간 생각만 없으면 < 늘 >밖에 없다.
요거를 지금, 여기라고도 부르고,
시간 공간이 따로 없고 지금, 여기 이것만 이렇게 있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따라해 보세요.
깨어 있는 이 상태는 지금, 여기, 의식.
이거를 < 지금, 여기, 의식 >을 한마디로 말하면 < 이 뭣고 >에요.
그러니까 지금 계속 지금, 여기, 의식, 깨어 있기, 이거.
요거를 여러분 자꾸 해야 될까요, 아니면 한 번 하면 될까요?
자꾸 해야 되지요.
그러니까 공부는 딴 게 아니고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생활 속의 실천, 끊임없이 지금으로 돌아오기.
언제나 지금으로 돌아오면 지금입니다, 그죠?
참 신기한 일이에요. 신기한 일이에요.
언제나 돌이키면 지금이에요.
언제나 돌이키면 여기에요.
언제나 돌이키면 깨어 있는 의식이에요.
항상 돌이키기.
왜, 돌이킨다는 말을 왜 쓰는가?
의식이 자기도 모르게 이 바깥 경계에 따라서 가서
집착하느라고 붙어 가지고 안 돌아온다 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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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원래 자기 위치에 있어야 되는데 이게 집 나가서
경계에 붙어 가지고 안 돌아온다.
여러분 보세요.
원리가, 의식이 자기 자리에 딱 있으면 모든 것이
의식화 되어 있어요. 그렇죠?
그럼 자기는 이렇게 있고 나타나는 것은 전부 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죠.
본질은 이렇게 딱 있고 현상은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소리처럼.(책상을 친다.)
여러분, 생겼다 사라지는 거.
소리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것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어요.
근데 모든 것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무대로써 있는 이 의식의 공간,
지금 이 의식의 공간, 요거는 생겨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한결같이 이렇게 처음부터 있는 것이 지금 그렇게 있다.
본유가 금유다. 본유금유(本有今有),
처음 있던 것이 지금도 이렇게 있다.
여기에 백그라운드처럼 요렇게 있고 공간으로 있고 거기에
시간 타고 모든 현상들이 시간 따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어서
시간은 현상이고 공간은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요 두 개 만나는 게 인간이에요.
내가 이렇게 깨어 있지 않으면 여기 만나는 것조차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은 참 신령한 존재예요.
우주에서 내가 깨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지금 이 의식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깨어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톨레가 지금 이 책에 앞에 헌사에 보면
존재의 목적이 나를 통해서 의식이 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목적이라고
이렇게 제일 앞에 헌서에 되어 있어요.
이게 지금 톨레의 신념 같아, 소신 같아요.
자기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지금 그런 뜻이에요.
자, < 그러면 독자 스스로 시간도 공간도 없는 '지금 여기'(됩니까?)
에서의 현존 상태 >
현존 상태는 깨어 있는 상태, 이 말이에요.
의식 상태, 현존 상태.
의식 상태, 또 좀 다른 말로 하면 각성 상태.
각성 상태, 또 다른 말로 하면 화두 상태.
아, 같다는 말 이해되세요? 예~.
< 그런 현존 상태에 강하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깨어 있는 현재를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것,
<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깨달음의 맛이 어떤 지를 직접 맛보도록
하기 위해(애썼다,) 애썼음을 밝힙니다. >
그러니까 톨레가 계속 "The Power of Now"라는 말은
이 '현재의 힘'이라는 것은 현재로 돌아온, 현재형이 뭐냐면,
현재의 힘은 뭐냐 하면 핵심은 현재의 힘은, 여기는 생각이 못 따라들어와요.
이 현재는 우리가 현재를 자각하는 한은 생각이 필요 없어.
여러분 보세요, 왜 생각이 필요 없는지 말씀 드려 볼게요.
현재에 깨어 있으면 내 마음이 어딘가에 가서 붙질 않아요.
이해되세요?
현재에 깨어 있으면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이 팔리지 않아,
내 정신이 팔리지 않고 내 마음이 대상에 뺏기지 않아요.
뺏긴다는 말 이해되세요? 마음 뺏긴다, 한 눈에 반한다.
마음 뺏긴다. 마음 뺏기면 시선 뺏기고. 안 그래요? 눈이 자꾸 가지 않나요?
시선 뺏기면 생각 뺏기고 감정 뺏기고. 계속 뺏긴다 이거예요.
근데 나의 어탠션이, 주의 집중이 현재로 돌아오면
현재에는 뺏길 게 없어요. 이렇게 있는데 뭘 뺏겨요?
빤히 보고 있는데 여기에 없는 거에 자꾸 뺏기잖아요.
