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일),
오늘은 제35차 마애종 슬로우답사일 입니다.
오전 10시 전철1호선 신이문역 1번출구에서 7분이 모였습니다.
오늘 답사 일정은 의릉->천장산 하늘길->명성황후 초장지 홍릉->세종 신도비->영휘원을 답사하고 청량리역에서 귀가하는 일정입니다.
의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잠깐 철길을 살펴보고 갑니다.
철길의 침목 아래에 까는 자갈을 자갈도상(道床) 이라고 하는데,
자갈은 철길의 소음과 진동을 줄여서 기차의 완충 작용을 합니다.
일제강점기 안양 병목안 채석장에서 채취한 자갈로 경부선 철길에 깔았습니다.
역사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하늘이 숨겨놓은 곳' 천장산(天藏山)이 보입니다.
천장산 자락에 의릉(경종 릉), 홍릉(명성황후 릉), 회묘(연산군 생모 폐비 윤씨 묘), 연화사(회묘와 의릉의 원찰) 등이 조성되었습니다.
신이문역에서 약 700m 정도 걸어서 의릉에 도착하였습니다.
의릉 안내판의 하단에 벌써 문화재청에서 변경될 국가유산청으로 고쳐 놓았습니다.
의릉(懿陵) 정문
의릉 안내도 앞에서 의릉(懿陵)의 역사를 해설하는 박석환 회장님
의릉은 조선 제20대 경종(景宗, 1688~1724, 재위 1720~1724)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魚氏, 1705~1730)의 능입니다.
경종은 숙종(肅宗)과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 장씨(張氏, 희빈 장씨)의 아들로 1690년(숙종 16)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기간 동안 자식이 없어 이복동생 연잉군(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고 정사를 대신 맡겼으나, 이 일로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여 두 차례의 옥사(獄事, 신축, 임인옥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37세의 나이로 창경궁 환취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금천교(禁川橋) 앞에서 금천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합니다.
하드 웨어의 기능은 왕릉 주변에 흐르는 수맥을 모아서 흘려보내는 물길이고,
소프트 웨어 기능은 속계(俗界)와 신성한 구역을 경계 짓는 역할을 합니다.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만나서 제사를 지내는 제향(祭享) 공간으로 들어가는 홍살문(紅箭門).
벽도 문도 없는 하나의 기둥으로 된 홍살문은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로 붉은색을 칠하고 하늘로 향해 삼지창과 화살을 설치하였습니다.
홍살문 안쪽에 제관(祭官)이 향(香)과 축문(祝文)을 들고 가는 넓은 향로(香路)와 임금이 걸어가는 낮은 어로(御路)가 길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로 이루어진 홍살문 기둥은 팔각(八角)의 초석(礎石)에 박아서 세우는 굴립주(掘立柱)로 빗물에 나무 기둥이 썩지않도록 아래쪽에 배수 구멍을 뚫어 놓았습니다.
향어로 옆에는 제향을 드리러 온 임금이 4배를 올리고 왕릉 주인에게 고(告)하고 혼백(魂魄)을 부르는 판위(版位)가 놓여 있습니다.
홍살문 옆에서 바라본 의릉 모습
향어로가 끝나는 곳에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만나서 제향을 드리는 정자각(丁字閣)이 있습니다.
위에서 보면 제수를 진설하는 'ㅡ'자 모양의 정청(正廳)과 제향을 드리는 'ㅣ'자 모양의 배위청(拜位廳)이 연결된 모습이 정(丁-고무래 정)자 모습이어서 정자각이라고 부릅니다.
정자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정면에는 없고 배위청의 정면인 동쪽에 두 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향로와 연결된 구름문양을 새긴 소맷돌이 있는 계단은 신계(神階)이고, 어로와 연결된 임금이 오르는 계단은 어계(御階)입니다.
그렇다면 신하들은 어디로 올라가나요?
임금이 참석하는 친향(親享) 때에는 제신목계(諸臣木階)라고 하는 나무로 임시계단을 설치하여 올라갑니다.
