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김영일의 시 세계 ‘생’과 ‘세월’의 함수(函數)와 시적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인생과 ‘세월’의 시간성 융합 현대시의 위의(威儀)는 대체로 그 시인의 내면에서 확고하게 성찰되고 ‘생(또는 인생)’을 지적(知的)으로 승화한 시정신과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경향으로 현현된다. 이러한 시정신의 발현이 곧 그 시인의 인격과 인생의 품위와 대등한 상관성으로 시적 진실을 탐구하는 시인들의 열정을 간과(看過)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작품에서 구현하려는 진실이 어떠한 지향성으로 분사(噴射)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시인에게 부여된 지적 소양과 인격체의 심저(心底)에서 숙성된 인생의 진실이 작품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연유가 바로 ‘인생이란 무엇이냐’라는 인생론적인 대명제를 탐구하는 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T.S 엘리엇은 시는 오직 인간의 능력을 발양(發揚)하기 위해서 우주를 비감성화시킨 것이라는 시학적인 논지는 우리에게 긍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간의 능력’은 바로 현실적인 생활 방식에서 좀더 가치관이 깊게 투영된 고차원의 우주적인 메시지를 요구하는 능력의 발양이 시적 진실과 접근해질 때 독자들의 공감대가 확대될 것은 자명(自明)해 진다. 여기 김영일 시집『이슬꽃 무얼하고 계시나』를 일별하면서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보는 것은 그의 작품에는 우리들이 현재를 살아가면서 가장 고뇌하는 인생(혹은 생명)에 관한 시적 화두가 그의 정서에 큰 축을 형성하고 있어서 우리 현대시가 바로 자신을 인식하고 성찰하면서 상상력을 확충하는 다양한 시법(詩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일 시인은 지금까지『내 머물 곳 어디』등 5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있는 중견 시인으로서 그의 체험에서 상상력으로 승화한 소재와 주제가 바로 그의 인생에관한 진실의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심곡 울리는 산새들 지저귐 녹음같이 어우러졌다 무성한 잡목 숲은 불볕에 양산을 편다 산야에 소생하는 생명들 서로가 샘이 난 듯 성스런 화음이 상생한다 생사가 진득이는 아우성들 생의 질서는 유한하지만 오가는 희비喜悲 끝이 없어라 --「청산」전문 이 작품은 소재 ‘청산’에서 추출한 이미지가 ‘산야에 소생하는 생명들’이다. 이 생명들에서 ‘성스런 화음이 상생’하는 자연의 섭리와 조화가 우리들 인생에게 무한으로 제공하는 ‘심심곡’의 생명성이다. 또한 김영일 시인이 형상화하는 메시지는 마지막 연에서 ‘생사가 진득이는 아우성들 / 생의 질서는 유한하지만 / 오가는 희비喜悲 끝이 없어라’라는 화자(話者)의 어조(語調)에서 확연하게 적시(摘示)하듯이 ‘생사’나 ‘생의 질서’ 그리고 거기에서 형성되는 인간들의 ‘회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삶의 여정」에서도 ‘ 과거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 미래는 꿈과 희망이 있고 / 현재는 시련도 행복도 있다’는 현실적인 긍정과 동시에 ‘뜻 없이 자존심 내려놓고 / 에두른 그 비련悲戀 감추는데 / 누굴 위한 변명인가 / 이제는 안타까운 추억 / 영원히 품고 가리다’라는 그의 인생관이 적절하게 현현하고 있다. 