그러니까 놀라운 일은 현재 깨어 있을 때는 시선을 뺏기지 않고,
보고 있는데 무슨 시선을 뺏겨요?
이렇게 같이 있을 때는 시선을 안 뺏긴다 이거예요.
시선을 안 뺏기니까 생각을 안 뺏기죠. 감정도 안 뺏기죠.
그러니까 이렇게 깨어가지고 자유롭게 천수천안(千手天眼) 상태,
다 보고 다 내가 반응을 할 수 있는 상태. 자, 그때 우리가 자유다 이거예요.
자유다. 평화롭고 자유롭다.
20:01~25:00
그러니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지금 이 톨레가
이 책에서 가끔 자기가 현재로 돌아옵시다, 라고 한다.
여러분,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Plum Village)에 가면
15분 만인가 종을 친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종 치는 이유가, 막 마음 뺏겨 있다가, 마음 뺏겨 있다가
종소리 듣고 동작 그만한다는 거 아니에요?
종소리가 울리면 다 동작 그만한다.
동작 그만하면, 자연적으로 현재로 우리 의식이 돌아오잖아요.
그러니까 수시로 종소리처럼 울려주는 데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상에서는 안 울려주죠.
그때는 스스로 '이 뭣고' 해가지고 돌아온다 이거예요.
돌아오면 이 현재에는 생각이 붙지 않는다, 핵심이.
생각이 여기 못 따라 들어와요.
생각 없으면 되게 편해요.
시달리지 않아, 한 마디로 말해서.
편안하고 자유롭고 계속 이 현재로 돌아오는 게.
그러면 여러분, 하늘나라가 뭐예요?
우리 의식이 현재에 와 있는 게 여기가 하늘나라입니다.
극락정토가 어디예요?
우리 의식이 현재로 와 있는 이것이 극락정토다.
그러면 나무아미타불 어떻게 해야 돼요?
아미타불이 계신 곳이 극락정토잖아요.
아미타불이 어디 계시는가?
현재에 계신다는 얘기, 현재에 계신다.
그러면 나무아미타불 하려면 우리 의식이 현재에
돌아오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이죠.
지금 제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염불 하나를 해도 실상 염불을 하자.
실상 염불이라는 말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
아미타불한테 귀의한다 이 말이,
나무, 나무는 귀의한다 아미타불.
실제로 나무아미타불 하려면 현재로 의식이,
집 나간 의식이 현재라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이다.
그러면 염불 하는 사람이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어디가 어디론가 빠져야 됩니까? 아니면 또렷하게
현재로 깨어 있어야 됩니까?
현재에 깨어 있는 것.
그러니까 염불 하나가 우리 화두 깨어 있는 거 하고 똑같죠.
염불이나 '이 뭣고'나 같은 거다.
왜냐, 다 현재에 깨어 있자고 하는 스위치의 역할을 하는 거니까.
네, 그렇게 우리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맛이 어떤 지를, 깨달음의 맛은
현재에 깨어 있는 거에요.
처음부터 현재를 타고 있었나요, 아니면
노력을 해야만 탈 수 있는 건가요?
처음부터 타고 있죠. 근데 한 눈 팔려버리면
현재에서 나가서 과거 미래로 지나가 버린다 이거죠.
집은 딴 게 아니라 온 천지가 다 집인데
이거를 놓치고 한 생각 팔려가지고 집 나간다 이거잖아요.
그러면 수행은 뭐냐? 내가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안 팔리는 것은 내가 의식 상태고, 팔리면 무의식 상태고.
수행이라는 것은, 수행은 필요해요.
왜냐하면 습관을 이겨야 되기 때문에.
습관은 어떤 습관인가? 자꾸 집 나가요.
집을 나가는 매체가 뭐냐?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면 그 생각이 못 붙는다.
이거는 여러분 처절하게 해야 되는 거에요.
왜냐하면 기존에 생각 따라 집 나가는 습관은 너무 강해.
익은 것은 설게 해야 하고 내가 집 안에 딱 이렇게
현재에 깨어 있는 이것은 설어 있는 것은 익게 해야,
감이 옵니까?
집 나가는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어 있는 집에 있으면서 안정되게 있는 이것은 익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지금 말이 되나요?
이게 지금 일상에서 하는 자기 수행이에요.
도인들의 이런 것이 익어진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집에 앉아 있죠? 집에 앉아 있는데 일은 생기잖아요.
금방 일을 하고 다시 번개같이 돌아온다,
나갔다가 돌아온다. 이해되세요?
안 나가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거는 그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라서
그거는 쓸 데가 없어, 그래서 무심이 답이 아니에요, 여러분.
