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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쓰기 / 최해기
연보기간 : 1947-2022년까지
연도 | 나이 | 내 용 |
1 | 1947 | 경북 경주시 천북면 화산1리 264번지에서 경주최씨 사성공파 고운 최치원선생 29세손으로 음력 병술년 4월23일 출생하였다. (부:최현술, 모:이위봉) |
5 | 1950 | 한국전쟁으로 경주안강전투에서 아버지 전사하셨다. 온가족이 피난길에 나섰다. 경주보문들에서 살다가 관해동재를 넘어 대종천에서 고생을 하다 귀가했다. |
9 | 1954 | 천북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경주 천북면 화산1리에서 면소재지 동산1리까지 걸어서 등하교하였다. |
15 | 1960 | 신라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경주시내 외가댁에서 외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였다. |
18 | 1963 | 경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생들과 학교 옆에서 자취생활을 하였다. |
21 | 1966 | 대구교육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가장 가격이 싼 자취방을 얻어 생활하였다. 휴일에 고향을 다녀오니 도둑이 들어 책까지 가져가버렸다. |
23 | 1968 | 영덕 달산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경주에서 포항을 지나 영덕까지 비포장 길을 달려 이불보따리를 메고 도착하니 학교급사가 보따리를 머리에이고 학교숙직실에 던지고 가버렸다. 그 마을의 총각처녀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면장따님과의 혼인 건의도 있었다. |
24 | 1969 | 안동 36사단으로 입대 휴직을 하였다. 입대를 하고 나니 군 생활을 안 해도 될 사람이 왔다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동훈련소에서 총검술을 훈련받을 때는 너무 추워서 아들 낳아 군대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배가고파 구보를 하면서 건빵을 몰래 입에 넣으며 달린 적도 있다. 사격훈련하기 전의 기합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서울 오류동에서 훈련 기간 중에는 배가고파 쓰레기통까지 뒤진 기억이 난다. 대구에서는 아침저녁으로 기합을 받아야만했다. 백령도에서의 군대생활이 가장 즐거웠다. 결국은 3년 동안 서울과 대구 백령도 김포에서 의무를 마치고 나왔다. 마치고나오니 아름다운추억으로 남아있다. |
27 | 1972 | 영덕 달산초등학교에 복직 부임하였다. 초임지에 또다시 근무명령을 내려 1년 근무하고 고향경주로 옮겼다. |
이진순과 결혼하다. 청안이씨 집안의 참되고 착하며 예쁜 분을 포항 중명마을에 사시는 막내고모님이 소개해주셨다. 포항시내에서 선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만나는 날 둘이서 사진관에 가서 사진까지 찍었다. | ||
28 | 1973 | 경주 왕신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초등학교6학년 때 선생님이 교감으로 계셨다. 저를 교무부장에 임명하셨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제일 행복한 교사시절이었다. 제일 잘 나가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만 알뿐이다. 가족과의 연락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너무 안타깝다. 명복을 빌 뿐이다. |
29 | 1974 | 장남 최유식 출생하다. 나의 고향 경주 왕신초등학교 근무 때 경주시내 경주병원에서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주 기뻤다. 자전거 앞 안장에 태워 다니곤 하였다. |
31 | 1976 | 경주 현곡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왕신보다 집에서 더 가까운 현곡초등학교로 옮겼다. 오토바이 바람이 불어 동료들과 가족을 뒤에 태우고 포항 울산 등으로 여행을 다니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위험한 일이었다. |
32 | 1977 | 차남 최광식이 출생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차남을 경주 시내 이웅길 산부인과에서 맞이하였다. 차남까지 얻으니 더욱 기뻤다. |
35 | 1980 | 대구내당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2년제 대학으로는 만족이 안 되어 4년제 대학을 가기위해 대구로 전근을 하였다. 아버지의 덕을 많이 입었다. 하늘에 계시지만 아들을 돌봐주셔서 무사히 대구로 옮길 수 있었다. |
36 | 1981 | 대구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였다. 낮에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밤에는 대학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였다. |
37 | 1982 | 제주도 한라산에 올랐다. 대구대학교 사범대학 졸업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한라산도 오르고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용두암 앞의 바다에서 수영하다 힘이 모자라 목적지까지 갈 수 없어 하마터면 바다귀신이 될 한 순간도 있었다. |