황혼과 함께 밤이 오는가 기다림 작정하고 동이 트는데 당신이 오실 길 가꾸고 가꾸어서 길섶마다 파릇파릇 새싹을 틔우나 오실 날 회심回心 길 기약 없는데 애간장 저린 사연 어찌 미워하리 덧없는 세월 아쉬운 심병心病을 기꺼이 수술대에 맡겨 보련다 먼 길 천근 같은 짐 벗어 버리고 저 길을 따라가렵니다 --「덧없는 세월」중에서 이 ‘덧없는 세월’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생명성과 인간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세월’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영일 시인은 이 시간성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긴긴 세월 기약인 듯(「신천지」중에서)’라거나 ‘유년이 남기고 간 / 세월의 여운들을 / 어찌 그냥 지나치리 // 소꿉장난 살림살이 / 그 시절 그때가 / 긴긴 여정 그립네요(「여운들」전문)’, ‘세월은 정지도 변명도 없지만 / 긴긴밤 그 생각 부둥켜안고 / 못 견디게 반항할 뿐이었던가(「변명」중에서)’, ‘모은 재산 두고 가려니 / 아까워서 살고파서 / 손발 싹싹 비비지만 / 흘러가는 저 세월을 / 그 누가 역류시키리(「천성산」중에서)’, ‘세상일 인간사 수심愁心 이 끝없는데 / 누님 모습 사려안고 그 세월에 묻힌다(「그 이름」중에서)’ 그리고 ‘이런저런 그 사정 / 다 들어 주고 나니 / 덧없는 세월만 흘러가네(「무정한 세월」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로 삶과 인생의 애환을 심도(深度) 있게 천착(穿鑿)하고 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인생사와 시간성의 융합(融合)은 현실적인 삶의 중추적인 사유(思惟)의 핵(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외적인 사물에서 이미지나 은유의 시법으로 형상화하여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산하는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2. ‘그리움’과 정한(情恨)의 조화 김영일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정한의 이미지는 남다르다. 그가 불망(不忘)의 심리적 저변에는 ‘그리움’이라는 정한이 각인(刻印)되어 있다. 대체로 이 ‘그리움’의 정체는 사랑과 연결되는데 그 사랑 자체가 현실적으로 해지(解止)되었거나 성취할 수 없는 사랑의 비련(悲戀)의 현상이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게 투영된다. 차마 지울 수 없습니다 그 목소리 듣고 싶어 귀 기울여도 바람소리뿐 밤새워 불 밝혀도 오지 않네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보고파서 까맣게 멍이들었네 삼경에 창문 닫고 등불 끄고 누웠는데 그리움은 별처럼 심지心志 속에 반짝입니다 --「구름 벗」전문 이 작품에서 우리는 김영일 시인이 ‘차마 지울 수 없는’ 그 무엇의 형상이 내면에서 요동치고 있다. ‘그 목소리 듣고 싶어’도 ‘바람소리뿐’ ‘밤새워 불 밝혀도 오지 않’는 대칭적인 상대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그에게는 ‘그리움’이라는 괴물로 남아서 ‘삼경’까지 그를 불면으로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그가 성취를 위해서 염원하거나 기도하는 ‘심지 속에’는 ‘그리움=별’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면서 ‘그리움’을 가속화하고 있는 형상으로 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초여름 해 저물자 푸른 산이 더욱 먼데 하늘 땅 잠들어 산간 마을 한적하다 봄풀이 푸르면 오신다던 님인데 눈물이 앞을 가려 보고 싶어 서럽구나 가슴에 저며 저며 님 향한 이 심중心中 지금은 어느 곳에 무얼 하고 계시는가 안타까워 매달려도 흘러가는 이 밤을 이제 가면 다시 못 올 의미 있는 밤이여! --「무얼하고 계시나」전문 여기에서는 그가 시도하고 탐색하려는 그리움의 의도가 명징(明澄)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체로 그리움에는 대상의 화자가 그 어조를 어떻게 적시하느냐에 따라서 그리움에 대한 척도(尺度)와 범주(範疇)를 이해하게 되는데 김영일 시인은 우선 ‘보고 싶어 서럽구나’ 혹은 ‘가슴에 저며 저며 님 향한 이 심중心中 / 지금은 어느 곳에 무얼 하고 계시는가’라는 탐색의 언어를 통해서 상대가 보편성을 지닌 범인(凡人)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는 다시 마지막 결론에서 ‘이제 가면 다시 못 올 의미 있는 밤이여!’