25:01 ~ 30:00
무심이 답이 아니에요. 평상심이에요.
평상심은 그러니까 천안의 목적은 천수(千手), 천수가 평상심.
그러니까 이걸 잘 쓰자는 거에요.
우리 최종 목적은 평상심, 천수, 손을 쓰자는 거에요.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것을 선에서는 죽일 살(殺)자를 써요.
살(殺), 죽인다. 그러니까 집착하는 것을 놓는다, 살(殺).
그리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상황 생기면 활(活),
활(活)은 나가서 작용한다는 뜻이에요, 작용.
살활자재(殺活自在), 이런 말 음미됩니까?
살활자재(殺活自在), 선은 선의 목적은 무엇인가?
살활자재(殺活自在) 한다.
살(殺)은 나갔다가 집착을 하지 말고 얼른 놓고 돌아온다.
그리고 활(活)은 일 생기면 가만히 있지 말고 벼락같이 나가서 처리한다.
살활자재(殺活自在),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한다.
일반인은 나갔다가 기억이 없어. 나갔다가 언제 돌아 올지를 몰라.
그러니까 공부가 지금 딴 거 아니죠.
자기 실력을 보면, 실력은 집으로 잘 돌아오는 게 실력인 거에요.
그리고 집에 앉아 있으면 보여, 환하게 보여요.
그러면 손이 나가서 쑥쑥한다 이거예요.
하여튼 손 나간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천수천안(千手千眼), 천수천안(千手千眼).
살활자재(殺活自在), 천수천안 (千手千眼), 같은 뜻이에요.
그래서 이제 톨레가 이런 말을 했고,
오늘 마지막 제목은 24페이지 마지막 보면서 오늘 이제 마치겠습니다.
오늘 진도는 서문까지 나가는데 마지막 단락 같이 읽겠습니다.
< 우리의 목적은 겹겹이 쌓여 있는 사고의 층을 헤치고
나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우리 내면의 그곳,
바로 진리를 듣고 알아 차리는 그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
자, 우리 내면의 그곳, 의식이에요.
무엇이 의식이에요, 여러분? 무엇이 의식이에요?
지금 이렇게 물질만 있는 게 아니고, 물질만 있는 게 아니고,
깨어있는 이것, 여러분 감 옵니까?
하여튼 여러분, 꼭 깨달아야 할 거예요. 무조건 깨닫게 할 거에요.
이거 어려운 거 아니에요. 어렵다 생각하면 안돼.
지금 아니, 이 방 안에 여러분 의식이 있어요, 없어요?
크기가 꽉 차 있어요? 아니면 조그만 해요? 꽉 차 있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있는 모든 공간이 나의 의식 공간이에요.
따라하세요, 의식 공간!
항상 의식할 때는 공간을 붙여 버려요. 의식 공간!
의식 공간을 선에서는 '마음자리'라고 해요. 마음자리.
한자로는 心地, 마음 땅.
여러분 항상 우리가 의식 공간에서 살아요.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의식 공간이 부처님 손바닥이에요.
그리고 우리들은 원숭이, 몸은 원숭이야.
손오공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해도 자기 의식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근데 그걸 알게 되면 내 몸만 그런게 아니고 모든 것이 내 의식 공간 속에 있어요.
안 그래요? 도대체 의식 공간은 크기가 있어야지.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지금 흐르고 있어요? 안 흐르고 있어요?
흐르고 있잖아요.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순간에 딱 내가 하고 있다.
계속 같이 따라 가고, 계속 이 순간도 새로운, 새로운 순간이 샘솟고 있죠?
그걸 내가 계속 타고 간다.
근데 한 생각 딱 빠져버리면 놓치고 과거로 쑥 빨려 들어간다.
30:01~ 끝
정신 차리고 다시 현재를 챙긴다. 매 순간 순간 우리는 이미 타고 있어요.
그런데 놓치고 생각 따라서 집 나가 버린다 이거예요.
두 가지 차원,
용을 타고 있는 차원인가? 현재를 타고 있는 차원인가?
의식 공간에서 깨어 있는 차원인가?
아니면 생각 속으로 쑥 들어가서 이 분별 세계로 떨어진 차원인가?
분별 세계로 떨어지면 촉수애취(觸手愛取, 손에 닿는 사랑을 취함),
생로병사, 고통이 쫙 벌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 세계를 내가 반복해서 할 것인가?
매 순간 순간 선택의 문제다.
자, < 그래서 우리 내면의 그곳,
바로 진리를 듣고 알아차리는 그 자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도달하는가?
돌이키면 돼요.
자, 같이 하세요.
회두시안(回頭是岸), 회(回), 돌린다, 돌이킨다. 두(頭), 머리를.