38 | 1983 |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하였다. 대구대학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계명대학교교육대학원에 입학시험을 처서 등록까지 하였다. 얼마 후 경북대학교교육대학원 입학공고를 접하였다.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시험을 처서 또 합격하게 되었다. 교육계의 원로 분들께 자문을 구하여 보았다. 시간이지나고나면 경북대학교교육대학원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계명대학교교육대학원에 등록한 것은 포기하고 경북대학교교육대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힘껏 공부하여 겨우 졸업은 하였으나 아직도 어느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
39 | 1984 | 대구신천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였다. 대학원을 다니느라 고생하여 그런지 위궤양 진단을 받아서 고생이 많았다. 대학원 졸업논문 작성도 포기하고 병 치료에 전념하였다. 심지어 교실청소를 아내가 와서 도와준 적도 있다. |
43 | 1988 | 대구지산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2학기가 되니 가까이 두산초등학교가 생겼다. 희망자는 내신을 내라고했다. 내신을 내었다. |
대구두산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오전오후 2부제수업이 실시되었다. 4학년 2부제 수업반을 맡았다. 허정희 선생님과 한 교실을 사용하였다. 청소정리는 대부분 허정희 선생님이 다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다. 그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대학원 졸업논문작성을 해보자는 대학원의 이중우 교수님께서 연락이 왔다.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논문이 통과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고마운 분이시다. 평생 그 은혜 잊지 못할 것이다. | ||
46 | 1991 |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나날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교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연구부장으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일반학교로 환원하였다. |
48 | 1993 |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갔다. 대구 구도회 회원들과 우리부부가 동행했다. 백담사에서 1박을 하였다. 다음날은 봉정암에서 1박을 하였다. 다음날은 비를 맞으며 대청봉을 지나 설악동으로 하산했다. 발에 물집이 생기고 아프고 고통이 심했다. 다음날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편히 쉬어 귀가하였다. |
50 | 1995 | 중국 심양소학교 안산 연길 백두산천지 용정 도문강을 다녀왔다.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직원 동행 자매결연소학교방문행사였다. 소학교의 환경이 우리들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환영하는 분위기는 대단하였다. |
51 | 1996 | 영국 스위스 프랑스 이태리 바티칸 시찰을 하였다. 국비연수였다. 우리 부부도 동행했다. 차남이 서울대학교 입학 후라 마음이 더 즐거웠다. |
뉴질랜드 오스트랄리아를 시찰했다. 대구여자고등학교 운동장 테니스회원 중 맺어진 청운회 가족 부부동행이었다. 서구덕원장님은 병원일로 동참을 못해 아쉬웠다. | ||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다. 법계사를 경유하여 정상에 올랐다. 대구불교대학 도반들과 동행하였다. | ||
52 | 1997 | 대구서평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테니스를 자주 즐겼다. 내가 윤리부장으로 주관한 남해 섬마을과 자매결연 행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54 | 1999 | 대구남동초등학교에 교감으로 승진하여 부임하였다. 겨울철마다 눈이 오면 자가용이 미끄러져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래도 동료들을 동승시켜 꾸준히 출퇴근하였다. |
울릉도 독도근처구경과 성인봉을 올랐다. 독도는 배를 타고 근처까지 가서 보안상 관망만하다 왔다. 성인봉은 숲이 울창하고 전망도 좋았다. 나리분지에 내려오니 온갖 농작물이 많았다. | ||
57 | 2002 | 대구용계초등학교에 교감으로 부임하였다. 교장연수를 이 학교에서 받으러갔다. 연수를 마치고 오니 운동회도 마쳤다고 했다. |
교육계 친구들과 중국의 상해 항주 소주 계림를 시찰하였다. | ||
59 | 2004 | 일본의 오사카 교토 나라를 시찰하였다. 대구구도회 도반들과 성지순례를 하였다. 배와 사찰에서 숙식를 해결하였다. 고미현 도반의 아버지께서 딸 출가를 걱정하고 부탁하신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도 홀로 살아가고 있다. 혼기를 놓치면 어려운가보다. |
대구수창초등학교 교장으로 승진 부임하였다. 용계초등학교 후배직원이 직접 운전하여 부임지학교에 도착시켜주셨다. 떡까지 한 상자 같이 들고 왔다. 부임지 직원들과 나누어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 ||
장남 최유식이 결혼하였다.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장태영님이 주례를 해주셨다. 사돈댁식구들이 호텔에서 숙식하며 보냈다. 지금은 주례선생님과 사돈께서 얼마전 하늘나라로 가셨다. 제행무상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 ||
교육계친구들과 중국의 북경 장가계 원가계를 시찰하였다. | ||
61 | 2006 | 대구동신초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손녀 최서연이 강아지띠로 태어났다. 나는 개띠인데 우리 손녀는 개띠가 아니고 강아지 띠란다. 같은 말을 아이들은 귀엽게 하고 있다. |
터키 그리스 이집트를 시찰하였다. 교직친구와 우리부부가 동행하였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 아직도 우리집화장대위에 놓여있다. | ||