라는 절망적인 어조가 그의 심중에서 오랜 시간이 숙성된 사랑의 진실을 절규하듯이 현현하고 있어서 그가 구가(謳歌)하려는 그리움의 실체는 바로 그의 사랑학과 일치한다는 정감(情感)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리움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가슴에 고이 이는 / 그리움 아픈데 // 애간장 저민 미련 / 그 어찌 지우리오(「가슴꽃」 중에서) - 온다는 기척도 없이 / 이슬처럼 왔다가 / 바람같이 떠난 당신(「애증의 길」중에서) - 임자 잃은 나룻배도 / 파도 같이 삐걱삐걱 / 소리 내어 울고 있습니다(「이별」중에서) - 향기로운 바람아 / 그리운 사람아 / 의리와 정이 흐르는 / 강물이 있어야 사랑도 있고 / 행복도 있습니다.(「정」중에서) - 그리워 보고파서 님 생각 집을 짓고 / 이대로 한 세상 부질없는 소망도 / 두고두고 애절 함과 아쉬움뿐인 것을 / 정든 곳 저 저기 바라보고 있노라면 / 매달리는 추억들이 발길을 붙잡네요(「님은 먼곳에」중에서) - 주어진 용서는 / 천륜天倫의 후덕厚德이다 / 구름같이 떠난 이를 / 바람 간들 어찌 잡을 까(「구름같이 떠난」중에서) - 기다리는 마음에 / 전해 오는 설렘도 / 그리움 아파서 가슴 메입니다(「인연의 꽃」중에서) 이와 같이 김영일 시인의 ‘그리움’은 어떤 인연에 의해서 형성된 화자가 그 그리움의 대상으로 현현되고 있다. 더구나 작품 「그리워합니다」중에서 ‘봄볕 보듬는 민들레꽃처럼 / 나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라는 어조에서 감응(感應)할 수 있듯이 그의 ‘그리움’은 이미 예상된 상대성(당신)이 시적 소재로 발현해서 절실한 언어로 공감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3. 자연서정과 순수 정취(情趣)의 감응 김영일 시인에게서 다시 조감(照鑑)할 수 있는 시적 정취는 만유(萬有)의 자연 서정에서 새로운 감응을 흡인(吸引)시키는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자연은 우리 인간들과 교감하는 가치나 신성(神性)이 충만한 존재로서 인간의 정서나 사회에 유익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음에 유의하게 한다. 세월이 쉬어 갈 봄 가지에 사춘기 소녀가 내숭을 떨고 있네요 소망도 자존심도 하나뿐인데 심원心願은 푸르게 중천中天에서 반깁니다 만고萬苦에 일군 행복 소중한 생신生新이련가 애송이 꽃잎 염원 감출 수 없다지만 춘풍은 못 견디게 동심을 흔드는데 새소리가 듣고 싶어 오셨나요 생각나 못 내 겨워 하얀 등불로 밤을 밝힙니다 --「목련꽃」전문 그렇다. 김영일 시인이 탐색하는 자연 서정은 우선 자기에 대한 서정적 자아(自我)의 추구를 위한 외적 사물과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적시하는 시적 상황과 이미지의 투영에서 적나라(赤裸裸)하게 현시(顯示)되고 있어서 그의 심저(心底)에 흐르고 있는 순수성이 잔잔하게 현현되고 있다. 그는 이 ‘목련꽃’에서 감응하는 ‘사춘기 소녀’의 ‘내숭’으로 은유화하는 시법은 자연 그 자체보다는 자연(목련꽃)에 대한 시인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음미(吟味)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고 김준오 교수의 『시론(詩論)』에서 명시했듯이 감상적 오류인 자연의 인격화-즉 동화(同化-assimilation)로서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투사(投射-project)인데 이는 시인이란 정체가 없기 때문에 그가 계속해서 어떤 다른 존재를 채우는 것, 곧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로써 낭만적인 자연관의 두 가지 원리를 주목하게 된다. 김영일 시인은 이 ‘목련꽃’에서 ‘내숭을 떨고 있네요’나 ‘새소리가 듣고 싶어 오셨나요’ 그리고 ‘하얀 등불로 밤을 밝힙니다’라는 어조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듯이 그가 ‘목련꽃’과의 교감은 동화의 원리를 적용한 시적 형상화로써 그의 ‘심원(心願)’은 ‘소망’과 ‘염원’ 등이 ‘세월’과 동시에 순정적인 정취로 나타나고 있다. 