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같은 우렁각시
오 종 락
세상이 온통 번개 세상이다.
속도 경쟁이 치열한 탓에 정신이 어지러울 때가 있다. 선도하는 주범은 아마도 인터넷과 자동차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못지않게 이 분야에서 강자다. 이런 환경 탓인지 사람들의 행동 양식도 모든 게 빨리 빨리다. 외식을 나가서도 음식점에서 식사가 신속히 나오기를 원하고 전자제품 등의 서비스도 번개 같이 빠른 서비스라야 만족한다. 도로상에는 더욱 빨리빨리 움직인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는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고 달린다. 앞서 가는 차가 느릿느릿하면 용납이 안 된다. 일부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신호등을 피하여 인도를 점령하여 마구 빨리 달린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게 빨리 움직이는 것만을 보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어지간한 속도나 서비스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세상인지라 인터넷은 의당 더 빨라야 한다. 인터넷의 속성상 빨라야 제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이런 심리에 부응하여 이동통신사는 더욱 빠른 인터넷 속도 경쟁을 벌이며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간간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통신사가 쳐놓은 “전파 그물망”에 걸려 살아가는 형국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촘촘한 거미줄 같은 전파 그물망을 나 혼자 외면하고 빠져나오기도 쉽지가 않다. 이런 환경을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길을 가면서도 인터넷에 접속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스마트폰을 휴대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인터넷을 실은 스마트폰을 필수 휴대 품목 1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업무처리, 대금결제 등 중요한 일들을 다 해결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현금 휴대의 필요성도 현저히 감소하였다. 이런 현상 모두가 인터넷이 가져다준 산물이다.
각자의 손 안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인터넷과 결합하여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일을 시킨다. 이런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요리하며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환경과 문화가 사람들을 자꾸 조급증에 걸리도록 하는 원인이 되는 것만 같다. 신속만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기다림에서 느낄 수 있는 느긋함의 행복은 “빨리”라는 그늘에 가려 점차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인터넷이란 거대한 우주선을 함께 타고 정신없이 우주공간을 헤매고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그 우주선 탐승자의 한 사람이니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요즘 나는 이동통신사의 서비스 경쟁이란 밥그릇 싸움에 공짜밥(인터넷 무료사용)을 얻어먹고 있다. 이런 공짜밥은 내가 요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네들이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필요에 의하여 나를 불러들인 것이다. 나도 아무런 노력 없이 그냥 공짜로 이용하지는 않는다. 우리 가족 두 사람을 A회사로 데리고 가서 일정기간 머물면서 휴대폰을 사용해 주고 있다. 이런 나의 처지를 돌아보니 이동통신사의 영업 전략에 휩싸여 내가 “인터넷 양자”로 입양을 당한 느낌을 받는다.
위약금이란 제도 때문에 파양도 쉽지가 않다. 충성고객으로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다른 회사가 제시하는 좋은 입양 조건의 기회를 놓칠 때도 있다. 이동통신사들의 고객 뺏어오기 경쟁은 정말로 치열하다. 빠른 인터넷을 하나의 첨단 무기로 선보이며 전투를 벌인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고객이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고 머물러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큰 도움을 주는 모양이다. 몇 해 전 고객 쟁탈전쟁이 치열할 때는 고액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지급하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동통신사는 장기 이용고객에게 별다른 혜택을 주지 않고 신규 고객 모셔오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법을 어겨가며 혈안이 되어 있다. 오래전 B회사의 인터넷을 정액제로 장기간 사용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후배가 “선배님, 인터넷을 정액제로 오랫동안 사용하시면 손해를 봅니다.”라고 했다. 인터넷 요금을 할인해 달라고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만약에 할인을 해주지 않으면 다른 회사로 옮겨간다고 하면 된다고 했다. 하루는 B회사를 방문하여 장기 이용고객에게 아무런 혜택이 없다며 항의하자, 당장 그날부로 6개월간 무료 사용에다 사은품까지 주었다. 장기 이용고객에 대한 서비스 환경이 이런 식이다 보니 묵묵히 오랫동안 사용하는 고객은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 취급을 받는 게 아닌가 한다.
이런 영업방식은 시정되어야 하겠으며 장기 이용고객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빠르고 좋은 인터넷 환경을 누리며 사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우수한 인터넷 환경이라고 하여 어찌 좋은 점만 있겠는가. 영상디지털증후군도 조심해야 하며 절제하면서 사용하는 습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 걷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길을 가다가 골똘히 생각하다 전차에 부딪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물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몰두하였다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이런 행동은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공자는 논어의 팔일편에서 낙이불음(樂而不淫)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오늘날 같은 영상 미디어 환경에서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글귀가 아닌가 한다. 즐기되 지나치게 빠지지는 말아야 한다고.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의 각종 향기가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 향기를 맡으며 인터넷을 통하여 손쉽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또 카친이 보내온 사진과 좋은 글을 읽으며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나도 답례로 이모티콘으로 고마움에 응답한다. 어떤 날은 이른 아침 나에게 카톡을 제일 먼저 보내오는 초등학교 친구를 위해 좋은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선물로 보낸다. 그러고 나면 큰일이나 한 듯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환경에 익숙한 나도 촘촘히 쳐진 인터넷 그물망에 걸려 있는 한 마리 물고기 인간인가 보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인터넷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응애” 하며 태어날 때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손가락으로 드래그하는 동작이라고 한다. 즉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잠금화면을 미는 흉내를 내면서 태어나는 세상이라고 하니 어찌하겠는가! 엄마 뱃속에서 이미 전파를 통하여 엄마에게 태교를 받은 영향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미디어 환경에 접촉하고 있는지를 빗대어 하는 말이지만 유별나고 재미있는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인터넷 그대! 그대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숨어서 번개처럼 빠르게 일만 하는 그대는 정녕 인간을 위한 우렁각시가 맞는가? (2016.6.3.)
첫댓글 "촘촘히 쳐진 인터넷 그물망에 걸린 한 마리 물고기 인간인가 보다." 아주 인상적인 표현으로 공감을 느낍니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시대에 절제의 태도야말로 나와 주변인이 함께 잘 사는 길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점점 더 빨라져가고 있는 세상을 실감하는 듯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빨리 빨리는 우리 민족의 특유의 성품이랄까? 급한 성미 덕분에 급성장의 기적도 이루었지만 빠른것만이 능사가
아닌데도 모두들 왜그리 바쁘게 살아가는지 총알같은 세상 총알같은 글 총알같이 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이용만 한다면 인간을 위한 우렁각시 이기도 하지만, 허구와 장난과 위선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빨리 빨리등으로 여유가 없어지는 세상에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인문학이 활성화 되고 있는것이 중화작용인것 같기도 합니다. 좋으글 잘 읽었습니다.
**글제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글제, 총알은 어감이 좋지않고, 인터넷의 의미도 번개와 가까운 것 같으며, 글의 내용도 변경한 글제와 잘 맞은 것 같아 변경하게 되었으니 양해바랍니다.
요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적절히 요약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알 권리가 충족되고 있는데 모를 권리는 무시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기다려지는 것이 인터넷 소식. 우렁각시가 맞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동화속의 우렁각시가 장독대를 들락날락..... 시골풍경이 그리워지는 비오는 날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