※ 참고 :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에 설치된 제신목계의 모습
임금이 참여하지 않을 때에는 신하들이 어계를 사용합니다.
정자각으로 오를 때에는 두 손을 공수(拱手)하고 합보법(合步法)으로 경건하게 오릅니다.
정청은 배위청보다 위계가 높으므로 축대(築臺)를 한 단 더 올렸습니다.
정자각의 정청은 보통 세 칸으로 짓지만 의릉의 정자각은 양쪽에 익랑(翼廊)을 한 칸씩 두어서 다섯 칸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조는 형님 경종의 죽음(게장과 생감)에 직접 연루된 것으로 의심을 받았고, 어머니 숙빈 최씨가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의 악행(인현왕후 저주 사건)을 숙종에게 고하여 죽게한 미안한 마음에 경종의 능 조성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지붕의 추녀마루 위에는 잡귀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벽사의 의미로 잡상(雜像, 어처구니)를 올렸습니다.
붉은 기둥의 아래에는 주근도배(柱根塗褙)를 칠하였습니다.
하얀색은 구름을 상징하고 파란 테두리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새벽 안개가 드리워진 정자각이 구름위에 지어진 천상계로 보이도록 하여서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또한 어두운 밤에 빛을 발산하여 기둥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전장치 역할도 합니다.
문창살 아래에도 구름을 형상화한 여의문(如意文)을 그렸습니다.
배위청은 사방에 벽이 없는 공간으로 지었습니다.
배위청 앞쪽으로 향어로를 지나 홍살문이 보입니다.
정청 안으로 보면 뒤쪽의 신문(神門) 너머로 강(岡) 위에 능침의 끝부분이 살짝 보입니다.
정청 안에는 제수(祭需)를 진설하는 제상(祭床)과 항상(香床), 축상(祝床), 망료상(望燎床-제향 후 축문을 태우기 위한 망료기와 망료저를 올려 놓는 상)과,
손 씻는 대야를 놓는 관세상(盥洗床)과 제수와 제기를 옮기는 가자(架子)와,
산뢰(山雷, 술항아리)와 술잔(爵, 작)을 올려 놓는 준소상(遵所床) 등이 놓여 있습니다.
제수진설도(祭需陳設圖).
산릉제사(山陵祭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육류를 쓰지 않고 밀가루로 만든 유밀과(油蜜菓)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 제(祭-제사 제) : 상을 나타내는 시(示) 위에 고기(肉=月-고기 육)를 올려 놓은 모습이고,
※ 재(齋-재계할 재) : 상(示) 위에 채소(艸-풀 초)를 올려 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입니다.
49재나 수륙재 등 절에서 지내는 행사에는 육류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작(爵-술잔)은 왕과 왕비에게 각각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의 세 잔씩 올립니다.
아홉 종류의 떡(九餠)과 여섯 종류의 건과(乾果), 산자우리에 산자(糤子-찹쌀가루로 만든 유밀과)와 다식(茶食) 등을 진설합니다.
기신제(忌辰祭)
전주이씨대동종약회에서는 매년 8월 25일에 의릉에서 제향을 드립니다.
서쪽에는 하나의 계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서쪽에 있는 수라간(水剌間, 의릉에는 훼손되어서 없음)에서 제수를 올리고, 제향을 마친 후 축문을 태우러 내려오는 계단입니다.
정자각의 북서쪽에는 제향 후 축문을 태우고 모래로 덮는 예감(瘞坎)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기(건원릉, 정릉, 헌릉)에는 불교 영향의 소전대(燒錢臺)를 설치하여 축문을 불살라서 혼백을 하늘로 돌려보냈으나, 유교가 정착된 세종 이후부터는 축문을 태우지 않고 예감에 묻었습니다.
훗날 영조가 예감에 묻어둔 축문에서 벌레가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다시 태워서 묻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조상의 혼백과 동일한 축문과 폐백을 산짐승들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나무로 만든 뚜껑을 달아서 덮었습니다.