서산에 해 질 때 노을빛 고운데 초가지붕 넝쿨에서 박꽃이 밤을 밝히네 순수를 별에게 알리려고 어두움 끌어안고 하얗게 피었나 해가 뜨면 꽃잎 다물고 해가 지면 꽃잎이 피네 인고에 피워낸 순결 밤을 다스리는 여심 너와 함께 이 한밤 깊은 시름 달래 보는데 초경도 오경五更을 넘어서니 아침은 속절없이 꽃잎을 접네 --「박꽃 여인」전문 이 ‘박꽃 여인’에서도 동일한 시법이지만 이는 김영일 시인이 객관적으로 응시(凝視)하는 사물의 형태로써 ‘박꽃’의 내면의식이 바로 그의 심중에서 분사하는 진솔한 사유의 일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고에 피워낸 순결 / 밤을 다스리는 여심’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상대성의 화자가 내면에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순수를 별에게 알리려고 / 어두움 끌어안고 하얗게 피었나’라는 어조에서 명징하게 표출되었듯이 ‘너와 함께’라는 화자는 이를 투사의 원리로 자신과 ‘너’가 공존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법은 김영일 시인이 간구(懇求)하는 서정적 자아의 실현과 함께 그가 작품으로 승화하려는 이면에는 자연 현상에 명민(明敏)한 감응으로 직시함으로써 획득하는 자연이 소지한 진리를 인간과 공유하는 어떤 질서의식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파스칼도 그의『팡세』에서 ‘자연은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 우리들의 기교는 그들의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가두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인 아니다.’라는 언지로 대자연관에서 형성하는 이중적인 사유는 금물이다. 우리 시인들은 오로지 순정적이면서도 순종의식의 자연관과 서정성을 융합하는 시정신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서정적 자아의 탐색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서정성은 많은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작품「꽃잎 지는 밤」「봄이 오면」「가을 잎새처럼」「진달래꽃」「매화나무」「자연의 소리」「낙엽」「계절꽃」「해거름」등 이뤄 헤아릴 수 없이 자연 풍광이나 정취에 몰입해 있다. 4. 유적지 견문(見聞)과 교시적(敎示的) 기능 김영일 시인은 이와 같은 생명이나 자연관에서 좀더 시야를 확대해서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유적지의 견문을 시작하고 있다. 이는 이 유적지가 갖는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인간과의 함수관계를 추적하는 일로써 이들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우리들에게 교시적인 기능을 시적 메시지로 전달해주는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그가 찾아다닌 유적지는 대체로 경주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펼쳐진다. 대체로 그 지명만 살펴보면 ‘포석정’, ‘골굴암’, ‘백률사’, ‘반월성과 안압지’, ‘대왕암’, ‘선덕여왕릉’, ‘계림숲’, ‘첨성대’, ‘봉황대’, ‘오릉’, ‘천마총’, 등등이다. 이처럼 그가 경주시내에 위치한 유적을 방문하면서 그 유적이 간직한 역사적인 사실(史實)뿐만 아니라, 실생활(real life)과 교감하는 환경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더욱 지적인 감응력으로 접근하게 되고 사유의 확대로 당시의 실상과 역사적 의의를 실감하게 느낄 수가 있다. 