62 | 2007 | 베트남 카보디아를 시찰하였다. 고등학교동기가 부부동행으로 다녀왔다. |
네델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를 시찰하였다. 교직친구들 부부가 동행하였다. 아내가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위암초기수술을 하였다. | ||
63 | 2008 | 대구청림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2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얼마 전 1대 교장 강찬석 우리 선배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
차남 최광식이 결혼하였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 예식장에서 하였다. 대구에서 버스 2대가 미리 올라가 캠퍼스를 한바퀴 돌아 식장에 도착하였다. 신부 댁 동생들의 춤추는 축하장면이 생생하다. | ||
대구교사불자회 지도위원에 위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제9교구본사동화사주지가 임명하셨다. | ||
대만 몽골을 시찰하였다. 교직친구들과 동행하였다. 야외를 나가면 자연화장실을 이용해야하는 풍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 ||
64 | 2009 | 중국 항주 황산 상해를 시찰 하였다. 교직 친구 분들과 하였다. |
대구불교대학입학에 입학하였다. 한국불교대학과 대구불교대학을 아내와 며칠간 참석 관찰한 후 대구불교대학에 입학하였다. 대구불교대학 도반들과 지리산 법계사를 참배 후 천왕봉을 올랐다. | ||
정년퇴직을 하였다. 직원들의 수고를 들기 위해 학교 밖 행사장에서 하였다. 많은 직원과 동료들이 참석해주었다. | ||
대통령 이명박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
65 | 2010 | 대구교사불자회 지도위원에 위촉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제9교구본사동화주지가 임명하였다. 손자 최민규가 범띠로 태어났다. 담배를 끊었다. |
미얀마를 시찰하였다. 대구불교대학 동문성지순례행사였다. 대구 교육삼락회 이사가 되었다. | ||
66 | 2011 | 대구불교대학 경전반에 입학하였다.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고시에 합격하였다. | ||
운경재단 곽병원 부설 운경건강대학에 입학하였다. | ||
67 | 2012 | 대구교육삼락회 이사가 되었다. |
68 | 2013 | 국립 대구박물관대학에 입학하였다. |
70 | 2015 | 어머니가 89 세로 별세하셨다. 효산 요양병원에서 장례를 치른 후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모셨다. |
71 | 2016 | 일본 후쿠오카 아소 큐슈 구마모토 나가사키를 시찰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의 모임 자우회 가 부부동행으로 갔다. |
말레이시아코타키나발루로 가족여행을 갔다. 차남의 계획과 보살핌이 많았다. | ||
72 | 2017 | 대만 타이페이 화련 사오슝을 시찰하였다. 대구불교대학동문 성지순례행사였다. 아내가 경북대학교병원성형외과에서 안와관골골절수술을 받았다. |
73 | 2018 | 중국 귀주성귀양 흥의 안순을 시찰하였다. 대구불교대학 성지 순례단 행사였다. 아내가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파열돼지 않은 대뇌 동맥 류 수술을 받았다. |
74 | 2019 | 제주도 일주와 마라도를 시찰하였다. 대구불교대학 53주간반회장으로 10주년행사 추진을 하였다. 마라도에도 모든 종교시설이 다있었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보로부드르사원 프람바난사원 발리를 시찰하였다. 대구불교대학동문 성지순례행사였다. | ||
75 | 2020 | 인도 델리 바라나시 사르나트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 가야 라지기르 날란타 파트나 바이살리 쿠시나가르 룸비니 스라바스타 럭나우 사카샤 아그라 보팔 산치 인도르 아잔타 오랑가바드 엘로라를 시찰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포교사단16기 대구지역단 주관 인도성지순례였다. 성지순례직전 코로나발생소식으로 성지순례회원희망자가 차츰 많이 포기하고 줄어들었으나 추진을 예정대로 하여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하였다. 성지 순례 다녀 온지 3일후 대구지역에서 대규모코로나가 발생하였다. 전국에서 1위 발생 지역이 되었다. 금주를 하게 되었다. 위내시경결과 의사의 권유로 금주를 결심하였다. |
76 | 2021 | 대구광역시수성구게이트볼협회 회장 조동숙 으로부터 게이트볼훈련 수료증을 받았다. 대구광역시수성구게이트볼협회 5분회 상록회 회장에 임명되었다. |
한국한비문학회 부설 한비문예창작대학장 문학박사 김윤중으로부터 수료증을 받았다. | ||
77 | 2022 | 차남 KTB투자증권 팀장 겸 이사가 되었다. 손녀 서연 대구 남산고등학교 1학년 7반 부반장이 되었다. 손자 민규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6학년2반에 편성되었다. 본인 대구환경대학1반과 담수평생대학원 금요 오후 대학4반에 출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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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낯익은 지역에 놀랍습니다
저는 경주 안강이 고향이고.
홀로 계신 엄니께서 여전히 안강에 계십니다.
어제 엄니 모시고 보문단지에 저녁 외식을 했고
제 동생이 경고 출신입니다.
제 동생의
까마득한 이력을 여기에서 뵙습니다..
진심 방갑습니다
담에 또 뵐게요
정리 잘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노트에 빈 장이 너무 많아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