정자각 뒤 능침이 조성된 강(岡-산등성이 강)은 사초지(莎草地)라고도 부르며 좋은 기운을 머금어서 봉긋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향을 받은 혼령은 정자각 뒷쪽의 신문(神門)을 나와서 신교(神橋)를 건너 신로를 따라 능침으로 되돌아갑니다.
신문에서 보면 제상 뒤에는 혼령이 편안하게 앉아서 흠향(歆饗)하도록 신위평상(神位平床)이 놓여 있습니다.
예감의 반대쪽에는 산신석(山神石)이 놓여 있습니다.
왕릉이 조성되기 전에 이 산의 주인은 산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왕릉이 자리를 잡으면 왕릉 아랫쪽에 자리하여 제향을 마친 후에 산신제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제사때는 산신에게 먼저 고한 후 산제를 지냅니다.)
위계(位階) 순서로 왕에게는 4배(四拜)를 올리고, 산신이나 부처에게는 3배(三拜)를, 죽은 조상에게는 재배(再拜)를, 산사람에게는 일배(一拜)를 올립니다.
능의 주인을 알려주는 표석(表石)은 비각(碑閣)을 세워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조선국(朝鮮國)
경종대왕의릉(景宗大王懿陵)
선의왕후부 (宣懿王后祔)
선의왕후의 능을 조성 후 신하들이 부(祔-합사할 부)자 뒤에 무슨 글자를 써야할 지 영조에게 물으니 그냥 두라고해서 비워 두었습니다.
동원상하릉으로 조성되었으니 일반적인 부좌(祔左)는 아니고, 하(下)자를 쓰기도 좋지않아서 비워두었습니다.
능침 아랫쪽에는 보리수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정자각과 능침의 모습
※ 의릉 해설안내
매주 토, 일요일에는 왕릉해설사의 안내로 능침영역을 탐방할 수 있습니다.
슬로우답사 전에 해설사를 따라 답사한 능침영역을 소개드립니다.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으로 조성된 윗쪽은 곡장(曲墻)으로 둘러 싸인 경종(景宗)이 잠들어 계신 능침(陵寢)입니다.
능의 주인에게 공수배례(拱手拜禮)를 드리고 탐방을 시작합니다.
능침영역은 상중하의 세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계체석(階砌石)으로 구획된 상계(上階)에는 봉분과 혼유석을 조성하고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여 외부에 곡장을 둘렀습니다.
곡장 끝부분에는 능의 기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안쪽에 잡아 두는 망주석(望柱石)이 양쪽끝에 세워져 있습니다.
봉분(封墳)은 병풍석(屛風石)은 생략하고 난간석(欄干石)을 둘렀습니다.
봉분 앞쪽에는 혼유석과 장명등을 두었습니다.
혼유석(魂遊石)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누어져서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속에 머무릅니다.
정신(精神)인 혼이 육신(肉身)인 백을 찾아와서 노닐고 가는 곳이라서 혼유석이라고 합니다.
혼유석 아래는 왕의 재궁(梓宮-관)이 들어가는 입구여서 왕릉의 석물 중 가장무거운 돌로 덮었습니다.
혼유석은 북을 닮은 네 개의 고석(鼓石)으로 받치고 있는데 무서운 모습의 나어두문(羅魚頭文)을 새겼고, 입에는 열쇠를 물고 있습니다.
중계(中階)에는 석마를 거느린 문석인(文石人)이, 하계(下階)에는 무석인(武石人)이 주인을 지키고 있습니다.
문석인(文石人)은 관복인 복두단령(幞頭團領)을 입고 손에는 홀(笏)을 잡고 있습니다.
무석인(武石人)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칼을 잡고 있습니다.
봉분의 양쪽에는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각 두 쌍씩을 배치하여 능을 지키고 있습니다.
동그랗게 말린 석양의 뿔을 해설하는 오경희 왕릉해설사님
의릉의 석호는 꼬리를 등 위에까지 감아올렸습니다.