경주 남산 서쪽 자락 배반동 숲 속 신라 천년 흥망 깃든 고적古蹟이 유적幽寂인데 노랫가락 권주가勸酒歌에 태평성대 자축自祝했던가 치욕주恥辱酒 한 잔 술에 청풍도 울고 왕궁도 울었다네 유상곡수流觴曲水* 시 한 수에 그 세월에 취해 본다 온종일 기다려도 그때 그 풍악소리 없는데 사색은 고요히 고금古今을 넘나 든다 꽃 넋은 술 취해 노을밭에 비틀거리는데 세월이 두고 간 돌홈만이 오가는 이 발길을 붙잡네요 --「포석정」전문 그는 신라 태평성대를 차축하면서 술잔을 돌렸던 ‘포석정’에 대한 감회(感懷)는 우리들이 역사적 담론에 머물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감각으로 반추(反芻)하는 시법이 바로 ‘유상곡수流觴曲水(註 :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흘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는 놀이) 시 한 수에 / 그 세월에 취해’ 보거나 ‘온종일 기다려도 / 그때 그 풍악소리 없는데 / 사색은 고요히 / 고금古今을 넘나 든다’는 어조는 당시의 현장이 지금의 사색으로 형상화하는 ‘세월’의 무상을 읽게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꽃 넋은 술 취해 / 노을밭에 비틀거리는데 / 세월이 두고 간 돌홈만이 / 오가는 이 발길을 붙잡네요’라는 결론으로 사적(史的)의미보다도 더 진하게 다가오는 세월의 흔적이 생생한 메시지로 발양(發揚)되고 있다. 세월도 못다 지울 마애불상 저 미소 중생구제 보람인 듯 나그네 맘 붙잡네 굴과 굴 이어진 길 바위 계단 오르내리는데 마애불 절벽 아래 솟은 금강수 달콤한 천년수에 심신을 달랜다 --「골굴암」중에서 김영일 시인이 천년 고도의 정취에 몰입하는 내면에는 항상 ‘세월’이 동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나온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장구한 역사성에서 우리의 얼, 민족정신이 무엇이며 어디에 놓여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현실적 문제에의 접맥(接脈)을 염원하고 있다. 그는 모든 시편에 주(註)를 붙여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이 ‘골굴암’의 경우에는 ‘골굴암 :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에 있는 함월산 반대편에 12곳으로 구분된 천생(타고난 바, 날 때부터, 당초부터) 골굴암은 기림사의 암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금강수 : 마애불 절벽 아래 물은 많지는 않으나 맛이 달다. 이 샘 이름을 금강수라 한다.’라는 해설을 붙임으로써 우리들의 이해를 높일 뿐만 아니라, 공감도 배가(倍加)되고 있다. 대웅전 뒤 삼성각 옆 능선길 이어가니 정상 암벽에 삼존마애불좌상 계시네 공양비에 새겨진 인물상 옷차림은 부인복 통치마에 허리 덮인 상의 이 또한 신라인의 의상이 아닌가 --「백률사」중에서 이러한 시편들에서는 신라 천년의 생활상과 신라인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교시적인 기능이 철저하게 부각(浮刻)되고 있어서 현대인들이 탐방해서 만끽(滿喫)해야 할 정경(情景)이 안온하게 적시되어 있다. 그는 특히 ‘마애불상’에 대한 교감이 절실하게 현현되고 있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불교적인 신심의 발양으로 ‘이차돈의 거룩한 순교’나 ‘중생 구제’라는 고차원의 시정신이 바탕으로 형성되어 그가 직시하는 현실과의 접목을 기원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김영일 시인은 이 시집 『이슬꽃 무얼하고 계시나』를 통해서 이 ‘이슬꽃’에 관한 서정이 ‘가슴에 피어난 연두빛 고백 / 수줍은 사춘기 같은 순아인가 // 풀숲에선 여치가 새벽 문을 여는데 / 눈치 채인 내마음 고적孤寂한 자리 / 마중 나온 초로草露꽃이여 // 두 날개 활짝 펴는 눈부신 햇빛 / 고고한 당신을 향하여 / 어느덧 가부좌 틀고 /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는 순정이 그의 심안(心眼)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순수 서정의 범주에서 그는 생명과 시간성의 함수관계로 그의 시적 진실이 구명(究明)될 것이라는 기대가 김영일 시학의 정점으로 정립할 수 있다는 신뢰가 영원성을 가진다.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