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단 사령부내 태백중학교 학도병 전적비에서 신상균 3사단장을 비롯한 화백회, 백골장병들이 추모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3사단)](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ds.shinailbo.co.kr%2Fnews%2Fphoto%2F201906%2F1172830_440521_4131.jpg)
최전방 강원 철원에 주둔하는 육군 제3사단(백골부대)은 지난 2일 사단 사령부내 태백중학교 학생
학도병전적비에서 추모행사를 가졌다고 3일 전했다.
추모식은 신상균 3사단장의 주관으로 화백회(태백중학교 학도병 모임)회원 40명과 가족들, 백골장병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 당시 조국을 위해 자원입대해 장렬히 산화한 학도병들을 추모하며
조총발사와 함께 헌화·분향했다.
앞서 3사단은 지난 1일 학도병들의 모교인 태백중학교를 방문해 학도병의 희생을 기렸다.
태백중학교 학도병은 1951년 1월 9일 새벽 중공군의 참전으로 아군의 전세가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박효칠 선생님과 127명의 학생들이 태백중학교 교정에 모여 “내 조국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구국의 뜻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들은 비포장도로 30여 km를 3일에 걸쳐 이동해 당시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주둔하고 있던 3사단 23연대로 자원입대를 요청, 잠깐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스스로 전장터로 향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23연대장인 김종순 중령은 16~17세의 앳된 학생들을 보고 20세 이하는 받아줄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나이와 키까지 속이면서 참전을 요청하는 어린학생들에게 감동받아 입대를 허락했고 이들은 수색중대 학도병 중대를 편성됐다.
군번을 부여받은 그들은 현역 전투병으로 수많은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성과를 올렸으나 총알이 빗발치던
전장을 누비던 어린 군인 중 열여덟 명은 적의 총탄에 의해 목숨을 잃으면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당시 학도병인 이용현 옹(83)은 “조국을 위해 펜 대신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내 전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백골부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용재 3사단 인사참모는 “영원히 소년의 모습으로 기억될 그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며
“학도병들의 호국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3사단 부사관단 대표로 주임원사가 분향을 하고 있다. (사진=3사단)](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ds.shinailbo.co.kr%2Fnews%2Fphoto%2F201906%2F1172830_440523_446.jpg)