능을 등지고 곡장을 향해 앉아서 지키는 호랑이는 항상 앉아있습니다.
앉아서 호위하는 호랑이를 준거(蹲踞)라고 부릅니다.
호랑이는 이빨을 해학스럽게 드러내고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러 보호를 하고, 열두 방위에 난간석주(欄干石柱)를 세우고 십이지지(十二地支)의 글을 새겨서 방위(方位)를 표시하였습니다.
미(未) 방위는 십이지의 여덟번째로 양(羊)을 상징하고 정남에서 서쪽 30도 방향(8시 방향)을 가리킵니다.
서쪽 방위를 호위하는 문, 무석인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문석인(文石人)은 복두단령(幞頭團領)을 입고 손에는 홀(笏)을 잡고 있습니다.
두 단의 네모난 모양의 복두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홍패(紅牌)를 받을 때 쓴 공복입니다.
뒤쪽에서 보면 복두를 묶은 각(脚)이 양쪽으로 치켜올라가 있습니다.
초기의 양 각은 아래로 쳐져서 어깨 위로 늘어뜨렸습니다.
야(也-어조사 야)자 모습의 야자대(也字帶)의 한쪽 끝을 늘어뜨렸습니다.
야자대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석인이 대동한 석마의 꼬리는 굵고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하계의 갑주(甲冑)를 갖춘 무석인을 살펴 보겠습니다.
투구를 쓴 얼굴은 부리부리한 두 눈에 두터운 코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모습입니다.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입니다.
양손으로 움켜쥔 칼의 손잡이에는 도깨비 문양인 귀면(鬼面)이 새겨져 있습니다.
발끝까지 닿은 칼과 갑옷 밖으로 신발이 드러났습니다.
무석인의 뒷태를 해설하는 오경희 해설사님.
숙종 이후에 조성된 왕릉의 석물은 크기가 작아져서 해설사님의 키와 비슷합니다.
의릉 능침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무석인이 입고 있는 표범가죽의 꼬리입니다.
갑옷 안에 받쳐입은 표범의 꼬리는 동그랗게 말려 있습니다.
갑옷의 무늬는 물고기의 비늘모양으로 조각하였습니다.
이제 아래쪽에 있는 선의왕후의 능침으로 내려갑니다.
동원상하릉으로 조성된 왕후의 능에는 곡장이 없이 동일한 강(岡)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후세계의 어둠을 밝혀주는 장명등(長明燈)
장명등의 지붕은 팔작지붕의 모습입니다.
지붕의 처마에는 서까래와 부연의 조각은 생략하고 추녀마루 아래에 추녀가 새겨져 있습니다.
봉분 앞의 상계에 설치되어 있는 혼유석의 기능을 설명하는 해설사님.
혼유석은 네 개의 고석(鼓石)으로 받치고 있습니다.
선의왕후 능의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에도 열쇠를 입에 물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나어두문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혼령이 찾아올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위치를 알려주는 망주석
동쪽 망주석의 세호도 올라가고 있고,
서쪽 망주석의 세호(細虎)도 올라가게 새겼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쪽은 올라가고 서쪽은 내려오는 모습이지만 양쪽 모두 올라가는 모습으로 조각하기도 합니다.
세호(호랑이 또는 다람쥐 모습)의 등뼈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동원상하릉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선의왕후의 능을 지키는 문, 무석인의 모습
선의왕후 능의 무석인은 칼이 바닥까지 닿지 않고 들려 있습니다.
왕후 무석인의 갑옷에도 표범가죽의 꼬리가 늘어져 있습니다.
선의왕후 능 앞에서 공손한 자세로 방문 흔적을 남기고 내려옵니다.
경종의 의릉 영역은 1960년대에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가 이전되어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1995년 내곡동으로 옮겨갈 때까지 일반인에게 출입금지 구역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가 사용하던 옛강당(좌, 1962년 건축)과 회의실(우, 1972년 건축)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성 있는 건물로 인정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당 뒤쪽 길로 올라갑니다.