생각 따라 나간 머리를 돌린다. 현재로, 이 자리로,
이제 현재, 이 자리, 하면 감이 옵니까?
깨어 있는 의식, 이 공간, 의식 공간,
회두(回頭), 머리를 돌리면 곧 바로 피안이다는
회두시안(回頭是岸), 고개만 돌리면 바로 피안이다. 극락 정토다.
그리고 알고 보면 한 순간도 실제로 떠난 적은 없다. 극락에서,
아, 참 희한하지 않나요?
여러분 이거 이거 느끼면 신기하지 않나요?
우리는 지금까지 극락정토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도
꿈을 꾸듯이 생각 속으로 빠져 가지고 그 지지고 볶고 하는 걸
하고 있다는 거죠.
꿈 아니에요?
이 자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면서
한 생각에 속아 가지고, 한 생각, 그 마음 뺏긴 거,
그거 하나 따라서 지금 집 나와 가지고 개고생을 지금 이렇게 하는 게,
지금 인생이라는 거죠.
아이러니컬하게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우리가 정신 차리고
길을 모색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다가
여기 와서 한 생각 돌이키면 이 자리고,
이 자리에는 고통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이렇게 우리가 공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인연이 참 고마운 것 같아요.
마지막 한 줄은 < 그 자리에 이르게 되면 >
여러분, 그 자리, 한 생각 돌이키면 이 자리인데, 이 자리에 이르게 되면
< 가슴이 벅차고 충만한 느낌이 들면서 우리 내면에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 맞아. 이것이 진리야. >
우리 심정하고 같지요?
톨레가 이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래, 미스타 톨레, 예스, 이거 진리 맞아, 이거야.
한 생각 돌이키느냐, 생각 속에 빨려 들어가느냐? 요거 하나 차이다.
근데 하루에 5만 가지 생각이 덮친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깨어서 이 생각을 보느냐.
이게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생각 보기, 하나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여러분,
생각을 보게 되면, 그 많던 생각이 띄엄띄엄 잦아들어요.
이해되세요? 먹장 구름이 점점점점 흰구름으로 변해요.
그러면 어떤 생각들은 나의 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지장을
못 주는 것들이 많아요.
그걸 알 수 있어요.
생각을 보게 되면 나중에는 대부분의 생각은 일어나도
아무런 나한테 영향을 못 주는 생각들을 주로 보게 돼요.
근데 만약에 어떤 생각은 좀 마음에 뭔가가 오잖아요.
그러면 틀림없이 그 생각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고,
그리고 그 반복되어 일어난다는 말은
내가 그 생각 내용에 마음이 뺏겨 있다는 증거에요.
그거는 풀어야 돼요.
반복되어 일어나는데, 아무런 나한테 영향을 못 주는 그런 것들은
다 흘러 지나가 버리고, 흰구름처럼 지나가는데,
어떤 것들은 반복해서 일어나면서 나한테 뭔가 감정을 일으켜요.
오케이?
그런 것들은 한 번 추적을 해 봐야 돼요.
그러면 틀림없이 내가 그 문제에 마음을 뺏겨 있어.
그러면 그걸 해결해야 돼요. 이해되세요?
그거 풀어야 돼요.
그걸 풀면 생각이 안 나, 더 이상.
그러니까 생각은 말하자면 병의 증상이에요, 증상.
그 생각을 통해서 내가 어딘가에 지금 내 마음이 팔려 있다는 거,
내 마음을 뺏겨 있다는 거, 그걸 내가 알 수 있게 돼요.
그럼 그것을 해결해야 돼요. 해야 돼요.
해결 안 하면 계속 나니까, 내가 시달리니까.
그 지혜는 여러분께서 잘 살펴보면 지혜가 나와요.
이거는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구나.
그렇게 여러분, 섣불리 하시지는 말고,
그러나 계속 관찰하다 보면 같은 패턴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거기에 내 마음이 묶여 있다는 거니까
하여튼 기회를 가지고 그걸 해결을 해야 돼요.
이해되나요?
그래서 웬만한 걸 다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생각이 아름다워요.
구름이, 흰구름이, 흰구름 없으면 너무 너무 재미 없어.
적당히~ 구름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살아간다~~.
그럴려면 부지런히, 지금은 관찰하는 힘은 약하죠? 관찰하는 힘은 약하죠?
그러니까 관찰하는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에요.
이거는 명상이든 참선이든 뭐든 간에, 일단 마음 공부의 기본은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그러면 지혜가 나와서 해결하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번 생이 펼쳐지고 있는 거에요.
알고 보면,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숙해지는 거에요.
자,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