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기 제 8회 마리아주 도서는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였습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4편의 단편 <초대>, <습지의 사랑>, <칵테일, 러브, 좀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담은 단편집입니다. 4편에 대한 발제와 토론이 폭넓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짧게나마 각각의 이야기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17년째 목에 가시가 박힌 채 살아가는 '채원'이 기이한 인물 '태주'와의 만남 이후에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초대>에서는 작품 내내 등장하는 '가시' 라는 제재가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단편 내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 '태주'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는 이견이 있기도 했지만, '가시'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채원이 받아온 억압, 느꼈던 폭력성에 대한 표상이라는 것과, '태주'의 존재가 가시처럼 몸에 박혀있던 억압과 폭력성에 반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채원의 욕망이 투영된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영문 모를 이유로 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물'과, 숲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숲'의 사랑을 담은 <습지의 사랑>에서는 작품에서의 장면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눴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흙과 비의 범람과 이영이 자신의 명찰을 여울에게 건네는 장면 모두 두 존재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좀비로 변한 아빠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엄마, 주연의 이야기 <칵테일, 러브, 좀비>에서는 '좀비'라는 작품의 특성에 맞게 내가 주연이었다면, 내가 엄마였다면 어땠을까,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좀비가 되었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흥미로운 가정을 전제로 각자의 상상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발제문이었던만큼, 가끔은 mbti의 N과 S가 대립되기도 하고,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리기도 하고, 전제의 가정에 다시 전제를 덧붙여가며 각자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의견으로 점철된 시간이었습니다.
비극적인 이유로 한날 죽음을 맞이한 일가족과 그리고 죽음 이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아들 세호와, 의문의 남자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나오며 진행되는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에서는 사람의 본성,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여유로웠던 과거에서는 선하게 묘사되던 인물의 현재가 악하게 변해버린 것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실재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동안의 저는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왔기에 사람의 성질이 바뀌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었는데, 조원 중 한 분께서 사람의 본성은 '역치'와 관련이 있어 선과 악의 역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선과 악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또한, 타임리프물에서 빠질 수 없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느냐의 여부를 넘어서서, 운명의 존재 자체에 대한 여러 주장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작년 여름에 처음 읽고 책을 덮은 뒤 흥분에 사로잡혀 가족들에게 줄거리와 결말까지 줄줄 읊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런 책을 재독하고, 약 2시간 동안 관련한 이야기들로 꽉 채우며,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은 물론이고, 지금의 내가 느낀 감정, 같은 책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끊임없이 나누는 시간은 이 책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칵테일 '페인킬러'는 과일맛이 느껴져 상큼하고도 달달해서, 서늘하고 어두운 책의 내용을 조금은 가벼이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과 같은 장르소설은, 작가가 그려낸 비현실적 세계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닮은 요소들을 발견하게 하고, 혹은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현실적인 세계 곳곳에 박아놓습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안심하며 보면서도, 빈번히 마주하는 나의 현실과 비슷한 부분에 놀라며 이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함께한 시간 내내 그 속에 같이 빠져들어 완전한 이입을 도와준 조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