수령 160년의 향나무
향(香)나무의 향은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중화시켜주고, 장례절차가 끝나고 신위(神位)를 혼전(魂殿)에 모실때까지 혼령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왕실 제향에는 향나무를 바닷물에 오랫동안 담궈서 침향(沈香)을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바닷가 포구 지역에 향나무를 묻는 것을 매향(埋香)이라고 합니다.
내려오면서 뒤에서 바라본 곡장의 모습
유네스코의 권유에 따라 의릉 정문 바깥쪽에 2023년에 새롭게 조성된 의릉 역사문화관을 둘러봅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 소개
조선왕릉의 다양한 형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한 언덕에 왕과 왕후의 봉분을 위 아래로 조성한 능
단릉(單陵)/합장릉(合葬陵)
단릉은 왕이나 왕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이고,
합장릉은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입니다.
쌍릉(雙陵)
한 언덕에 왕과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능
삼연릉(三連陵)
한 언덕에 왕과 두 왕후 봉분 세 기를 나란히 조성한 능
경릉(景陵) :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능
6년의 시차를 두고 조성된 의릉의 경종 능(1724)과 선의왕후의 능(1730)의 석물 비교
시대별 석물의 변천사
복두단령에서 영조때 금관조복(金冠朝服)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의릉에 1962년 중앙정보부가 들어오면서 부터 1995년 내곡동으로 이전 후 복원된 후에 복원되어 가는 모습
오늘도 박석환 회장님의 명품 해설을 따라 7분의 선생님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오후 답사 내용은 별도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강호인해설사님 정성가득한 의릉 답사기 감사합니다.
이번 답사는 의릉만 볼려고 했는데 참여해주신 해설사님들 열정이 넘쳐서 천장산 하늘길 따라 명성황후 초장지와 영휘원, 숭인원까지 둘러봤습니다.
바쁘신중에도 시간 내주신 해설사님들 감사합니다~~~
회장님
어제도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멋진 해설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회장님의 명품해설 듣고싶었는데
못가서 아쉬웠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강호인 선생님!!
한자한자 읽으면서
감동가득합니다.
말로표현이 어려울정도로 세세하고
알기쉽게 너무 재밌고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글 읽으며
지하철에서 공부합니다.
함께하신 선생님 모두
더 건강해지셨을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제 총무님이 안오시니까 참석인원이 적었습니다.
다른 봉사활동 하시느라고 바쁘셨지요?
수고하셨습니다 ~
어제 슬로우 답사는요
그야말로 귀호강 눈호강의 절정이었답니다 초록의
숲속길에서 흡입한 피톤치드까지 머리를 상쾌하게 했으니 행복의 종합선물을 통채로 받았다고나 할까요~~
못온 사람만 손해지요~~♡~~
회장님
어제도 해설 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호인선생님!
석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감동 먹었네요~
늘 정성가득한 답사 후기글과 스크랩에 감사드립니다~~^
담달도 기대 만땅입니다요~^^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편안한 날로 연속 되시기를
기도할께요~^^
맞습니다.
어제는 의릉에서 왕의 숲길을 걸었고, 천장산 하늘길을 지나 홍릉 수목원 숲길까지 피톤치드를 종합셋트로 먹은 날이었습니다.
참석못하는 아쉬움을 늘 강호인샘
글에서 도움 받습니다
깜짝 했네요
오경희 샘은 저랑 가까운 활동샘인데
이렇게 보아 더욱 좋습니다
회장님 수고 하심에 샘들의
기량이 점점 깊어지는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그러셨군요.
오경희 선생님을 지난달 서삼릉 태실과 효릉에서 만나서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때 의릉 무석인의 표범 꼬리가 멋있다고 꼭 가보라고 하셨는데,
한 달 후에 의릉을 갔다가 뜻밖에 그곳에서 또 만났습니다.
혹시 고문님과 연락이 되면 안부 좀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강호인 연이 닿으셨군요
조만간 만나니 안부 전하겠습니다 ^^
혼유석~
혼유석의 의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